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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6

       

        

        

        

        

        

        

        

       “바깥에 있는 친구들이 죄다 무슨…길 가다가 뜬금없이 주먹에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구만. 이렇게 될 것 같긴 했어.”

        

       “뭐, 당사자가 즐거워보이니 다행이군요. 그러면 된 게 아닐지. 별 문제도 없고.”

        

       “그렇죠.”

        

        

        

        강당과는 별도로 떨어져있는 통제관 휴게실, 그 중 로렌티나에게 할당된 방.

        

        누군가가 따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존에 쓰던 빔 프로젝터보다도 성능이 수십 배는 월등한 이카루스 기어의 화면으로 전환, 네트워크에 접속한 뒤 반쯤 상기된 눈으로 교전에 임하고 있는 올리비아를 단체로 관람한다.

        

        언젠가 과거에 했던 광고 중 ‘나는 3D로 본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지금 상황이 그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았다. 팝콘이랑 콜라만 있으면 딱이겠지만, 아쉽게도 이런 아저씨 땀내 가득한 공간에서 그런 걸 바라기엔 무리가 아닐까.

        

        그래도 여긴 여자들만 가득해서 좋긴 한데.

        

        

        

       “두 명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군요. 자제하리란 기대는 안 했지만…뭐어, 미션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네요. 시원시원하고. 저 정도로 해내는 친구들이 서너 팀만 더 있어도 볼 만할 것 같은데.”

        

       “저 정도도 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편 아닌가? 여기 온 사람 중 아군 퇴각 중 화력지원하는 훈련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

        

       “뭐, 그 중에서도 특출난 실력을 뽐내는 친구들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죠.”

        

        

        

        근방에 아무도 없단 점은 실로 좋았다. 이런 이야기도 맘껏 할 수 있으니.

        

        간만에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체적으로는…한창 뉴욕 뿐만이 아니라 미국 전체가 난장판에 빠졌을 때. 뉴욕으로 온 로건이 한창 바쁘게 일 중이던 올리비아와 로렌티나를 만나고, 그 아래에서 실컷 교육받고 있는 나와 본격적으로 친해지던 그 즈음.

        

        상어 역시도 그걸 노리고 우리를 데리고 왔을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상어가 신나게 뺑이를 치고 있을 동안 나와 올리비아, 그리고 로건은 밖에서 온갖 재미를 보고 왔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땡깡을 부려댈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가령 이렇게-

        

        

        

       “막내, 이리 와봐요.”

        

       “무슨 일로…으브브브.”

        

       “저만 빼고 미국 남쪽 끝을 다녀왔더군요. 제가 여기서 실컷 화약에 절어갈 동안 말이죠.”

        

       “별 쓰잘데기 없는 핑계 대기는. 그냥 막내 쪼물쪼물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너. 애 좀 적당히 만져라. 볼 닳는다. 얘가 아직도 아기로 보이냐?”

        

        

        

        당연하겠지만, 뉴 막내인 하모니가 없는 이상 볼따구-헌터 로렌티나의 검은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얌전히 옆자리에 앉았고, 안는 베개인지 뭔지가 되어 쓰다듬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그 와중에도 강당캠에서는 무슨…유어스페이스에서 흔히 보이는 리액션 영상마냥 이런저런 감탄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간 올리비아가 바이포드를 펴고 탄창을 교환한 뒤, 저 멀리서 오는 홀로그램-테크니컬 위로 납탄의 불벼락을 신나게 쏟아붓는 중이었으니.

        

        신기에 가까운 속도와 정확성. 구태여 테크니컬에 올라간 기관총사수 등에게 탄환을 낭비하지 않고, 타이어나 앞유리를 노려 한두 발만으로 차량을 무력화한다. 하지만 그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것도 의도된 행동이란 걸 아는 순간 평가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카루스에서 가장 무서운 샤프슈터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스코프 없이도 저 짓거리가 가능하단 게 제일 무섭단 말이지.”

        

       “제 시력도 나쁜 편은 아니기도 하고, 밤에는 열화상도 되서 좋긴 한데…저 양반은 무슨 나이트비전이 필요가 없을 정도니 원. 월광도 거의 없는 밤에 아이언사이트로 760m 맞추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기어로 보정까지 받으면 3km 밖에서 손톱만한 글씨를 읽는 판에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라. 저 자식 시력이 한…8.9 정도 됐었나?”

        

       “옛날에 눈 보호한답시고 맨날 눈 감고 다녔던 건 아는데 말이죠.”

