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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5

        

       공손요예는 요즘 싱숭생숭하다.

       공손공가는 점점 성세하고 있다.

         

        무림대회가 끝나고 일여 년.

       새로 올린 창고가 몇 개며, 장원을 넓히느라 담벼락을 두 번이나 넘어뜨려야 했다.

       새로이 들인 무사도 많다.

       덕분에 종종 사고가 일어나기는 한다지만, 위세가 강한 집안이란 그러한 사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명실공히 인정받는 무림의 십대세가 그 테두리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문에 한 여인이 들기 전후로 발전 속도가 퍽 차이가 나기는 했다.

         

       “언니, 크큭, 이것 좀 들고 하시지요?”

         

       쫙 찢어진 눈에 콩알만 한 눈동자, 피를 바른 듯 새빨간 입매와 어쩐지 뾰족한 인상의 이빨.

       굉장히 사악해 보이는 인상의 여인이 크큭 수상한 웃음과 함께 쟁반을 내민다.

       어쩐지 여인 주변으로 뭉게뭉게 검은 선이 피어오르는 듯한, 쟁반 위 찻잔에 무조건 독이 들었을 것만 같다.

         

       “아. 고마워요. 음, 동생.”

         

       “고맙기는요. 크크. 과유불급이라, 그러다 오히려 몸이 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다 몸이 상하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크큭.”

         

       어쩐지 몸이 상하라는 투다.

       하지만 그게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여인, 사마령이 원래 이렇더라고.

         

       동생이자 소가주 공손천일은 지난 봄 사마가의 사녀 사마령과 정식 혼례를 올렸다.

         

       명문의 여식치고는 수수한? 여인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인물이 훤한 공손천일이 아까운 혼례기는 하다.

         

       하지만 사마령은 착한 아이였다.

       착할 뿐만 아니라 능력도 좋아서, 혼인 전부터 공손공가의 예비 안주인으로 온갖 사업에 관여하더니만, 남녕의 상계를 단숨에 휘어잡은 재녀이기도 했다.

         

       공손요예가 아는 올케라고 하면, 뭔가 그 좀 악녀스러운? 밉살스럽고 표독한 그러한 느낌이 아니었나?

       왜 외모 말고는 맞는 부분이 없지?

         

       실은, 사마령 역시 비슷한 생각 중이다.

       성씨를 되찾기 위해 독기가 바짝 올랐다는 집안이라는데, 혼례도 치르기 전에 먼저 시댁으로 향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게다가 공손천일의 외모가 범상한 것이 아니라 하고.

         

       그런데 공손천일은 좋은 남편이었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가문 사람들도 정중하니(조금 인간미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혼례 전부터 창고 열쇠부터 날아들었으니 이는 안주인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새언니, 남매 사이가 돈독하다고 하여 구박이 날아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사람 자체가 어리숙하니 이쪽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검을 휘두르다 쓰러지기가 일수더라고.

       그러면서도 내내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음, 뭐지? 귀여우시다?

         

       어쨌거나 사마령은 대만족이다.

       다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마가에서 아빠 오빠 언니 동생들에게 치이던 때보다는 한 가문의 안주인인 지금이 훨씬 낫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이러고 계셔도 되겠어요? 천화검 대협께서 지금 원수들과 생사결을 벌이신다고 하시던데, 언니께선 그분의 둘도 없는 친우분이 아니시던가요? 가서 도우셔야 하시는 게 아닌지.”

         

       “어?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에 사마령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루 종일 수련장에 처박혀 있는 공손요예가 바깥 소식을 알 턱이 없다.

         

       무림대회 이후로는 아무도 강권하지 않았지만 제 스스로 선택한 수련이었다.

       가문이 십대세가에 올랐으니,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이름을 날릴 절세의 고수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고는 달리 인생을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당장 도우러 가야……!”

         

       “크큭, 그러실 줄 알았지요. 자, 제가 이미 행장을 꾸려놓으니. 가지고 떠나세요.”

         

       남들이 보면 영락없이 눈엣가시인 새언니 쫒아내는 못된 올케, 가문을 접수한 사악한 안주인으로 보일 꼴이다.

         

       “응. 고마워요, 동생.”

         

       “고맙기는요. 크흐, 정 고마우시면 혹시 천화검 대협을 뵙고 싶은 소망은 있네요. 과연 도대체 어떠한 분이신지, 크큭.”

         

       다른 의도가 아니라 진짜 동경하는 천화검 대협을 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다.

