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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8

        

       사파인들, 일명 사도 건아들은 청을 돕겠다고 나선 명문의 청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뭐지? 제깟 놈들이 뭐가 아쉬워서 고작 신녀문의 제자와 친하게 지낸단 말인가.

         

       사파로 따지자면 신녀문은 사도십대천성은 말도 안 되고, 사도이십대천성으로 두 배 자리를 늘려도 어림도 없다.

       그야 정파에는 구파일방 십대세가가 존재하니 스무 자리가 꽉 차 있는 것이다.

       그 외인 신녀문이야 그냥 여인들의 문파라 유명하지, 서열로 따지자면야 규모나 위력 면에서도 큰 하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데서 신룡이 나왔으면, 당연히 기존 구파일방 십대세가에서는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며 은근히 멸시를 주고, 견제와 훼방, 그리고 최선은 제거하는 게 맞지 않나?

       결국 크면 저들에게 도전할 고수이자, 또 신진 세력이 아니겠느냐고.

         

       청이 듣는다면 혀를 찰 생각이다.

         

       하. 사파 수준. 하긴, 너네는 그래. 뭐.

         

       물론, 사파도 억울할 수 있다.

       정파가 저들끼리 모여 ‘우리가 남이가’ 하고 세워놓은 저들만의 영역이 뭐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냐고.

       선함과 악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우리라는 선이 어디에 닿아있느냐의 문제니까.

         

       어지럽게 난립하여 서로 잡아먹고 크는 사파에게 내 사람이란 사실 나 말고는 딱히 믿을 놈이 없다.

       그래서 눈치 안 보고 일을 치른다.

         

       하지만 이미 정파는 어떠한가?

       이미 한 정도 문파가 가진 이득을 다른 정파가 탐내서는 안 되는 우리의 특성상, 위아래의 서열 이동이 일어날 수 없다.

         

       쫄딱 망하지만 않는다면, 십대세가에도 여전히 진주언가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을 테고.

       백 년 전에도 오대세가는 오대세가였으며, 그 이전에도 구파일방은 구파일방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정파 무림의 종주는 소림사, 오죽하면 천년소림이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서열의 변동이 없는 완벽한 계급의 완성이 아닌가.

         

       그러니 천화검과 같은 유력한 절세고수가 나오면 당연히 견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사결에 뛰어들어 제 이름과 소속조차 밝히지 않았으니 진짜 목숨을 걸었다는 소린데.

       도대체 왜? 뭐가 예쁘다고?

         

       “음. 예쁘긴 하지, 미모야 아주 절세미인 서시도 저리가라 아닌가.”

         

       “아. 그래서인가? 사내새끼라면, 하기야. 하지만 당가 계집도 있잖아. 계집이 계집의 미색에 홀렸다고?”

         

       “옥기린 모르나? 옥기린 따라왔겠지.”

         

       “옥기린을 연모해 따라온 거면, 오히려 우릴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장 연적부터 제거해야지. 나 같았으면 앞뒤 안 재고 빈틈을 타서 독침을 날렸을 걸세.”

         

       “……? 그러고보니 자네 처가 미망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남편이 괴질로 죽었다고.”

         

       “허허. 이 사람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신녀문은 덜 무섭다.

       여중제일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한 명이고, 그 악명을 기억하는 이들이라 해봐야 아주 늙은 고수들 정도가 아닌가.

       심지어 평균 수명이 정파에 비해 심각하게 낮은 사파 무인들이다.

       여중제일인이란 이미 전전전대, 아주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대세가는 무섭다.

       당가와 팽가라니? 제갈은 좀 만만해도.

         

       제갈세가가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고 하지는 않았으니, 제갈들이 대대로 분통을 터뜨리며 우리도 신공 있고 쎄다고! 오대세가 조상 빨로 딴 거 아니라고! 하며 소리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복수자들은 내일을 기약한다.

       저 인명부를 보고도 어떻게 복수 소리가 나오겠는가.

       어차피 중원에서 원한이란 결국 해소하는 이에게 박수를 보내는 행위라서, 지금의 구차함은 길어도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고.

         

         

         

       그리고, 복수자가 아닌 무인들은 기대감을 부풀린다.

         

       사실, 몰려든 무인들 중 복수자의 밀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 외의 나머지는 아직까지도 흡정마공에 미련을 못 버린, 버릴 수 없는 신공 탐색자들이다.

