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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왜일까.

        

       왜 자고 일어났는데도 기분이 전혀 개운하지 않은 걸까.

        

       아, 하긴, 예사라의 몸은 아침에 특히 약하긴 했다. 나도 전생에는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인 예사라의 몸은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일어나서도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샤워하고 나와서도 양혜인이 머리카락을 말려주기 전까지는 계속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앉아있었으니까.

        

       그래도 아침을 먹을 때쯤에는 정신이 들고, 학교에 도착할 때쯤엔 일상에서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는 되었지만.

        

       오늘은 뭔가, 가위라도 눌리고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일단 양팔이 엄청나게 축축했다. 자는 와중에 땀을 엄청나게 흘린 듯 파자마의 양 팔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배와 가슴도 축축하게 젖어서 옷이 피부에 딱 달라붙어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목까지 채워져 있던 단추는 두 개인가 풀려있었다. 더워서 잠결에 내가 풀어버린 걸까?

        

       어제저녁에 이수아가 정성스럽게 만져준 머리카락도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어젯밤이 그렇게 더웠나? 아니라면 내가 몸살이라도 앓은 걸까. 밤중의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니, 어제 같은 침대에서 잔 다른 세 명은 벌써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

        

       가위라도 눌린 것 같은 내 상태에 비해, 세 명은 완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원래도 반짝반짝 빛나기는 했지만.

        

       뭐랄까, 아침인데도 저렇게 생기가 넘쳐 보이는 걸 보면 다들 엄청 성실한 성격인 모양인가 보다.

        

       “오, 일어났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나를 보고, 신소희가 인사했다. 이제 막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던 그녀는, 아마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머리를 대충은 말린 것 같았지만, 그 끝부분이 조금 축축해 보였다.

        

       “으엫.”

        

       어, 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건조한 아침 습도에 말라버린 내 입에서는 그런 소리가 났다.

        

       “괜찮아? 혹시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옷을 다 입은 유하늘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거침없이 그 손이 내 이마에 올려진다. 손은 따뜻했다.

        

       “으음~ 딱히 열은 없어 보이는데.”

        

       유하늘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이마가 땀에 젖어있었으니 엄청 축축할 텐데.

        

       “아직 시간은 있어. 우리가 조금 일찍 일어난 거니까 조금은 더 누워있어도—”

        

       머리카락을 묶던 이수아가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삑삑삑삑하는 소리가 문 쪽에서 들리고, 이어서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드륵 열렸다.

        

       “아가씨, 이제 슬슬 일어나실—”

        

       그리고 메이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양혜인이 열린 문으로 들어오다가, 흠칫 멈추어 섰다.

        

       평소보다 훨씬 삐친 내 머리와, 땀에 푹 젖은 파자마를 보고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지긋이 다른 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불편했는지, 다들 시선을 슬쩍 돌린다.

        

       “으엫.”

        

       양혜인에게 대답한답시고 연 입에서 난 소리는, 또 그런 소리였다.

        

       *

        

       결국 나 혼자 씻을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는지, 나를 그대로 욕실로 데려가려는 양혜인을 겨우 설득했다. 사실 바로 그 전까지는 여전히 정신없는 상태였는데, 양혜인과 함께 목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성과 목욕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것도 아침부터? 이상하게 흥분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내가 양혜인을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뭐랄까,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이 이런 걸로 이득을 봐서는 안 된다고 비명을 질러댔으니까.

        

       ……정작 어제는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튼, 부끄러웠다. 옷 갈아입는 거야 내가 안 보면 그만이지만, 몸을 씻는다는 것은 상대가 내 몸에 손을 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양혜인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비척거리며 걸어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그래도 샤워하는 도중에 거의 완전히 정신이 돌아올 수 있었다.

        

       대충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양혜인이 손에 헤어드라이어와 빗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어제 이수아가 나의 머리를 만져주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다른 아이들은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양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밤에도 양혜인이 해 주는 것이 원래의 일상이었지만, 어제는 친구들과 모여있는 것을 배려했는지 양혜인이 들어오지는 않았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 단장은 전문가가 해주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양혜인의 빗질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나를, 나머지 세 명의 소녀는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민망했다.

        

       *

        

       아침 식사도 당연히 우리 네 명이 같이 했다.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사실 이곳의 아침 식사도 맛있기는 했지만, 저녁에 나오는 것처럼 대단한 식사가 나오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옆에 사용인들이 서 있으니 마음 편하게 대화하기도 어려웠고. 이런 상황에서 사용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은 평생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온 인간 정도이리라.

        

       ……예를 든다면, 예사라라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가씨.”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쯤에 양혜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나는 식기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접시는 거의 다 비어있었으니, 이대로 식사를 끝마쳐도 될 것 같았으니까.

        

       “……어젯밤, 회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들은 나는 딱 굳어버렸다.

        

       그때까지도 간간히 들리던 포크와 나이프의 소리도 동시에 딱 끊어졌다.

        

       나는 뻣뻣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양혜인을 올려다보았다. 양혜인은 눈을 감고 허리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정말로 만화에나 나오는, 주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메이드 같은 자세였다.

        

       “어떤 말씀을, 남기셨나요?”

