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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5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고요한 장소의 어느 외딴 저택.

    나름대로 잘 지어진 모던한 느낌의 전원주택은 그렇게 썩 넓다고 말할만한 저택은 아니었지만, 잘 정돈된 화단과 어우러져 깔끔하고 단정한 평화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그 아름다운 저택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과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조용하고 안심감을 주었다.

    돌연, 어떤 형체가 벽을 부수고 마당의 화분을 박살내버리기 전까지는.

    -쾅—!

    -치지직-, 파스스…….

    순간 귀가 마비될 정도로 굉장한 소음과 함께 벽을 뚫고 날아간 그것은 바닥에 11자의 긴 흔적을 남기며 밀려나다가, 마당까지 도달한 뒤에야 겨우 멈추었다.

    그 폭발에서 날아온 무언가의 정체는 관을 멘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이후 노인은 초점없는 눈으로 고요히 자신이 튕겨져나온 저택의 연기 너머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

    잠시 후, 강철의 유격이 맞물려 부딪히는 작동음과 함께 노인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희뿌연 연막 너머로 한 인영이 점차 형태를 찾아갔다.

    -철컥, 철컥…, 촤악-!

    잔해와 먼지로 형성된 연막 너머에서 다가온 그것이 손에 쥔 검을 뿌리듯 털어내자, 시야를 방해하던 연막들이 전부 말끔히 쓸려나간다.

    그러니 은빛의 갑주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푸쉬익–!!

    검을 휘둘러 연막을 흩어낸 갑주는 바람이 터져나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갑주의 틈으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었다.

    그러자 한겨울의 추위가 뿜어진 열을 붙잡고 흰색 증기가 되어 시야를 다시 어지럽혔지만, 금세 다시 흩어졌다.

    -…….

    한기는 갑주의 열기를 식히는 데에 있어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그것이 빠르게 식어가는 갑주의 온도를 느끼며, 내부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무렵.

    더이상 외부와 내부를 구분짓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외벽 너머로, 노란색의 소녀가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아아, 이것참. 내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만….”

    검을 듦으로서 얻는 가장 중요한 이점은 상대보다 더 긴 사거리에 있다.

    그리고 사거리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충분한 거리, 그리고 검을 휘두를 공간이 필요하지.

    하지만 좁은 실내는 그 이점을 살리기엔 부족한 공간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자신은 ‘기물의 파괴를 신경쓰지 말고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려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히, 피해를 가능한한 최소화해서 최대의 효과를 내라는 뜻이었지…….

    그것이 기물들을 이토록이나 철저하게, 확실하게 파괴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것으로 저 아이를 탓할 수는 없으리라.

    손속에 망설임을 둬서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소녀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나중에 이 난장판을 수습하려면 골치 깨나 썩히겠구나.”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관을 멘 노인은 그녀의 잡담에 어떤 감흥도 없다는 듯, 여전히 공허한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

    —–

    망가진 화단을 사이에 두고, 리브와 그가 대치하고 있었다.

    그만한 일격을 받고도 여전히 두 발로 서있는 것인가.

    리브는 잠시 그를 베었던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공격은 분명 적중했으나, 감각이 얕았다.

    순간적으로 오러로 방어해낸 것이다.

    공간을 갈라가며 베어낸 일격은 그에겐 꽤나 뜻밖의 기습이었을 텐데, 그 순간 반응하여 최대출력의 오러를 담아낸 검격을 막아내다니…….

    다만 손에 약간 부상을 입었는지, 팔에 강하게 조여감은 붕대에 핏물이 매우 천천히 배어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그도 모든 피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만한 일격이었음에도 이 정도의 피해인가.

    리브는 검을 더욱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크가 리브에게 물었다.

    “리브, 어떤가? 계속 할 수 있겠어?”

    -끄덕.

    “좋아, 그렇다면 방심하지 말고 가려무나.”

    -끄덕.

    절대 방심따윈 하지 않는다.

    한번 패배한 자신에게는 방심이 허락될 수 없었으니까.

    -철컥-, 철컥-.

    잠시 자세를 잡아보던 리브는 눈 깜짝할 새에 도약하여 침입자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

    마당에선 이내, 맨몸과 검이 부딪히는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소리가 연신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캉, 카강–!!

    말 그대로, 불꽃튀기는 접전이다.

    루크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내심 감탄했다.

    과연 새로운 몸을 얻은 리브의 움직임은 과연 곰인형의 모습일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유연하고, 강했다.

