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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2

   베네딕이라는 거목이 쓰러진 것을 본 우리는 바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했지만 그 걱정이 기우라는 게 밝혀지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행복 어린 미소가 왜 베네딕이 쓰러졌는지를 알려주었으니까.

   

   자기 딸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정신을 잃어버리다니. 이 인간 대체 머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대륙 최강의 남자를 이렇게 무너트리다니. 대단하네. 고용주님.”

   

   카리아의 헛소리를 흘려들으며 베네딕의 옆으로 다가간 나는 그새 꿈을 꾸는 듯 입을 우물거리는 베네딕의 뺨을 쿡쿡 찔렀다.

   

   “바보 파파.”

   “흡?!”

   

   내가 목소리를 내기 무섭게 눈을 뜬 베네딕은 나와 눈을 마주하고는 눈꺼풀을 끔뻑거리다 헛웃음과 함께 다시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했나. 루시가 저토록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꿈을 꾸다니.”

   “…바보 아버님. 뇌마저도 트롤과 동화해버리셨나요? 그런 거라면 우호우호하고 울어주시겠어요? 그래야 답이 없다는 걸 빨리 알잖아요.”

   “음? 으으음? 루시?”

   

   약간 공격적으로 말을 해주었더니 그제서야 베네딕이 몸을 일으켰다.

   

   딸한테 매도를 들어야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는 아버지라니.

   

   이 인간 대체 어떤 꿈을 꾸는 거야?

   

   환상 속의 루시는 파파 너무 좋아! 같은 말이라도 해주는 건가?

   

   …꿈속에서 바라는 말을 들으며 헤헤 웃을 베네딕을 상상하니까 좀 짠하네.

   

   “야. 베네딕. 뭔 일이냐. 너 아직 영지에 할 일 남아 있지 않아?”

   “…카리아. 너까지 있는 걸 보면 이건 분명 현실이군.”

   “그거 무슨 의미야.”

   “별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당장에 처리해야 할 일은 거의 다 마무리 되었으니 남은 건 본가에 올 여러 인력에게 맡길 생각이야.”

   “아니. 방금 그 말 무슨 의미냐고. 이 자식아.”

   

   카리아의 불만을 가뿐히 무시한 채 몸을 일으킨 베네딕은 멍하니 날 바라보다가 이내 헛기침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베네딕 알른이라고 합니다. 알른 가문의 가주이지요.”

   “예술 교단의 사도. 프레테라고 합니다.”

   “재봉사 니키스입니다.”

   

   재봉사 할머님께는 공손히 인사를 건넨 베네딕이었지만 프레테를 마주한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포셀과 대련을 할 때처럼 냉철한 베네딕의 시선 앞에 프레테가 어깨를 움츠린다.

   

   “사도님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예. 저희 딸아이의 그림이 그려진 장신구를 만드시는 분이잖습니까.”

   

   와. 프레테가 저렇게 짓눌린 거 처음 봐.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던 녀석인데 말야. 베네딕이 괴물이긴 괴물이구나.

   

   “덕분에 저희 딸아이의 얼굴이 참 유명해졌습니다.”

   “그게. 제가 멋대로 한 것은 아니고 다 영애의 허락을 구하고 나서.”

   “하하하. 사도님께 무어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신구 덕에 저희 딸아이가 행운의 상징이 되었는데 어찌 불평을 하겠습니까.”

   

   감사하다는 말과는 달리 베네딕이 붙잡은 프레테의 손에선 사람의 인체에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말입니다. 장신구에 그려진 그림이 워낙에 세밀했던지라. 혹여 화가의 마음에 삿된 무언가가.”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말을 끊으며 튀어나온 외침에 베네딕이 살짝 고개를 뒤로 뺀다.

   

   “베네딕 경. 예술의 길을 추구하는 자가 결코 어겨선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것은 순수입니다! 개인의 욕망을 내던지고 예술을 예술자체로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 그렇습.”

   “무얼 걱정하시는 건지 모르지 않습니다! 영애의 아름다움은 가히 여신의 재림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으니까요! 허나 저 프레테! 여신께 제 모든 걸 내걸고서 단언하건데 단 한 번도 영애께 성욕을 느껴본 일이 없습니다!”

   “예? 그게.”

   “정 믿음이 가지 않으신다면 이 자리에서 제가 증명을! 끄허억?!”

   

   어느 부분에서 발작 버튼이 눌린 건지 자신의 광증으로 베네딕을 압도하려는 프레테를 보던 나는 슬그머니 그의 뒤로 다가가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제 아무리 신을 모시는 사도라 할지언정 그 곳마저 단련하지는 못한 듯 프레테는 과장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처럼 귀여운 여자애를 보고서도 아무것도 못 느낀다니. 정말 쓸모없는 물건이네. 그치?”

   “끄흡. 끅.”

   “그런 건 있어봐야 거슬리기만 할 것 같아서 대신 처리해 줬어. 어때? 고맙지? 응?”

   

   바닥을 기는 프레테를 보며 무어라 하고 있으려니 뜨악해하고 있던 베네딕이 허둥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어. 루시. 사도님께서 먼저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한 것은 맞다만. 귀족 가문의 영애가 그런 말을 사용해선.”

   “시끄러워. 개허접 파파.”

   “개. 개허접?”

   “따지고 보면 이딴 변태 하나 제압 못한 파파 잘못이 제일 큰 거 아냐? 근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해?”

   “어. 그게. 그.”

   “빨리 사과해. 안 그러면 파파 따위한테는 말도 안 걸 거야.”

