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3

    연구소로 향하는 이송 차량 좌석에 앉아서, 발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차락, 차락.

    쇠사슬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

    누군가는 지적할 법도 했지만, 소심한 저 녀석들이 그럴 리가 없지.

    이송차량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연구소 주차장에 멈춰 섰다.

    이송 차량 주변에는 한껏 경직된 표정의 경찰들과, 우리들을 보고 겁에 질린 연구원들이 가득했다.

    주차장에 내려서서, 가장 앞에 서있는 경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면 되지?”

    경찰은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어물거릴 뿐이었다.

    사방에서 낄낄거리는 사형수들의 비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경찰들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며 연구소 내부에 있는 한 격리실로 이끌었다.

    도착한 격리실 앞의 명판에는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이라고 쓰여 있었다.

    격리실 안에서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둥근 얼굴의 인형 오브젝트.

    비죽거리며 웃는 꼴이 찢어죽이고 싶게 생긴 인형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표정은 명확하게 갈렸다.

    여유롭던 사형수들은 오브젝트를 앞에 두자 죽을 것 같은 죽상이었고, 연구원들은 겁먹은 표정이면서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사형수들은 일렬로 줄 세워진 채, 벌벌 떨면서 격리실 안으로 집어 던져졌다.

    병신들, 상병신들.

    어차피 할 거라면 당당하게 있어야지.

    어떻게 된 게 전부 쭉정이들만 모였지?

    특히 저 돼지 새끼랑 멸치 새끼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다.

    격리실 앞에 서자, 나를 옥죄던 갑갑한 수갑이 풀렸다.

    후, 이제야 좀 살겠네.

    손목을 주무르며 격리실로 들어가자, 인형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인형이 주는 편지를 받아들고, 엽서를 읽었다.

    그 안에는 웃기지도 않은 내용이 주절주절 쓰여 있었다.

    <스마일 테마파크에서 인생 최고의 오락을 즐기세요!>

    엽서를 읽고 나니, 점점 시야가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엽서 내용을 보면 9종류의 살인 놀이기구를 타면 탈출이라는 거겠지.

    탈출하든 못 하든, 지긋지긋한 감옥 생활이랑은 작별이겠군.

    ***

    사형수가 도착한지 약 21분, 그들은 모두 편지를 읽고 사라졌다.

    사형수들을 이송해온 경찰들도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빠져나갔다.

    “서아 언니? 그… 그 사람 갔죠?”

    오예린은 커다란 사형수를 본 뒤로 겁을 먹고 내 등 뒤에 숨어있었다.

    아니, 세희 소장이 나보다 15cm는 클 텐데, 굳이 내 등 뒤로 숨은 이유가 뭐지?

    “오예린 연구원. 모두 사라졌으니까, 이제 나와도 됩니다.”

    “후아! 그 여자 진짜 무섭게 생기지 않았어요? 문신도 엄청 많고, 척 보기에도 사람 몇 명 죽여 본 것 같은 분위기!”

    오예린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크기가 커진 것 같은데?

    대략 5cm정도?

    게다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인형의 표정이 기분 나빴다.

    실밥이 터진 입으로 케겍 케겍, 거리며 웃는 인형은 격리실 안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수상했다.

    뭔가 일어나고 있어.

    담당 연구원들을 불러서 인형의 크기 측정을 다시 하도록 재촉했다.

    인형은 연구원들에게 사지가 붙잡힌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웃었다.

    케겍 케겍. 

    이런 적이 없었는데,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측정 결과는 5cm 신장 증가.

    하지만 신장 증가는 5cm로 그치지 않았다.

    반복 측정을 하는 와중에도 1cm씩 1cm씩 계속 그 크기를 늘려만 가고 있었다.

    사형수를 투입한 건 너무 섣부른 선택이었을까?

    ***

    눈을 뜨니 전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너무 잘 꾸며진 객실이라 왠지 초대받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멋들어진 그림, 음식이 가득한 찬장, 그리고 고풍스러운 거울.

    눈앞에 거울을 보니 돼지처럼 살이 찐 내가 보였다.

    거울을 보자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서 거울을 박살내버렸다.

    하아. 하아.

    숨이 가쁘다.

    주먹에서는 피가 흐르고, 억울함에 눈물이 새어 나온다.

    화려하게 꾸며진 객실이지만, 내게는 사형장처럼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어.

    내가 이런 곳에 끌려오다니.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겨우 꼬맹이 하나 납치했다가, 실수로 죽였다고 사형이라니!

    꼬맹이가 먼저 날 도발했다고!

    “어서 오세요. 손님. 스마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으아아아악!”

    괴물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벌써 괴물이 와버린 거야? 

    “누… 누구세요?”

    “저는 손님을 돕기 위해 배치된 당신만을 위한 접객원입니다.”

    “접객원이 뭐죠?”

    “말 그대로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테마파크에서 손님을 끝까지 돕는 역할입니다.”

    눈과 입이 꿰매진 괴물이지만, 목소리는 차분했고 나긋나긋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별로 무서워할 것도 없었네.

