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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희야. 예전에도 말했듯이, 너는 인간과 몸의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나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대성을 이룰 수 없다.”

         

        백연영이 직접 내 손과 다리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기를 하루.

         

        딱히 뭘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단, 그냥 흐느적거리면서 노는 걸 재밌어하는 거 같았다.

         

        “희야. 내공의 흐름을 느껴야 하느니라. 용조수를 배우면 무얼 하나. 다가가지도 못할 적을 만나면 무용지물이 될 텐데. 내공을 쌓아 경지에 이른다면 사거리는 더는 중요치 않다.”

         

        운기조식을 가르치는데 또 하루.

         

        “희야. 비늘이 참으로 곱구나. 본녀를 위해 하나 정도 양보하는 게 어떻느냐.”

         

        내 비늘과 독을 뽑아가는데 하루.

         

        …사리사욕을 채우는 거 아니야?

         

        “희야.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너의 정체성을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무얼 좋아해도 되긴 하지만, 저 거미들은 크기부터가 맞지 않으니.”

         

        연애? 상담 하는데 또 하루.

         

        아니, 대체 언제 갈 거야.

         

        이러다가 거미 죽어!

         

        라고 말하기엔 네필라 쥐라시카는 멀쩡해보였다.

         

        백연영이 품 안에 있는 단약 같은 걸 나눠주는데, 몸에 생기가 돋는 효과가 있는 거 같았다. 그것 덕분에 거미도 멀쩡한 거 같고.

         

        그래도 언제까지고 이걸 먹일 순 없을 테니, 조만간 떠나겠지.

         

        당분간은 못 볼 테니 지금 많이 봐두자.

         

        “케엥….”

         

        그래. 빨리 가서 얼른 아라크네가 되려 무라.

         

        또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드디어 무공을 배우는 날이었다.

         

        내가 고를 무공은 하나였다.

         

        저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룡각이라는 각법.

         

        이름부터가 날 위한 무공이었다.

         

        “각법이라.”

         

        백연영은 벽화에 그려진 그림을 잠시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룡각은 쾌, 중, 환의 묘리가 섞인 무공이니라.”

         

        쾌, 중, 환!

         

        듣기만 했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대충 쾌가 빠른 것.

         

        중이 느리고 센 것.

         

        환이 헷갈리게 하는 것.

         

        이 정도만 알고 있다.

         

        “강과 유는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구태여 설명하진 않겠다.”

         

        응?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야?

         

        날 과대평가하지 말아 줘.

         

        “대표적인 초식은 세 가지가 있지. 첫 번째는 디딤발을 뒤로 뺀 후, 계속해서 타격을 가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어찌 보면 보법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지. 쾅하는 느낌으로 힘을 주어 적을 타격하는 기술이다. 세 번째는 적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타격을 가하는 기술로….”

         

        ….

         

        “게엑!”

         

        듣기만 하고 있는데 숨이 안 쉬어진다.

         

        숨 좀 쉬고 말해줘.

         

        나 힘들어.

         

        “이해가 됐느냐?”

         

        잘 모르겠어.

         

        “겍? 겍.”

         

        잊고 있었는데, 내 스승은 설명을 참 못하는 사람이었지.

         

        용조수를 배울 때도 한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이해력이 달리는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백연영의 설명이 이상한 탓이다.

         

        난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에잇. 어찌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게냐!”

        “겍게겍!”

         

        설명을 잘 해보던가!

         

        백연영은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시범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러면서 나를 슬쩍 쳐다본다.

         

        혹시 나한테 써보려는 건 아니지?

         

        “게에엑!”

         

        재빠르게 당소영의 곁으로 도망갔지만, 그녀는 거미를 치료하는 척하면서 날 무시했다.

         

        “게게겍!”

         

        결국 백연영에 잡혀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영입된 도마뱀 모양 허수아비 하나.

         

        백연영은 그 허수아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빠르게 보여주마.”

        “게게겍!”

         

        살려만 다오.

         

        백연영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내 뺨을 스치듯 질러진 그녀의 발끝은 회수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계속해서 내질러졌다.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지만, 저것조차 힘 조절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쾌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백연영은 허공을 밀듯이 발을 강하게 찼다.

         

        파아앙!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담긴 힘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것이 중이고.”

         

        백연영의 발이 상단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꺾이는 궤적.

