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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8

    <528 – 절친의 증거>

     

    “정말이지? 사다코 교수님의 납치의뢰를 받고 포인트에 눈이 멀어서 친구를 팔러 온 거 아니지?”

     

    몇 번이고 즈앙의 어깨를 붙잡고 울며 떼쓰듯이 달라붙어 물어보아도 대답은 같았다.

     

    “자꾸 귀찮게 굴면 넘겨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히에엑!”

    “오크노디는 황녀가 되고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오히려 전보다 더 허접스러워졌어.”

     

    킥킥. 어깨가 간질거리는 웃음이 지척에서 들린다.

    머리카락의 길이는 변하지 않았는지.

    머릿결은 상하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건드리는 손길이 마냥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공포심이 지나가고 떠오른 반가움 때문이겠지?

     

    “그래서 오크노디. 이 이상한 옷들은 다 뭐야? 교복은 어디다 두고?”

    “종결템을 맞추고 있었어!”

    “종결템?”

    “세트아이템은 파츠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다 모았을 때의 효과는 더 커지잖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룩은 파츠가 많아서 성별착용제한만 아니면 전부터 꼭 입고 싶었거든!”

    “전부터?”

    “헉… 아, 아무것도 아니야!”

    “흐응~ 그래~?”

     

    즈앙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볼을 쿡 찔렀다.

     

    “응엣.”

    “사람 궁금해 죽게 만드는 입이 요 입이야?”

    “미안. 용서해줘!”

    “말하기 싫으면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돼. 나도 듣는 귀 정도는 있으니까 소문은 알아.”

    “소문?”

    “제국이 호문쿨루스 아이들을 위해 여아용 옷을 매입했다는 소문. 거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전부 거짓은 아니었던 거겠지.”

    “?”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도 혼잣말이니까. 그래서 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룩이라는 거, 이렇게나 잔뜩 모아서 어쩔 셈이였어?”

    “강화하고 있었어!”

    “강화?”

    “아무래도 강화는 고강으로 갈수록 파괴확률이 점점 커지거든. 황궁의 지원 정도는 얻지 않으면 도전하기가 쉽지 않아!”

     

    즈앙이 콧소리를 내며 강화대 위에서 빛이 반짝거리는 오버니삭스를 만지작거렸다.

     

    ━━━

    <앨리스의 오버니삭스(유물+12강)>

    등급 – 레어2등급

    설명 – 제국 황실에서 탄생한 세트아이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12개의 파츠 중 하나. 이 유물의 진가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효과1 – 4위계 이하 물리파손보호

    효과2 – 4위계 이하 마법파손보호

    효과3 – 이 물품은 손상 시 자동 수복된다. 효과 강화 시, 모든 세트아이템의 자동 수복률을 올린다.

    효과4 – 절대영역 : 오버니삭스와 원피스 사이의 허벅지는 6위계 이하 모든 공격을 무시한다.

    효과5 – 이상한나라 : 이 아이템은 다중차원 속성을 지닌다.

    효과6 – 이 오버니삭스는 세트아이템과 함께 장착하지 않으면 효과가 2위계 감소한다.

    효과7 – 이 오버니삭스는 세트아이템과 함께 장착하면 효과가 1위계 상승한다.

    효과8 – 이 오버니삭스를 착용하는 동안은 키가 자라거나 체중이 늘어나지 않는다.

    감정가 – 금화 12000매, 120만 포인트

    ━━━

     

    브론즈 교수에게 배운 안목을 사용했는지 즈앙이 겁이 날 정도로 쓸데없이 효과가 대단한 잡동사니를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오버니삭스를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거 아니야? 입고 다니기가 겁이 날 정도로 굉장한 오버니삭스인데.”

    “그런 대단한 오버니삭스를 15강까지 강화할 기회는 제국황실이 아니면 흔치 않다고? 아카데미의 강화소나 재단의 훈련의 탑에서도 강화는 가능하겠지만 거기선 포인트가 들거나 파파의 심부름을 들어줘야 하는걸. 그러니 지금 뽕을 뽑아야해!”

    “그러다 아카데미 2학기를 통으로 날려먹었잖아. 기껏 강의도 여러개 신청해놓고 이렇게 날려먹어서 휴학생이 되다니, 후회되지는 않아?”

