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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3

       일견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평화가 찾아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적어도 백우진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문제는 이 세상이 아닌, 세상 밖에 존재했다.

         

       이곳 세계에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존재.

         

       NovelGod.

         

       알고 나서 보면 더없이 적나라한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신.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몇 번이나 비틀며 인위적인 흐름으로 위기를 자아냈다.

         

       이에 맞서 그는 한 차례 세상을 구원하고, 이곳에서 살아가기를 택했다.

         

       그렇기에 안심할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삼류 작가가 또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위기를 드리울지 알 수 없기에.

         

       가볍게 몸을 일으킨 그는 어느덧 배가 부풀기 시작한 제 부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니, 큰일 났어요! 서방님이 절 유혹하려나 봐요. 어떡하죠? 아직 안정일은 멀었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처리할게!”

       “아냐, 이런 건 내가…!”

       “본녀가 해도 된다만, 흠흠.”

       “…….”

         

       아니.

         

       그냥 지켜만 봤을 뿐인데.

         

       신혼은 눈만 마주쳐도 활활 타오른다더니.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서 동침 대상을 정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힘이 들어간다.

         

       아랫도리가 아닌 의지의 얘기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지.’

         

       돌아갈 집이 생겼고, 평생을 함께할 부인들이 생겼다.

         

       그리고 곧 있으면 또 다른 제 삶의 보람이 되어 줄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 세계에 제 목숨과 맞바꿔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들이 더 늘어난다는 뜻.

         

       이를 위해서 백우진은 그를, 신을 만나야만 했다.

         

       이윽고 태어날 제 아이들이 평온 속에서 꿈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게.

         

       마침내 결심이 선 백우진이 여전히 오늘 밤 동침 문제로 떠들썩한 부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송구스럽게도 오늘 동침은 없습니다, 부인 나으리들.”

       “뭣…!”

       “뭐라고욧?!”

         

       아니.

         

       이럴 때만 꼭 잘 맞는다니까.

         

       부인들의 기세에 살짝 눌린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오늘은 집무실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야.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거든.”

       “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분위기.

         

       무인에게 깨달음이란 그러한 것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망연하여 쫓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끔 만들어 주는 귀중한 순간.

         

       “정말 고금제일인이 되려나 봐요.”

       “그러게…, 저리 강한데도 또 깨달음이라니.”

       “나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몰라요. 경지가 더욱 올라가면 정력도 더….”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보다 더 크게 들리는 건 왜일까.

         

       노골적인 그녀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입을 여는 백우진.

         

       “아무튼…, 며칠 걸릴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들 하지 말고 태교에 힘쓰고들 계셔.”

         

       그러자 부인들도 화답하길.

         

       “당신이나 우리 걱정일랑 말고 깨달음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오도록 해.”

       “마, 맞아요.”

       “아아…, 나도 사내일 땐 고금제일인 같은 거 꿈꿨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서방님이 대신 이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후후, 되도록 양기를 잔뜩 키워서 나오셨으면 좋겠네요.”

       “야, 양기 좋지, 음흠흠.”

         

       재미있다.

         

       한마디를 던지면 각기 다른 대답이 돌아와서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아이들까지 더해지면 또 얼마나 즐거워질까.

         

       이들과 함께하는 평생은 분명 지루할 틈 없이 행복만 가득할 터다.

         

       이를 위해서라도.

         

       “다녀올게.”

         

       백우진은 가야만 했다.

         

       곧장 집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그는 품위를 위해 빼곡하게 꽂아둔 빳빳한 서책들 사이에 낡고 허름한 서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영웅비록(英雄祕錄).

         

       용사에서 영웅이 된 그의 일대기를 빼곡하게 기록해 둔 기서(奇書).

         

       삼류 작가는 말했다.

         

       이곳에 제게로 향하는 길을 안배해 두었노라고.

         

       서책에 손을 가져간 그는 얇디얇은 표지 한 장 넘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후우우….”

         

       심장이 뛴다.

         

       그것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빠르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원한다면 언제든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는 그라도 지금은 무리였다.

         

       이 책을 펼친 이후는 온전히 그의 경험 밖의 일이기에.

         

       경험을 쌓는 것도 안 된다.

         

       기회는 오직 단 한 번뿐.

         

       수십, 수백, 수천 가지.

         

       온갖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던 백우진은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문득 그 모든 수가 무의미하게 여겨졌기 때문.