         

       청을 따라다니는 무인의 대다수는 제가 청에게 원한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왜냐하면 임시 거점 습격은 혈교의 음모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혈교진천하의 글씨, 그리고 아쉬움에 빈 신가지묘를 뒤지던 이들이 발견한 제어실, 거기에 혈교의 마녀가 진짜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쯤이면 아 진짜 혈교였네, 아깝숑 하고 다들 인지는 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신공은 별개 아닌가?

       결국, 그래도 흡정마공 진위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거잖아.

       진짜로 흡정마공이 존재했으면, 당연히 그 중심에 있던 천화검이 취했을 터다.

       본인은 없애려 했다 말하지만, 본래 신공은 다다익선, 흡정마공이 존재했다면 어찌 무인된 자가 그러한 최강의 무공을 지울 수가 있겠는가?

       아니면 그 잘난 정파에 가져가서 해석해 수정할 수도 있고, 정파 아니라도 사문의 힘으로 해결을 보려 할 수도 있고.

         

       청이 들었으면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칠, 아니 띠용 띠용 출렁출렁 칠 소리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이렇다.

       청의 고향에서도 주식이니 동전이니 한 번 빠지면 분석이 아닌 신앙의 영역으로 삼는 생물이었으며, 심지어 사기임을 알면서도 같이 먹고 빠지면 된다는 소리를 하니.

         

       그런데 흡정마공이 보통 무공인가?

       무림의 일인자!

       당대의 천하제일고수!

       이를 보장하는 사상 최강의 마공이다.

         

       한 방에 인생 역전!

       잘 교육받은 이들조차 목을 매는 한 방, 심지어 정규 교육 과정도 없는 미개한 시대의 무인들은 당연히 눈이 돌아간다.

         

       흡정마공의 존재는 확정되지 않았다.

       부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 존재를 확정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흡정마공은 존재했다.

       존재해야만 하는 때, 존재해야만 하는 사람이 원하기에 흡정마공은 존재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아주 명확한 진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구가 평평하다.

         

       일부 심각한 저능아들은, 모든 인류가 단일 민족으로 실은 모두 환국, 대한의 후손이라 믿으며 이는 천구백칠십구년에 출판된 대체역사소설이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차라리 훨씬 오래된 수박도가 낫다.

         

       아니면 뱀 요괴가 세상을 통치한다거나.

       대지 아래에 또 다른 인류가 산다거나?

       바닥에 피로 낙서한 후에 온갖 생물의 특수 부위로 장식해 놓으면 어째서인지 마귀왕이 힘을 내려준다고 믿는 것처럼.

         

       천화검의 요사한 혓바닥에 속아 원수가 아니면 도전조차 못 하게 되어버렸지만.

       애초에 생사결에 뭐, 이기고 나면 상대는 죽고 지면 나는 죽는 대결에서 ‘천화검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하고 물어볼 겨를이나 있나?

       하지만 미련은 계속 남아 쫓아다니는 중에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나.

         

       어쩌면 저놈들끼리 신공을 두고 다툴지도 모르고, 암, 흡정마공이면 정파놈들도 침을 줄줄 흘릴 가치가 있지 않겠나.

       이제 생사결은 텄으니 천화검이 죽어서 영원히 입을 다물 일도 없다.

       천화검이 천년만년 군사를 끼고 있지도 못할 테니 아직 기회는 남았다.

         

         

         

       이러한 이유로, 일행은 편안해졌다.

       아주 잘 놀고 잘 먹었다.

         

       그야 잘 대접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하, 천화검의 친우분들을 보니 아주 선남선녀 헌양하고 아름다우니 천하 무림의 동량이 여기에 있고 또한 정도의 길에 해가 걸린 듯 환하여 그림자가 없다 하겠군! 비록 군문과 무림이 유별한 것이나, 나라의 평온을 바라며 또한 나라를 수호하는 애국지사들이니 이 대장군이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께 베풀지 않을 수가 있겠소! 자, 여기 한 잔들 받으시오!”

         

       “논리의 전개가 예사롭지 않군요. 참으로 대단한 변설가입니다. 아, 물론 누님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청이 옆에서 들려오는 해설에 픽 웃음을 짓는다.

         

       무려 대장군이 직접 돌아다니며 하사하는 미주다.

       세상 어떤 무림인이 대장군의 술을 받아본단 말인가.

         

       다만, 사천의 비공식 황녀님으로 기본적으로 숭배를 받아왔던 당난아다.

       청을 대할 때와 저를 대할 때의 미묘한 공손함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리고 만다.

         

       그러니 대장군이 지나고 나서 소곤소곤.

         

       “청아야, 저 사람 어찌 아는 사람이야? 왜 하인이 상전 모시듯 해?”

