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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6

    <526 – 이렇게까지 잘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외궁으로 침투한 즈앙과 티토소가에게 향할 시선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지젤은 적극적으로 다방면 테러와 선동을 이어 나갔다.

     

    “천릿길을 끌려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쇠창살에 갇혀 노귀족들의 조교실로 팔려나갈 변방의 어린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귀족이 잘못되었다면 평민이 일어나서라도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옳소!”

    “귀족 이 나쁜 자식들!”

    “더러운 페도들을 모두 감옥에 집어넣자!”

    “우리의 세금을 받아 운영되는 치안대가 페도들을 지키는 것이 말이 되냐!”

    “페도들을 위한 치안대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어느덧 상인거리 전체에 가두행진을 하기에 이르른 시민들의 행렬.

    지젤은 사교클럽에서 뛰쳐나와 행진에 나선 시민들을 위해 보온망토와 따뜻한 물을 지급하던 여귀족 한 명을 단상 위로 올렸다.

     

    “우리는 제국의 변방아동납치와 귀족들에게 여자아이를 노예로 판매하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이러한 비인도적인 행동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훼손하며, 사회의 정의와 평등에 반하는 것입니다.”

     

    여귀족이 주먹을 움켜쥐며 단상을 쿵 내리쳤다.

     

    “우리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가혹한 행위를 시도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배신이며, 우리 사회에 걸맞지 않습니다.”

    “바게트 백작부인님 넘 멋져요!”

    “우윳빛깔 바게트!”

    “바게트를 먹어서 응원하자!”

     

    바게트 백작부인의 파벌구성원들의 지지발언에 뒤섞여 여귀족의 미모에 홀린 남성팬들의 찬사!

    점점 열기를 띠기 시작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바게트 백작부인이 지젤의 손을 마주 잡고 들어 올렸다.

     

    “젤지 공증인의 시위행렬에 참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변화를 이끌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며, 이를 위해 단합하여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용감한 공증인이 보여준 용기를 깨어있는 지성인들이, 제도 시민들이 지지해야 합니다!”

     

    상인거리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치안대의 대장이 뭣씹은 얼굴로 백작부인을 째려봤다.

     

    “밥이 없으면 바게트를 먹으면 되지 않냐고 망언이나 하던 인간이 갑자기 왜 저 지랄이야?”

     

    치안대원들이 즉답했다.

     

    “젤지 공증인이 존나 불쌍하잖아요.”

    “귀족들이 정말 여자애들을 노예로 구매한대요?”

    “몰라 새끼들아. 우린 위에서 검문소 깔라면 깔고 저지선 펼치라면 펼치는 거야. 진압명령 내려오면 저따 대고 창까지 내질러야 해.”

    “와 시발.”

    “이러려고 치안대에 들어왔나 자괴감 오지네…”

     

    치안대의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와중에도 연설의 열기는 거리에 나선 행인들을 넘어서 상가 안에서 이를 지켜보던 손님들과 점포주인들마저 격동시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고, 우리는 이 사회의 규칙을 함께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늙고 추악한 귀족들이 제국을 제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갑시다. 황궁을 향하여. 황제폐하에게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고 나라의 법도를, 인간의 도리를, 지성인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행진을 시작합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당장이라도 치안대를 무너뜨릴 것처럼 시장거리 입구의 저지선을 향해 전진하는 시민들.

    지젤은 단상에서 내려오는 바게트 백작부인의 손을 잡아주며 감사인사를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국의 양심, 깨어있는 지성인 바게트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치안대도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호. 불쌍한 변방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죠. 오히려 저야말로 감사드리고 싶네요. 누구도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을 때, 가장 먼저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은 분이 바로 젤지 님이시잖아요.”

     

    지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성의 없는 가명을 눈치챌 정도로 단순한 이름이었지만, 그를 모르는 이들에게 젤지는 어엿한 사회운동가의 이름이 되었다.

     

    ‘우스운 일이군요. 음지를 지향해야 할 암흑상인이 이렇게 양지에서 칭송받는 몸이 되다니.’

     

    지젤이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 사이, 어느덧 시위대에 합류한 손오천이 치안대 저지선을 향해 집기들을 하나씩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변방의 어린이들과 수인들을 핍박하는 사악한 치안대는 꺼져라!”

    “와아아아아!”

    “꺼져라! 꺼져라!”

    “꺼져라! 꺼져라!”