        

       나는 회장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아주 짧게 통화를 한 것이 다였다. 그 이후에는 나에게 별도로 연락을 한 적이 없다.

        

       ……혹시, 기사가 났다던가, 학교에서 내가 저지른 일이 보고되었다던가…… 그런 것 때문일까?

        

       “원래 4월 1일로 되어있던 약속을, 이번 주 토요일로 옮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전에 찾아오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이번 주, 토요일이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양혜인은 굽히고 있던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눈을 뜨고, 이 식당에 있는 나의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친구분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씀도 있으셨습니다.”

        

       “…….”

        

       한동안 식당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뭐, 못 갈 것도 없긴 해.”

        

       저택 정문 앞에서 신소희가 그렇게 말했다. 복장은 어제 저택에 들어오던 복장과 같았다. 단추가 세 개 풀어진 교복 셔츠, 카디건, 그리고 짧은 교복 치마. 다만 어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 그런지 어제보다는 조금 더 주름져 보이긴 했다.

        

       “와서 잠깐 대화만 나누고 가라는 거잖아. 그렇지?”

        

       우리 넷 중에서 학교가 다른 것은 신소희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방향이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차로 데려다주기도 애매했다. 신소희 말로는 여기서 걸어가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 큰일은…… 아마도.”

        

       하늘이는 나를 안심이라도 시키듯 그렇게 작게 말했다.

        

       “…….”

        

       이수아는 생각에 빠진 듯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그래, 솔직히 내 생각엔, 무슨 일이 터져도 확실하게 터질 게 분명하다.

        

       협박하거나, 설득하거나…… 사실 이런 것들은 굳이 앞에 앉혀두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그걸 내 앞에서, 아니, ‘예사라’의 앞에서 하겠다는 것은 예사라의 의지를 확실하게 꺾어놓겠다는 소리겠지.

        

       “뭐, 그럼.”

        

       신소희는 나에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어제, 오늘 재밌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제대로 준비해서 놀자. 다 같이 고기라도 구워 먹던가.”

        

       “아, 그러네! 마당도 넓고!”

        

       그리고 사용인들은 기겁할 거고.

        

       “재밌겠다…….”

        

       이수아는 벌써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러다가 이 저택이 얘네 놀이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뭐, 나야 별 상관없지만.

        

       “그래. 그럼. 다음에는 제대로 준비해서 놀아보자. 기왕이면 옷도 제대로 챙겨와서.”

        

       “…….”

        

       “저기요?”

        

       왜 마지막 말에는 대답이 없는 거지?

        

       설마 못 들었나?

        

       *

        

       결국 차 안에는 우리 네 명이 전부 탔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인 두 명을 조수석에 태울 수는 없었는지, 양혜인은 조수석에 탔다.

        

       차를 운전하는 기사와 양혜인 때문에 차 안에서 별다른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늘이와 이수아는 각자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네, 다녀올게요.”

        

       양혜인의 배웅을 받고, 학교 입구로 들어갔다.

        

       나란히 서서 걷는 우리를, 사람들이 흘끗거리며 쳐다본다. 혹시 또 기사라도 올라온 것일까? 어쩌면 이미 우리가 어제 하루 동안 어떻게 행동했는지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수업 시간에 당당하게 그런……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를 행동을 하고, 선생 머리에 물도 뿌렸으니까. 나를 의식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뭐, 사실 내가 이걸 노리고 있기도 하고.

        

       한두 사람의 관심은 막을 수 있다. 돈을 쓰건, 권력으로 압박하건, 회유하건.

        

       하지만 군중의 관심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하나를 통째로 막는 것은 어찌어찌 가능할지라도, 그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바깥에서 참지 못하고 떠벌리는 소문들이 외부로 퍼져나가면 퍼져나갈수록, 그 이야기들을 막는 난이도는 점점 더 올라가는 법이다.

        

       기사를 내려도, 기사에 올라왔던 사진은 누군가가 갈무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전체를 통제할 것이 아니라면 ‘소문’이 돌아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실, 학교 안의 아이들이 조용한 것도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돈으로 막았다기보단, ‘이렇게 행동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만들어냈기 때문이리라. 예사라의 유서에 쓰여있던, 어린 시절 예사라와 친하게 지내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린 한 아이처럼.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들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법이다.

        

       한동안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걷고 있는데, 내 양팔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이와 이수아가 내 양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아주 당당하게. ……사실 이수아 쪽은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손을 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뭐. 이러면 된 거지.

        

       이번 주말까지 며칠 안 남기는 했지만, 학교 전체가 나를 절대 무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이제—

        

       “잠깐!”

        

       —시간문제다.

        

       “……엥?”

        

       잠깐, 방금 누가 나한테 말을 건 건가?

        

       이 학교 안에서?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살짝 푸른 빛이 도는 긴 생머리를 가진 누군가가 씩씩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화영 고등학교 학생이니 교복은 우리와 같은 교복이었지만,

        

       그 걸어오는 학생의 왼쪽 팔에는 커다랗게 ‘선도’라고 쓰여있는 멋들어진 완장이 걸려 있었다.

        

       ……학생회에서?

        

       나에게 관심을?

        

       아무래도, 어제의 일이 정말 엄청나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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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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