         

        쉬이이익!

         

        “이것이 환이다.”

         

        상단을 노리는 척하면서 어느 순간 하단을 노린 발차기.

         

        …이거 브라질리언 킥 아니야?

         

        “어떻느냐.”

         

        어떻냐니.

         

        일단 잘 보긴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약간 실망스러웠다.

         

        도마뱀의 몸으론 구사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브라질리언 킥을 어떻게 해.

         

        “고룡각이란 건, 개파조사께서 창안하신 무공이다.”

         

        개파조사?

         

        천마신교의 개파조사라면 당연히….

         

        “그래. 천마께서 우리에게 남긴 무공이지.”

         

        천마!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고룡각이란 건 인간의 몸으론 펼칠 수 없는 무공이었다. 방금 보여준 건 임의로 개량한 것이다.”

         

        잠깐만.

         

        인간의 몸으로 펼칠 수 없는 무공이라고?

         

        천마가 그 정도로 강한 자라는 뜻일까.

         

        아니면 천마가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는 뜻일까.

         

        “이제 원류를 보여주겠다.”

         

        원류?

         

        인간의 몸으론 펼칠 수 없는 무공이라면서.

         

        백연영은 동굴의 벽을 쳐다봤다.

         

        그녀의 발이 조금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앙!

         

        쩌엉!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소리가 뒤늦게 울려 퍼졌다.

         

        벽에 뚫린 구멍의 개수는 열 개가 넘었다.

         

        발을 한 번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이것이 쾌의 묘리. 비룡섬전(飛龍閃電)이니라.”

         

        비룡섬전.

         

        이름도 멋있네.

         

        그린 바실리스크류 마구 때리기 같은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이것이 중.”

         

        쿠구우우우우!

         

        중후한 내공이 사방을 짓눌렀다.

         

        역발산기개세를 발동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느껴진다.

         

        쿠웅.

         

        백연영은 단 한 걸음 걸었을 뿐이다.

         

        쿠두두두둑!

         

        그럼에도 지반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에서 힘을 한 번 더 주었다.

         

        쿠르르르르르!

         

        천지가 개벽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진동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것이 강룡진폭(降龍震覆).”

         

        콰르르르르!

         

        “마지막은 환이다.”

         

        백연영은 그 어떤 때보다 느린 속도로 발을 움직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녀의 발이 움직인다.

         

        한 개가 아닌 수 십 수백 개의 발이.

         

        분신이라고 봐도 좋은 잔상이 계속해서 휘둘러졌다.

         

        쩌어어어엉!

         

        그렇게 내질러진 한 번의 발차기.

         

        그것은 하나였으며 동시에 수백이었다.

         

        “이것이 유룡환영(游龍幻影).”

         

        입이 벌어진다.

         

        그녀가 보여준 이 무공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웠으며 강대했다.

         

        “원래라면 알려주면 안 되는 것이다. 벽화에도 이 동작에 대한 그림은 없지. 단지, 개파조사께서 새긴 흔적만이 있을 뿐.”

         

        흔적?

         

        여기서 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바위 맨 위에 새겨진 검흔과도 같은 흔적.

         

        불가능한 위치에 새겨진 저 문양.

         

        그걸 새긴 자가 바로 천마였다.

         

        은룡굴에 있던 그 벽화에 있던 것도 천마가 창안한 무공이 기록되어 있던 걸까.

         

        가슴 속에 무언가의 불이 붙은 기분이 들었다.

         

        벽화가 두 개가 있다는 건 그 이상 있을 수도 있다는 뜻.

         

        천마가 창시한 무공이 더 있다는 거 아니겠나.

         

        그야말로 천마신공!

         

        “천마신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순 없지만, 어느 상황에서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무공이지.”

         

        천마신공은 아니구나.

         

        하긴, 그건 심법 같은 것부터 배워야 쓸 수 있겠지.

         

        그래도 천마가 남긴 무공이라는 건 수련의 강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고룡각도 쓰지 못하는 덩치 큰 도마뱀이지만, 언젠가는 벽화에 그려진 모든 무공을 배우고 말 테다.

         

        수련.

         

        또 수련이다.

         

        “누누히 말하는 거지만, 너와 나의 몸은 다르게 생겼다. 너만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무공은 나보단 네 몸에 더 잘 맞을지도 모르지.”

        “겍겍!”