    “이 새끼들이 진짜 미쳤나…! 니들 싹 다 감옥에 갇히고 싶어?! 얻다 대고 물건을 집어 던져! 당장 공격행위를 중지하지 않으면 무력진압을 개시한다!”

     

    치안대장의 사나운 으름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손오천이 토마토를 던져 치안대장의 머리를 맞췄다.

    토마토에 실린 내력을 견디지 못한 치안대장이 비틀거리다가 주저앉자 갑분싸가 찾아왔다.

    시위는 하고 싶지만 정말 치안대랑 한판 개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었던 민중들에게 찾아온 동요!

     

    ‘이런. 바게트 백작부인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군.’

     

    시위대가 우왕좌왕하다가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다시금 선동을 개시하려던 지젤은 멀리 궁전외문부근에서 솟구치는 버섯구름을 목격했다.

     

    “젤지 씨. 당신, 설마… 테러행위를 저지르려고 우리를 이용한 건 아니겠죠?”

     

    싸늘해지는 백작부인의 시선.

    커져가는 시민들과 치안대의 동요.

    지젤이 급히 변명에 나서려던 그때였다.

     

    “모두 도망쳐! 성문 앞의 시위대가 제국포병대에게 포격당했어…!”

     

    치안대의 저지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나타난 사내의 절박한 외침.

    바닥을 구르며 옷은 찢어지고 살은 까지며 피까지 철철 흐르는 시민의 외침에 시위해산으로 흐르던 암묵적인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해산은 해산.

    그러나 폭력행위를 저지르기 싫어 어영부영 눈치를 보다가 해산하는 흐름이 아니다.

    제국의 선제공격에 피해자가 나오며 무력진압에 당할 위기에 놀라 살기 위해 해산해야 하는 흐름이다.

     

    ‘아니, 저놈은 누구지?’

     

    지젤은 당황했다.

    암흑상회의 인력을 발휘해 철저한 선동을 벌이면서 여귀족 바게트 백작 부인이 자발적으로 참가했을 때야 이게 웬 떡이냐는 심정이었지.

    계획에 없던 대형폭발과 피해자의 등장은 치안대만큼이나 그도 난처했다.

     

    ‘잠깐. 성문에서 일어난 폭발에 휩쓸리고 이 단기간에 여기까지 나타날 수가 있나?’

     

    시간과 거리가 맞지 않는다.

    마치 돌발사태에 대비해 준비된 배우를 투입시킨 것처럼 지나치게 신속한 등장.

    준비된 배우…?

    지젤의 실눈이 날카롭게 떠졌다.

    제도에는 자신처럼 제국의 행보에 반기를 들 이들이 아직 남아있다.

     

    ‘혁명군 잔당들의 소행이구나!’

     

    가짜 혁명군이 일으킨 소란에 진짜 혁명군이 편승하기 시작했다.

    지젤은 본능적으로 확성마법이 걸린 무선마이크를 움켜쥐었다.

     

    “황제폐하께서는 정녕 노귀족들의 추악한 유희를 위해 민중들을 폭력으로 짓밟기로 결단했단 말입니까?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정말 폐하의 뜻인지 폐하에게 향할 상소문을 막기 위한 노귀족들의 만행인지 진위를 밝혀내야 합니다!”

    “옳소!!”

    “치안대가 우리를 막더라도 더는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두 눈으로, 두 귀로 똑똑히 진실을 마주할 시간입니다. 나아갑시다, 정의를 위해서. 나아갑시다, 진실을 위해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호지세의 형국이다.

    지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이미 불이 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의 연설은 결정타에 한없이 가까웠다.

    성난 시민들은 이제 손오천이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저지선을 쥐어뜯고 각목과 쇠파이프를 내리치며 강제로 파괴했다.

     

    “치안대장님, 어떡합니까! 지금이라도 착검하고 시위대를 공격합니까?!”

    “아니, 하지 않는다.”

    “대장님!”

    “폭발은 아니지. 민간인을 저렇게 몰살하는 건 선 넘었다고. 폐하의 뜻이라면 모를까, 저것이 정녕 귀족들의 소행이라면 그런 불명예를 위해 우리가 헌신할 이유는 없다. 지금부터 제 3 치안대는 시위대와 함께 성문을 향해 전진한다!”

     

    어느덧 공권력마저 편승하기 시작한 시위행렬!

