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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3

    고요한 겨울 숲 속, 문득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에 시루드는 눈을 떴다.

    “으으…, 대체 무슨 일이….”

    이유모를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와는 한순간에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결국 마지막 기억의 장면과 대화를 토대로 자신이 루크의 마법에 의해 공간이동을 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은 시루드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두통이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다던 초기형 ‘공간도약’에서 느낄 수 있는 ‘차원멀미’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옛날 사람들의 고충따위 책에서나 배웠지, 자신이 직접 겪어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하지만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기도 잠시, 곧 미셸이 떠오른 시루드는 서둘러 그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쓰러진 미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그냥 잠든 거 뿐이네.”

    그렇게 자신과 미셸의 상태, 그리고 주변 환경의 안전까지 전부 확인한 시루드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자신은 서클의 영향으로 비교적 빨리 신체반응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평범한 미셸은 정신을 차리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리그래도 갑자기 공간이동이라니, 루크도 진짜…….”

    어떤 종류던간에 공간이동 마법은 매우 어렵고 큰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지금도 네트워크에서는 ‘공간이동중에 사지가 절단되는 사고’같은 괴담이 심심찮게 언급되곤 하니까, 실제론 거의 벌어지지 않는 일이더라도 그 실수로부터 발생하는 참상이 심각한만큼 공포심이라는 게 있는거겠지.

    그런만큼 당연히 일반인이 저택에서 사용할 정도로 간단하고 안전한 마법이 아니다.

    진짜 옛날에는, 이런 공간도약을 위해서 8층짜리 건물 크기의 마나 연산장치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만큼 두 좌표간의 계산이 매우 중요하고 어려웠으니까.

    물론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계산식도 많이 간소화되고, 연산장치 자체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보니 그정도의 시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루크라는 개인이 아무런 외부의 지원도 없이 해낼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실험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라고해도, 11살짜리 여자애가 만들고 다룰 수 있는 마법이 아닐텐데…….

    시루드는 점차 과거 루크가 말했던 ‘나를 마법으로 뛰어넘으면 그때는 오빠라고 불러주겠다’는 약속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미래라는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루크가 자신의 몸을 위해 몰래 하고 있다는 그 ‘생체실험’도, 그 규모를 굉장히 축소해 알려준 것이 아닐까?

    “됐어, 깊이 생각해봤자 내 생각만 늘어나지.”

    어느 시대에나 항상 세상을 바꾸는 천재는 있어왔고, 이번 시대는 루크가 그런 존재인거다.

    그렇기에 열등감이나 경쟁심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니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던지.

    “그나저나, 루크는 우릴 어디로 날려보낸걸까?”

    주변에 보이는 나무나 풀 등의 식생이 루크의 저택 근처 숲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멀리 도약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디서 듣기로는 ‘게이트’형태의 마법은 그 잔향을 분석해 어떤 좌표로 이어지는지 추적할 수 있다던데, 이런 ‘도약’은 일방적 이동이라 흔적만으로는 보내진 위치좌표까진 파악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겨울 웨이브중인 숲이라서 gps가 잘 안돼.’

    숲지기용 gps가 아닌 저질의 민간용 gps로는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이러니까 웨이브기간 숲은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길을 찾으려면 결국 문명이 아닌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건데….

    “음… 해가 저쪽에 있으니까, 루크네 집 방향은….”

    오래 잠들어있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대충 가늠해보자면, 아마 저택에서 북동쪽으로 날아온 것 같다.

    얼마나 멀리 날려졌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루크는 무슨 하늘만 보고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만 찾는 것 같던데,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지.

    아무튼 대략적인 방향을 잡은 시루드는 일단 미셸이 일어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루크에게 가보기로 했다.

    마지막에 문을 두드리던 침입자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미셸을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후우, 좀 춥네. 역시 겨울인가.”

    이렇게 상황을 완전히 자각하고나니 이젠 날씨가 어떤지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엘프는 보통 추위에 강하다지만, 태어나길 도시의 엘프로 태어난 시루드는 다른 엘프들보단 추위를 꽤나 타는 편이었다.

    숨을 불면 바로 입김이 생길 정도로 추운 겨울 숲은 시루드에겐 보온마법없이 있기엔 꽤나 추운 날씨다.

    그순간, 시루드는 미셸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미셸의 옷차림 또한 주로 자동차나 실내에 있을것을 상정해 두껍진 않아서 추울것이 분명해보였다.

    자신은 예전에 루크가 알려준 발열 마법으로 어떻게 체온을 올린다고 해도, 시루드의 마법 실력은 아직까지 남의 체온까지 올려줄 수 있는 수준으로 정밀하지는 않았다.

    ‘으음, 어떻게 불이라도 지펴야하나…….’

    하지만 숲에서 허가없이 불을 피우면 안된다는 법률이…….

    그 순간이었다.

    -파슥, 파슥….

    숲 너머에서 문득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

    소리를 죽이려고 했는지 꽤나 조용한 발소리였지만, 시루드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몬스터인가?’

    설마 루크가 몬스터가 자주 출몰할만한 지역으로 보냈을까 싶긴 하지만, 이 시기의 숲은 몬스터웨이브가 극성인 때.

    확신할 수는 없으리라.

    어쩌면 마나의 반응에 민감한 몬스터가 공간도약의 영향으로 이끌려온 것일지도 모르고.