        

        

        

        음…그 부분은 모르겠다.

        

        내가 눈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눈이 극도로 좋은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고충을 안고 사는지는 잘 모르겠긴 하지만…뭐어,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평소에는 억제하고 다닐지도 모르지. 본인도 평소엔 딱히 별 말 안했고.

        

        언젠가 시간이 나면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다시 화면에 집중. 적을 청소하는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본래라면 6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교전이 일어나도 모자랄 판에, 올리비아는 쉬는 시간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있었다.

        

        화약 연기를 풀풀 뿜어내다 못해 소음기 끄트머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M110A3 한 자루. 그러나 끝이 머지 않았고, 마지막 한 탄창까지 몽땅 쏴제낄 즈음 홀로그램-헬리콥터가 지상에 착륙하였다. 홀로그램-아군을 픽업하기 위해서였다.

        

        

        자꾸 홀로그램 타령만 하니 정신이 조금 아찔해지지만, 종이 표적지만 세워놓고 쏴제끼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물론 저어기 델타는…아예 싼 휴머노이드 로봇을 백 대씩 사서 대놓고 총알을 박을 수 있는 표적으로 쓰더라. 물론 규모가 큰 훈련에서나 그렇게 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메이징했다. 배정 예산만 봐도 괜히 1티어 특수부대 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6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시간은 단순한 시간제한이라기보단 이 와중 주어진 서브 미션을 전부, 그리고 잘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따지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면 추가적인 점수가 있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올리비아는 제한시간 동안 킬카운트를 꽉꽉 채운 뒤 실로 당당하게 복귀하였다는 소리.

        

        금방이라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것만 같은 비주얼로 강당에 복귀한 올리비아에게는 말 그대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고, 그녀는 옵스코어 헬멧을 벗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사전에 대기하던 통제관이 총기와 장구류를 회수했고, 그녀는 우리가 있는 방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철컥.

        

        

        

       “후아…!”

        

       “으악, 오자마자 껴안으면 어떡…어우, 더워! 답답해-!”

        

       “만만한 게 막내지. 아주 질식사를 시키려고 작정을 하셨구만.”

        

       “땀이나 닦으시죠, 버드헤드. 애꿏은 유진 괴롭히지 말고.”

        

        

        

        당연하겠지만 버드헤드는 닭대가리란 뜻이었다.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 올리비아에게 껴안긴 상체 전반이 아주 축축하고 뜨끈뜨끈하다. 더워 죽겠네, 그냥. 아무튼 시원하게 총을 쏴제끼고 온 올리비아의 표정은 실로 상쾌해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에 했었던 불붙은 당나귀 작전이 막 끝났을 때를 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로건과 로렌티나가 있을 때 셋째 막내인 매버릭을 소개시켜줘야할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지금은 여러모로 보는 눈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두 번째 일반참관인 페어가 어정쩡한 몸놀림과 함께 시작 지점으로 뒤뚱뒤뚱 움직이는 것을 뒤로 하고, 로건이 입을 열었다.

        

        

        

       “이번 컴페티션 끝나는 대로 너 끌고 디즈니 월드 끌고 갈 예정이야. 문제 없지?”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슬슬 통보가 아니라 권유에 대해서 배워야만 하는 게 아닐지.”

        

       “걱정 마. 몸만 오면 되거든. 다음 주 주말 내내 컴페티션 뒷정리에 한 손 보태줄 생각이라면 모르겠는데, 그걸 네가 신경쓸 필요는 단 1도 없을 것 같거든. 원래라면 대회 전까지 테마파크에 있으려고 했는데 특별히 널 생각해서 안 갔다.”

        

       “참나, 언제부터 절 생각해줬다고.”

        

       “안 데려가면 한도끝도 없이 징징거렸을 것 같았거든.”

        

       “그래야 정답이죠.”

        

        

        

        뭐라고 해야 할까, 로렌티나 말고 이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말투였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슬슬 움직일 시간이었다. 첫 번째 미션이 거의 다 끝나갔으니, 두 번째 미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모두에게 보여줘야 했다 – 두 번째는 아군 구출 미션이었다.

        

        처음으로 했던 미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좀 더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점일까. 사실 이따 VR에서 시행될 드론 및 터렛 조작 미션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조금 쉬어가는 느낌으로 할 예정이었지만.

        

        CQB 미션에선 로건이 관측수였고 내가 저격수였으니, 두 번째 미션에서 나는 직접 침투에 나설 로건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을 것이었다. 작전지역 자체는 그닥 크지 않았으니 반자동 저격소총으로도 무난하게 가능할 것 같았고.

