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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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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없어졌다는 걸 깨닫자마자 제스는 리안을 찾기 위해 미아의 저택에서 뛰쳐나가려고 했었다. 그런 제스의 행동은 노아에 의해 저지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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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저택에서 쫓겨나 죽음의 숲에 버려진 순간, 노아가 혼란을 숨기지 못하는 틈에 제스는 제 주인님을 찾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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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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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리안을 주인으로 인정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보이지 않은 관계로 묶여있었다. 리안은 모르지만 제스는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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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적으로 리안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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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예민한 감각으로 마물을 피해 다니며 맑은 강에서 목을 축이고, 벌레나 약한 마물을 잡아먹으며 계속해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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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고 쉬고를 반복한 끝에 노아보다 먼저 죽음의 숲을 벗어났다. 그럼에도 제스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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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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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리안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리고 또 달렸을까.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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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과 발에 물집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 끝에 굳은살이 배겼을 때쯤, 제스는 지소의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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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울 정도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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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거의 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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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감이 줄어드는 걸 느끼며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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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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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았다!”
    “크하하하, 이 정도면 꽤 두둑이 받겠는데?”
    “이거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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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전문적으로 수인을 사냥하는 이들에게 잡혀 그대로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 딱 버틸 정도로만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며 달려온 탓에 제스의 몸은 어린아이의 힘 정도밖에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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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들은 제스를 곧바로 노예 상인에게 팔아넘겼다. 제스는 몇 번이고 도망갈 틈을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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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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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치다 잡혔음에도 제스가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리자 노예 상인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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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꽤 쓸만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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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노예 상인은 제스를 짐승들의 투기장에 팔아버렸다. 리안이 머무는 투기장이 마물이나 인간의 경기가 메인이라면, 제스가 팔려 간 곳은 수인끼리의 경기가 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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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물과 마물 혹은 수인과 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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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들의 투기장은 수인들을 짐승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강제로 흥분제를 투여해 잔혹한 시합을 하기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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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그런 곳에 팔려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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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경기는 빨간 머리의 새끼 짐승과 투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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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약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는 짐승을 마주하며 송곳니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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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제 주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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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목숨을 건 전투를 각오한 순간, 그녀의 고결한 혈통이 눈을 떴다. 짐승들의 날 선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진득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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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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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랜만에 연무장에 서서 마검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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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이제, 가볍게 던져봐라. ]
    ‘이걸 꼭 해야해?’
    [ 당연하지! 이건 기선제압에 필요한 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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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찡얼거리는 마검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길쭉한 몸통과 날카로운 날이 반짝거리는 창이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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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이제 던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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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말에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위로 던졌다. 가볍게 던졌음에도 창은 3m 높이까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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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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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 떠오른 창을 만화에서 나올 것처럼 공중회전을 하던지 내 손에 착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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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허! 받을 때는 쳐다보지 않고 받아야지! ]
    ‘진짜 중2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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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이 전부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고,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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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들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만한 말이었지만, 마검에게 생각을 전달할 때 조절하는 법을 배운 상태라 걱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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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다시 던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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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잔뜩 흥분한 마검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충 창을 허공에 던졌다. 마검이 묘기를 부리듯 허공에서 회전했다. 거기다가 창 날 부분에 검붉은 기운을 머금어 화려한 궤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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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
    “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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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장은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마검의 재롱잔치를 보며 헛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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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구경거리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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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공중회전을 하는 검이라니, 어디 가서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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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에는 손으로 돌려보는 걸 해보지! ]
