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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8

        

         

       카페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내부의 인테리어였다.

       공산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이 돼지 같은 부르주아 놈들의 배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총칼로 뚫어버려야 한다.’라며 격분하며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진품으로 보이는 골동품과 그림들.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장식들.

       범상치 않은 빛깔을 보여주는 목재들로 만든 가구들까지.

         

       사치라는 게 이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과는 다르게, 놀랍게도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값이 비싸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한 수준의 카페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말 커피 한 잔의 값을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하지 않고서야 사람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겠는가.

         

       리세는 눈이 번쩍 뜨이게 할 카페에 손님이 하나도 없음을 이상하게 여겼다.

         

       “신주님. 혹시 여기….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이곳은’ 문제가 없다.”

         

       진성은 리세의 의문에 의뭉스럽게 답했다.

         

       “가격도 비싸기는 하지만 가벼운 수준의 사치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수준이고, 다른 곳들과 차별화된데다가 고급스럽기까지 한 인테리어 덕분에 관광객들을 끌고 오기에도 적합한 곳이지. 위치도 좋고, 나쁜 일로 입방아에 오르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니 이곳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진성은 실내 쪽에 자리를 잡고는 저 멀리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빌딩들의 환한 불빛이 등불처럼 퍼져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에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이 발하는 불빛이 특수 제작된 창문에 스쳐 지나가며 부서지고 흩어지며 별이 반짝이는 듯한 효과를 주기까지 해서,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진성은 그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대신에,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를 한 번 훑어보고는 눈을 돌렸다.

         

       “창밖은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네에? 저렇게 예쁜데요…?”

         

       “보석은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눈을 현혹하지만, 동시에 좋지 않은 것을 감출 때도 사용하기도 하는 법이니. 괜히 보석의 빛에 홀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는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음이라.”

         

       진성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여러 번 접혀있는 빳빳한 종이.

       그것은 미국 여행 지도였다.

         

       여행 지도에는 미국의 주요 도시와 그 도시에서 유명한 명물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오겠느니라. 그동안 다음에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잘 생각을 해두었으면 좋겠구나.”

         

       “네? 네에!”

         

       리세는 진성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를 주면서 다음엔 어디를 가고 싶은지 잘 생각을 해두라니.

       그 말은, 여행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진성과 함께 더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미국 여행을 말이다!

         

       리세는 기뻐하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센터 시험을 볼 때보다도 집중해서 지도를 훑어보았다.

       가타카나로 적혀 있는 도시와 명물들의 명칭은 물론, 지도의 아래쪽과 뒤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간략한 설명들까지 전부 말이다.

         

       진성은 그러한 리세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곤 리세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간단한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했고, 돈을 미리 낸 뒤 화장실로 향했다.

         

       덜컹.

         

       그렇게 화장실로 들어선 진성은 주위를 슬쩍 훑어보았다가 문이 굳게 닫혀있는 칸으로 향했다.

         

       철컥.

         

       그가 칸의 앞에 서자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칸의 문이 열리고, 그와 닮은 남자가 안에서 나왔다.

         

       놀랍게도 둘의 외모는 닮은 것뿐만이 아니라 옷도 똑같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옷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브랜드만이 똑같은 것이 아닌 주름 하나까지 모두 같았다.

         

       주름 하나까지 동일한 옷.

       비슷해 보이는 외모.

       비슷한 키까지.

         

       누군가 그들을 본다면 쌍둥이 형제, 혹은 전설에서 나오는 도플갱어가 아닌가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그 추측은 완전히 틀리지는 않은 것임을 알면 다시금 경악하게 될 것이다.

         

       “닮은 것은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것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비슷한 형상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그렇다면 하나의 뿌리를 둔 것이 닮지 아니할 이유가 무어 있으랴?”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주언을 내뱉었다.

         

       “비슷한 것은 뒤섞이며 이치를 현혹할 수 있음이니.”

         

       “하늘의 눈도, 밤의 불꽃도 능히 피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되리라.”

         

       그리고 그 주언이 끝나는 그때.

       둘의 얼굴이 뒤바뀌었다.

         

       안에 있던 이는 밖에 있던 이의 얼굴로.

       밖에 있던 사람의 얼굴은 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로.

         

       둘의 얼굴이, 뒤바뀌었다.

         

       그뿐이 아니다.

       키 역시 바뀌었다.

       미묘하지만 차이가 존재했던 키는 한쪽이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누군가 순간이동으로 둘의 위치를 순식간에 바꿔놓기라도 한 것처럼.

       둘은 뒤바뀌어버렸다.

         

       이는 이 둘이 둘로 나뉘어 있으되 하나에서 비롯된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하나는 실제 사람이되 하나는 벌레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진성과 진성이 만들어낸 유사 원영신은 위치를 바꾸었다.

         

       신주의 역할을 하고 있던 인형(人形)의 위치에는 실제 박진성이.

       박진성의 위치에는 새로이 역할을 얻어낸 벌레로 만들어낸 인형이.