        

        

        

       “세 번째 미션 시범이 끝나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을 테니, 그때 다시 보자구요.”

        

       “갈 길이 멀구만. 다시 가보자고.”

        

       “또 지루한 구경 시간이 돌아왔네. 넌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로렌티나?”

        

       “흠. 막내의 이카루스 기어로 홀로그램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할까요.”

        

        

        

        물론 어림도 없었다.

        

        어떻게든 이 시간을 날로 먹으려는 상어를 응징하는 것을 끝으로, 짧다면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났다.

        

        화염과 금속으로 이뤄진 칙칙한 시간을 향해 다시 나아갈 시간이었다.

        

        

        

        

        

        

        

        

        

        

        

        

        

        

        

        

        

        

        

       “정찰 드론, 혹은 저격 터렛 중 하나를 선택한 후의 폐공장 침투라. 대놓고 칼을 갈고 나왔군요. 함정을 이렇게 대놓고 파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VR이라 가능한 일들이 많구만. 모든 지형지물의 랜덤 배정, 타 참가자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확인 불가능…하긴, 이런 미션에서는 이게 정상이지.”

        

        

        

        포트 무어, 11월 4일 오후 3시 3분.

        

        날씨는 맑았고, 밖에서는 여전히 경쾌한 사격음이 울려퍼지고 있었으며, 나와 로건은 두 번째 미션이었던 아군구출사격을 끝낸 후 다음으로 돌입하기 전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마지막 종목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드론 및 터렛 운용 테스트. 불과 몇십 분 전만 하더라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참가자들이 알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그 정도 뿐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금은 다르단 소리였다.

        

        어떻게 하면 컴페티션 참가자들을 골치아프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골몰하고 궁리한 끝에 창조된 악의의 집합체. 언뜻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었지만, 무릇 모든 작전이 그렇듯 사전에 수립한 모든 플랜의 70%가 작전에 돌입하자마자 분해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맵은 폐공장. 미션은 특정 데이터 회수 혹은 인질 구출을 비롯한 여러가지. 자신의 차례가 된 후 브리핑 전까지 무엇이 걸릴 지 알 수 없고,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

        

       “맵 구조 파악 및 시간제한, 적의 규모가 얼만지는 팀별 브리핑에 돌입했을 때 확인 가능이라.”

        

       “랜덤 변수 조합. 단 한 번도 동일한 맵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타 참가자가 어떻게 하는지 확인 불가능…이건 다시 말해 남들이 드론, 혹은 터렛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줄 생각이 없단 뜻이겠죠.”

        

        

        

        바스락.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지금 나와 로건은 본래라면 끝난 사람이 대기하는 강당에 있지도 않았다.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부숴진 돌들이 잔뜩 깔려있는 바닥을 밟아 가로지르며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룸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했을 때 나오는 결과 – 오늘의 마지막 종목인 드론 및 터렛 운용은 말 그대로 개인 종목에 가까웠다. 구태여 남이 하는 걸 멀뚱멀뚱 구경할 필요가 없단 뜻이었다.

        

        어차피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데 다 끝나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우루루 시뮬레이션 룸으로 몰려갈 필요가 있나.

        

        

        총기와 장구류는 3시가 된 이후 통제관들이 반납해도 된다고 했으므로 반납.

        

        한결 홀가분한 기분과 함께 안내를 받아 향한 시뮬레이션 룸. 이제는 식상할 정도의 사실이 하나 있다면 방 안에선 로렌티나가 대기하고 있단 점이었을까. 주변에 혹시 모를 녹음기 같은 게 있을지를 확인하고 방음 기능을 작동하자 적당히 대화가 이어진다.

        

        

        

       “누가 봐도 네가 만든 종목이구만. 그렇게 다들 몸 비틀면서 힘겨워하는 꼬라지를 보고 싶었냐?”

        

       “작전 시작 전 무조건 많은 정보를 들고 갈 필요도 없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봤자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닥 쓸모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알려줘야죠. 그렇지 않나요?”

        

       “적을 있는 대로 때려박겠다는 거군. 어차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격 터렛을 들고 가려고 했으니 별로 상관없긴 한데…참 악의적이네.”

        

        

        

        그 말대로.

        

        사전에 전달된 정보로 즉각 알 수 있는 사실 – 이번 미션은 반쯤 참수작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적진을 돌파한 뒤 일을 해결하고 퇴출하는 게 목표란 뜻이다. 물론 정찰 드론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절대로 아니긴 했으나….