    하하.

    나는 그대로 손바닥을 들어 올려 그 마네킹을 후려쳤다.

    “겨우 너 같은 것 때문에! 너 때문에 무서웠잖아. 어?”

    쓰러진 마네킹을 발로 마구 짓밟자, 분이 좀 풀렸다.

    분이 좀 풀리자, 내가 저지른 일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오브젝트한테 화풀이라니!

    내가 숨을 고르며 눈치를 보고 있자, 마네킹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럼 손님, 설명을 계속해도 될까요?”

    “설… 설명은 필요 없어. 내가 부를 때까지 돌아오지 마!”

    “알겠습니다. 손님.”

    마네킹은 꾸벅 인사를 하더니, 뒷걸음질로 방에서 나갔다.

    후우.

    마네킹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포가 가시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현기증이 생길 정도였다.

    뭐라도 먹을 게 없나 호텔방을 둘러보자, 온갖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음식들이 잔뜩 포장되어 있었다.

    오브젝트 관련으로 이런 상황에 대해서 배웠던 거 같은데, 뭘 배웠더라? 

    이런 걸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던가?

    그래도 너무 배가 고파서, 음식들을 살펴보니 음식마다 정체불명의 라벨이 붙어있었다.

    파란 태그, 붉은 태그 등등. 

    잘 살펴보니 태그들의 색깔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이었다.

    아하! 무지개구만.

    오브젝트의 퀴즈는 설화나 유명한 일화에서 파생된 것이 많고 했었지.

    그럼 무지개 순서대로 먹으면 된다는 건가? 

    역시 난 똑똑해.

    흐흐 오랜만에 포식하겠어.

    어차피 오브젝트 안이니까 공짜겠지.

    각 태그별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잔뜩 꺼내왔다.

    음식만으로 30여개를 골랐지만, 비치된 음식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 7종을 골랐다.

    빨간색 태그가 붙은 샐러드. 

    주황색 태그가 붙은 빵.

    노란색 태그가 붙은 크림 스프.

    초록색 태그가 붙은 생선 튀김.

    파란색 태그가 붙은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남색 태그가 붙은 치즈 케이크.

    보라색 태그가 붙은 커피.

    꼬맹이 몸값을 받으면 먹으려고 했던 코스 요리.

    먹지 못했던 그 요리를 기억을 더듬어가며 구성해봤다.

    드디어 이걸 이제야 먹어보게 되는군.

    포크를 들고 최대한 우아하게 샐러드를 한입 먹었다.

    “커헉.”

    갑작스럽게 숨이 막혀왔다.

    입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어? 뭐… 뭐야?”

    나는 탁자를 짚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내 위로 식기와 음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

    마네킹이 문을 열고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손님. 방을 너무 더럽게 쓰시는 거 아닙니까?”

    마네킹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욕심 많은 돼지처럼 생겼다고 생각은 했지만, 음식을 이렇게나 잔뜩 꺼내시다니.”

    입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남자는 눈을 돌려서 마네킹을 노려볼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다만 입은 끊임없이 뻐끔거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음식들이 전부 피투성이군요. 이 음식들은 다시 준비해야겠군요.”

    마네킹은 이동형 트레이에 남자가 꺼낸 음식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네킹은 트레이를 끌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살고 싶다면 진작 설명을 들으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마네킹은 한 장의 종이를 남자의 얼굴 위에 흘렸다.

    그것은 객실의 규칙이 적힌 종이였다.

    <스마일 테마파크 객실 규칙.>

    <스마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객실 이용은 무료입니다!>

    <준비된 음식들은 직원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객실 밖으로 나서려면 직원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음식을 적어도 한 종류는 드셔야만 합니다.>

    <이하 규칙은 무료 이용자를 위한 규칙입니다.>

    <세심하게 살펴주세요!>

    <이 다음 규칙 중, 한 줄을 삭제하십시오.>

    <일곱 가지 색의 음식 중 최소 6종에 독이 들어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초록색, 파란색, 남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주황색, 초록색, 남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죽어가는 남자의 눈동자는 그 종이를 열심히 읽었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 계속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

    옴뇸뇸.

    침대 위에 앉아서 치즈 케이크를 먹었다.

    맛있어. 

    격리실에서 먹은 유명 제과점의 케이크만큼 맛있었다.

    초콜릿무스 케이크, 딸기 생크림 케이크, 피칸 파이, 애플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디저트를 모아놓은 것만 같았다.

    이곳은 천국인가!

    사실 한가지 작은 불만이 있었다.

    음식에 붙어 있는 태그마다 맛이 달랐다면 좋았을 텐데!

    작은 기대를 하고 빨간색 태그가 달린 오렌지 주스를 마셔봤지만, 딸기 맛 오렌지 주스 같은 게 아니라 좀 실망스러웠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보니, 마네킹이 읽으라고 한 설명서가 눈에 띄었다.

    뭐, 나중에 읽어도 괜찮겠지?

    침대 위에서 팔다리를 쭉 뻗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즐거운 휴식 시간을 만끽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