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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9

        

       아니, 사목 아저씨는 대장군 부하 아니신가?

       왜 나한테 보고를 올리는데?

         

       양 사목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행군하기가 며칠인데 누가 상전인지 모르겠는가?

         

       “누군데요?”

         

       “그, 남가와 언씨라 하면 알 것이라고.”

         

       “……?”

         

       청의 표정을 본 양 사목은 이미 대답을 들은 바와 같았다.

         

       “내쫓겠습니다.”

         

       “아니, 그러진 말고. 데려와 보세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청은 저를 찾는 사람을 문전박대하지는 않는다.

       보자고 하면 다 이유가 있을텐데 막 내쫒고 그럴 수는 없잖아.

       

       그렇게 등장한 두 명.

         

       “음. 자네들? 언제 와 있었나?”

         

       “소저님…….”

         

       다름 아닌 남궁신재와 모용주희다.

       청이 고개를 갸웃.

         

       왜 남가와 언씨지?

         

       이것이 바로 가명이 위험한 이유다.

       쓰는 이조차 제 이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동료의 가명 따위야 며칠만 지나도 ‘너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기에.

         

       음. 뭔가 혹이 늘어나지 않았나.

       쟤넨 집에 가랬더니 왜 또 쫓아왔대?

         

       하지만 같이 난리를 친 사이다.

       그래놓고는 문제가 되니 저 혼자서 전부 감당하겠다며 나선 청이 아니던가.

       집에 가랬다고 ‘히힛 개이득’ 하고 쌩하니 집으로 가 버리는 편이 이상했다.

         

       “진 소저를 무림맹까지 배웅해주고 오는 길이라네. 그 어르신께서 진 소저를 신녀문까지 데려다주겠다 하셨으니 우리도 이제 급히 합류한 참이지.”

         

       불청객이 가져온 희소식이었다.

       그래, 장명이는 아가니까, 고작 일류밖에 안 되는 아가에게 세상은 너무 위험한걸.

       최소한 절정쯤은 되어야 안내인을 끼고 관광이라도 다니지, 물가에 내놓은 갓난애랑 마찬가지잖아.

         

       천하의 일류 무인들이 들으면 세상 억울할 생각이다.

       하지만 청 역시 일류이던 시절에는 몸을 사리면서 꿋꿋하게 눌러앉아 남은 요리와 농작물 서리를 하며 살았더란다.

       그래도 일류쯤 되니 거지한테 두들겨 맞거나 농부에게 쫓기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무림이 바로 강자독식의 세계로구나 하고.

       일류 무인의 강자독식, 즉 상하지 않은 특급 잔반의 독점권! 대놓고 연기와 냄새 풍기며 쥐 따위를 구워 먹어도 되는 자유! 거기에 더해 무려 논밭에서 자유롭게 서리할 권리!

         

       그러니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무림 출도를 하려면 최소한 절정!

         

       “아, 누님. 이것 좀 드셔 보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천수돈팔공산두부라 하는 것입니다.”

         

       “응? 뭐지? 순두부?”

         

       “두부와 돼지고기를 삶고, 새우알과 죽순을 볶아 고명으로, 그리고 닭 육수를 따로 부어 낸 일품입니다.”

         

       “오. 음. 괜찮아. 슴슴하니 맛있어.”

         

       “순두부, 순한 두부라. 그렇다면 바로 이 이안점단을 말씀하시는군요. 틀에 넣고 압착하지 않아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이 하나요, 회음의 비법으로 끼얹은 적장이 둘이라 하는 요리입니다.”

         

       “오! 뭐야 이거, 진짜 순두부네?”

         

       “이건 취피작두장이라 합니다. 달게 굳힌 두부를 튀긴 것이지요. 여기 연유에 찍어 드시면 더욱 맛이 좋습니다.”

         

       “음? 요리라기보단 간식 같은데?”

         

       확실히 제갈이현이 옆에 있으면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고 할까.

       모르고 먹어도 맛있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법.

         

       “이건 석마두부라고 합니다. 두부를 좋아하는 이라면 능히 조선두부와 견줄 만하다는 최고급 두부이지요.”

         

       “엥. 조선두부?”

         

       “아. 조선두부를 아십니까? 조선이라고 하면 저기 산동반도 동해 건너에 있는 오랑캐들의 나라로, 두부 애호가라면 매 끼니를 먹어도 좋다 하는 최고의 두부, 조선두부를 만드는 치들입니다.”

         

       청이 눈을 꿈뻑꿈뻑.

       아니, 이런 데서 갑자기 국뽕이?

       뭐지, 주모라도 한번 찾아줘야 하나?

       그런데 유명한 게 두부라니? 왜 두부?

         

       하긴, 중원의 두부는 고향 맛이 안 나기는 하더라.

       뭔가 흐물흐물하니 두부와 연두부 사이쯤 어딘가에 싱겁거나 짜고, 콩 맛도 덜하고.

         

       그런데 이쪽 조선이 내 고향도 아닌데 국뽕은 무슨 국뽕이야.

       과거로 온 게 아니라 유사 중원, 아니면 평행 세계, 그도 아니면 게임 속인데 조선은 무슨 개뿔이 조선.

