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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9

    온 숲을 뒤집어놓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대폭발.

    그에 놀란 시루드는 막 눈을 뜬 미셸이 정신을 추스릴 틈도 없이 그 소음의 방향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찢는 것 같아도,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흔들리는 머리가 깨질듯이 울려와도, 시루드는 멈추지 않고 그 방향으로 달렸다.

    심상치않은 폭발이었다.

    아까 전의 그 거대한 폭발에서 느껴지는 마력패턴은, 분명 전시장의 폭발에서 느낀 것과 같았다.

    폭발현장에 있던 경험이 많지 않아 폭탄에서 느껴지는 패턴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는 확신할 수 있다.

    방금 전의 그 폭발은, 규모는 달라도 분명 전시장에서의 그것과 동일한 것.

    나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시루드는, 자신의 두 눈으로 현장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루크의 저택은, 걱정대로 폐허나 다름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폭발 속에서도 다행히 루크는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저 여자가 도와준걸까?

    루크는 자신이 오늘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시루드를 맞이했다.

    “또 돌아왔군, 시루드. 내 기껏 돌려보냈거늘.”

    “하아, 하아….”

    그러나 루크의 질책에도 시루드는 그저 숨을 고를 뿐, 구차한 변명이나 내뱉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은 루크의 말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역시 닮았어. 아니, 닮았다기보단 똑같아.’

    시루드는 이미 루크와 완전히 닮은 꼴인 그녀의 얼굴에 온 신경이 쏠려있는 상태였다.

    같은 눈, 같은 얼굴, 같은 머리색.

    비록 그녀에겐 루크에겐 있는 수인 특유의 ‘꼬리’는 없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반박의 여지 없이 충분히 그녀와 닮아있었다.

    루크가 더욱 성장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당신….”

    시루드가 그 여성을 향해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한 순간.

    뒤늦게 달려온 미셸이 가쁜 숨을 고르며 시루드 대신 사과를 건넸다.

    “허억, 헉…. 아… 죄송합니다, 아가씨. 도련님이 보통 고집이 아니셔서….”

    차원멀미에서 막 벗어나 정신을 차린 미셸의 입장에선 시루드가 폭발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을 때 막아설 방법이 없었다.

    미셸은 멋대로 뛰쳐나간 시루드를 뒤늦게 질책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자칫하면 도련님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어요! 그랬으면 사모님께서 얼마나 충격에 빠지셨을지…!”

    다행히 상황은 어느정도 정리된 모양이다만, 역시 굉장히 무모한 행동이었다.

    만약 그 폭발이 사건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면, 불행한 희생자를 둘로 늘리는 꼴밖에 더 되었겠는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취해야했던 최선의 방법은, 직접 달려나갈 것이 아니라 경찰이나 구급대원을 호출하고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루드는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 미셸의 말은 무시한 채, 그녀에게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당신, 대체 누구죠?”

    시루드가 숲에서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당연하게도 그녀는 시루드에게 그다지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차가운 바닥에 자신을 넘어트리고, 뒤통수에 지팡이를 겨눈 상대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일테니까.

    심지어 그녀는 실제로 위협까지 가했으며, 그에 대해 어떤 망설임이나 가책은 드러내지도 않았다.

    시루드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느낀 것은 ‘익숙함’.

    이미 그런 폭력에 무뎌지고 무뎌져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버린 모습.

    게다가 코끝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혈향까지….

    어떻게 보더라도, 그녀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일원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도련님!”

    하지만 차원도약이후 기절하는 바람에 그녀의 ‘이면’을 보지 못한 미셸에겐, 시루드의 그런 행동이 굉장히 무례하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에 그녀는 그저, 루크를 구했을 뿐인 ‘닮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시루드는 미셸의 제지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방금 그 폭발, 당신이 일으킨 거죠? 안그런가요? 테러리스트.”

    “도련님?”

    심상치않은 시루드의 목소리에 미셸은 더이상 소년을 질책할 수 없었다.

    그녀가 봐온 시루드는,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이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엘프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것이 누군가를 1급 범죄자로 결론짓는 것이라면…..

    아니나다를까, 시루드는 곧 겉옷의 주머니에서 보란 듯이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툭.

    그녀의 발치에 떨어진 물건의 정체는, 그것은 바로 과거 전시장 테러에 사용되었던 가면의 조각.

    비록 망가지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 과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테러리스트, 본인이 사용하던 가면이었다.

    미셸은 그 ‘증거품’의 진위여부나 의미를 알아차릴 순 없었지만, 공간의 한껏 차가워진 분위기가 그 추측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시루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대체 루크와 어떤 관계인가요? 어째서 지금 나타난 거죠?”

    “…….”

    그러나 그 질문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권한은, ‘인형’인 자신에게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기 난처하긴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루크는 애초에 케이트나 레니에의 존재는 외부에 밝히려고 했던 적이 없었다.