    이전의 패배와 비교해 단순 스펙상으로 검을 휘두르는 오러의 출력은 약 1.5배 더 강해졌고,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약 2배 이상 빨라졌으며, 자세를 제어하는 능력은 그 4배 이상 정교해졌다.

    또한 현대식 연마제로 갈아내고 광택을 낸 아세릴 장검은 리브가 곰인형일 당시 사용하던 현장 노획한 아다만티움 합금 나이프따위보다 더욱 적합도가 높았고,

    각종 인지방식이 집약된 투구로 교체된 지금은 곰인형의 싸구려 석영을 이용한 시각일때와는 인식가능한 현실의 범위조차 하늘과 땅의 차이다.

    강화된 장갑, 개선된 구동부, 향상된 출력, 빠른 반응속도, 그리고 훌륭한 무기와 잘 보이는 눈까지.

    새 갑주를 착용한 리브는 그야말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모든 것이 달라진 상태였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그저 그 갑주를 제작한 자기자신에대한 자랑밖에 되지 않겠지만, 루크가 진정으로 감탄하는 것은 바로 리브의 활용력.

    아직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갑주인지라 시범운행 경험이 적어 익숙치 않을텐데도, 리브는 그 모든 리소스를 마치 꽤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리브를 관을 멘 저 남성은 그저 맨손으로 상대하고 있다.

    비록 맨몸인 그는 칼날을 받아치며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라곤 해도, 서로 검을 들고 싸우는 결투도 보통 두세합 안에 끝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수준의 기예를 보이고 있는지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검을 팔의 연장선이라고 한다면 저 남성은 스스로 팔을 제거한 채로 호각을 이뤄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오러를 다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기를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어려운 상대인데, 만약 공평하게 그의 손에도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면…….

    ‘그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지?’

    생각해보면, 그는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어떤 무기도 손에 쥐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무기로 보이는 어떤 물건도 소지하지 않은 상태고.

    그 모습은 마치 무기 그 자체를 꺼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종의 맹세나 기아스? 아니면, 무기를 다룰 줄 모르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기회가 없어서?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적이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적으로 상대해야하는 지금의 자신들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긴 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찝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콱, 콰곽-!

    일방적인 수준의 공격이 이어짐에따라, 그의 몸에 상흔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제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라해도, 무기가 없으면 이 정도가 한계다.

    오러는 분명 매우 강력한 기술이지만, 오러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베인 곳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나와 붕대를 물들이고, 가까스로 피해낸 옷깃이 베어진다.

    하지만, 점차 그 빈도가 줄어가기 시작한다.

    “…….”

    그는 맹렬한 전투 속에서 생각했다.

    옥스에서 플루크로, 알버에서 폼탁으로….

    확실히 빠르고, 날카롭고, 정확한 검세다.

    자세의 변화가 자유롭고, 빠르게 빈틈을 메울 줄 안다.

    아주 훌륭한 검사다.

    상대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뻔하게 느껴졌다.

    아니, 뻔하다기보다는 익숙하다는 느낌에 더욱 가까울까?

    그것은 아마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했던, 오랫동안 잃어버린 감각들중 하나와 같았다.

    어쩌면 자신의 본질과도 연결되었을지도 모르는, 정말로 소중한 무언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이 낡은 기사가 보여주는 검세가, 자신의 본질에 닿아오는 것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감각은 정말이지 너무나 반갑고 또 그리워서, ‘목적’따윈 전부 잊고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그렇게 자주 멈춰주지 않는다.

    그는 정말 아쉽게도, 자신을 막아선 기사에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말았다.

    강한 의지가 담길수록, 모든 것은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앞에 운명이 얽혀가는 형태를 느끼며, 서서히 손을 들어올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또 전투씬만 들어가면 삽화에 욕심이 생겨 일단 그림을 오래 붙잡고있다보니…….
    이걸 지금까지 그리고 있으면 글 못쓴다는걸 알면서도 끊질 못하겠네요.

    결국 실제로 맘에 들어서 사용하는 구도는 얼마 안되는데 말이죠…….

    아무튼간에, 이쪽은 이렇게 날려보내지는 쪽이 루크에서 장의사로 바뀐 세계선이 되고 말았네요.

    얻어맞는 루크삽화는 꽤나 공들였던 터라 약간 아깝긴 한데….
    뭐어, 그래도 복잡한 주저리보단 이야기가 더 간결해질 것 같아 맘에 듭니다.

    …삽화도 아마 또 금방 가져다가 재활용 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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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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