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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4

    <524 – 금기를 범한 사악한 제국>

     

    “제토!!”

     

    이안도 실패했다.

    우르가스도 실패했다.

     

    다음으로 솜씨를 보이는 자는 마나재해 심층지대에 잠든 비보를 노리는 도전자는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귀물을 노리는 강자.

    천애단벽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최강의 유실품을 노리는 검술도둑 제토였다.

     

    “투창이라. 검이 아니라면 나의 모방에는 한계가 걸린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인가?”

     

    제국십구강에 준하는 강자들.

    그 말을 달리하자면, 제국19강에 한없이 가까울 수는 있어도 그들을 넘어서지는 못한 반푼이들.

    제토는 제국19강과 동격의 강자, 대륙십대도둑의 10위에 속한 목숨도둑 륭 노사를 진심으로 죽일 작정인 고수였다.

    같은 반푼이여도 급이 있다.

    다음 경지를 올려다보는 자와 이미 그 경지에 한쪽 발을 올려선 자.

    그리고 발을 딛고 뛰어오를 차례만이 남은 자.

     

    “내게 남은 것은 한 번의 발디딤.”

     

    제토의 손이 자신을 스치는 투창을 낚아챘다.

    쏜살같이 날아간 투창이 놀란 눈을 한 기사단원의 역장을 뚫고 단원 한 명을 추락시켰다.

     

    “해치웠나?!”

     

    우르가스의 악담이 나오기 무섭게 기사단원 여럿이 동시에 제토를 노리고 집중투창을 던졌다.

    제토의 검이 몇 개의 투창을 쳐냈지만 그가 탄 암흑하피가 투창 하나에 한쪽 날개를 관통당해 지상으로 추락했다.

    발디딤은 개뿔, 저 밑으로 추락하는 녀석을 기사단원 몇이 쫓아 내려갔으나 우르가스 또한 제토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

     

    “언제까지 힘을 아낄 거냐, 이안!!”

    “으응~ 그래도 의욕이 안 나는 걸 어떡해? 우린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잖아?”

     

    화염 장막으로 제 몸 하나만 건사하는 이안에게 조력의 의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내키지 않지만, 미치도록 싫지만 이제 그가 의지할 구석은 하나밖에 없었다.

     

    “샤를로테!!”

    “시끄러워. 이쪽은 이쪽대로 바쁘다고.”

     

    미모로 남자를 유혹하는 암흑하피보다 더욱 늘씬한 몸매와 선이 뚜렷한 외모를 지닌 찬란한 금발의 미녀 샤를로테.

    남녀노소 모두를 홀리는 것은 그녀의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햇빛의 광채를 머금은 그녀의 검격에 홀린 기사단원 다섯 명이 동시에 피를 흩뿌리며 샤를로테의 주변에서 추락했다.

     

    “공중전에서 영역을 뻗고 좌표를 뛰어넘어 공격을 내지른다… ‘같은 기교’라서 더욱 까다로웠어. 좌표를 읽는 재주는 피차 마찬가지니까.”

     

    샤를로테는 줄곧 읽고 있었다.

    상대의 영역을.

    그들이 구사하는 투창공격의 원리를.

    그녀와 같았다.

    용사 이슈타르의 상위호환 기술.

    공격의 시작점과 도착점이 특정된 <홀리미러>와 달리 전조현상이 존재하지 않는 단절된 공격.

    그것을 고공기사단은 투창을 통해 펼쳤다.

    사전동작은 와이번의 등 뒤에 숨어서.

    투창의 경로 사이 사이를 공간을 뛰어넘어 대비할 시간을 허락지 아니하며, 방어할 부위를 속이면서.

    심지어 본인들의 기동은 와이번의 비행으로 대체하니,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적의 공격은 여유롭게 원거리에서 회피한다.

    검사나 창술사, 근접무기 사용자의 불리함을 완전히 극복한 사기적인 교전교리를 수립했다.

     

    그래서 읽을 수 있었다.

    어디를 노리고 어디로 회피해야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지 ‘같은 고민’을 해왔던 몸이니까.

    지면에 발을 디딘 싸움만을 해왔던 그녀가 ‘공중’이라는 입체적인 전장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이해했다면 다음은 없다.

     

    ‘재단의 아가씨는 다른 아가씨들의 피를 머금고 올라서는 자. 내게는 내 손으로 쓰러뜨린 모든 생명의 몫까지 강해져야 할 의무가 있어.’

     

    그렇기에 일점도야는 멈추지 않는다.

    어떤 장애물도 전부 뛰어넘는다.

    고공에서의 싸움도, 같은 수를 구사하는 창술사들의 기습도, 현란한 회피경로를 자랑하는 와이번도.