         

       그렇게 둘은 뒤바뀌었다.

         

       월 스트리트의 한 카페에서.

       권력자들이 차마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하찮은 그 장소에서 말이다.

         

       그렇게 둘은 뒤바뀌었고, 둘은 뒤바뀐 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기다리고 있었느냐?”

         

       “아뇨, 다음 여행지를 어딜 고를까 고민하…어?”

         

       가장 먼저, 진성은 리세에게 갔다.

       그는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처럼 약간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리세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리세는 자리에 앉은 진성을 보며 무언가가 다름을 깨닫고,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신주님. 혹시…?”

         

       “그래.”

         

       리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진성은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실감을 느끼라는 의도에서 그녀의 꼬리털로 만들어낸 물건에서 신력을 살짝 움직여 손에 담은 뒤,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앗….”

         

       리세는 진성이 손을 잡자 입을 살짝 벌리며 놀랐다.

         

       체온.

       체온이 느껴졌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체온과 박동이 아닌,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손에서 느껴졌다. 거기다가 벌레로 이루어진 몸에 담은 신력과는 다른 느낌의, 포근하면서도 보드라운 느낌이 더해진 신력이 느껴졌다.

         

       손을 잡는 간단한 행위.

         

       그 행위 하나만으로, 리세는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진성이, 진짜 박진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리세의 마음속에 기대감 하나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신주님. 그러면 여행도…?”

         

       “그러하다.”

         

       혹시나 기대하며 물은 질문에 돌아온 부드러운 대답.

         

       ‘가짜 몸이 아니라, 진짜 몸과 여행…?!’

         

       벌레로 만들어진 가짜 몸이 아니다.

       진짜 사람이다.

         

       진짜 사람과, 단둘이.

       단둘이 미국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이건 마치…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시추에이션이 아닌가.

         

       지금에 와서는 잘 보지 않게 되기는 했지만, 옛날 리세는 드라마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드라마를 주제로 친구들과 떠들거나,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것도 아주 좋아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녀가 자주 보았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상황이었다.

         

       “앗. 아앗….”

         

       친구들과 드라마를 주제로 떠들 때, 나도 이런 연애를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시추에이션의 데이트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떠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이, 이루어져 버렸다.

         

       리세는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주님.”

         

       그녀는 진성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눈을 슬쩍 피하며, 수없이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분해되며 파편화되는 말 대신에-

         

       “여행, 기대할게요.”

         

       여행이 기대된다는 간단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 * *

         

         

         

         

       허물은 진짜로.

       진짜는 허물로.

         

       둘이 뒤바뀌었다.

         

       하나는 허물의 자리를 대신해 땅을 돌아다닐 것이니.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흐음.”

         

       진짜 행세하는 허물은 카페를 나왔다.

       그리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멀리 있는 빌딩을 바라보았다.

         

       그 빌딩은 아까 전, 카페의 창문에 비친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빌딩이었다.

         

       그 빌딩은 안에서 보았을 때와 비슷하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층.

       한 층.

         

       층마다 일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바쁘게, 바쁘게 그들은 일한다.

       때로는 하품하면서, 때로는 졸면서.

       때로는 그냥 그 자리를 멍하니 지키기만 하면서.

         

       그렇게 그들은 성냥갑 같은 빌딩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층 중, 일하는 대신 그저 모여서 무언가를 떠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재수가 없다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진성은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떠드는 주제.

       그들이 저런 얼굴을 하게 만든 것.

         

       그것은 빌딩의 안이 아닌, 밖에 있었으니까.

         

       ‘또 한 명 죽었군.’

         

       저 빌딩의 뒷문이 있는 곳.

       그곳에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다.

         

       팔다리는 부러지고, 머리는 깨져서 피와 뇌수를 줄줄 흘리고, 온몸에는 술 냄새와 피 냄새를 한껏 풍기면서.

       한 남성이 길바닥에 그렇게 부서진 채로 널브러져 있다.

         

       한밤중이라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그렇게 남자는 방치되어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저 시체를 회수하러 오는 이들이 올 때까지.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렇게 누워 있다.

         

       저것은 이 월 스트리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으며-

         

       ‘끌끌. 누가 사람이 수시로 투신하는 곳을 보러 오고 싶겠는가.’

         

       동시에 이 월 스트리트에 관광객이 뚝 끊기게 만든 사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잠깐은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거늘, 그사이에도 한 놈이 뛰어내리다니. 참으로 죽음이 가득한 동네가 아닐 수가 없다.’

         

       월 스트리트에서 투신해서 죽는 이들이 넘쳐나는 것을 알고 있는 진성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니, 관광객들은 오죽하겠는가.

         

       ‘호텔은 브로드웨이- 그것도 월 스트리트를 등지는 쪽으로 잡아두었으니, 별문제가 없겠지.’

         

       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진짜 몸이 있었던 그곳.

       루카스의 빌딩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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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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