         

       이 책에 실어 보내야 할 건 지금껏 쌓아 올린 힘도, 경험도, 하물며 지식도 아니었다.

         

       ‘의지.’

         

       유용한 건 의지뿐이다.

         

       수십 년간 바라고 또 바란 끝에 얻은 가족.

         

       분에 넘칠 만큼 예쁘고 현숙한 부인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곧 태어날 아이들까지.

         

       그들이 걱정 없이 살아갈 세상을 위하여.

         

       “가즈아!”

         

       거침없이 서책을 넘긴다.

         

         

       * * *

         

         

       아득하니 멀어진 감각 너머로 희미한 말소리들이 들려온다.

         

       “예, 편… 님. 다음 편…, 모레…, 죄송….”

         

       서러움과 억울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

         

       “수정…, 그건…, 너무 갑작…!”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

         

       “하아…, 사표…, 쓰…, 싶….”

         

       회한과 고민으로 가득 찬 목소리 등.

         

       꿈과 희망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부정의 소용돌이.

         

       그것들이 잠들어 있는 백우진의 정신을 서서히 자극했다.

         

       그 끝에.

         

       백우진은 눈을 떴다.

         

       번쩍!

         

       “윽엑.”

         

       그리고 곧장 눈을 감았다.

         

       열린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빛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

         

       한 차례 고통을 겪은 뒤 서서히 시간을 들여 가며 눈을 뜬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그의 귀를 때렸다.

         

       “이번 연재가 늦어진 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원고를…!”

       “그 부분은 절대 수정이 불가하다고 미리 못 박아 두셔서 저희도 어쩔 수 없다니까요….”

       “에휴, 지겨워.”

         

       이를 들은 백우진은 제 귀를 의심했다.

         

       ‘뭐지.’

         

       매일 같이 원고가 늦는 작가에게 시달리는 출판사에서 들릴 법한 목소리들.

         

       이에 의아함을 느낀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하늘.

         

       그 아래 세워진 순백색 대리석 건축물.

         

       그 사이를 노니는….

         

       “천사…라고 해야 할까, 저걸.”

         

       일단 날개는 달려 있다.

         

       그것도 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날개 한 쌍 또는 두 쌍.

         

       그런데 얼굴에 하나 같이 때가 묻어 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피로로 만들어진 찌든 때가.

         

       “…이게 사축이야, 천사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습에 백우진은 호기롭게 영웅비록을 펼치던 때를 떠올렸다.

         

       빼곡하게 적힌 그의 일대기를 지나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더랬다.

         

       그다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

         

       그 말인즉, 어떤 문제가 생겨 이상한 곳에 도달하지 않은 이상 이곳에 신이 있다는 건데.

         

       어찌나 바쁜지 제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전화기를 잡고 씨름하는 이들 중 그나마 사정이 나아 보이는 한 사람을 골라 묻는다.

         

       “길 좀 물읍시다.”

       “엉? 길은 무슨 길…?”

         

       피로에 검게 물든 눈으로 백우진을 바라본 사내의 얼굴에 이채가 서린다.

         

       “어라…, 당신, 백우진?”

       “그렇소만.”

         

       그가 답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책상과 한 몸이라도 된 듯 늘어져 있던 사내가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야…! 진짜네! 진짜 백우진이야!”

         

       길 가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우연히 마주한 사람 같은 느낌.

         

       이에 의아해진 그가 되물었다.

         

       “날 아슈?”

       “모를 리가! 당신, 우리가 출판한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의 주인공이잖아!”

       “어, 음.”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가기로 결심한 세상의 제목인 모양.

         

       “제목이 참….”

       “으하하하! 좀 그렇지? 그래도 이해해. 요즘은 이런 제목이 아니면 안 먹히거든.”

       “음….”

         

       빠르게 이해했다.

         

       그가 이세계를 구하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 보던 소설들의 제목도 다 저런 식이었다.

         

       제목이라기엔 조금 길지만, 한눈에 소설 내용이나 주인공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이름들.

         

       ‘주정뱅이…, 틀린 말은 아니지.’

         

       그 이름으로 보아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왜 검선이 아닌, 주선(酒仙)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백우진’의 몸에 빙의된 순간부터 정해진 결과였던 거다.

         

       철저하게 소설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주인공에게 다소 특이하고 특별한 성장 방식과 성향을 쥐여주고 싶었던 것일 테지.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사내가 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당신 이야기는 정말 잘 봤어! 마지막에 천마를 베던 순간은 정말…, 크으…!”

