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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지브롤터 백작가의 넷째, 루비 지브롤터의 탄생.

     언제나 그렇듯 한 생명의 탄생은 축하할 일이다.

     특히 지브롤터의 핏줄이라면 더더욱.

     7년 만에 새로이 태어난 아이라면 더더욱.

     

     더욱이 ‘딸’이라는 점에서, 뭇 많은 이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올해로 7살이 된 레타르가 그렇게 아름답다더라.

     장래가 기대되는 만큼, 이미 여러 공자가 레타르의 얼굴을 보고 싶어 군침을 흘리고 있다더라.

     그런데 딸 한 명이 더 태어났다?

     아마도 지금쯤, 여러 귀족 가문에서는 아이 만들기에 들어갔거나 비슷한 나이의 아기를 수배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백작령 밖에 있는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백작령 내부에는 축제가 펼쳐졌다.

     영지 내부에서 이루어진 조촐한 축제.

     대외적으로 누군가를 초대한다거나 그런 것 없이, 그저 술과 고기를 즐기며 하룻밤 파티를 즐겼다.

     ‘고요한 밤이네.’

     모두가 잠든 시각.

     오랜만에 나도 깊게 잠든 밤.

     ‘오늘부터 다시 방에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다시 아버지를 건드려서 다섯째 만들기에 돌입한다면, 그 시간 동안은 내가 수련을 거듭할 수 있다.

     ‘최소한 중급 기사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나의 전력은 하급 기사에 불과하다.

     로버트 경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로버트 경을 상대로 100%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무승부를 이루어 낼 수 있을 정도로는 강해져야 한다.

     ‘제국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그때부터는 온갖 그림자들이 지브롤터에 스며들 테니.’

     위험 요소가 정말 한둘이 아니다.

     더군다나 백작령에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두 개나 자리를 잡은 만큼, 그 폭탄의 존재를 알고 터뜨리려고 오는 이들을 막아낼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하나.

     조금은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제법 강력한 아군을 영입할 방법을 알고 있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건 바라지 않을 테니.’

     자신을 세계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는 이들.

     만일 그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한다면, 적어도 한쪽 폭탄은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한쪽은-

     “우우웅….”

     “…….”

     펄럭.

     이불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딱히 내가 뭔가를 한 건 아니고, 옆에서 곤히 자는 소녀가 이불을 빼앗아 갔다.

     ‘여전하네.’

     보육원이 아닌 저택에서의 하룻밤이 조금 어색한 걸까. 

     그동안 보육원의 침대에 익숙해졌는데, 저택에 있는 내 방의 침대에서 하룻밤 자는 게 조금은 낯선 걸까.

     ‘정말 속 편하게 자는구나.’

     또 하나의 폭탄.

     제국의 황손녀, 아스타시아.

     소녀는 지금 보육원이 아닌 저택, 내 방의 침대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다.

     ‘당장은 내가 이렇게 밤에도 옆에서 지키고 있지만,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 소녀가 어떻게 된다면, 그 즉시 제국은 이를 빌미로 삼아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황손녀가 왜 지브롤터에 있었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황손녀가 제거되었을 경우, 그걸 빌미로 제국은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침공할 것이다.

     그러니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매일 밤 옆에서 끼고 지내고 있으며-

     ‘보육원에서도 그냥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라고.’

     내 방 침대를 처음 점거한 뒤로, 내가 괜히 내 방에서 지내게 하는 게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그레이 지브롤터가 백발의 소녀를 자기 침실에 일찌감치 들일 정도로 푹 빠졌다.’

     그렇게 알려지겠지.

     제국에서는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런 행동이 계속 반복되면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정말 잘 자네. 누가 납치해 가도 모를 만큼.’

     불순한 의도는 없다.

     ‘그러니까 더 옆에서 지켜줘야지.’

     이는 오직 아스타시아를, 그리고 왕국과 제국 사이의 전쟁을 막기 위한 보호일 뿐.

     ‘남들에게 맡기기에는 그들을 믿을 수 있어야지.’

     다른 이들에게 아스타시아의 호위를 맡기기에는, 내가 좀처럼 안심할 수 없기 때문.

     ‘아스타시아는 그렇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한다.’

     동시에 다른 쪽은-

     ‘저렇게 안 자고 있는데.’

     사락, 사락.