    “딱히? 포인트 엄청나게 벌었고. 진급이야 포인트 내고 하면 되는걸. 거물도 잔뜩 해치워서 남은 강의 다 넘기고 강화에 매진하는 편이 더 이득이야!”

     

    즈앙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오크노디는 이득만 되면 아카데미는 어찌 되든 상관없구나?”

    “당연하지! 목표는 살아남기인걸.”

    “살아남기?”

    “아카데미를 졸업하려는 이유도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인걸?”

    “뭐로부터?”

    “뭐로부터라니. 으음. 배드엔딩? 데드엔딩? 이것저것이라고밖에 말 못 하겠어.”

     

    실제로도 그렇다고.

    내가 들어온 이 게임세계의 타이틀부터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

    최근에는 캐릭터 육성이 너무 잘 되어서 걱정하는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본래는 숨 막히는 억까를 피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임이다.

    통제가능한 변인을 조정해서 매 회차 운으로 변동되는 이벤트에 대처하는 대응능력, 그리고 타고난 운을 요구하는 게임.

    그리고 유독 초반부에 운이 좋은 회차는 뒤로 가면 엄청난 억까가 날아들기 마련이다.

    갑부 파파는 악마소환의식을 진행하다가 용사의 적이 되어서 졸업 전에 이슈타르의 손에 살해당하기도 하고, 악의조직과 연결되었다가 쓰고 버리는 버림패로 끝나기도 하지.

     

    “아무튼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려면 황궁에서 갖출 수 있는 강화템은 최대한 갖추고 나가야 해!”

    “나갈 생각이 없지는 않았구나?”

    “당연하지. 퀘스트 쉽게 깨려고 템 맞췄는데 정작 퀘스트를 깨러 안 가면 회차가 망하잖아?”

    “오크노디의 퀘스트라는 건 뭔데?”

    “졸업 후의 해피엔딩을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종말이벤트의 제거?”

     

    즈앙이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만일 우리가 오크노디를 밖으로 꺼내줄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왔어?”

    “밖에는 지젤이랑 이사벨, 손오천이 왔어. 거리의 시민들을 선동해서 제국병사들의 시선을 잔뜩 끄는 중이야. 안에는 티토소가가 같이 왔고.”

    “아, 안녕…?”

     

    한동안 얼굴 좀 안 봤다고 그새 낯가림이 생긴 티토소가가 모퉁이에서 소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티토!”

     

    나는 깜짝 놀랐다.

     

    “조명대는 어디다 또 잃어버리고 온 거야?!”

    “두, 두고 왔어… 잠입에 방해가 되어서.”

    “그러다 마나과포화증으로 신체가 펑 터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마나가 너무 많이 모여서 심장이나 폐가 짓눌리는 감각은 안 들어? 손발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감각은? 갑자기 의식이 흐릿해지거나 두통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고통은?”

    “힝잉잉…! 그런 무서운 이야기 하지 말아줘! 갑자기 큰일이 날 것 같잖아!”

     

    겁쟁이스러운 모습을 보니 진짜 티토소가가 맞았다.

    밖에도 정말로 입학시험 동기들이 모였나 보다.

     

    “으음. 그래도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미 한 학기를 놓쳤어. 이대로 1년만 더 지난다면 아카데미에서도 널 포기할지도 몰라. 황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그래도 강화가 소중해?”

    “으으음. 솔직히 4학년이 아니면 이 정도로 템을 갖출 기회는 없으니까 1년 정도는 보낼 만한데….”

     

    문득 장난기가 들었다.

     

    “즈앙은 내가 돌아갔으면 좋겠어?”

    “뭐어?”

    “같이 돌아가지 않으면 막 서럽고 슬프고 눈물 나올 것 같고 막 그래?”

    “바보. 암살자가 질질 짜고 다닐 리가 없잖아.”

    “히히. 역시 그런가?”

     

    무감無感.

    감각을 끊는 기술을 위해 감정마저 버린 암살자의 수줍은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다니.

    설레발이 심했다.

     

    “그래도 굉장히 아쉬울 거야.”

    “즈앙이? 왜?”

