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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7

       지금까지 손에 쥔 검 한 자루로 숱하게 많은 것을 베어 왔다.

         

       그렇기에 한 차례의 검격만으로 가늠할 수 있다.

         

       상대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가늠이 안 돼.’

         

       백우진이 좌절한 까닭은 그래서였다.

         

       상대와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조금도 가늠되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차원에 놓인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그것이 꼭 ‘네 검은 절대 이곳에 닿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듯하여.

         

       ‘신의 권능이니까 당연한가.’

         

       다행히 꺾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궁리를 찾는 것조차 포기할 만큼 내몰리지 않았다.

         

       아니, 실은 포기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옳을 터다.

         

       ‘내 처와 자식의 미래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그녀들로부터 배웠다.

         

       부부의 연을 맺은 남녀가 나누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매일 밤 서로를 마주한 채 눈을 감고, 아침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뜨는 기쁨이 어떠한지.

         

       아무리 채워 넣으려 해도 조금도 차오르지 않던 마음의 한 귀퉁이가.

         

       그녀들과 하나 또 하나를 알아갈 때마다 자연스레 채워졌다.

         

       그러한 채움의 연속은 지금보다 조금 더 뒤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 아이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어떤 식으로 안아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당연했다.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더없이 많은 밤을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장원 곳곳을 서성였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내렸다.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해 주면 돼.’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될 것이다.

         

       서툴지만 곧 있으면 태어날 제 아이가 아무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도록.

         

       누군가의 개입 없이 온전히 자신만의 꿈을 찾아 나가는 시간 속에서 살기 위해.

         

       “잘 봐라.”

         

       느슨해진 자세를 바로잡고, 검을 고쳐 쥔다.

         

       “이게 바로 아빠의 사랑이드아아앗!”

         

       낯이 화끈 달아오르는 말과 함께 검을 내지른다.

         

       쿠우웅-!

         

       신전에 이는 단 한 차례의 격돌음.

         

       붓은 여전히 종이 위에 세계의 명운을 써 내려가기 바쁘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랐다.

         

       “느껴졌어….”

         

       손끝에 감촉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붓이, 신의 권능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어렴풋하게 느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제 고작 두 번째 아닌가.

         

       평생을 걸쳐 수련해도 도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거리감이었으나.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지금의 백우진에게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원한다면 얼마든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양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팽창하던 이 감각이 기어코 발을 내디딘다.

         

       “아…….”

         

       대체 무엇을 얻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깨달음의 영역에.

         

       백우진의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 * *

         

         

       처음에는 그저 무료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적어 넣을 때마다 그녀는 치열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마치 그것이 제 사명이라도 되는 듯이.

         

       배가 채 부르기도 전에 잡았던 붓은 만삭이 되고 나서야 떼어놓을 수 있었다.

         

       “됐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 세계를 구원한 영웅의 이야기.

         

       ‘백가영웅록(白家英雄錄).’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서책은 여러 사람의 손에 필사되어 수백, 수천 권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황금 상단의 유통망을 통해 중원 전역의 서점으로 퍼져 나갔다.

         

       한 사내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이 서책의 가격은 고작 한 냥.

         

       책을 쓰는 데에 들어간 종잇값조차 채 건지기 힘들어 보이는 가격에 누군가 물었다.

         

       “어찌 이리도 싸게 파는 거요?”

         

       이에 서점 주인이 대답하길.

         

       “글을 쓴 저자께서 중원 모두가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길 바라서라고 하외다.”

         

       책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당연했다.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름 또한 그 몫을 톡톡히 했다.

         

       “백가의 영웅이라…!”

       “옳거니, 이것은 백우진 대협의 이야기로구나!”

         

       백씨 가문에서 나온 당대 제일의 영웅은 오직 백우진 한 사람뿐.

         

       모두가 그가 세상을 구원했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호사가들이 떠들어 대는 것도 결국 그가 겪은 일의 조족지혈에 불과한 수준.

         

       그렇기에 모두가 궁금해했다.

         

       과연 백우진은 어떤 시련을 거쳐 세상을 구하게 되었는지.

         

       그 비범한 생애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그녀의 계획은 온전히 뜻대로 이루어졌다.

         

       “세상에, 이토록 고생을 하셨었단 말인가…!”

       “뭐? 백우진 대협이 학관 시절 초창기에는 낙제생이었어?”

       “어머나, 이토록 멋진 말들이라니….”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그녀가 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누군가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백우진의 고난에.

         

       또 누군가는 비범하기는커녕 비루하기 그지없던 그의 어린 시절에.

         

       뭇 여인들은 그가 훗날 부인 될 연인에게 건넨 감동적인 대사에.

         

       그의 이름, 아니, 이번에는 서사시 자체가 들불처럼 번졌다.

         

       그렇게 곳곳에서 들려오는 백우진을 향한 찬사 속에서.

         

       “아아아악!”

         

       응애-!