    ‘그걸 내가 어떻게 해?’
    [ 후훗, 위대한 이몸에게 생각이 있으니 잔말 말고 따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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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움직임이 화려해서 그런지 구경하는 맛이 있어 귀찮다는 생각이 잦아들었다. 이번에는 무슨 묘기를 보여주려나 싶어 창을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마검이 내 손에서 살짝 떠나 허공에서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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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회전하니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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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그냥 네가 떠서 돌아가는 거잖아.’
    [ 하지만 겉으로 보면 네가 엄청난 힘으로 돌린 것처럼 보이지! 자, 이제 잡아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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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과 난 기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타이밍에 잡아야 할지 알고 있었다. 탁하고 중간에 잡아채자 마검이 기분 좋은지 웅웅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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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 최고의 파트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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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굉장히 신나 보였다. 칭찬을 듣고 있자니 조금 흥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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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나 창술 할 줄 모르는데 괜찮아?’
    [ 헛..!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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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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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한 번 가볍게 휘둘러봐라. ]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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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 창을 휘두르려 하자 마검이 덜컥하고 멈췄다. 나는 창을 들어 올린 채 마검에 매달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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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아냐! 하나도 멋있지 않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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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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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지 난 창이나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본 적 없단 말이야.’
    [ 끙…그렇다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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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감탄사를 터뜨리더니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붉은 수정구처럼 동그랗게 변한 녀석은 손등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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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들어가면 곧바로 나를 불러서 소환해. 알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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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난 목소리가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했다. 이번에는 또 뭘 하려나 궁금해서 마검이 손등에 흡수되고, 조금 기다렸다가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불렀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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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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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등에 각인이 네온사인처럼 빛나더니 문양 위로 핏물이 솟아났다. 느릿하게 떠오른 핏물은 내 손목과 팔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속도에 몸이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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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내 몸을 검붉은 핏물이 집어삼키고, 무슨 마법 소녀가 변신하는 것처럼 옷이 바뀌었다. 어디 귀족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제복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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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의 형태가 갖춰지나 손등에서 솟아나던 핏물이 중력을 되찾은 것처럼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서 뚝뚝 떨어진 핏물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뭉치더니 이내 마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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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훗훗, 어떠냐 내 놀라운 등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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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부터 옷을 바꾸고 싶다고 그렇게 칭얼거리더니 결국 성공한 듯했다. 나는 내 옷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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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장식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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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제복을 보며 어이가 없어 속으로 중얼거리자, 마검이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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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내 파트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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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마검의 취향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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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이제 다시 창을 휘둘러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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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랑 달라진 게 있나 싶어서 창을 들어 휘두르려는 순간, 몸이 제멋대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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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흐, 된다고 돼! ]
    “뭐,뭐야?”
    [ 파트너가 입고 있는 옷은 내 힘의 일부를 이용해 만든 것이니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지!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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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우 마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조종당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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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거 안 풀어?’
    [ 응? 혹시 불편한가? 분명 사이즈는 잘 맞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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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마검의 목소리에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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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면 네가 지금까지 계약했던 계약자들이랑 똑같잖아.’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파트너는 그런 계약자들과 급이 다른 존재다! ]
    ‘조종하는 건 똑같잖아. 엄청 불쾌해.’
    [ 끄응, 하지만 이 방법이 빠르고 멋지게 창을 휘두르는 방법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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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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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이렇게 하지! 나 마검 가르간도아는 파트너 리안이 원할 때만 몸을 조종하고 파트너 리안이 원할 땐 언제든지 몸의 주도권을 넘겨준다! 자,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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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신난 목소리를 듣자 맥이 탁 풀렸다. 마검은 간지나게 검을 사용하는데 심취해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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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쯧, 이 녀석 인간이었으면 순식간에 호적부터 부모님이랑 친구까지 다 털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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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호구가 되면 장기가 아니라 여자친구, 부모, 친구, 옷, 지갑 따위가 털리게 된다. 심각하게 털린 경우 속옷까지 털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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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아마 개그 세계에 가면 칼날 부분도 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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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어, 한번 마음대로 해봐.’
    [ 으흐흐, 좋은 판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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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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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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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연무장 벽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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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지나가는레콘님! 익명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3’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행복한 하루 되세요!

