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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4

    한편, 루크는 시루드와 미셸을 대피시키자마자 문을 파괴하며 등장한 관을 멘 거한의 남성과 파편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현관에서 대치중이었다.

    “……역시, 닮았군.”

    루크는 작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잠깐 게이트 너머로 본 것을 제외하면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그의 얼굴은 정체를 숨기는 로브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루크는 처음부터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옛 친구이자 동료였던 ‘케일 프롭슨’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야 그러지 않을 수 없겠지.

    왜냐하면 그 역시도 그랜드 소드마스터였고, 체격이 좋았으며, 토벌전쟁당시엔 성창을 담은 목함을 관처럼 메고 다녔으니까.

    이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면, 정말 바보가 아닌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리가 없다.

    하지만 똑같이 사족보행을하고 말목이며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이유로 코뿔소가 유니콘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이 그를 케일 프롭슨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레니에조차 소생을 포기했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졌던데다가, 이후엔 그 남아있던 잔여물조차도 마왕의 사망과 동시에 공간 자체가 소멸하며 영영 시체를 수습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마계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예상되는 흑마법사이더라도 케일을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쇠락한 계였다고는 하나, 하나의 계에서 신의 자리까지 다다랐던 존재의 영향으로인해 소멸당한 육신을 되찾아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루크도 한때 그의 육신을 수습하고 싶은 자였던만큼, 누구보다도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잘 아니까.

    따라서 그는 그저 특징이 닮은 사람일 뿐, 절대 동일인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누구인가.

    사실, 그에 대해선 예전에 레니에와 함께 신상을 조사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난 수십년간의 데이터 어디에서도 그와는 일치하는 마나배열데이터는 커녕 비슷한 체격이나 능력을 지닌 인물조차도 찾아낼 수 없어서 아직 시민데이터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제3세계의 뒷세계 암살자가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났었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전 대륙 어디에서도 이만한 능력을 지닌 자에대한 소문조차 돌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규격을 넘어선 재능과 능력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주목을 끌기 마련. 

    이 사실은 그곳이 열린 사회이든 닫힌 사회이든 가리지 않고 통용되는 법칙이다.

    따라서 이만한 능력을 지닌 인물은 반드시 흔적이 남아야만했다.

    애초에 이런 인간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들도 찾아내지 못했을테니.

    그나마 과거 대륙전쟁시기 활동했다는 ‘노인’이라는 암살자가 그의 특징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건 이미 100년도 더 된 과거이야기이고, 마른 체격과 검사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운 작업수법, 의외로 수다스러운 성격등 ‘장의사’와는 일치하지 않는 특징이 꽤 있었기 때문에 원래 마법사였던 그가 운동을 하고 몸을 키워 오러를 익힌 뒤, 서클을 포기하고 그랜드소드마스터가되어서 100년의 세월을 넘어 도착한 것이 아니라면 그와는 별개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르다.

    애초에 그가 일반적인 언데드는 맞는걸까?


    이렇게 가까이서 단 둘이 마주해보니, 그에게서 느껴지는 체향에는 묘하게 언데드의 잔향이 적었다.

    흑마법의 불결한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였던 세이어와는 달리, 장의사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젖은 흙이나 씻지 않은 동물과 같이 비교적 평범한 범주에 속하는 냄새.

    조금 꿉꿉하긴 하나, 어디까지나 생물과 물질계에서 맡을 수 있는 일상적인 냄새의 집합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동안 그에게서 느껴지던 강한 언데드의 향기는 그저 근처에 있던 세이어의 것이 옮겨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세이어가 풍기던 흑마법의 냄새는 정말이지 코가 삐뚤어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런 단순한 체향말고도 그는 몸의 어딘가가 썩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영혼에 불길한 악령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으며, 딱히 흑마법사나 술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에 루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당장 신성력을 직사한다해도 과연 효과가 있을지…….’

    새로운 형태의 언데드.

    언데드에겐 언제나 확실한 대안이 되어주던 ‘신성력’도, 이 경우엔 어떨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언데드가 신성력에 약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불과한 것.

    그 대상이 일반과 달라진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어쩌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고.

    뭐, 지금은 어차피 신성력 또한 평범하게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불확실함에 도박을 걸 필요는 없겠지.

    루크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목적이 무엇인가? 어째서 이런 짓을 했지?”

    대화가 통한다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상대는 평범한 이가 아닌 그랜드마스터급 소드마스터.

    이 거리에선 닭의 목을 비트는 것보다 손쉽게 마법사를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다.

