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3

       황실 파티 첫날의 막바지. 슬슬 귀족 대부분이 빠지기 시작했고, 황자와 황녀는 한참 전에 자리를 비웠다.

         

       아직 파티장에 남아있는 자들은 술에 취한 귀족들과 황태자와 소미레를 중심으로 모인 귀족들뿐이었다.

         

       “파티장이 조용하군요.”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의문점의 중간 부분을 채우기 위해 소미레를 좀 더 지켜봤지만, 그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여차하면 셀다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슬슬 내일을 대비하시죠.”

       “그래, 그러자꾸나.”

         

       더이상 파티에 볼일이 없어진 우리는 파티장을 나왔다. 그렇게 향한 곳은 황도에 있는 데카르트 공작가의 별채. 명색이 공작가답게 황도에도 저택이 있다. 돈도 많아요.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공녀님.”

         

       다행히 황도에서 별채를 관리하는 집사와 시종들은 프란체가 자주 이용해서 그런지,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별채 집사장의 질문에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그녀는 잠시 내 얼굴 곳곳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준비해. 아, 그리고 방은 어떻게 됐지? 최근에는 별채로 온 적이 없는데.”

       “공녀님이 언제라도 오실 수 있도록 방은 항상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식사 준비가 끝나면 부르도록.”

       “예. 알겠습니다.”

         

       오, 드디어 식탁에 앉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에 기대감이 생겨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사장이 물었다.

         

       “공녀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뭐지?”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지…….”

       “내 직속 호위기사.”

       “아, 그러시군요. 이분도 극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 드디어 이 세계에 와서 사람 취급을 받고 있어. 지금까진 온갖 의심과 핍박을 받았는데…….

         

       “우리는 방으로 가자꾸나.”

         

       터질 듯한 눈물을 참으며, 나는 프란체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여기도 공작저 못지않게 훌륭했다.

         

       “앉으렴.”

       “예.”

         

       작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프란체와 마주 보고 앉았다.

         

       “우선 좋은 소식을 말해줄게. 네가 말했던 작전은 성공적이야. 일부 귀족들은 내 의류점에 관심을 가졌거든. 아마 한 번은 찾아오겠지.”

         

       내가 없는 곳에서도 열심히 했구나.

         

       “그럼 그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퍼져나가겠군요. 거기에 황자님과 황녀님까지.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경우의 수 중에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결과가 좋다. 귀족들을 포기하고 도박수로 황족을 선택한 건데,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줄이야.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얘기가 남았어. 그 성녀라는 년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게 있는 거지?”

         

       자세히 알아낸 건 아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라서요.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무슨 내용인데 그래? 일단 말해 봐.”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내가 유추한 내용을 연결해 프란체에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던 내용까지.

         

       “흐음. 전에 습격했던 암살자들에게서 페르시아 문양이 나왔다고.”

       “예. 당시엔 괜히 큰 문제로 번질까 걱정되어 숨겼습니다. 그들이 벌인 일 같지도 않고요.”

         

       툭. 툭. 프란체는 생각에 잠긴 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배후가 페르시아 가문은 아닐 거야. 그들은 그렇게 멍청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니까.”

         

       그렇다. 누가 공작가의 딸을 암살하는 중대한 일에 그런 멍청한 놈들을 사용하겠나.

         

       “일단 그 성녀가 내 뒷조사를 한 건 사실이네.”

       “맞아요. 그걸 가정하고 일들을 연결해보면…….”

       “그 성녀가 내 암살까지 사주했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멀쩡히 파티장에 온 걸 보고 도발을 했던 거네. 그런데 도저히 그 성녀의 생각을 알 수가 없구나. 나와는 접점이 없었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거다. 그때의 시점은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하기 전. 프란체와 소미레는 파티 이전까지 접점이 아예 없었다.

         

       ‘혹시 플레이어인가?’

         

       플레이어라면 프란체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들어맞는다. 그게 기본 루트의 클리어 방법이니까. 아마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이자는 판단을 했겠지.

         

       다만…….

         

       ‘그러면 그 수준 낮은 길드를 이용했다는 게 말이 안 돼.’