   “미안하다! 루시! 이 파파가 잘못했다아아아!”

   

   두 멍청이를 가볍게 제압한 나는 콧소리를 내며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바보 파파는 뭐하러 멍청한 얼굴을 들이민 거야?”

   “…1왕비님께 서신이 와서 말이다.”

   

   베네딕이 건네 준 종이 속에는 카리아가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자세로 나오는구나. 협상하기 편하겠어.>

   ‘딱히 얻고 싶은 것도 없는데요?’

   <없으면 만들어야지. 이런 기회는 쉬이 오는 게 아니야.>

   

   뭘 뜯어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할아버지는 이야기했지만 난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1왕비라는 인간과 계속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자체가 거슬려서 빨리 일을 끝마치고 싶다 생각할 뿐.

   

   “알른 가문의 봉합도 어느 정도 해결되어서 말이다. 루시 네가 바란다면 내 함께 담판의 자리에 서주려 했다. 이 파파가 왕국을 위해 했던 일이 참 많거든.”

   

   으음. 그러니까 베네딕은 순수하게 선의로 날 도와주러 온 거였나?

   

   …갑자기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샘솟네.

   

   난 또 베네딕이 괴상한 딸바보 짓을 하러 온 줄 알았지.

   

   눈을 마주치자마자 기절하고. 또 변태 사도한테 괴상한 트집을 잡아가면서 난리를 치길래 평소처럼 바보짓을 한다고 확신했단 말야.

   

   그래서 일부러 기 좀 꺾을 겸 세게 말을 한 거였는데 설마 선의에서 찾아온 걸 줄은.

   

   “정확한 사정까진 모른다만 우리 기특한 딸이 바라는 게 있다면 여태 소홀했던만큼 잔뜩 도와줄 생각이었다만. 이것 참. 또 오지랖을 부려버렸구나.”

   

   머쓱한 듯 웃음을 짓는 그를 보던 난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베네딕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았다.

   

   베네딕의 덩치가 워낙에 커서 그의 허벅지 하나로도 내겐 훌륭한 의자가 되었다.

   

   “루. 루시?”

   “개허접 무능 파파지만 그래도 마음은 기특하니까. 포상이야. 좋아?”

   “그럼! 완전 좋다! 우리 딸의 온기만으로 마음의 짐이 싹 녹아내리는 듯 해!”

   “으엑. 그건 좀 징그러운데.”

   

   내가 뭐라 하건 말건 베네딕은 녹아내릴 듯한 미소를 지은 채 히죽거리기 바빴다.

   

   그런 베네딕과 옆에서 날 기특하단 듯 바라보는 카리아의 시선이 거슬려서 고갤 홱 돌린 순간 바닥에 널부러졌던 변태사도와 내 눈이 마주쳤다.

   

   “조… 좋은 광경 감사합… 크헉!”

   

   신발 한 쪽을 벗어 던지는 것으로 변태사도를 쓰러트린 나는 턱을 괸 채 다리를 휘적거렸다.

   

   1왕비한테 요구할만한 거라.

   

   물질적인 건 솔직히 의미 없어.

   

   돈이야 변태 사도한테 뜯어내면 잔뜩 나올 테고.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것도 필요 없고.

   

   마도구 종류도 크게 의미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스크롤 쪽으로 가면 쓸만한 게 있겠지만 그것도 이번 일의 보상으로 받기엔 애매해. 으음.

   

   좋은 게 뭐 없나?

   

   아. 잠시만.

   

   할아버지가 권리나 약속 같은 것도 된다고 그랬었잖아.그러면.

   

   “거기. 있던 남자도 도망치게 만들 표정 짓고 있는 아줌마.”

   “…뭐. 내 표정이 어땠다고 그래.”

   “닭장 여왕의 숲이 그려진 지도 있어?”

   “닭장 여왕? 숲? 아. 설마 요정의 숲 말하는 거야?”

   “이해가 늦네. 왜 얼굴 주름은 점점 더 많아지는 데 뇌 주름은 줄어드는 거람?”

   “그런 말을 어떻게 이해하라고. 하아. 됐어. 잠시 기다려. 가지고 올게.”

   

   카리아가 건네 준 지도에는 요정의 숲과 그 인근 영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여기가 내가 아는 멜 남작령이 맞다면 요정의 숲이 지닌 규모는 내 예상 이상. 자그마한 나라라 불러도 괜찮을 수준을 자랑하고 있어.

   

   그리고 이 숲 안에는 신화의 시대 때 봉인된 이들이 그대로 머무르고 있지.

   

   그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결계 안에 머무는 이들은 어떤 상태일까. 영원한 잠에 빠진 이들은 쇠했을까? 아님 그때 그대로의 힘을 지니고 있을까?

   

   신화 시대의 싸움에서 벗어난 어둠의 기운은 사그라들었을까. 아니면 그 시절의 힘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까.

   

   요정의 숲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 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할아버지. 요정의 숲을 잠재운 마법의 기반은 결계죠?’

   <그건 왜 묻는 것이냐?>

   ‘대답해주세요. 중요한 문제에요.’

   <내가 마법을 만든 당사자가 아니라 정확하진 않다만. 아마 그럴 거다.>

   ‘그렇다는 건 요정의 숲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선 이 결계를 무너트려야 한단 거네요?’

   <그래. 그게 제일 빠르고 정확… 아니. 잠시. 뭐? 결계를 무너트려?>

   

   경악이 담긴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헛웃음을 흘린다.

   

   ‘계시를 받았거든요. 주신님한테.’ 

   

   좋아. 어디 왕가의 정보력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확인을 해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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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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