         

       백우진의 아이가 처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감축드려요, 마님! 사내아이예요!”

       “아아…, 아가.”

         

       사투 끝에 아이를 낳게 된 당선영은 제 서방을 쏙 빼닮아 태어난 아이를 보고 눈물 흘렸다.

         

       그리고 동시에 백우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동생…, 그이는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니?”

       “네, 언니….”

       “안에서 무얼 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아무래도 결계가 펼쳐져 있는 듯한데….”

         

       도경이 꺼낸 ‘결계’라는 단어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장삼.

         

       황산파의 당대 장문인이자, 백가장이 지어진 이래 쭉 객당에서 먹고 자며 호사란 호사는 전부 누리고 있는 식충…, 아니, 식객.

         

       “왜, 왜 나를 보는 거요.”

       “우리 서방님께서 결계를 직접 치셨을 리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장 소협께서 도와주셨겠죠?”

         

       전방위적으로 들어오는 압박에 오금이 저린 장삼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 그렇소. 조장이 하도 부탁하기에 내 서재에 결계를….”

       “어떤 결계죠?”

         

       제갈연지의 날 선 물음에 그가 즉답했다.

         

       “벼, 별거 아니오! 그냥 밖에서 서재를 열 수 없게 해달라고만 하기에….”

       “그 말은…, 밖에 있는 우리는 죽어도 저 서재의 문을 열 수 없단 말인가요?”

       “끄응…, 그렇소. 내부에 붙여둔 부적을 떼지 않으면 여는 건 불가능하오.”

       “…….”

       “…….”

         

       그쯤 되니 모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무리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해도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길을 전부 차단하다니.

         

       아이가 태어난 날의 집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장삼은 조용히 고개 숙였다.

         

         

       * * *

         

         

       신은 지켜보았다.

         

       두 차례의 검격이 붓에 가로막히고, 눈을 감은 채 깨달음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그를.

         

       그때가 되어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주인공에게 무얼 주었는지.

         

       ‘가능성…!’

         

       참으로 애매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희망찬 단어처럼 보이다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고꾸라질 것처럼 절망적인 단어로도 보이니 말이다.

         

       가능성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무수히 뻗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으나, 막상 어디로도 뻗지 못한.

         

       하지만 그 애매한 단어를 쥐고서 눈앞의 사내는 무수히 많은 꽃을 피워 올렸다.

         

       인간으로서 지고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더없이 많은 길을 가능성 하나만으로 열어젖혔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신의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까닭이었다.

         

       ‘만약 가능성이 인간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는다면…?’

         

       그 순간.

         

       깨달음의 영역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백우진이 눈을 떴다.

         

       그리고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도 앞서 검을 휘둘렀다.

         

       쿠우웅-!

         

       거대한 울림.

         

       신은 제게 다가오는 저 울림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에게는 보였다.

         

       일정한 크기, 규격, 필체로 써 내려간 종이 위에 생겨난 작은 오점이.

         

       그것은 조금 전 백우진의 세 번째 검격이 닿을 때 붓이 지나간 곳이었다.

         

       그 말인즉, 그 충격이 순간이나마 붓의 필체를 뒤흔들 만큼 강렬했다는 뜻 아닌가.

         

       “미친놈…!”

         

       등골이 오싹해졌다.

         

       세상을 구원하라고 주인공에게 쥐여 보냈던 무딘 칼날이 돌고 돌아 자신을 겨누고 있다.

         

       그것도 세상 두 바퀴를 도는 동안 갈고 또 갈아 시퍼렇게 선 날을 번뜩이며.

         

       이윽고 네 번째 검격이 붓을 두드린다.

         

       쿠우우웅-!

         

       한층 더 깊어진 울림.

         

       그와 동시에 신은 보았다.

         

       붓이 써 내려가는 세계의 명운 위에 새겨진 최초의 ‘오자(誤字)’를.

         

       언제나 10할에 머물러 있던 정확도가 9할대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굴욕.

         

       그러나 신은 이마저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백우진에게는 아직 여섯 번이나 되는 기회가 남아 있었으니까.

         

       “이제 다섯 번…!”

         

       또 한 차례의 격돌음과 함께 이번에는 붓이 새겨야 할 글자 하나를 빼먹고 넘어가 최초의 ‘탈자(脫字)’가 생겨났다.

         

       여섯 번째 검격에는 하나의 단어가, 일곱 번째 검격에는 한 줄의 문장이, 여덟 번째 검격에는 하나의 문단이 통째로 소실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아홉 번째 검격이 휘둘러지는 순간.

         

       끼긱…!

         

       지금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자아낸 붓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끊임없이 붓을 두드린 백우진은 마침내 단 한 차례의 기회를 남겨두고서 활짝 웃었다.

         

       “이제 됐다.”

         

       완성한 까닭이었다.

         

       “절필(絶筆).”

         

       어느 글러 먹은 삼류 작가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최후의 초식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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