         

       청이 그냥 픽 웃어넘겼다.

       고향의 최고 두뇌 빼어난 석학들이 만든 최첨단 향신료와 탄산 정도가 그리울 뿐이지, 딱히 고향이 그립진 않은 청이다.

       아, 생각하니까 괜히 탄산 마렵네…….

         

       그런데, 어째 권하는 것이 죄다 두부다.

       그야 두부용 간수에는 막대한 소금이 들어가보니, 바닷물 아니면 만들기가 힘들다.

       그러니 바다를 접한 온난한 지방은 죄다 두부를 특산품으로 내미는 것이라고.

         

       “아, 그런데, 누님. 혹여 달리 하고 계시는 외공 수련이 있으십니까?”

         

       “응? 외공? 딱히?”

         

       그에 제갈이현의 눈이 반짝.

       사실, 제갈이현이 본 청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으니, 먹고 자면 잤지 몰래 비장의 근육 단련을 하는 모습은 상상도 안 된다.

         

       그러면, 그냥 타고난 힘이란 뜻이다.

       천하에 가장 뛰어난 도는 가공하지 않고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니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야말로 무위자연의 용력!

         

       “하지만 용력이 대단하시지 않으십니까? 세가의 수련장에서 이백오십근 철추를 한 손으로 드셨지요?”

         

       “아. 그거. 향이한테 보여준다고 내가 주책을 좀 떨었었네. 아, 향이는 잘 지내?”

       

       그에 제갈이현의 눈이 반짝. 역시!

         

       “아유, 말도 아닙니다. 매일 같이 누님을 뵙고 싶다고 칭얼대니 아주 상사병에 걸린 꼴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습니다! 항주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들리셔서 얼굴 한 번 확인하시렵니까?”

         

       “아. 그럴까?”

         

       “그런데-”

         

       “회남우육탕이다. 무인은 고기를 먹어야지, 콩 간 부스래기나 먹어봐야 무인이 어찌 힘을 쓰나.”

         

       제갈이현의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음? 딱 팽 누님이 하는 말인데. 그리고 두부는 완전식품이거든? 단백, 음 그런 건 산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힘쓰는 데에는 소고기보다는 닭의 흰 고기, 그리고 그보다 두부가 좋은 건데.”

         

       “아니, 그건? 용력의 비법입니까? 흰 닭고기, 두부, 아, 그러한 비밀이-”

         

       “됐고. 회남이라 하면 회음의 옛말이다. 즉, 이 동네에서만 먹을 수 있는 국수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도록.”

         

       팽대산이 다시 제갈이현의 말을 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팽대산에게는 이 떠버리 자식이 어딘가 지금과는 다른, 뭔가 알 수 없는 불온한 느낌으로 거슬리기에.

       지금도 보라, 말은 많아도 늘 공손하게 굴던 놈이 불손한 시선을 보내지 않나.

         

       하지만 청은 별 생각이 없다.

       제갈이는 원래 말이 많고, 산이는 원래 틱틱거리면서도 밥은 잘 사주는 녀석이다.

         

       그보다는.

         

       “넌 뭐야? 왜 따라다니고 그래?”

         

       “…….”

         

       “뭐야, 말도 안 해?”

         

       그리고는 모용주희가 젓가락을 뻗는 요리를 쏙쏙 빼먹는 당난아였다.

         

       “어허, 난아야, 그러면 못 써.”

         

       “그치만, 얘는 여기 왜 있는데? 은근슬쩍 우리 회에 낑기려는 거 아냐?”

         

       “이름만 올린 창빈이보다 오히려 우리랑 어울, 리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어울렸다고 하기엔 좀.

       그냥 무릎 껴안고 앉아서 백색 소음 삼아 꾸벅꾸벅 졸았다고 하니, 굳이 말하자면 견학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에 모용주희의 얼굴이 울상이 되기에, 청이 말을 바꾸었다.

         

       “그래도 참여율로만 따지면 더 높잖아? 그러면 명예 회원은 되는 거지.”

         

       “소저님……!”

         

       “쓰읍. 누구 맘대로. 난 인정 못해.”

         

       “그럼 한 번 물어볼까? 자자, 반검쌍도회 회원들, 모용 소저가 본 회의 회원으로 드는 데에 찬성하시는 분, 거수!”

         

       그에 청을 포함해 손 네 개가 올라오고, 당난아만 흥 콧김을 내뿜는다.

         

       그렇게 모용주희, 반검쌍도회 전격 합류.

       

       

         

       한편, 대장군은 전율했다.

         

       마마의 관계는 어디까지 뻗어있는가!

       이 자리에 모인 청년들의 면면을 보라.

       남궁! 팽! 모용! 제갈! 당!

       무림 오대세가의 자제가 모두 모였으니, 그것도 가장 어려울 때 돕겠다고 찾아온 진정한 우정들이 아니겠나.

         

       물론, 저들의 속셈이야 훤하지 않겠는가.

         

       관무불가침이라 하지만, 둘이 침범하지는 않더라도 돕기는 한다.