         

       특성이 하도 기괴해서 고인물이나 집요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게임인데, 플레이어가 그런 허술한 길드에 일을 맡긴다? 말이 안 된다.

         

       ‘회귀라도 했나?’

         

       이 가정도 말이 안 된다. 그럴 것이, 프란체를 죽일만한 이유를 가진 회귀자라면 나와 같이 여러 정보를 알고 있을 터. 훨씬 좋은 길드에 의뢰를 맡겼을 거다.

         

       ‘그 멍청한 놈들을 고용했다는 점이 사건을 이어주는 듯 하면서 끊고 있어.’

         

       페르시아 가문의 증표를 심어둔 건 단순히 이간질하기 위함일 거고.

         

       “음…….”

       “아직도 생각 중이니?”

       “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뭔데?”

       “그런 허술한 놈들을 암살자로 고용했다는 점이요.”

         

       내 말에 프란체도 동조했다.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내 사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공작가의 기사들이 함께하는데 그런 암살자들을 보낸 게 말이 안 돼.”

         

       이 모든 의문을 연결해줄 치트키 같은 이유가 하나 있다.

         

       사실 소미레는 회귀자가 맞지만, 그냥 멍청해서 정보를 이용할 줄 모르거나, 이제 막 게임에 들어온 플레이어라 자세한 걸 모른다는 가정.

         

       ‘이것도 가능성이 있긴 해. 그런데 말이 안 되지.’

         

       그럴 것이, 인생 2회차를 살 정도면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있을 텐데 이런 방식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뉴비 플레이어라 정보가 없다고 해도 제대로 된 지능이 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거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훨씬 좋고 편한 방법들이 있는데 굳이 이런 방법을 쓸 이유가 뭐가 있겠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만 따라가도 프란체는 죽을 텐데.

         

       ‘아직 의문과 모순점은 많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정해진 것들은 있네.’

         

       파티장에서 프란체를 도발한 건 성녀라는 직함을 이용해 그녀의 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

         

       프란체를 뒷조사하고 암흑 길드원을 보내 암살을 시도했던 건 그녀를 죽이기 위한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

       

       암살자들에게서 페르시아 공작가의 문양이 나온 이유는 예상대로 이간질을 하려고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나 회귀자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건 소미레가 단순한 병신이라는 가정이 붙어야 한다는 점.

         

       ‘작지만, 수확이 있어.’

         

       오케이. 어느 정도 정보를 정리했다.

         

       “공녀님. 제가 정리한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프란체에게 내가 생각한 정보들의 핵심을 전달했다. 플레이어나 회귀자라는 가정은 뺐다.

         

       “그래. 나를 도발한 이유는 알겠어. 성녀를 질투한 공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었겠지. 그런데 성녀가 왜 나를 죽이려 들어?”

         

       프란체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움과 의아함이 묻어나왔다. 하긴, 혼란스럽겠지. 이유도 없이 성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게 가장 큰 의문입니다. 여러 가정을 들며 생각을 해봤지만, 전부 다 앞과 뒤가 맞지 않습니다.”

         

       말하면서 문득 떠올랐다. 혹시 숨겨진 루트라고 해서 소미레도 좀 달라지는 건가? 이것도 배제할 수 없겠는데.

         

       “괜히 이상한 여자한테 걸려서 머리만 아파지네.”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너만 키우고 도망치려 했는데 이상한 년이 방해하네.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죠. 아직 정보가 부족해 쓸데없는 추측만 난무하니까요.”

         

       수사란, 처음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저런 추측을 반복하다 보면 자료들이 훼손되기 마련이니까.

         

       “그래. 지금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소미레 일도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업을 빼먹으면 안 된다. 이번 일의 결과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거다.

         

       ‘실패할 걱정은 크게 하지 않지만…….’

         

       나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두고 움직이는 편이니.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공녀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집사장이었다. 타이밍 좋게 식사가 준비되다니, 좋군.

         

       “가자.”

       “예.”

         

       고기 먹으러 가자.

         

         

       * * *

         

         

       데카르트 공작가의 별채에서 준비한 식사는 실로 호화로웠다. 현대에서 20만 원은 내야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온 기분.