    ‘그런거라면 정리를 해둬야지.’

    그렇게 시루드는 미셸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발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위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물론 자신은 실제로 몬스터와의 전투경험은 커녕 숲에서 마주한 적도 없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작은 소형몬스터 하나에 마법사인 자신이 질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시루드는 자신이 먼저 들키지 않도록 은밀마법을 사용한 뒤, 조심스럽게 서클을 공명시키며 발소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걸음소리가 들렸던 장소에 왔는데도 별다른 몬스터의 흔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냥 겨울잠에서 일찍 깬 야생동물일지도 모를 일.

    “휴, 다행…”

    그렇게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돌린 바로 그 순간….

    -퍽!

    “엇…!”

    난데없이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시루드는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지고 만다.

    “정지.”

    그리고,시루드는 자신이 들었던 발소리의 주인이 몬스터도, 야생동물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사람이었어!’

    목소리를 들어보건데, 자신의 뒤를 잡은 이는 여성이었다.

    그것도 들리는 소리의 높이를 보면 꽤 키가 큰.

    시루드는 곧장 대응하기위해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는 곧 정체모를 무언가를 자신의 뒤통수에 들이대며 말했다.

    -철컥.

    “들리지 않아? 움직이지 말라고.”

    시루드는 넘어지면서 마침 패딩에 달린 후드가 머리에 엎어졌기에 그녀가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겨눈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쇳소리가 나는 그것이 결코 장난감은 아닐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 남의 뒤통수에 어떤 물건을 들이미는 행동은 결코 호의에서 비롯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건 역시 마법이 장전된 지팡이이려나.

    시루드는 일단 움직이지 말라는 그녀의 말대로 몸을 일으키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채 그녀의 다음 지시사항을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이 서클마법으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이런 긴장 속에서 이미 지팡이에 장전된 마법을 뒤통수에 쏴버리는 것보다는 빠를 수가 없으니까.

    이후 그녀는 시루드가 자신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생각했는지,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 그대로 대답해. 넌 누구지? 어째서 여기에 네가 있는 거니?”

    “네? 어째서 여기에 있냐니….”

    시루드는 갑작스런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자신의 정보를 넘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녀가 건넨 질문의 모호함 때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허, 시치미 떼지 마렴. 긴급탈출 프로토콜을 사용했잖아.”

    “…네? 긴급탈출 프로토콜이요?”

    “그래. 너희가 사용한 공간도약 말이야. 그건 저택에서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여기엔 그녀가 아닌 너희가 있네. 그러면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긴급탈출 프로토콜, 저택, 그리고 그녀.

    그녀의 이어진 말에서 어딘가 익숙하고 연결되는 것 같은 일련의 단어가 나열되자 시루드는 그제야 그녀가 무엇을 알고 싶은건지 이해했다.

    ‘이 사람은 루크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어하는구나.’

    이후 시루드는 빠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단서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루크의 탈출수단을 알고있고, 그녀가 나타날 장소에서 알고 있다는 듯이 기다리는 무장한 여인.

    그녀는 어쩌면, 현재 루크의 저택을 찾은 ‘침입자’와 동료가 아닐까?

    아마 루크가 도망칠때를 대비해 퇴로를 차단하려고 이곳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거라면 지금 반드시 막아야돼.’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시루드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과 높이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사실 서클마법사에게 신체의 구속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법을 사용할 때에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예컨대 산수문제를 풀 때에 손가락을 접었다 펼쳤다 하여 도움을 받는 것처럼 그저 계산과 이미지를 돕기 위함일 뿐, 반드시 사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루크도 손을 사용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로도 웬만한 마법은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고.

    그러니 자신 또한 해낼 수 있을것이다.

    마법이 구현되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말단지휘 없이 상상과 계산으로 현상을 제어한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눈과 몸으로 재어보고 확인할 수 없다는 공포가 발상을 저해하는 것 뿐.

    시루드는 자신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명치 부근에서 마나를 배열하고 정제하여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래 캐스팅한 마법이 어느정도 준비된 순간.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관둬, 시체에서도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많으니….”

    -철컥….

    뒤통수에 느껴지는 지팡이의 압박감이 극에 달한다.

    그리고 시루드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지금!’

    시루드는 캐스팅한 마법을 쏘아냄과 동시에, 곧바로 몸을 옆으로 굴려 뒤통수를 누르던 지팡이의 압력에서 벗어났다.

    -파앗-!

    갑작스런 소년의 행동에 그녀는 빠르게 지팡이를 다시 조준했지만, 소년의 품 속에 가려져있던 붉은 점이 마치 억눌려있던 용수철처럼 쏘아져 그녀의 머리를 향해 선을 이루며 나아간다.

    그것은 소년이 몸으로 숨긴 채, 최대한 은밀하게 압축하고 정제시킨 불의 원형이었다.

    “…!”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받을지는 예상치 못했는지, 그녀는 가면 너머로 조금 놀란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나 기습에 대처하고 있었던 그녀는 고개를 틀어 그 공격을 피해낼 뿐이었다.

    그래서 쏘아진 공격은 그녀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에 씌여진 가면만을 스쳐 벗겨낼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시루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루드만 경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에엑?! 대, 대체 이게 무슨…!?”

    “시루드? 잠시만, 네가 왜 긴급탈출 프로토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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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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