       서로 얼굴 비추며 상부상조 너 좋고 나 좋게 어우러지니 나라의 행정과 지방 호족 실질적 지배 세력의 화합이 이러한 것이다.

         

       오대세가쯤 되면 원체 큰 호족들이기에 거의 준 포정사 급으로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지만, 마마께서 어디 포정사 따위가 비빌 만한 옥체이시던가!

       그러니 콧대 높은 오대세가의 무리들조차 친우를 자처하며 모여들 수밖에는 없다.

         

       대장군의 충성심이 울컥울컥 자라난다.

       청이 마구 처먹고 부푼 배때기를 살살 쓰다듬을 때나, 혹은 그러고는 바로 처자는 작태를 보일 때마다 조금씩 쪼그라들던 충성심이, 다시금 강풍 앞의 연처럼 높이높이 떠올라 하늘에 닿는 순간이었다.

         

       물론, 대장군의 헌신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누구보다 길고 튼튼한 줄을 잡았으니, 높이높이 날아오를지도 모르고.

       아니면 태양에 너무 가까운 나머지 불타 사라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시끌벅적한 연회가 끝나고 나선 대장군이 슬그머니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마마?”

         

       “네?”

         

       “외람스러운 말씀입니다만, 그 반검쌍도회라는 회가, 혹시 어떠한 가입 조건이 있는 것인지……”

         

       “엥.”

         

       

        —-

         

         

       잘 먹고 잘 놀았던 일행은 다음 도시로 향한다.

         

       태주!

       강소성 중심에 위치한 이 도시는 놀라울 정도로 특출난 역사가 없다.

       무려 존재가 이천년이 넘는 고도임에도 딱히 인물이 없고, 중원사에 굵직하게 남긴 족적도 없다.

       굳이 꼽자면 멋진 동굴이 많다는 정도?

         

       그리고 청은, 음.

       생사결은 이제 아예 텄구나.

       망했네.

         

       결투장의 차양막은 이제 초대형, 이동식 누각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으니.

       무려 오대세가의 직계 전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자식 아비 스승 친우를 잃어버린 원통함이 크더라도, 스스로 저 지옥불 같은 매운 맛으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이다.

       원한은 복수를 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이것이 중원인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중원인은 적어도 억울함이 자기 파괴로 치닫지는 않아서, 원한을 삼키면 어떻게든 해소하려 들고 불리하면 물러나 훗날을 기약할 줄 안다.

       심지어 이 원한은 어느 민족보다 뜨거운 것임에도, 그보다 더 큰 기쁨과 이득으로 상쇄할 수 있는 합리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니 청은 친구들을 떼어냈으면 싶다.

       생사결은 그냥 나 화경 가자고 벌이는 일이고, 대장군님의 협조를 구해서 사실 그리 위험한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얘네 때문에 생사결은 글렀지.

         

       겸사겸사 원한을 좀 끝맺으려는 의도도 있었는데, 진짜 눈깔 돌아간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

         

       그러니 청의 마음은 조마조마.

         

       음. 소주쯤 가서 나 혼자 항주로 향하는 편이 좋으려나?

       하지만 금방 쫓아올 텐데?

       어녀녕이도 시간까지는 말 안 했으니까, 밤중에 쓱 다녀오면, 그런데 난아랑 모용 소저랑 밤에 같이 자다 보니 그러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

         

       하지만, 떼어내기는커녕? 어째서?

       자고 일어났더니 어째인지 오히려 한 명이 늘어나지 않았나.

         

       “서문 소저. 오랜만이에요.”

         

       어딘가 희미한 듯 들꽃과 같은 미소.

       어디 있어도 딱히 눈에 띄지 않은 것만 같은 희미한 존재감, 좋게 말하면 편안하고 수수하다고도 하겠지만, 어쨌든.

         

       돌연 아르르르 어쩐지 치와와 같은 소형 견종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듯한 환청이.

         

       “쉬잇, 난아야. 못 써. 공손 소저? 예가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공손요예가 청의 손을 붙든다.

         

       “서문 소저가 큰일을 치른다고 들어서요. 친구로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본가가 남경이니 코앞이기도 하구요.”

         

       “어, 음. 고마워요.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저도 그간 서문 소저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답니다. 얼마 전에 깨달음이 있었으니, 이는 분명 서문 소저를 도우라는 헌원상제님의 뜻이실 거예요. 그게 아니라도 꼭 도움이 되고 싶구요.”

         

       무림맹의 어른들이 청을 좋아라 예뻐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무인의 자존심을 자극해주는 친우란, 그 자체만으로도 정파 후기지수들을 수련으로 이끌어 그 수준을 끌어올리는 부드러운 채찍이자 맛난 당근 둘 다인 것이다.

       물론, 타고난 연륜 학살자의 싹싹함이라는 마수가 가장 큰 것이지만.

         

       어쨌거나.

       공손요예의 미소는 여리지만 그 호의만큼은 아주 찬란해 광선처럼 뿜어지지 않겠나.

       그러니 호의에 약한 청이 어쩌겠는가.

         

       “어, 그게. 음, 아침은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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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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