     잠을 자야 하는 늦은 밤에도, 탁자에서 작은 촛불 하나를 켜놓고 책을 넘기고 있다.

     “…….”

     책을 읽는 건지 아니면 훑는 건지 모를 정도로 책을 빠르게 한 장 한 장 넘기지만, 저 소녀에게는 저것이 책을 읽는-기억하는 방법이다.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아스타시아뿐만이 아니다.

     두 번째 폭탄, 나리아 공주도 마찬가지.

     ‘대외적으로 국왕의 주사는 없었던 일로 처리되었지.’

     

     아직 왕성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지브롤터에서 계속 맡아주기를 바라는 눈치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얌전히 왕궁에 처박혔고, 모르가니아에서는 공주가 계속 이곳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상황.

     ‘인원을 보내면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멘테 경이 옆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왕가나 모르가니아에서는 추가 호위를 보내지 않았다.

     나리아 공주를 버렸다기보다는, 아예 사람조차 보내지 않는 걸로 나리아 공주의 행적을 숨겼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나리아 공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를 수 있어도, 왕가에서 호위 기사를 보내는 움직임은 파악할 수 있겠지.’

     세인트 지오가 무능왕이라고는 해도, 왕이 자기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려고 하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으니.

     ‘마냥 우리가 전부 다 지키려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런데.’

     일단 멘테 경과 로버트 경이 내 수련 시간을 제외하면 두 사람이 번갈아 호위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인원이 더 필요해.’

     아무리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냥 위험하게 둘 수는 없으니.

     ‘찾아볼까.’

     반드시 찾아야 하는 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득이 되는 자.

     아니면.

     ‘나이는 어려도 충성심이 있다면, 소년소녀들도 충분히 희생양이 되어줄 수도 있지.’

     보육원의 아이들을 철저하게 호위로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정확히는 호위가 아니라, ‘수하’라는 느낌이지만.

     “나리아 공주.”

     “…예.”

     나는 아스타시아의 이불을 잘 정돈해 주며, 공주에게 물었다.

     “혹시, 무기를 배워볼 생각은 있습니까?”

     “무기?”

     “예. 공주가 아마 흥미가 있을 법한 무기가 있는데….”

     이 방에는 없지만, 나는 미래에 그녀가 정말 잘 다루던 무기를 하나 알고 있다.

     “조만간 보육원의 교육 중에 신체 단련에 관한 과정도 추가하겠습니다. 그때 한 번 연습해 보시길.”

     “어떤 건지는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예. 그때를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나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서재에서 빌려온 그 책, 무슨 내용입니까?”

     “…….”

     “그냥, 사소한 궁금증입니다. 공주께서 이렇게 늦은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건 일상이지만, 보통은 공부를 하셨잖습니까.”

     나리아 공주는 보육원에서 자베스로서, 내 옆 방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그 책, 제가 본 적이 없는 표지 같아서.”

     제국어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과목에 관한 공부도 자정까지 복습을 철저히 하는 편이다.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책은 얼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책도 있었군요.”

     “그냥 보는 겁니다. 이거라도 안 보면, 조금 머리가 아파서.”

     마치 공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지워내고자 하듯.

     “그래서 무슨 내용입니까?”

     “노스트럼과 지브롤터의 역사. 시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협곡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

     “협곡?”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책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아뇨. 없어요.”

     “……봅시다. 아. 뭔가 했더니 조상님들의 이야기가 적힌 책이군요.”

     “없지만, 혹시나 모르니까.”

     나리아 공주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혹시.

     ‘아니야. 이 나리아는 내가 아는 그 망국의 공주가 아니야.’

     만일 나리아가 나와 함께 되돌아왔다면, 나리아는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볼 사람이 아니다.

     설령 모든 걸 모른척하고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애초에 그랬다면, 진즉에 세인트 지오를 무릎 꿇리고 황제가 했던 것처럼 했을 인간이야.’

     이런 말을 하면 누구에게 실례일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조금 닮은 구석이 있다.

     미래의 공주가 회귀했다면.

     그녀는 세인트 지오를 구속하여 허수아비로 만들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국왕의 칼에 목이 깊숙하게 베이거나 하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거고.

     그렇다면-

     “뭐,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지브롤터 협곡에 대하여.”

     협곡의 비밀병기에 관해서는 아주 오래전, 13살인 지금보다 이전부터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궁금합니다. 알려주시겠어요?”