     

    “물러나라. 너희 상대가 아니다.”

    “이름 있는 강자네.”

    “누구에게나 이름은 있지.”

    “들을 가치가 있는지는 내가 정해.”

    “그래, 내게는 그 가치가 있었나?”

    “그래. 그러니 말해.”

     

    쓰러뜨린 줄 알았던 고공기사단원들이 비틀거리며 후열로 물러선다.

    그조차도 눈엣가시처럼 성가시거늘, 그들 모두를 지키듯이 단독으로 나선 가장 큰 체구의 와이번과 그 위에 탑승한 기사는 나머지 전부를 합친 것 이상으로 더욱 거슬렸다.

     

    “원정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중노동이 기다릴 줄 알았으면 조금은 늦장을 부릴 걸 그랬군.”

     

    남자는 푸념하면서도 투구 아래로 푸른 눈을 빛내며 고고하게 한 자루의 창을 비스듬히 팔에 쥐었다.

     

    “창공기사 드미트리. 고공기사단의 기사단장이자 어중칠검의 1좌. 제국에서 명실상부 최강을 앞다투는 최강자라고 소개해두지. 젊은이, 자네의 이름은?”

    “샤를로테. 아카데미의 3학년 휴학생이자 마나재해 심층부의 공략에 성공한 비보탈환자. 보호자에게는 쿨뷰티계 공주기사 미소녀라고 불리는 몸이야.”

    “쿨럭.”

     

    당돌하게 수치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 그녀의 언동에 드미트리는 순간 평정을 잃고 기침을 내뱉었다.

    찰나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샤를로테의 <비보>가 번뜩였다.

    왼팔의 어깨, 팔꿈치, 손목을 노리는 일점도야의 삼연격이 튕겨나가기 무섭게 무수히 분화하는 타점이 드미트리의 감각 위로 파고들었다.

     

    ‘제국십구강 상위권 수준의 강함!’

     

    드미트리는 샤를로테의 실력에 크게 놀랐다.

    배후 7연격과 하단 13연격, 상단 5연격은 모두 속임수. 진짜는 팔을 노리는 3연격과 정확히 같은 부위에 투사되는 살기이지 실초가 아니다.

    알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다른 부위로 쏘아지는 살기와 이를 뒤따르는 공격 경로.

     

    샤를로테는 말하고 있다.

    어느 방위, 어느 방면의 공격도 결국은 네 팔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예외가 발생한다면 너는 그 대가를 감수해야만 한다.

     

    자, 이제 어떡할 테냐.

    알려준 답안지대로 팔을 향한 공격만을 방어하겠나.

    아니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불안정한 자세로 여력을 남겨두며 다른 방위의 공격에 대응하겠나.

     

    적이 노리는 방향을 알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샤를로테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심리전이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게 몰아친다.

    드미트리는 찰나 속에서 매번 모든 공격이 심리전인지 진실인지 판별하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전방위 초밀집영역전개>

    <호신강기>

     

    분간할 수 없다면 전부 막는다.

    격화되는 싸움 속에서 드미트리는 답을 찾았다.

    샤를로테의 검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지탱하는 암흑하피의 한계를.

    숨 막히는 검격이 드미트리의 숨통을 끊기 전, 드미트리의 검격에 베인 암흑하피가 추락했다.

    그런 개판 속에서 샤를로테를 따라 함께 지상으로 내려가 적의 수괴나 다름없는 드미트리와 칼부림을 벌일 의리 따위, 우르가스에게는 없었다.

     

    ‘여기까지군. 잘 있어라, 오합지졸들아.’

     

    조용히 검에 베인 척 비틀비틀 고도를 낮추며 기사 몇 명만 유인해서 이탈하려던 우르가스는 갑자기 슈슉 하고 사라지는 주변풍광을 보았다.

     

    “?”

    “말하는 걸 깜빡했네. 넌 나한테서 100m 이상 못 떨어져.”

     

    지상으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뻔뻔한 소리를 지껄여오는 샤를로테.

     

    “개소리!”

     

    유실물을 사용해 순간이동을 사용했던 우르가스가 재차 샤를로테의 앞으로 소환되었다.

     

    <강제송환>

     

    우르가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당장 자신들의 몸뚱이에 창으로 구멍을 뚫지 못해 안달이 난 고공기사단 때문이 아니었다.

    강제송환의 의미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알고 있겠지. 강제송환은 보통 살아있는 생명에게 걸 수 없는 주문이라는 것쯤은.”

    “내 몸에 사령술의 주문을 걸었어…? 내, 내가 이미 죽었다가 일어난 언데드라고?!”