         

       “별채에서는 항상 이런 식사를 하셨습니까?”

       “그래.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난 뒤엔 여기서만 지냈으니까.”

         

       여기로 오기 전까지는 그때 봤던 쓰레기 같은 음식만 먹었던 건가.

         

       “그래도 다행이네요. 여기라도 있어서.”

       “맞아. 여기 사용인들은 본가와 달라서 다행이지.”

         

       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었다. 그래, 이 느낌이야. 육즙이 흘러나오고 먹음직스러운 속살이 드러난 이 육질.

         

       “많이 먹으렴. 본가에서는 찐 감자랑 우유밖에 못 먹었잖니?”

         

       알고 있었구나…….

         

       역시 나를 생각해주는 건 너밖에 없어.

         

       “그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고기를 입안으로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서 그런 것일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그러니?”

       “그냥… 너무 감동적이라서요.”

         

       하, 이 부드러운 육질.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 근육이 불끈 솟아오르는 듯한 이 느낌. 그간 이걸 먹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는지.

         

       “뭔가 미안하네. 앞으로는 나갈 때 레스토랑도 자주 가자.”

       “예…….”

         

       나중에는 프란체한테 용돈도 달라고 해야지. 그걸로 밥도 사 먹고, 저축해서 도망칠 준비도 하고. 좋군.

         

       “밥 잘 먹고 있는 와중에 미안한데, 내일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렴. 내가 실수할 수도 있잖니?”

         

       음. 내일 계획이라. 그냥 드레스를 입고 활보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세히 만들어둘까.

         

       “가장 중요한 건 입장부터 인상을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선을 모을 필요가 있어요.”

       “그건 쉽지 않겠네. 황실 파티는 입장할 때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니까.”

         

       으음. 공녀의 명예를 지키면서 남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황족이 바로 언급해주는 건데.’

         

       그걸 제2 황자와 제3 황녀가 해줄지…….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갑시다.”

       “안전한 방법? 그건 뭔데?”

       “파티에 가장 늦게 등장하는 겁니다.”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 그걸 이용해 시선을 모으겠다.

         

       황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프란체가 의복 사업을 한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퍼진 상태. 여기서 내일 결과물까지 보여준다고 했으니 기대감은 충족시켰다.

         

       이 상태에서 가장 늦게 등장하는 거다.

         

       “늦게 등장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지금 공녀님의 사업 얘기는 널리 퍼진 상태죠?”

       “그렇지.”

       “그 상태에서 늦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고 칩시다.”

       “…내 얘기로 떠들썩하겠네. 그때 보여줬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냐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겁니다. 모두의 관심이 공녀님에게 쏠릴 걸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고 마지막에 등장하면 내게 시선이 모이겠구나.”

       “맞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안드레아의 드레스를 보게 될 겁니다.”

         

       프란체가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작전이네. 근데 만약 다른 귀족들은 처음부터 내게 관심이 없었던 거라면?”

         

       그럴 일은 없다. 내가 황실 파티를 혼자 거닐며 엿들은 말이 있다. 아실은 계속 프란체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고 있고, 프란체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녀에 대한 험담으로 가득했다.

         

       프란체의 사업 결과를 보고 비웃을 생각이겠지. 애초에 그들의 머리에는 프란체가 프리다를 이길 거란 생각이 없으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들은 아마 실패를 예상하고 공녀님을 비웃거나 헐뜯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이 아니면 그 데카르트 공녀를 언제 까보겠어. 평소에는 대들지도 못하고 무슨 말을 해도 참아야 했는데.

         

       “평소 내게 앙심을 품은 귀족들이 많았으니까?”

       “예. 그러니 예상대로 흘러갈 겁니다.”

         

       이게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황후의 관심만 끌면 그만. 그리고 마지막에 입장하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황실 파티의 주인공인 황제와 황후는 무조건 늦게 등장할 거다. 그 시간에 맞춰서 조금만 일찍 들어가면 관심은 우리의 것이 될 게 아닌가.

         

       ‘계획은 완벽해. 드디어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세상에 알려지겠군.’

         

       돈방석에 앉을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당!!!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