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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7

        

         

         

        * * *

         

         

         

         

       미국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력이 있는데 뭐 어려운 것이 있었겠는가?

       진성과 리세는 미국에 진출한 일본 대기업 중 하나의 전용기를 타고 편하게 비행해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감시 장비가 깔린 택시가 아니라 ‘축복’을 받았던 이들 중 한 명이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리무진을 타고 진성과 리세가 처음 한 것은….

         

       바로 관광이었다.

         

       둘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관광했다.

       여행객처럼 보이도록 평범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고, 타임스 스퀘어나 뉴욕 현대 미술관, 동물원 등을 돌아다녔다.

         

       타임스 스퀘어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돈을 주고 띄워놓은 광고를 잠깐 보았다가 근처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도 하고, 리세가 가지고 다니기 좋을 만한 액세서리나 핸드백을 사서 들려주었다.

       미술관에서는 가볍게 작품을 감상하였는데, 딱히 진성의 눈에 차는 것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 후로도 명성을 크게 얻었던 그림이라거나, 그가 눈으로 보았거나 들었던 작품이 전혀 없었다.

       그런 작품이 있다면 미리 사둘 생각이 있기는 했는데…. 없으니 그냥 가볍게 감상만 하고 끝을 낸 것이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리세는 딱히 미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이런 ‘고상한’ 예술보다는 그냥 평범한 또래가 좋아할 만한 것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미술을 감상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성과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미술관 관람을 끝마친 뒤에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리세의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다.

         

       마법사들이 직접 극지방처럼 조성한 환경 속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 무리.

       장치로 만들어낸 인공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바다사자들.

       지열을 끌어와 만든 온천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는 카피바라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1피트( = 약 30cm) 길이의 바나나를 들고 칼싸움하며 놀고 있는 원숭이들.

       당황해하는 사육사를 강제로 위에 태운 채 질주하고 있는 타조들.

       저들끼리 엉켜서 놀고 있는 새끼 사자 등….

         

       리세의 감성에 딱 맞는 동물들이 동물원에 가득했고, 해가 지자 곳곳에 켜지는 조명들 역시 그녀의 감성을 자극했다. 거기에 더해 보안장치 겸 장식용으로 곳곳에 세워진 레드우드(Redwood) 형태의 조형물들에 붙은 조명이 더해져, 요정의 나라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신주님, 저거 보세요! 바다사자가 저 엄청나게 큰 개의 뺨을 쳤어요!”

         

       “허허. 보아하니 방문객의 애완견인 듯하구나. 크기를 보니 늑대개인 것 같은데…. 이거 참, 서로 고소하며 싸울 수도 있겠어.”

         

       “신주님! 저기도 보세요! 카피바라 위에 펭귄 위에 새가 있어요!”

         

       “허허. 홍관조로구나. 붉은 몸과 독특한 울음소리를 가진 녀석이지.”

         

       “저기 이상한 동물도 있어요. 플라터푸스? 플래터푸스? 몸은 비버 같은데 부리가 새 같네요?”

         

       “허허. 오리너구리로구나. 참으로 특이한 녀석이지.”

         

       리세는 놀이동산에 놀러 간 어린아이처럼 동물원을 한껏 만끽했다.

       동물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에 셀카를 찍기도 했고, 뭔가 특이해 보이는 것이 있다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먹이를 줄 수 있는 동물에게 과일을 던지기도 했고,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동물이 있다면 신력을 이용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리너구리가 하품하는 듯 부리를 벌렸을 때 안에 이빨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기린이 요가라도 하는 것처럼 긴 목을 옆으로 꺾은 채 자는 것을 보고 죽은 게 아니냐면서 기겁하기도 했고, 사육사가 비버가 만들어놓은 집을 몰래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며 동정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비버가 돌아와서 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는 귀엽다면서 쿡쿡 웃기도 하였고.

         

       이러한 리세의 모습은 딱 그 나이 또래의, 흔히 볼 수 있는 소녀의 모습과 같았다.

         

       진성은 그러한 리세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고민이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길게 이어진다면 좋은 것이 없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함이라.

       사유(思惟)가 길게 이어지면 빛 한 점 없는 깜깜한 밤에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은 막막함을 느끼게 될 것이며, 고찰(考察)이 길게 이어지면 심해 속에 푹 잠긴 채 헤엄치는 듯한 막연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여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으며, 잊지는 않되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구석에 놓아둔 채 지내다 보면 번개처럼 스쳐 가는 깨달음이 고민을 해결하게 도울 것이요, 일상에서 그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니.

         

       그렇기에 진성은 리세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

       그녀는 수행자와 비슷한 자질이 있었으니까.

       신을 모시고 있음에도, 광신도가 되기 충분한 자질이 있음에도, 그런데도 그녀는 고민하고 깨달으며 수행하며 체득하는 수행자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올바른 방법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에 매몰되어 허우적대지 않도록.