         

       “어, 음. 어머니 지인이시래.”

         

       “어? 너 엄마 없다며?”

         

       남들이 들었다면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싶겠지만.

       청이 당난아를 한두 번 보았겠나.

         

       모욕의 의도가 아니라 사실의 확인이다.

         

       원래 척추에서부터 행동이 이어지는 당난아라서 언행에 있어 두뇌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사실 청의 판단이 정확하니, 척수반사로 사는 당난아가 어찌 지금까지 살아있는가?

       그야 만천화루 궁극의 필살기를 믿기에, 일단 저지르면 무조건 용서를 받기 때문에.

         

       “아니, 세상에 엄마 없는 사람이 어딨어? 갑자기 세상에 뿅 튀어나와서, 음. 에잉.”

         

       음. 세상에 뿅 튀어나온 사람 요기 있네.

         

       괜히 제 말에 제가 찔린 청이 술을 벌컥 들이킨다.

       아직 미개한 주류 제작 방식의 한계로, 모든 독한 술은 비싸고 좋은 술이다.

       찌르르하니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주제에 화끈한 주기에 속이 쑥 내려간다.

         

       “정확히는 몰라. 어머니라고 주장하시는 분인데 아마도, 아니 분명히 거짓은 아닐 거고.”

         

       “그럼 그냥 엄마 하면 되는 거 아냐? 저 대장군 하는 꼴을 보면 되게 높으신 분인가 본데?”

         

       “음. 좀 복잡해.”

         

       “왜? 혹시 청아 널 휘두르려 한다거나, 막 금자 달라고 하셔? 아니면 이제와서 딸 찾았다고 어디다 혼례를 보내려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좋은 분이셔.”

         

       “그러면 뭐가 복잡해?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그러고 보니 황후 전하도 머지않아 뵙게 되리라고.

       그야 황후패 써서 도지휘사를 동원했으니 당연히 알게 되시겠지.

         

       만약 연술 공주가 죽고 남긴 몸을 자신이 차지한 거라면야, 청은 기꺼이 그 대역이 되어줄 생각이 있다.

       자식 잃은 어미의 대용품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뭐 황궁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가끔 만나 재롱이나 떨어 드리면 그만이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연술이 살아있었다면?

       황후의 딸이 어찌어찌 겨우 숨 붙이고 살아있었는데, 내가 그 몸을 차지한 거라면?

       그러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음. 몰라.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그보다 빨리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 얘네를 어떻게 떼어내지?

         

       지금 청이 해야 할 고민의 우선순위다.

         

       눈치 상 얘네 아주 그냥 찰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을 것이 뻔한데.

       그냥 가라 한다고 갈 것 같지도 않고.

       그럴 것 같았으면 생사결에 끼어들지도 않았을 테고, 최소한 생사결 전에 오대세가 배경을 밝히면서 물러나라 했을 텐데.

         

       함께 싸우겠다는 마음은 너무 고맙다.

       과분할 정도의 호의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너네는 진짜 연약하잖아…….

         

       생사결에 몰래 독 쓰던 놈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청이야 이미 시혈독인 독이 통하지 않는 몸이라서 그냥 그러라고 놔뒀다.

       생각해보면 덕분에 생사결 도중에 도망치는 놈이 없었으니, 독침에 맞았으니 오래 가지 못할거라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고.

         

       어디 독뿐만인가?

       의녀 일 해보니까 가시에만 찔려도 재수가 없으면 감염으로 죽어 자빠지는 미개한 원시 시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힘이 쎈가?

       경지가 높아?

       원 불안해서 뭘 할수가 있어야지.

         

       애초에 뭐 친구면 친구지 중대사에 죄다 따라다니며 함께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결혼식이나 장례식 정도면 모를까 무슨 일 터졌다고 우르르 몰려들지는 않는 건데.

         

       청의 사고가 이러했으니 친구들 보아 반갑고 기쁘기는 한데, 으음, 영.

         

       그러니 도대체 얘네를 어떻게 하면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떼어낼 수 있을까.

         

       청이 그렇게 맹렬히 두뇌를 굴려 본다.

       하지만 악의에는 강해도 호의에는 약한 청이라서, 이걸 도대체 어쩌나, 모르겠네.

         

       그러던 중이었다.

         

       대장군 아래에서 모든 실무를 도맡아 한다던 당번병, 양 사목이 다가와 보고를 척 올리는 것이 아니겠나.

         

       “저기, 친우분이라 하시는 분들이 현재 요리점 앞에 대기하고 계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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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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