         

        그래.

         

        차근차근 나아가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연습하자.

         

        나만의 움직임을 만들 때까지.

         

        “마침 좋은 상대가 있구나.”

         

        응?

         

        백연영의 인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멀리서 다시 나타난 백연영.

         

        그녀의 손에는 익숙한 것이 붙들려 있었다.

         

        【유타랍토르 lv27】

        【상태】

        「기겁」「굶주림」

         

        어…. 안녕?

         

        너 혹시 그때 이후로 여기 갇혀 있던 거야?

         

        백연영이 무서워서?

         

        아이고, 불쌍해라.

         

        곧 나갈 수 있게 해줄게.

         

        …고룡각만 연습하고.

         

         

        *

         

         

        시간이 더욱 지나 이 동굴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완벽하진 않다지만 드디어 고룡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수련은 끝이 났다.

         

        수련이 끝났다는 건 헤어질 시간이라는 뜻과 같았다.

         

        “대협.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내 손을 꼭 잡은 당소영.

         

        그녀가 나 없이 천마신교의 본거지로 간다는 게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그녀도 백연영과 나름 친해졌다.

         

        아직도 가끔 말을 더듬긴 하지만, 백연영보다 높은 상대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녀가 챙겨줄 가능성이 높았다.

         

        눈치 잘 보고 행동해.

         

        그리고 우리 거미들도 잘 부탁하고.

         

        무조건 아라크네로.

         

        알지?

         

        “겍겍.”

         

        그렇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으니, 거미들이 뽈뽈뽈 기어 왔다.

         

        “키엑.”

        “키에엑.”

        “키엥!”

         

        미안.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너희도 잘 지내.

         

        예쁜 아라크네가 되어서 다시 보자.

         

        특히 네필라 쥐라시카.

         

        아라크네가 되지 못하더라도, 몸에 부작용은 없어야 한다.

         

        당가 네 자매와 인사를 마쳤다.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몇 달 후에 다시 만날 거였으니까.

         

        난 그냥 십만대산을 혼자 외로이 쓸쓸히 돌아다니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농담이고 그냥 배 긁고 몸을 굴리고 있으면 백연영이 알아서 찾아와 주신단다.

         

        “희야.”

         

        내 스승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만약 너에게 말을 거는 인간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떻게 하긴.

         

        겍겍거려야지.

         

        “당연한 소리지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은 처음 보는 도마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알고 있긴 한데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허억!”

         

        넌 왜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니 소영아.

         

        “이제부터 만나는 자들은 쉽게 믿지 말거라. 그들은 너보다 강하고, 너보다 악랄하도다.”

         

        백연영이 걱정을 해줬다.

         

        그러고 보니 당소영처럼 이곳에 들어온 인간이 몇몇 더 있다고 했지.

         

        “겍.”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용맹한 울음소리를 내줬다.

         

        “그래. 항상 조심하거라.”

        “게겍!”

         

        이제 떠날 때가 됐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이제 혼자가 되었으니 늪지대 상부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은룡굴에 다시 들어가 벽화에 그려진 검흔을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그냥 동쪽으로 가보는 건 어떻겠느냐.”

         

        동쪽?

         

        거긴 생각도 안 한 곳인데.

         

        “동쪽에는 열대우림이 있을 거다. …본녀와는 상관없는 이야긴데, 그곳에 기연이 숨겨져 있을 거 같다는 기분이 드는구나.”

         

        …거기에 뭔가 있구나!

         

        공청석유 같은 게 있겠지.

         

        그래.

         

        이렇게 떠먹여 주는데 안 먹으면 도마뱀 된 도리가 아니지.

         

        “게게게겍!”

         

        우렁찬 울음소리와 백연영을 향해 절을 한 번 했다.

         

        물론 절이라고 해도 고개를 한 번 까딱하는 게 끝이었지만, 백연영은 굉장히 흡족해하는 거 같았다.

         

        “배사지례라도 하는 게냐. …나쁘진 않구나. 그래. 몸 건강히 있거라. 당가의 여식은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내가 책임지고 돌 볼 테니.”

         

        그래, 든든하네.

         

        이제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아주 잠깐의 이별이며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였다.

         

        열대우림.

         

        그러니까, 밀림.

         

        딱 기다려.

         

        기연 사냥꾼이 간다.

         

        “게게게겍!”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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