    “그야 우린… 베스트프랜드니까.”

     

    헉! 이 타이밍에 베프선언을 하다니 암살자답게 아주 비겁한 기습공격이었다.

     

    “증거도 있어. 보여줄까?”

    “무슨 증거?”

     

    즈앙이 자연스럽게 시녀복의 치맛단을 들어 올렸다.

    나는 기겁하며 치맛단을 밑으로 눌렀다.

     

    “뭐 하는 거야! 여자애가 그러면 못 써!”

    “오크노디야말로 왜 방해하는 거야? 막으면 보여줄 수가 없잖아.”

    “거기를 왜 보여주려고 하는건데?!”

    “우정팬티.”

    “뭐어?!”

    “베프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같은 팬티를 입는대. 우린 그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증거야.”

     

    헉… 아카데미 여학생들 사이에는 그런 놀라운 문화가 있었다니!

     

    “드러내는 게 싫으면 이런 방법도 있어.”

    “무슨 방법?”

    “오크노디가 치마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런 부끄러운 방법이?!”

    “아니면 내가 치맛단을 올리는 수밖에 없지. 그래도 괜찮아. 나야 무감을 익힌 암살자니까. 죽을 만큼 부끄러워도 오크노디와의 우정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공적인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소중한 부위를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도 저지를 수 있어.”

    “우정이 무거워!!”

    “어떡할래? 오크노디가 수치심을 감수할래, 아니면 본인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절친에게 공개수치플레이를 강요할래?”

     

    역시나 악성향 일류암살자 즈앙.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암살의 위협도가 무서울 정도로 엄청났다.

    이건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즈앙이 협박한 거라고.

    어쩔 수 없어.

    나도 피해자야.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거야!

     

    “오크노디. 콧김이 뜨거워.”

    “미, 미안!”

    “자꾸 뜸 들이면 정말로 부끄러워질지도 몰라.”

     

    그래, 인생 까짓거 뭐 있겠어?

    후딱 저지르고 끝내버리자.

     

    “에잇!”

     

    단숨에 치맛단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목격했다.

     

    “풋. 설마 정말로 속옷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한 건 아니지?”

     

    속옷이 있어야 할 자리를 철통처럼 지키는 가증스러운 아이템, <속바지>의 존재를…!

     

    “믿었는데. 믿고 있었는데…! 친구의 스커트에 고개를 들이민다는 부끄러운 짓을 했는데도 정당한 보상을 얻지 못했어!!”

    “어쩔 수 없겠네. 속바지의 안이 그렇게 궁금하다면 아카데미에 가서 같이 물놀이를 하는 강의를 듣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렇지?”

     

    나 말리지 마.

    이거 요망한 즈앙이 먼저 꼬신 거야.

     

    “약속한 거야. 즈앙이 먼저 꼬시고 제안한 거니까 나중에 이런 위험한 강의 듣기 싫다고 엉엉 울면서 애원해도 소용없어!”

    “풉. 그렇게나 속옷을 보고 싶었어? 오크노디는 변태네.”

    “흥. 정말로 눈물을 쏙 빼줄 거야!”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즈앙이 부쩍 조심스러워졌다.

     

    “그 강의라는 거, 무슨 강의를 말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수중모험의 12가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기>!”

    “……가르치는 교수님은?”

    “사다코 교수님! 내년도 강의계획서가 미리 올라온 걸 보고 이것만큼은 피해야겠다고 외웠지만 즈앙이 먼저 도발했으니 그런 건 없어!”

    “속바지 벗을 테니까 다른 강의 들으면 안 돼?”

    “이미 늦었어!”

     

    고인물을 놀린 괘씸함, 서로가 동시에 고통받는 가혹한 강의로 갚아주마!

     

    “저기… 얘들아?”

     

    티토소가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 강의 같이 안 들어도 되는 거 맞지…?”

    “티토! 우리 셋은 언제나 함께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온 베프잖아!”

    “생각해 보니 슈퍼겁쟁이인 티토소가와 함께 강의를 들으면 덜 무서울 것 같기도 해.”

     

    티토소가의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앙앙앙!”

     

    앗차. 너무 겁을 준 나머지 티토소가의 3단계 울음이 터져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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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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