    그것도 자신과 테러리스트의 관계성을 부정하기 힘든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너….”

    루크는 한차례 케이트를 쏘아본 뒤, 암호회선을 이용해 물었다.

    -케이트, 오는 길에 시루드를 만났나? 또, 저런건 대체 언제 흘린거고?

    루크의 질책섞인 물음에 케이트는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모른다. 그때 의식의 주도권은 레니에였다.

    -그럼 지금 레니에는 어디에 있는데?

    -‘장의사’를 보고 뭔가 떠올랐는지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돌아갔다. 그 뒤론 아직 응답이 없군.

    -뭐?

    상황을 대충 알아차린 루크는 이마를 짚으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연락도 취하지 못한 레니에가 제때 자신을 도우러 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시루드가 왜 그토록 열을 내며 여기까지 뛰어온 것인지.

    게다가 눈앞에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까지 들이밀고 있으니, 루크에겐 정말 별다른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돌겠군. 그녀는 여전히 일을 벌려놓고 자리를 비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는 종종 누구보다 긴 세월을 나아갈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다기보단, 애초에 생각이 깊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으려나.

    흥미가 있고 없음이 꽤 명확했던 레니에는, 자신의 흥미가 닿지 않는 일이라면 상당히 무책임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그동안 그녀는 자신에 의해 벌어진 상황에서 눈을 돌리면 웬만해선 주변에서 나서서 일을 수습해주었으니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

    결국 밝혀야하나?

    자신이 전시장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이고, 이 여인은 자신의 스페어바디를 이용한 ‘인형’일 뿐이라고?

    그러나,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시루드가 비밀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건을 수습한 이후에 경찰들에게 취조라도 받게 된다면…. 

    자신이 직접 한번 받아본 바, 아직 경험이 적은 어린아이라면 비밀을 지키려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나 손쉽게 유도심문에 빠져들 위험이 있었다.

    지금까지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채로 그토록 잘 숨겨왔는데, 고작 어린아이의 진술 실수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꼬리를 밟히게 된다면 솔직히 억울한 일이다.

    그렇게 루크가 고뇌하며 침묵하고 있는 사이,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내키지 않으신다면 굳이 대답 안하셔도 됩니다, 아가씨.”

    “……미셸?”

    그건 시루드의 운전기사, 미셸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더이상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죠.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직접 말하기 어려우신거면 안하셔도 됩니다. 아가씨.”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심정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셸은 사실 처음부터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옛날에 루크를 버리고 도망갔던 루크의 ‘친모’라고.

    그게 아니라면, 나이차이가 꽤 있어보이는 두 사람이 그토록이나 닮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한쪽은 자신이 아이를 버림과 동시에 ‘어미’의 자격 또한 버렸다는 죄책감에, 그리고 한쪽은 그녀를 ‘어머니’로 인정할 수 없다는 증오심에.

    게다가 시루드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남에게 밝히기 떳떳한 신분의 인물도 아니니,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리라.

    이어서 미셸은 그녀를 몰아붙이던 시루드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도련님, 그러니까 도련님도 얼른 사과하세요.”

    “응…? 나?”

    “당연하죠. 아가씨를 곤란하게 하셨잖아요.”

    “아니, 난 그냥 확실하게 하려고 한건데……”

    “도련님!”

    “윽…….”

    시루드는 자신이 꾸지람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루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사과했다.

    “……미안. 내가 좀 무례했지.”

    “아니, 뭐…. 무례까지야.”

    그렇게 시루드의 사과를 받아준 루크는 생각했다.

    대충 무슨 생각을 한건지 짐작은 간다만, 일단 굳이 그걸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솔직히 알아서 납득해주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제 다 끝난거죠?”

    훈훈한 분위기 속, 미셸이 만족했다는 듯이 입을 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루크가 귀를 쫑긋거리며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대어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마당이었던 것으로부터, 불길한 울림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텁, 스륵…. 텁.

    누군가가 벽을 타고 오르는 듯한 소리다.

    그리고 그 울림은 공허 속에서 마침내 모습을 갖추고야 말았다.

    -쿵.

    “…….”

    장의사, 그가 깊은 구덩이 속에서 기어올라온 것이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시선에, 미셸은 곧장 입을 막았다.

    하여튼, 이 입이 방정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래그로 인한 부활……!

    —-

    실수로 이전회차가 또 올라가서 비공개로 급하게 돌려놨었는데, 그때 보신 분이 2분인가 계시더군요.
    배신감을 안겨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노벨피아에서 회차 삭제기능이 사라진걸 몰랐습니다…….
    잘못 누르지 말라고 버튼만 어디로 간 줄 알았는데 아예 없어졌을 줄이야!

    이러면 나중에 수정된 회차는 비공개로 돌려놓는 식으로 해야되나? 이것도 머리가 아프네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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