     “…….”

     나리아 공주는 잠시 아스타시아를 살폈다.

     새근, 새근.

     잠들어 있다.

     이야기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있으면서 조용히 귀만 열어두고 자는 척을 하는 건 아니다.

     “어디에 가서 말하면 안 됩니다.”

     나리아 공주는 주변을 의식하며, 작게 속삭였다.

     

     “제가 1살 때. 국왕이 제 귀에 대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1살?”

     “예.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협곡의 시조룡을 만날 때까지.’라고.”

     나리아는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말했다.

     “저기, 1살 때의 일을 기억합니까?”

     “그렇게, 태어나서.”

     나리아 공주가 책을 덮었다.

     

     “정확히는 그때 들었던 소리를 조합하여 기억을 떠올려, 지금의 언어로 재정립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만.”

     “…자세한 원리는 일단 넘어가고. 그래서, 국왕이 뭐라고 했습니까?”

     “협곡에는 드래곤이 산다.”

     “…드래곤?”

     “예.”

     나리아 공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곡에는 전설 속 드래곤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그 드래곤이 국왕이 깨 먹은 알의 어머니…?”

     “아니요. 그런 작은 드래곤이 아닌, 전설 속의 드래곤 그 자체.”

     공주는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골드 드래곤, 지오 노스트럼.”

     첫 페이지에, 당당히 날개를 펼치고 있는 고대의 골드 드래곤.

     아래에 있는 두 명의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드래곤으로서, 몸길이가 무려 100m에 달한다고 하는 전설 속의 개체.

     “그거, 건국 신화잖습니까.”

     “그레이 경은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지금의 드래곤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왕권 강화를 위한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아니고서야, 100m에 이르는 전설 속 드래곤이 당대에 이르러서는 고작 5m 정도 되는 와이번 크기가 되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만일 드래곤이 협곡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국왕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왜. 그런 건 모릅니다. 이 핏줄이 가지고 있는 특이함 같은 거니까.”

     나리아는 창으로 다가가 밤하늘에 걸린 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제가 그걸 알게 된 이유가 있다면, 그레이 경.”

     “예.”

     “남자는 술에 취하면 자기 절제력이 약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

     설마.

     “혹시, 다른 소리를 들은 적 있습니까?”

     “너는, 나의, 예비 부품이다?”

     “…….”

     1살짜리 아기한테 술에 취해서 그런 이야기를 지껄인 건가.

     자기 딸이 완전 기억능력자인 것도 몰랐던 걸까?

     당시에는?

     “술은 조심하십시오. 그레이 경.”

     “명심하도록 하죠.”

     무능왕처럼 될 수는 없는 법.

     “일단, 밤이 늦었습니다.”

     대화는 여기까지.

     이미 시간은 1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부터 다시 자베스가 되어 말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일찍 주무셔야 합니다.”

     “하지만….”

     “일찍 자지 않으면, 성장에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제국의 식품영양학과 인간 생장에 관한 이론에 따르면.

     “충분히 잠을 자야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지는 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디에서요?”

     “제국 신문에서요.”

     “…제가 봤던 신문 중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던 것 같은데.”

     “전부 다 보여드린 건 아니니까요.”

     나는 침대에서 옆으로 물러나며, 아스타시아의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푹 주무시길.”

     “…그러고 보니.”

     나리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아스타시아의 옆에 반듯하게 누웠다.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4시간씩 주무시면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그레이 경. 경도 여기, 와서 한숨 자세요.”

     나리아가 옆으로 슬쩍 몸을 움직이더니, 자신과 아스타시아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어서요. 그레이 경도 일찍 자야 키도 크고 몸도 탄탄해집니다.”

     “그건-”

     “아스타시아가 지난번에 그러던데.”

     나리아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스타시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사는, 로버트 경만큼은 키가 커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

     그러고 보니.

     

     “슬슬, 졸리긴 하네요.”

     

     마침, 잘 때가 되었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일찍 잠을 자도록 하죠.”

     나는 나리아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위로 새 이불을 덮어줬다.

     “그레이 경?”

     “잠은 잘 겁니다. 하지만.”

     나는 소파를 가리켰다.

     “잠은 소파에서 잘 겁니다.”

     “왜요? 여기, 셋이 누워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 사이에서 자는 건, 여러모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

     “여러모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레이는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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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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