       무림 차대의 여류 예비 후기지수들, 그리고 당대의 여류 막내들에게 천화검은 차기 여중제일인으로 꼭 뵙고 싶은 그분이라서.

         

       “음. 노력해 볼게요.”

         

       “아, 입으신 의복은 들르는 객잔마다 세탁을 맡기셔야 해요? 예비 속옷은 네 벌이니 최소한 두 벌 남으실 때까지는요. 그리고 주먹밥은 하루 분량이고 오래 가는 것이 아니니 빨리 드셔야 하세요?”

         

       “어? 네…….”

         

       “그리고 은자가 오십 개, 전표로 몇 개 더 넣어드렸는데 제 사비로 넣은 것이니 마음껏 쓰셔도, 아니 어지간하면 다 쓰시고 오세요. 방수 주머니에 담았지만 전표는 젖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 은자는 항상 전낭에 소분해서 들고 다니세요, 소매치기들의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라서 무림인이라 해도 방심하면 낚아채기 일수랍니다. 그리고……늙은이 여인 아이를 조심……수상한 이가 도움을 요청해도……원한은 조심하되 맺게 되면 확실하게……”

         

       어째 떠나라고 해놓고는 잔소리가 줄줄.

       공손요예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그러면서도 또 거절하지는 못해서.

       그저 얌전히 잔소리를 새겨듣는 것이다.

         

         

       —-

         

         

       언월도로 펼치는 제왕검형의 한 수.

       모든 가능성 중 가장 빠르고 정확한 최선의 궤적을 그어낸 언월도의 칼날이었다.

         

       흑호문 문주는 단칼에 죽었다.

       달려들다 반으로 쪼개져 상체는 저멀리 날고 하체는 철퍼덕 엎어져 든 것을 지저분하게 쏟아지고 말았으니.

         

       순간, 청의 신형이 크게 부풀어오른다.

       적들도 군중도 원수들도 청을 바라보며 하늘 끝에 닿는 거인을 눈에 담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천하를 다스리다.

         

       그러나 청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하다.

       제왕에게 일개 필부의 죽음이 어떠한 의미가 있으리라고.

       청이 바라보는 것은 적이 아닌 세상.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니, 말판 위의 백만의 병졸을 움직이는 천자의 시선이다.

         

       청이 제왕검형에 담긴 심상을 엿본다.

       제왕은 홀로 고고하니 적도 아군도 없어 그저 존재하여 만인을 지배하는 이다.

         

       그리하여 제왕이 손을 뻗는다.

       그저 칼끝을 겨눌 뿐인 무심한 태도.

         

       그러나, 흑호문 무사들은 제 목에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으아악, 비명과 같은 기합으로 애써 떨쳐내려 드니, 달려들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전투에 임하고 만다.

       어쩐지 그래야만 하기에.

         

       흑호문, 멸문.

         

       언월도 끝으로 핏방울이 똑똑.

       그래도 월도 칼날은 온건한 편이다.

       그 뒤편, 창대의 반대편 끝에 달린 철추에는 사람 가죽이니 희멀건 뇌수니 내장 조각 같은 것이 매달려 흉악한 꼴이었으니까.

         

       주력 무사들도 죄다 죽어나갔으니 이미 멸문은 확정이었다.

       흑도의 법칙상 약한 이는 물어뜯겨 산산조각이 날 운명이고, 사실 그렇게 물어뜯기기 전에 다들 문파의 재산을 들고 튀는 것이 또 사파 놈들의 습성이 아니겠는가.

         

       “그럼.”

         

       조용한 좌중에 청의 목소리만 홀로.

       꿀꺽 침이 넘어가는 소리.

       이어질 말은 누구라도 알는 것이다.

         

       “다음 분.”

         

       청이 으레 그래왔듯이 한 마디를 던진다.

         

       원수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언월도는 또 언제 다뤄서 익혔는데?

       이러면 나가리 아닌가?

         

       그러나 개중에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놈들이 여럿이다.

       저건 지금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을 놓치면 평생 대적할 수 없는 거인이 되고 말리라고.

         

       그리하여 이름을 대며 나서는 무인들.

       그런데 그 숫자가?

         

       “어찌 초절정 무인이 아홉이나 동시에 나서는지요?”

         

       “초절정 후기의 무인 하나가 초기의 무인 셋을 대적하는 바가 무림의 상식이 아니오?”

         

       청은 어이가 없다.