        

        만약 시간이 오래 끌렸거나 충분히 기민하게 행동하지 못한 탓에 이미 적에게 둘러싸였거나, 적의 방어선이 과도하게 촘촘하다면?

        

        이 미션을 진행하기 위해 최소 세 명이 필요했다면 정찰 드론은 정말 끝내주는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었다. 두 명이 침투하는 동안 한 명이 저격수이자 드론 조종을 담당하며 포위망을 구성하는 적들에게 원거리 뇌수술을 집행해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 상어는 한 조를 구성하는 인원이 2명이라는 점을 실로 악의적으로 이용했다.

        

        

        

       “뭐, 다들 어련히 잘 하겠죠. 못 하면 아군이 적진 한가운데에서 벌집핏자가 되는 꼬라지를 구경하게 되겠지만.”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더 이상 할 말은 없군요. 빨리 들어가시길. 후딱 끝내고 맥주나 마시러 가자구요. 콜럼버스에서 끝내주는 펍을 발견했단 말이죠…물론 농담이에요.”

        

       “며칠만 참아. 그럼 해방될 테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참가자로 올 걸 그랬네요.”

        

        

        

        하지만 이미 늦었기도 했거니와, 만약 로렌티나가 없었더라면…이렇게 기가 막힌 난이도의 미션이 탄생하지는 않았겠지.

        

        대충 그 점을 상기하며 민간인이 쓰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외형의 접속기를 목에 착용하였고, 마치 소형 침대처럼 생긴 캡슐에 조심스럽게 몸을 뉘였다. 물론 나는 뱀 꼬리 때문에 실로…귀찮은 조정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듣자 하니 전 세계에는 이런 게 VR방인지 뭔지 하는 이름을 달고 퍼져있고, 한국에도 마찬가지라는데, 아무래도 꼬라지를 보니 내가 그런 곳에 방문하는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 같았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순식간에 검어지는 눈 앞.

        

        단 한 번도 군사용으로 가동되는 가상현실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물건은 시간 배속이 무려 5배였다. 듣자 하니 현 시점에서 안전하게 늘릴 수 있는 시간 배율의 최대치에 가깝단다. 6배가 넘어갈 때부터 뇌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다나 뭐라나.

        

        반쯤 나노머신과 합일되어 뉴런의 굵기와 길이가 몇 배는 보강된 이 신체라면 그 이상의 시간 배율도 큰 무리는 없겠지만, 뭐어.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로건과 연동을 끝낸 뒤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적의 수가 3개 중대 분량이라. 솔직히 말해서 놀랍네요.”

        

       “건물과 엄폐물의 밀집도, 지형지물과 잡동사니의 양을 보아하니…아주 교묘하게도 꾸며놨구만. 맵만 보고는 드론과 터렛 중 뭘 써야 더 나을지 감조차 안 잡히는 수준이야.”

        

       “일단 침투로부터 짜죠. 그래도 각 건물들이 특징적으로 생겨서 그런지 길을 헷갈리는 경우는 그닥 없을 것 같고…대충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알 것 같아요. 감제고지 위에 터렛 박아놓으면 되겠네요.”

        

       “그래. 보아하니 이번엔 저격 말고…비교적 잠입에 더 치중을 둔 것 같으니, 스코프 대신 LPVO로 통일. 폭발물은 있는 대로 싸그리 챙겨가면 되겠어.”

        

        

        

        중앙에 존재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상하대칭을 이루고 있는  공장 단지.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와 정찰사진 등을 기반으로 터렛을 박아놓을 위치를 확인한 다음, 들고 갈 총을 정했다 – Mk.18 두 정. 물론 두 총의 이름이 같은 거지, 하나는 Mk.18 묠니르였고, 다른 하나는 Mk.18 CQBR이라는 카빈 라이플이었다.

        

        거기다가 권총 한 정, 여러 개의 수류탄과 섬광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호가 끊길 일 없는 택티컬 토마호크 한 자루까지.

        

        

        출발의 시간이었다.

        

        

        

       -[알림 :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버튼을 누른 순간, 나와 로건은 꾸무레하다 못해 우중충한 하늘 아래 놓인 공장 단지 인근에 스폰하게 되었다.

        

        공장이라고 하기엔 좀 심하게 많은 무장병력들이 주변을 돌아다닌다. 군데군데 철조망이 쳐져있고, 더 나아가 곳곳에 어설프게 만든 초소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했다 – 그러나 그닥 신경쓰지 않고, 주변을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기지가 잘 보이는 고지에 비활성화된 터렛들을 박아놓는다.

