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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9

   변태 사도가 만들어낸 소란의 다음 날. 많은 학생들이 갑작스런 휴학을 즐기기 위해 아카데미를 떠났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아카데미에 남아있었다.

   

   돌아가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향해야 할 곳이 있었으니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모인 우리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그런 재미난 일이 있었으면 저를 깨워주셨어야죠! 치사해요!”

   

   내가 오기 전에 먼저 모인 친구들이 어제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단의 사도님께서 장신구 속에 들어가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연하시다니!”

   

   흐으으. 다시 생각해도 어제는 너무 끔찍했어. 사람들의 시선에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어야 했던지.

   

   더 짜증나는 건 내가 관심 받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서 툴툴 거리는 몇몇 놈팽이들이었어.

   

   입 다물고 있으니 볼 만하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갈 뻔 했다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타박을 줘서 아무런 말도 못 했지만. 그 중에서도 변태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분노가 장난이 아니었어.

   

   ‘허어어! 영애께서는 무엇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군요! 평상시의 표독스러움이 있기에 지금의 천사같음이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거늘!’

   ‘애초에 그 날 섬에서 생겨나는 매력을 모르는 것부터가 문제다! 길가의 흙같은 못난이 주제에 어디서 감히 루시를 평하느냐아아아!’

   

   내 발치 아래에서 개짓거리를 할 때는 이만큼 혐오스러운 녀석들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지랄하는 걸 보고 있자니 든든하더라.

   

   여전히 혐오스럽다는 감정이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끼는 거잖아.

   

   자! 내가 평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겪어봐라! 이 변태들의 역겨움에 몸서리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껴봐!

   

   이런 마음가짐으로 영애들을 구경하던 나는 다른 이들이 질색을 하며 도망치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갤 주억였다.

   

   추후에 잘 했다고 생각한다면 밟아달란 얼빠여우의 이야기를 듣고서 고맙단 생각이 아예 싹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심지어 그림 한 장도 아니고 수십 장을 그렸는데!”

   

   아. 그래. 저거. 어제 왜 이렇게 그림이 완성되는 데 오래 걸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림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그리는 중이었더라.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완성된 그림들을 확인했을 때 이래서 오래 걸렸구나 생각을 하며 감탄을 했지.

   

   이렇게 많은 그림을 단시간에 완성했는데 겨우 이 정도 시간밖에 걸리지 않다니! 같은 느낌으로.

   

   ‘영애. 그럼 다음 장소로 가죠.’

   ‘…다음?’

   ‘예. 제가 준비해 온 옷들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하루 안에 내게 모든 옷을 입히기 위한 변태 사도 나름의 발악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감탄이 싹 사라져버렸지만.

   

   진짜 끔찍했어.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장소에 서고 또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대체 모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감수하는 거야? 나 진짜 스트레스 받아서 두 번 다신 못 하겠단 생각이 들던데!

   

   “친구라면! 최소한 그 정도는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뭐. 아무튼 지나간 일이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어찌저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조이가 그 악몽을 다시 내 앞에 내밀 줄은 몰랐어.

   

   “변명 해봐요! 왕자님! 페이비! 켄트 영애!”

   

   생각해보면 지난 번에 내게 벌칙을 줄 때도 조이는 날 옷 갈아입히기 용 인형 취급했었지.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이번 일이 차아아암 아쉽겠네.

   

   이런 나쁜 아이한테는 어떤 벌을 줘야 할까?

   

   “…조이.”

   “뭔가요! 대답해보세요! 설마 제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그랬다 같은 소리는 하지 않겠죠!? 저희가 알른 가문에서 한 훈련이 얼만데!”

   “아니 말을 좀.”

   “조이. 뒤를 봐요.”

   “…뒤?”

   

   페이비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슬그머니 고갤 돌린 조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난 별 말 하지 않고 히죽 웃어줬다.

   

   그러자 조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으로 자빠졌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어. 언제부터 듣고 계셨던 건가요. 루시.”

   “우리 얼빵이가 내 귀여운 모습을 못 봤다고 한탄하는 순간부터?”

   “…거의 처음이잖아요.”

   

   부채로 가리지 못한 부분마저 벌개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가학심이 서린 웃음과 함께 쫄래쫄래 조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평소에 얼빵이가 날 보는 눈이 심상치 않단 생각은 했거든?”

   “녜? 크흠. 아니. 네? 제 눈이요?”

   “몰랐어? 흐으응. 모르는 데도 그런 눈이 나올 정도구나? 재밌네.”

   “자. 잠시만요. 알른 영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허술 공작님도 고민이 많겠네. 하나 뿐인 딸이 설마 여자를 좋아하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제 하루 종일 자다가 정신이 나갔나봐요! 그만해주세요오오!”

   

   조이가 제일 비싸고 큰 파르페를 사줄 테니 제발 살려달라 빌기에 일단 당장은 넘어가주기로 했다.

   

   물론 용서해 준 건 아니었다. 속좁은 메스가키가 겨우 파르페 하나 받고 무죄를 선고해줄리 없잖은가.

   

   넘어간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개허접 조이의 뒤에서 몰래 뒤통수를 후려 쳐야지.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말이야.