       아니, 언제부터 내가 초절정 후기의 무인이라고 딱 정해서 세 명을 상대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일전에 우르르 떼로 몰려든 놈들 탓인 것도 같고.

       그때는 잡다한 놈들이 있었으니까, 사람이 얽히고 얽힌 난전은 청이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니 그냥 받아줬더니?

         

       청이 잠시 갈등했다.

       신호를 보내, 말아?

         

       아무리 초절(중략)절청이라 해도 초절정 아홉이 감당이 되나?

       검강 아홉 줄기 막을 수 있나?

         

       그때였다.

         

       “잠깐!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욧!?”

         

       누군가 딴지를 거는 목소리.

       귀에 대단히 익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에 불쑥 튀어나와 청의 옆자리로 향하는 여인.

       체형은 자그만하고 삿갓을 눌러써 얼굴을 가렸지만, 청이 못 알아볼 리가 있나.

         

       “엥. 난아야?”

         

       “내가 못 살아. 원한이니 원수가 뭐라고 이렇게 천치같이 굴고 있는데? 뭔 차력사 공연 나선 것도 아니고.”

         

       “음.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음, 일단 있다가 얘기하고-”

         

       “싫은데?”

         

       당난아가 눈을 흘기고는 대뜸 소리친다.

         

       “원한을 해소하는 자리라 하니 서문 소저의 친우인 저 역시 함께 거들겠어요! 소녀의 경지가 아직 절정 중기에 불과하니, 이와 같은 분이 있으시다면 나서서 저 비열한 치들에게 합류하시든가, 말든가!”

         

       “어, 그러지 말고-”

         

       “됐거든?”

         

       그러자 그에 맞춰 더 등장하는 청년들.

       청의 곁에 어깨를 맞춰 병기를 잡는다.

         

       “소인 역시 마찬가지로 천화검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소인의 경지는 절정 중기, 숫자를 맞추시려면 지금 나오셔도 좋습니다.”

         

       “마찬가지다. 초절정 초기.”

         

       우락부락한 거한이 어울리지 않는 존대를 하며 말하고, 어째 삿갓 아래 턱선만 봐도 잘 생겼다 싶은 이가 짧게 덧붙인다.

         

       “엥, 뭐야. 산이 언제 초절정 찍었어?”

         

       “흥. 먼저 초절정을 이뤘다고 잰 체를 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말이다.”

         

       “누님, 저는 안 반가우십니까?”

         

       “어? 제갈이도 반갑지. 그런데 마음은 고마운데-”

         

       “어차피 누님이 당하시면 저희도 반검쌍도회의 회주를 잃고 복수에 나서야 할 판이 아니겠습니까? 본래 방미두정이라, 아, 혹 방미두정이라고 아십니까? 이는 미미한 것이 점점 커지려 한다면 지켜보지 말고 그 전에 없애 막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동한의 장제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인 화제가 왕위를 계승했을 때의 일입니다만, 꿈과 같은 권력을 쥔 두씨의 일가가 가는 데마다 대접을 받고 문무백관이 결재를 내밀며 수결을 청하니 아주 그냥 황제가 된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홍이라는 인물이 말입니다-”

         

       “아니, 됐고. 뭐야, 다들 어떻게?”

         

       “그야 배 타고 오지 않았겠습니까. 본래 회음은 중원 최대의 소금창으로 특히 과거 황궁이 자리했던 개봉부와는 직결로 운하가 이어져 있으니, 본래 배라 하면 물길을 거슬러 오르기는 어렵고 타고 내려가기는 쉬운 법입니다. 그러니 대운하에서 배를 잡아타면 금방, 아, 이는 운하의 수운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쾌속선인데,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아니, 됐다니깐.”

         

       청의 눈썹이 꿈틀.

       기억 속의 제갈이가 말이 많았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도 추억 미화였던 모양.

       그래, 원래 이 정도로 말이 많았었지.

         

       “음. 다들, 와줘서 고맙기는 한데, 일단은 저기 군막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나도 금방 처리하고 갈 테니까.”

         

       “싫은데?”

         

       “여긴 위험하니까-”

         

       “그럼 우리는? 청이 네가 위험한 꼴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당난아가 쌍심지를 켜며 대꾸한다.

       그에 청이 말문이 턱 막히기도 하고.

         

       여기서 그럼 뭐라고 하겠는가.

       너네 개약하잖아.

       지켜주려면 오히려 내가 더 힘들다고?

         

       제아무리 막말이 특기인 청이라도 해도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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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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