    간혹 착검을 하고 달려드는 다른 치안대도 있었지만 손오천을 비롯한 제도 모험가들의 적극적인 공세 앞에 한줌 치안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의 폭력을 두려워하던 민중들도 이제는 손오천의 무력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지젤. 일이 너무 커진 거 아니야? 이러다가 황제가 눈 뒤집혀서 정말로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황제가 황궁을 벗어나면 그만큼 우리 꼬마숙녀가 빠져나오기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민중들도 상황이 더 심각해지거든 알아서 해산할 겁니다. 혁명가와 혁명군의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니 물러서야 할 때는 잘 알고 있겠죠.”

     

    애초에 혁명가의 위선적인 행보로 수많은 피를 본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혁명가스러운 언동을 하면 기겁하며 달아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지젤 딴에는 합리적인 생각이랍시고 그런 전망을 하여놓고 있었다.

     

    “큰일이야. 황제까진 아니지만 황태자가 궁 밖으로 나와버렸어. 궁중기사단까지 동원한 상태로!”

    “물러설 때가 됐군요. 이사벨, 미리 안전한 곳에 퇴각한 채로 지켜보십시오. 민중들의 혁명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커다란지.”

     

    황태자는 시위대를 향해 단호하게 경고했다.

     

    “귀족들의 노예매매는 사실무근이며 황실이 이를 비호한다는 소리는 전부 헛소문이다. 당장 시위대를 해산하고 궁전 앞을 떠나지 않는 자들은 궁중기사단의 토벌대상이 될 것이다. 알겠나?”

     

    분해하며 누군가 어찌해주길 바라는 시위대.

    지젤은 자신만만하게 다시금 마이크를 쥐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대의를 위한 희생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감수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흘릴 피는 제국의 정의와 세계평화를 위한 숭고한 거름이 될 것이니, 세상의 상식이 황실의 권위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혁명군이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역시나 지젤의 예상대로 대중들은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혁명군?”

    “뭐야. 저 사람 혁명군 사람이었어?”

    “그럼 우린 혁명군에 가담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 바로 그거다.

    그대로 겁을 먹고 해산해라.

    물러나는 인파 사이에 섞여서 숨는다면 황태자와 궁중기사단도 우리를 잡고자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느라 한동안은 복귀하지 못하겠지.

    목숨을 건 숨바꼭질이 되겠지만…

    고학년의 눈을 피해 숨바꼭질을 해본 경험쯤은 1학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녔다.

    지젤 역시 암살자만큼 전문적인 숨기 실력에 비견되지는 못하더라도 며칠의 시간은 벌 자신이 있었다.

     

    “그럼 혁명군도 착한 놈들이었던 거야?”

    “그런가… 제국 녀석들이 혁명군의 실체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도록 헛소문을 퍼뜨려왔던 건가!”

    “혁명군이 이런 좋은 녀석들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도왔을 것을, 우리의 선입견이 혁명가의 죽음을 방관했구나!”

    “예?”

    “자괴감에 빠지기엔 일러. 아직 우리에겐 혁명투사가 남아있잖아!”

    “그래. 위대한 결투공증인 젤지야말로 혁명가의 뒤를 이어 혁명군을 이끌 진정한 후계자야. 젤지가 있는 한, 우리는 황실의 외압에 굴복하지 않아!”

    “아니… 이게 무슨??”

     

    민중의 흐름이 그의 제어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저 바게트 백작부인은 금일부로 혁명군에 가담할 것을 공식으로 선언하겠어요!”

    “저희 베이커리 살롱의 회원들도 바게트 백작부인을 따르겠어요!”

    “저기요? 다들 미치셨습니까? 그런 짓을 저지르면 반역죄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요?”

     

    필사적으로 말리려 애쓰는 지젤의 어깨를 바게트 백작부인이 토닥여주었다.

     

    “그만. 더 이상 가혹한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우리는 혁명가를 외면했지만 젤지, 당신마저 외면하지는 않아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바게트 백작부인은 슬픔을 이겨내고 진정한 혁명의 의지를 내비쳤다.

     

    “당신만의 혁명군이, 당신만의 혁명이 아니에요. 이젠 우리 모두의 혁명군이자 우리 모두의 혁명이에요!”

    “……”

     

    저승에 있을 혁명가가 기립박수를 칠 혁명의 물결이 제도를 뒤덮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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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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