제스 강화중…이제 귀여운 아기 제스는 포악한 포식자(지만 귀여운) 제스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리안이 엄청난 기술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고있는 마검일뿐..ㅋㅋㅋ

하도 미친놈을 많이봐서 그러려니 받아주는 리안..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리안이 없어졌다는 걸 깨닫자마자 제스는 리안을 찾기 위해 미아의 저택에서 뛰쳐나가려고 했었다. 그런 제스의 행동은 노아에 의해 저지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틈을 보았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저택에서 쫓겨나 죽음의 숲에 버려진 순간, 노아가 혼란을 숨기지 못하는 틈에 제스는 제 주인님을 찾아 뛰쳐나갔다.

‘주인님, 주인님…!’

제스가 리안을 주인으로 인정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보이지 않은 관계로 묶여있었다. 리안은 모르지만 제스는 느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리안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제스는 예민한 감각으로 마물을 피해 다니며 맑은 강에서 목을 축이고, 벌레나 약한 마물을 잡아먹으며 계속해서 달렸다.

달리고 쉬고를 반복한 끝에 노아보다 먼저 죽음의 숲을 벗어났다. 그럼에도 제스는 멈추지 않았다.

‘주인님!’

제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리안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리고 또 달렸을까.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은 아닐 것이다.

손과 발에 물집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 끝에 굳은살이 배겼을 때쯤, 제스는 지소의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아아…거의 다 왔어…’

제스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감이 줄어드는 걸 느끼며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잡았다!”

“크하하하, 이 정도면 꽤 두둑이 받겠는데?”

“이거 놔!”

제스는 전문적으로 수인을 사냥하는 이들에게 잡혀 그대로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 딱 버틸 정도로만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며 달려온 탓에 제스의 몸은 어린아이의 힘 정도밖에 낼 수 없었다.

사냥꾼들은 제스를 곧바로 노예 상인에게 팔아넘겼다. 제스는 몇 번이고 도망갈 틈을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크르릉..”

도망치다 잡혔음에도 제스가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리자 노예 상인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이거 꽤 쓸만하겠는데?”

다음날, 노예 상인은 제스를 짐승들의 투기장에 팔아버렸다. 리안이 머무는 투기장이 마물이나 인간의 경기가 메인이라면, 제스가 팔려 간 곳은 수인끼리의 경기가 메인이었다.

마물과 마물 혹은 수인과 수인.

짐승들의 투기장은 수인들을 짐승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강제로 흥분제를 투여해 잔혹한 시합을 하기로 유명했다.

제스는 그런 곳에 팔려 간 것이다.

“이번 경기는 빨간 머리의 새끼 짐승과 투오입니다!”

제스는 약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는 짐승을 마주하며 송곳니를 내보였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제 주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

제스가 목숨을 건 전투를 각오한 순간, 그녀의 고결한 혈통이 눈을 떴다. 짐승들의 날 선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진득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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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만에 연무장에 서서 마검을 들고 있었다.

[ 자 이제, 가볍게 던져봐라. ]

‘이걸 꼭 해야해?’

[ 당연하지! 이건 기선제압에 필요한 일이야! ]

찡얼거리는 마검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길쭉한 몸통과 날카로운 날이 반짝거리는 창이 손에 들려있었다.

[ 자, 이제 던져! ]

마검의 말에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위로 던졌다. 가볍게 던졌음에도 창은 3m 높이까지 떠올랐다.

휘리릭!

허공에 떠오른 창을 만화에서 나올 것처럼 공중회전을 하던지 내 손에 착하고 떨어졌다.

[ 어허! 받을 때는 쳐다보지 않고 받아야지! ]

‘진짜 중2병인가?’

타인이 전부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고,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

마검이 들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만한 말이었지만, 마검에게 생각을 전달할 때 조절하는 법을 배운 상태라 걱정하지 않았다.

[ 자, 다시 던져! ]

나는 잔뜩 흥분한 마검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충 창을 허공에 던졌다. 마검이 묘기를 부리듯 허공에서 회전했다. 거기다가 창 날 부분에 검붉은 기운을 머금어 화려한 궤적을 만들었다.

“허억..”

“헙..”

연무장은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마검의 재롱잔치를 보며 헛숨을 삼켰다.

‘확실히 구경거리긴 하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공중회전을 하는 검이라니, 어디 가서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 이번에는 손으로 돌려보는 걸 해보지! ]

‘그걸 내가 어떻게 해?’

[ 후훗, 위대한 이몸에게 생각이 있으니 잔말 말고 따르도록! ]

마검의 움직임이 화려해서 그런지 구경하는 맛이 있어 귀찮다는 생각이 잦아들었다. 이번에는 무슨 묘기를 보여주려나 싶어 창을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마검이 내 손에서 살짝 떠나 허공에서 회전했다.

마검이 회전하니 바람이 불었다.

‘이건 그냥 네가 떠서 돌아가는 거잖아.’