    물론 이곳은 마법사의 ‘특이점’으로 가득한 장소이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해버리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시루드가 처음 느낀대로 현재 자신의 서클은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

    서클의 중심이 불안정한 지금은 섣불리 서클을 회전시킬 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외부의 서클만으로 잡아둔 밸런스가 무너져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1년 사이 이차원 균열이 거의 아물어서 일정을 꽤 빠듯하게 잡기는 했다만, 설마 막바지에 이런 복병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6서클의 견고한 외벽이 버텨주고는 있지만, 중심은 여전히 공백에 가깝기 때문에 회전에 큰 위험이 있다.

    ‘딱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상황이 이것보단 더 나았을 텐데.’

    그랬으면 최소한 중심점을 안정화시키기는 했을 것이다.

    아마 초보적인 마법 몇개는 무리없이 쓸 수 있었겠지.

    그런다고 결과에 큰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랬다면 선택지가 늘어나는 일이니 참으로 아쉽기 그지없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이런 상태를 이미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

    뭐, 비교적 무방비한 현재 곧장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그걸 알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그러나 그는 딱히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긴, 사소한 담화나 나누자고 남의 집 문을 부숴버리는 사람은 없을 터다.

    …아닌가, 자세히 생각해보니 한명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루크는 과거 케일이 ‘나와봐 이 자식아! 얘기 좀 하자!’라며 문을 부술 듯 두드리며 소리치던 것이 환청처럼 귓가에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대체 언제였더라.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 추억에 잠겨있을 틈은 없었다.

    그렇게 루크가 잠시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사이, 장의사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결국은 이렇게 되는건가.”

    그간 뜸을 들였던 이유는 대체 무엇때문인지, 자신을 향해 뻗쳐오는 그의 투박한 손길에 루크는 한숨을 내쉬며 그동안 대비해온 나름의 대응책을 꺼내들었다.

    “리브!”

    -카강–!

    루크의 외침과 함께 불현듯, 뻗어지던 그의 손이 불똥을 튀기며 튕겨나갔다.

    사람의 손이 무슨 부싯돌도 아니고 불똥이, 그것도 붕대가 칭칭감긴 손에서 튀길 수 있다니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장면에서는 인간의 손에서 불똥이 튀긴 것 따위는 신기할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선 빛나는 검을 든 은빛의 형상이 허공을 베어내며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옛 몸이었던 갑주를 입은 리브였다.

    예전 모습이 더 귀엽긴 하지만, 다시 옛날처럼 골렘의 형태로 늠름히 움직이는 리브도 만족스러워보였던 루크는 옅게 미소지었다.

    현대의 각종 마공학을 적용하여 재설계해 그 성능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내 설계된 갑주의 성능은 리브의 과거 전성기 시절마저 가뿐히 뛰어넘는다.

    현대식 골렘의 설계를 기반으로 개선하여 예술적으로 구동하는 관절부,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 인식범위, 기존대비 145%가량 향상된 오러출력, 한계 이상의 과출력에도 무리없이 작동 가능한 내구, 내마모성.

    일상의 위장을 포기하고 성능만을 취한 그것은 곰인형의 부드럽고 연약해 태생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외장재와는 비교할 수 없다.

    만들때는 꽤나 고생스러웠지만,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칭찬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걸작이다.

    이 정도라면 무기 없는 그랜드소드마스터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리브, 지금부로 그대에게 부여한 모든 제약을 해제한다.”

    -…….

    루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브는 주저 없이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마치, 그 말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그러자 열이 쉽게 배출될 수 있도록 타공한 투구의 구멍들에서 증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고, 골렘 내부의 기계장치와 톱니들이 맹렬히 회전하며 쇳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키이잉–!!

    리브가 손에 쥔 검 전체에 푸르른 오러가 맹렬히 타오르며 검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본 루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마법사가 굳이 전사의 거리에서 싸울 필요는 없는 법이지, 안그런가?”

    사람에겐 저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무대가 있는 법.

    또한 이것은 리브에겐 일종의 설욕전이기도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정하고 싶었던 장면이 크게 4가지정도 있었는데, 시루드 탈출전개가 수정하고 싶었던 장면 1이라면 이건 수정하고 싶었던 장면 2였습니다.

    어차피 다음전개에서 리브를 사용할 거였으면 생각해보니 이때 루크가 직접 구르고 싸우기보단 대리를 세우는게 더 맞지 않겠냐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그냥 제가 그런 수도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던 것 같네요…….

    주인공이 너무 다재다능해도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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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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