       기분 전환을 시켜주고자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견문을 넓혀주고 의식을 확장해주기 위하여 여행시켜주려 한 것도 있었고, 그녀를 데리고 다님으로써 진성이 얻는 이득도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것은 그녀에게는 이로운 일이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자아, 동물은 다 본 듯하구나. 그렇다면 보자…. 시간이 늦어지고 있으니, 가볍게 한 곳만 더 보고 가자꾸나.”

         

       “한 곳이요?”

         

       “그래.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가야만 즐길 수 있는 거리다.”

         

       “해가 뜨지 않은 곳…. 아, 혹시 신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곳…. 설마 카지노…?”

         

       “하하. 그곳은 해가 뜬 상태에서도 즐길 수 있지 않으냐.”

         

       진성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세를 데리고 동물원에서 나왔다.

       그리곤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을 탄 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의 이름을 댔다.

         

       “월 스트리트로.”

         

         

         

         

        * * *

         

         

         

         

       월 스트리트는 볼 것이 별로 없는 곳이었다.

       브로드웨이라는 커다란 강에서 삐져나온 지류(支流)에 불과한 수준이었고, 브로드웨이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좁고 평범한 골목 모습은 사람들에게 ‘이게 그 명성이 자자한 월 스트리트의 모습이란 말이야?’라면서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게다가 차는 안에 들어서지도 못했고, 돈과 일에 미쳐있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큰 특별함을 주지 못했다.

         

       그래.

       과거에는, 분명히 그랬다.

         

       월 스트리트는 그냥 브로드웨이에 붙어있는 평범한 골목이었고, 세계 최고의 금융가이기는 하지만 명성과 걸맞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월 스트리트는 점점 커졌다.

       자그마한 물줄기가 땅을 깎고 불려 나가며 시냇물로 변하고, 시냇물이 범람하여 작은 강으로 변하고, 작은 강이 돌을 깎으며 마침내 강이 되는 것처럼 월 스트리트는 점점 거대하게 변했다.

         

       고층 건물이 세워졌다.

       옛적 인디언들을 대비해 높은 벽을 세운 것처럼, 고층 건물이 벽처럼 자라났다.

       고층 건물들은 빽빽하게 거리를 채웠고, 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리고 그 고층 건물들은 나무가 씨를 뿌리는 것처럼 곳곳에 뿌려졌고, 그렇게 세워진 고층 건물들은 숲을 이루며 점점 월 스트리트를 넓혔다.

         

       월 스트리트가 길어진다.

       월 스트리트가 넓어진다.

         

       보행자만이 돌아다닐 수 있었던 좁아터진 거리는 넓혀져 차가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기존에 설치되었던 테러 방지용 바리케이드는 과학과 마법의 힘으로 점차 세련된 형태로 변화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티팩트로 대체가 되었다.

       월 스트리트의 부유함은 곧 안전으로 직결되었고, 고층 건물들 곳곳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방공을 위한 군사시설이 들어섰고, 군인들이 근무하며 테러를 경계했다.

       월 스트리트의 건물 곳곳에는 그들이 자체적으로 고용한 경비와 경호원이 가득 들어서 있었고, 어떤 건물의 지하에는 PMC의 시설이 들어가 있기까지 했다.

         

       그렇게 월 스트리트는 계속해서 변화했다.

       커지고, 길어지고, 안전해지고, 높아졌다.

         

       그렇게 해서 월 스트리트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빌딩의 숲.

       돈에 미친 늑대들이 가득한 위험한 거주지.

       그리고 그 부유함을 노리며 찾아온 또 다른 늑대들까지.

         

       그 모든 이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곳.

         

       “와아. 타임스 스퀘어도 대단했는데, 여긴 다른 의미로 엄청나네요….”

         

       한밤의 월 스트리트에 온 리세는 리무진에서 내리자마자 경탄했다.

         

       “시계랑 양복 가게들이 정말…. 많네요….”

         

       그녀가 내리자마자 본 것은 시계와 양복을 진열해놓은 가게들이었다.

         

       월 스트리트가 아니라 테일러(tailor) 스트리트, 혹은 워치(watch) 스트리트로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가게들.

         

       그 수많은 가게는 어둠이 내려앉았음에도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월 스트리트의 늑대들을 노리고 입점한 곳들이지.”

         

       늑대들을 뜯어먹기 위해 찾아온 또 다른 맹수들.

         

       그들은 돈을 많이 버는 이들을 뜯어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사치’에 걸맞은 허영과 광채로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치품을 미끼로 내걸고 있는 이들 사이사이, 그 둘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이들도 있었다.

         

       “커피숍이나 음식점들도 있는데…. 커피숍이 레스토랑 느낌이네요.”

         

       많은 돈을 만지다 보면 금전 감각이 마비된다.

       특히 그 많은 돈이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월 스트리트에 입점한 ‘그나마 값이 싼’ 곳들은 바로 이것을 노리고 온 이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관광객들을 노리는 곳이기도 했다.

       관광을 온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보자…. 그래. 저기로 가자.”

         

       그리고 진성이 가려는 곳은, 이러한 곳 중에서도 상당히 비싼 축에 속하는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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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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