    “엄살 부리지 마. 시술은 포인트를 받고 사다코 교수님이 직접 해주셨으니까. 피부를 썩혀서 좀비나 스켈레톤으로 만들기 전에 순순히 따르도록 해.”

     

    재단의 1학년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도 꽤 하는 아이이기는 했지만 역시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지.

    죽은 놈도 알뜰하게 써먹는 실용성 정도는 갖추어야 고학년이라고.

    샤를로테는 절규하는 우르가스를 소환수로 써먹으며 추적에 맞섰다.

     

    “하하. 개판이네.”

     

    뿔뿔이 흩어진 일행들을 보며 이안이 말했다.

    오크노디 구출조는 구출이 간절했다.

     

     

    * * *

     

     

    자신을 뒤쫓던 고공기사단을 모두 베거나 따돌린 검술도둑 제토.

    그가 빗물에 젖은 제국일보를 신발로 툭 밀치자 발에 실린 공력이 신문지를 빳빳하게 펼치며 물기를 단숨에 털어냈다.

     

    12월 25일.

    유일신 소페미아의 탄생기념일.

    아카데미는 이미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가거나 완전히 끝날 무렵이다.

     

    제도의 뒷골목에 우뚝 선 그는 잠시 고민했다.

    가판대의 암흑상회와 접촉할까.

    술집의 도적길드와 접촉할까.

    암호를 새긴 혁명군 잔당과 접촉할까.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절박한 자들은 내민 손을 가리지 않는다.”

    “형씨가 우리를 도울 수 있단 말이요?”

    “혁명군을 파괴한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그녀의 신변을 황궁 밖으로 꺼내고 싶다면 이제부터는 내게 전적으로 협력해라.”

     

    혁명가를 잃은 혁명군은 오합지졸이지만 도적길드조차 부담스럽게 여길 정도로 그 세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가듯이 혁명가를 잃은 혁명군도 한동안은 조직으로서의 최소한의 역량은 보장된다.

    적어도 어중이떠중이 테러리스트들을 긁어모은 것보다는 쓸만할 것이다.

     

    “?”

     

    제토는 그리 생각했었다.

    혁명군의 비축창고에서 어떤 물건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뭐냐, 이것들은.”

     

    여아용 흰색 곰돌이팬티.

    어린이용 보온망토.

    파란 프릴리본에 하얀 원피스.

    여아용 하얀 버선신발.

    하나같이 여아용 물자가 잔뜩 비축되어 있었다.

    혁명군의 창고라면 응당 보여야 할 병장기나 방어구, 암살도구 따위는 의류박스에 밀려서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굴러다니는 모습도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진짜 뭐냐 이것들은.”

     

    혁명군 창고지기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오해입니다! 우린 결코 어둠의 페도단이 아닙니다. 사적인 욕망을 위해 여아용 장비들을 매입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설명해라. 내가 납득이 갈 수 있도록.”

    “혁명가를 잃은 혁명군은 고액후원자들을 잃은 탓에 활동자금을 스스로 벌어야 했습니다. 시장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대세를 추종하는 매매를 했을 뿐입니다. 시중에는 지금 여아용 장비들이 품절에 가까울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단 말입니다!”

     

    페도로 오인받은 혁명군에게는 필사적인 해명에 불과했으나, 그 해명은 아카데미 고학년 휴학생에게는 다른 의미로 섬뜩하게 들렸다.

     

    “의복의 수량은. 어느 정도의 물량이 단숨에 팔려나간 거냐.”

    “초동물량으로 시중에 풀린 약 20만 벌의 물품이 동이 나고 후속물량으로 찍어내는 만 단위의 물량이 나오는 족족 팔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저희 창고에 있던 혁명장비들을 팔아서 급매한 겁니다!”

     

    고공기사단에게 쫓길 적에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심이 제토의 심장을 가득 메웠다.

     

    “제도에서 통상 연간 팔리는 여아용 의복은 어느 정도의 수량인지 추산할 수 있는가?”

    “유동인구는 많지만 어린이용 의복에 높은 값을 지불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춘 상류층 인원은 고정된 편입니다. 추정으로는 대략 20만 남짓이지요.”

    “그 많은 인원들이 급히 단일품목을 매입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가?”

    “없습니다.”

    “그럼 이유는 하나밖에 없군.”

    “설마…”

    “그래. 제국이 금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제토는 확신했다.

     

    “호문쿨루스.”

     

    제국이 대량의 여아 사이즈의 호문쿨루스 증식에 손을 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재단이 겪었던 억울함을 제국에게도 체험시키는 다크프린세스와 연참하는 테디베어

    오늘은 다음화가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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