   

   후후훟. 조이. 넌 모르겠지만 내가 네 커마에 공을 들인 시간만 해도 20시간은 넘을 걸?

   

   뭐가 제일 잘 어울리고 뭐가 제일 웃긴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모니터 너머에 모여들었던 변태들의 집단지성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여러 재밌는 발상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파르페를 향해 손을 움직인 나는 금새 내 상체만큼 커다란 파르페를 없애버렸다.

   

   아침 빈 속에 바로 파르페를 이만큼 때려박아도 멀쩡한 위장! 평소 활동량 때문에 살 찔 걱정도 없음! 어린 몸이 최고야!

   

   …아니.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네. 젊은 몸? 건강한 몸?

   

   아무튼 사축의 몸보다 지금 더 좋아!

   

   아카데미의 시종이 테이블을 깔끔하게 치워 준 후 나는 반지의 마법을 발동해 소리를 차단하고서 본론을 꺼냈다.

   

   “지난 번에 동정찐따마법사랑 헤어지기 직전에 들었던 말 기억하지?”

   

   그 때 에르기누스는 다시금 자신을 만나러 와 달라고 했다. 그 때 부탁할 것이 있다고 말이다.

   

   어젯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그가 할 부탁은 높은 확률로 요정의 숲과 관계된 내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친우였던 할아버지가 이야기하길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에르기누스가 미련으로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 숲과 관계된 일이었다고 했으니까.

   

   즉, 그의 목표와 내 목표가 같은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지난 번 베네딕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던 교수에게서 들은 정보를 기반으로 결계의 제작자인 에르기누스와 이야기를 나누어 정보를 한 번 더 교차검증하고 마지막으로 1왕비에게 필요한 정보를 뜯어낸다.

   

   이게 지금의 내가 세운 계획이다.

   

   “다시 그 기분 나쁜 찐따 해골을 만나러 갈 건데. 무슨 일정 있는 눈치 없는 사람 있어?”

   

   이 계획을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해선 나 혼자 움직여선 곤란하다.

   

   일단 마법밖에 모르는 골방 할배 해골인 에르기누스의 말을 이해하려면 조이를 데려가는 건 필수.

   

   얼빵한 조이가 괴악한 실수를 했을 때 다잡아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니 아서도 반 필수.

   

   그 쪽에 퍼져 있는 악신의 기운을 정화하는 작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페이비의 지식도 꼭 필요해.

   

   프레이는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차피…

   

   “응. 나 할 일 있어.”

   

   따로 시키지 않아도 무조건 따라 붙으리라 생각한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 있다고? 너한테?

   

   검을 휘두른 거 빼면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바보인 너에게 어떻게 할 일이 있을 수가 있는데?

   

   아니. 검과 관계된 문제가 아니어도 너 나랑 떨어지려고 안 하잖아.

   

   항상 어떻게든 달라붙어 있으려고 하면서 이번에는 왜?

   

   이 시기에 프레이 관련 이벤트가 있나? 없을 텐데?

   

   “검성님한테 좀 더 배우기로 했거든.”

   

   프레이가 자기 머릿 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제멋대로 나열하는 걸 듣고 있자니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유덴이 켄트 가문의 검술을 보고서 의아하게 생긴 부분이 있단 거지?

   

   그래서 어제 배움을 얻다가 나중에 켄트 가문의 당주와 함께 찾아가서 논의를 나누기로 했다고?

   

   “어차피 나 없어도 되잖아? 강해져서 루시 쓰러트리러 올게.”

   

   지금보다도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프레이의 말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 목적이 날 상대로 이기는 것만 아니었다면 얌전히 칭찬을 해줬을 것 같은데 말야.

   

   뭐어. 프레이가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나쁠 건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프레이는 내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고 파티원이기도 한 걸.

   

   게임 속 프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검으로 던전 기믹까지 잘라낼 수준에 이르면 참 편할 것 같긴 해.

   

   아. 당연히 제멋대로인 부분은 빼고. 필요한 기믹마저도 다 잘라내는 게임 속 프레이는 솔직히 재앙이었거든.

   

   “나는 아예 안중에도 없나?”

   “당연히 없지. 왕자님은 지금도 허접인걸.”

   

   자신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게 열이 받은 듯 아서가 한 마디를 툭 던졌지만 프레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금도 재미없다 대꾸하는 걸로 아서를 격추시켰다.

   

   “두고보자아아아…”

   

   아서의 울분을 뒤로 한 채 프레이가 먼저 자리를 뜬 후. 우리들은 아카데미의 마법진을 타고서 다시금 사막에 방문했다.

   

   “언제 찾아오셔도 된다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단기간에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풉. 그래서 뭐 싫다고? 속으론 나처럼 귀여운 애의 시종노릇을 할 수 있어서 좋아 죽는 중이잖아. 속마음 감추는 것도 허접한 게 역시 평민이네.”

   “하하. 들켜버렸나요?”

   

   지난번처럼 마차에 자리한 우리들은 다시금 에르기누스의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

   

   “…어라?”

   

   이전과는 달리 던전의 천장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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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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