[ 하지만 겉으로 보면 네가 엄청난 힘으로 돌린 것처럼 보이지! 자, 이제 잡아봐라! ]

마검과 난 기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타이밍에 잡아야 할지 알고 있었다. 탁하고 중간에 잡아채자 마검이 기분 좋은지 웅웅 울어댔다.

[ 넌 최고의 파트너다! ]

마검은 굉장히 신나 보였다. 칭찬을 듣고 있자니 조금 흥이 나기도 했다.

‘근데 나 창술 할 줄 모르는데 괜찮아?’

[ 헛..!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

마검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흠, 한 번 가볍게 휘둘러봐라. ]

‘이렇게?’

허공에 창을 휘두르려 하자 마검이 덜컥하고 멈췄다. 나는 창을 들어 올린 채 마검에 매달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 이게 아냐! 하나도 멋있지 않잖아! ]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연하지 난 창이나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본 적 없단 말이야.’

[ 끙…그렇다면…아! ]

마검이 감탄사를 터뜨리더니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붉은 수정구처럼 동그랗게 변한 녀석은 손등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 내가 들어가면 곧바로 나를 불러서 소환해. 알았지? ]

신이 난 목소리가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했다. 이번에는 또 뭘 하려나 궁금해서 마검이 손등에 흡수되고, 조금 기다렸다가 속으로 ‘가르간도아’를 불렀다. 그러자.

우웅.

손등에 각인이 네온사인처럼 빛나더니 문양 위로 핏물이 솟아났다. 느릿하게 떠오른 핏물은 내 손목과 팔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속도에 몸이 움찔 떨렸다.

순식간에 내 몸을 검붉은 핏물이 집어삼키고, 무슨 마법 소녀가 변신하는 것처럼 옷이 바뀌었다. 어디 귀족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제복 차림이었다.

옷의 형태가 갖춰지나 손등에서 솟아나던 핏물이 중력을 되찾은 것처럼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서 뚝뚝 떨어진 핏물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뭉치더니 이내 마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 훗훗, 어떠냐 내 놀라운 등장이! ]

저번부터 옷을 바꾸고 싶다고 그렇게 칭얼거리더니 결국 성공한 듯했다. 나는 내 옷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이거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장식도 많고.’

화려한 제복을 보며 어이가 없어 속으로 중얼거리자, 마검이 반박했다.

[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내 파트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지! ]

아무래도 마검의 취향인 듯 했다.

[ 자, 이제 다시 창을 휘둘러봐라. ]

전이랑 달라진 게 있나 싶어서 창을 들어 휘두르려는 순간, 몸이 제멋대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 크흐흐, 된다고 돼! ]

“뭐,뭐야?”

[ 파트너가 입고 있는 옷은 내 힘의 일부를 이용해 만든 것이니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지! ]

“뭐?”

당황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우 마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조종당해야 한다니?

‘너 이거 안 풀어?’

[ 응? 혹시 불편한가? 분명 사이즈는 잘 맞을 텐데. ]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마검의 목소리에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러면 네가 지금까지 계약했던 계약자들이랑 똑같잖아.’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파트너는 그런 계약자들과 급이 다른 존재다! ]

‘조종하는 건 똑같잖아. 엄청 불쾌해.’

[ 끄응, 하지만 이 방법이 빠르고 멋지게 창을 휘두르는 방법인데… ]

마검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럼 이렇게 하지! 나 마검 가르간도아는 파트너 리안이 원할 때만 몸을 조종하고 파트너 리안이 원할 땐 언제든지 몸의 주도권을 넘겨준다! 자, 어떤가!? ]

잔뜩 신난 목소리를 듣자 맥이 탁 풀렸다. 마검은 간지나게 검을 사용하는데 심취해있는 듯했다.

‘쯧쯧, 이 녀석 인간이었으면 순식간에 호적부터 부모님이랑 친구까지 다 털렸을 거야.’

개그 세계에선 호구가 되면 장기가 아니라 여자친구, 부모, 친구, 옷, 지갑 따위가 털리게 된다. 심각하게 털린 경우 속옷까지 털리는 경우도 있다.

마검은 아마 개그 세계에 가면 칼날 부분도 털리지 않을까 싶다.

‘알았어, 한번 마음대로 해봐.’

[ 으흐흐, 좋은 판단이다! ]

솔직히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쿠구구궁!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연무장 벽이 무너져내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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