         

       그 탓에 백우진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천마.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은 그에게 역린이나 다름없었기에.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사내 또한 황급히 입을 닫고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차…, 미안! 그 부분은 당신에게 좋지 않은 경험이었을 텐데, 너무 내 생각만 했어.”

         

       황급히 고개 숙여 사과하는 사내의 모습에 기분이 풀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실언했을 뿐, 무례한 사람…, 아니, 천사는 아니었던 모양.

         

       표정을 통해 이를 눈치챈 사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작가님…, 그러니까 신님을 뵈러 온 거지?”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이곳과 마찬가지로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

         

       “저기가 신님의 작업실…, 아니, 신전이야.”

       “고맙소.”

         

       친절하게 알려준 사내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떠나려 할 때였다.

         

       “아, 잠깐만!”

         

       백우진이 돌아서서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자, 사내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새하얀 종이를 들이밀었다.

         

       “갈 땐 가더라도 사인 한 장 정도는 괜찮잖아?!”

       “…….”

         

       묘한 박력에 압도당한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종이와 필기구를 건네받았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지구의 펜.

         

       그것으로 새하얀 종이에 백우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멋들어지게 적어 넣은 뒤 건네준다.

         

       이를 받고서 환하게 웃는 사내.

         

       “정말 고마워…! 이건 내가 가보로 간직할게!”

       “아니, 가보까지야….”

         

       이쯤 되니 슬슬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뭐라고 이렇게 애틋한 애정을 드러내는지.

         

       종이를 소중히 품에 안은 사내가 말을 잇는다.

         

       “작가…, 아니, 신님께 소원을 빌러 온 거지? 부디 당신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랄게!”

         

       제 앞날을 빌어주는 사내를 향해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맙소.”

         

       이를 끝으로 사내와 이별한 뒤, 그가 일러준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간다.

         

       천사들이 묘하게 세속에 찌들어 있는 듯 보이긴 하나, 풍경 자체는 신비로웠다.

         

       지금 그가 딛고 선 땅만 봐도 그렇다.

         

       “…구름을 밟고 있다니.”

         

       푹신한 감촉.

         

       그러나 조금 깊숙이 밟으면 딱딱한 감촉이 동시에 전해진다.

         

       그 기묘한 감촉을 느끼며 걷기를 잠시.

         

       마침내 그의 앞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신전이 드리워진다.

         

       “…….”

         

       굳게 닫혀 있는 거대한 문 앞으로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크그그긍…!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틈 너머로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어지럽게 흩어진 종이들.

         

       그 사이로 깃털로 만들어진 붓이 둥둥 떠다닌다.

         

       수없이 많은 붓과 종이로 난잡하게 변해버린 풍경 너머로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곱슬머리, 두꺼운 안경, 며칠 안 깎은 듯 까슬까슬한 수염.

         

       꾀죄죄하다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순 없어 보이는 사내.

         

       그가 중얼거린다.

         

       “아…, 차기작 뭐 쓰지. 또 저 녀석을 데려다 쓸까? 용사에 영웅까지 했으니까…, 이번에는 최근 트렌드에 맞춰서 엑스트라로 빙의를 시켜도 재밌을 것 같은데.”

       “…….”

         

       저것은 살아 있어선 안 되는 악의 근원이다.

         

       백우진은 그리 판단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하루 늦게 돌아오게 되어 송구하다는 말씀부터 전합니다.

    일이 다행히 좋게 마무리된 만큼, 안도하는 기분으로 사정을 조금 설명드리자면…

    사촌 형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단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외동인 저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던 친형이나 다름없는 분인데,

    밤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좋지 않아 살 확률이 반도 안 된다는 얘기까지 들려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병원 근처 친척 집에 모여서 울고불고 하는 와중에 다행히 월요일 밤부터 상태가 호전돼서 죽을 고비는 넘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식습관, 생활 습관 전부 뜯어 고쳐야 하지만 사는 데에 회복만 잘 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고도 하시더군요.

    덕분에 한시름 놨다고 기뻐하시는 어머니와 친척 분들이 술로 회포를 푸시는 바람에 예정보다 하루 늦게 올라오게 되었읍니다.

    그때부터 부지런히 글 쓰니 연재 시간에 맞춰서 글이 다 써졌네요.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일도 잘 해결된 만큼, 부지런히 완결까지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또 감사하단 말씀 전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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