        

        초소에 있는 이들이 그닥 의욕적으로 경계에 임하지 않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실로 간단했다.

        

        터렛에 달린 캠으로 주변을 살피고,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속하게 파고든 뒤, 목표를 회수함과 동시에 저격 터렛을 자율사격 모드로 바꾸어, 혼란이 터렛을 향하고 있는 틈을 타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나와 로건은 철조망 앞에 다다랐고, 한 점을 기준으로 움켜잡은 뒤 말 그대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철망이 변형되고, 이어 뜯겨져 나간다. 생각보다 소리는 그닥 크지 않았다. 중요한 건 두 명이 나다닐 정도의 큰 구멍이 뚫렸단 점 정도.

        

        무사히 안쪽으로 잠입한 뒤, 곳곳에 넘쳐나는 폐자재들과 자재더미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며 이동. 그 와중 우리가 있는 근방을 스캔하던 터렛이 경고를 보내면 멈춰서고 숨는 형식이었다.

        

        

        

       “…정지. 좌측에서 세 명이 나오고 있다.”

        

       “대형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놨어요. 빠르게 처리합시다.”

        

       “대기…지금이다.”

        

        

        

        퓩, 퓩, 퓩!

        

        소음기와 아음속탄의 조합은 실로 아름다웠으며, 저격 터렛까지 합세한 탓에 세 명으로 이뤄진 순찰조는 동시에 실이 끊긴 것처럼 바닥으로 넘어지-려고 했으나 로건이 이들을 붙잡아 데려왔고, 나는 그 세 명을 대형 쓰레기통에 조심스럽게 처박은 후 뚜껑을 닫는다.

        

        점차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터렛으로 커버할 수 없는 각도가 많아지지만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이미 예상했으니. 조건이 갖춰지는 순간 총구는 극도로 억제된 소음과 화염, 그리고 탄환을 토해냈고, 시체가 쓰러지기도 전에 멈춰세운 뒤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중앙으로 향하는 길은 지난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가 급하게 해서 그렇지,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무리 없이 잠입 가능할 정도였다 –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표 데이터를 회수한 뒤의 탈출이었고, 우리는 그 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파일 다운로드까지는 쉬웠지만, 시체를 발견한 기지 내부의 인원들이 슬슬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경계 레벨을 훨씬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다들 냄새를 맡았나보구만.”

        

       “뭐, 이제 와서죠. 슬슬 나가면 되겠어요.”

        

       “좋아. 적들의 옆구리를 힘차게 후려쳐주자고.”

        

        

        

        삑.

        

        태블릿을 들어올린 로건은 외부의 감제고지에 설치된 세 대의 저격 터렛을 자율 사격 모드로 변환하였고-

        

        

        

       ───피잉!

        

        

        

        날카로운 사격음과 함께, 초소와 기지 내부를 돌아다니던 불운한 인원 셋의 머리가 동시에 깨졌다.

        

        왜애앵 하는 경보 사이렌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어렴풋한 진동 수십 개가 발을 타고 잡혔다. 적군들이 일제히 이동하는 한편, 사격 지점을 향해 대응사격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터렛은 피격도 잘 안 될 정도로 작고, 동시에 주변의 풀 등을 꺾어 위에 덮어준 탓에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었으며, 무엇보다도 대응사격 정도에 쫄아붙을 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삽시간에 올라가는 킬카운트를 확인한 로건이 덧붙였다.

        

        

        

       “터렛 숨기는 데 10분, 목표 회수 후 퇴출까지는 4분도 안 걸리겠구만. 5배 가속이면 캡슐에 들어간 지 3분도 안 되서 나오게 생겼어.”

        

       “뭐어, 상어의 땡깡을 좀 덜 듣게 생겼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자구요.”

        

        

        

        태블릿을 끄고, 다시금 총기를 치켜든다.

        

        이제는 이 아비규환을 틈타 나갈 시간이었다.

        

        

        

       “작전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면 참 좋다니까.”

        

       “시작하자마자 70%가 망가진다면, 그것까지 계산해서 넉넉하게 짜면 되니까요.”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중앙 건물을 빙 돌아 총소리 가득한 아비규환을 반쯤 무시하며 이동을 시작했다.

        

        역시 이런 일은 멀리서 보아야 희극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찰드론을 무력화하는 법

    정찰드론이 쓸모없을 정도로 적을 많이 집어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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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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