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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53 – 고인물도 거르는 강의>

     

    16시부터 18시까지 이어지는 4교시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 이후, 아카디아와 나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디가 쏘던 활, 굉장한 소리가 나던데요? 후훗. 제국귀족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아카디아 언니도 총 쏘는 모습 멋졌어요.”

    “후후. 선상에서는 더 잘 쏠 수 있답니다? 상선을 노리는 건방진 해적들을 물고기밥으로 만든 솜씨를 언젠가 보여드리죠.”

     

    다재무능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사격술에 조예가 있는 아카디아.

    그녀와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며 식당에 도착하니, 망연자실한 얼굴로 탄식하는 학생들이 식당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이사벨과 지젤, 손오천도 있었다.

     

    “다들 표정이 왜 이래요?”

    “별일이군요. 오크노디양이라면 점심시간에 분명 식당을 들러서 알았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점심은 전에 먹은 메뉴만 나와서 걸렀어요!”

    “과연.”

    “으하하! 쥐방울 녀석을 다이어트 시키려면 매일 똑같은 음식만 주면 되겠군.”

     

    도움 안 되는 남자들 대신 이사벨이 학생들이 나라 잃은 백성처럼 구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오늘부터 식당이용 시 포인트를 받는대. 포인트가 적은 학생들이 패닉에 빠졌어.”

    “아하.”

     

    나야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미 예고된 재앙이다.

    드래곤 교장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 아카데미는 포인트가 전부라고.

    뭣 모르는 철부지들을 위한 무료배급, 무상의 식사는 일주일간의 입학준비기간의 서비스였을 뿐.

    이제부터는 강의시간에 성실히 활약하여 번 포인트로 식당을 이용하든, 스스로 식재료를 모아 요리를 해먹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들어가죠.”

    “괜찮겠어? 한 끼 식사에 10포인트나 드는데.”

     

    매일 30포인트.

    한 달만 식사해도 900포인트라는 엄청난 포인트가 사라진다.

     

    “오늘 저녁은 닭강정이래요.”

    “닭은 언제나 옳아.”

    “닭강정은 10포인트가 아깝지 않죠.”

     

    이사벨과 지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식당에 들어갔다.

    우등생에게만 허락되는 사치는 못 참지!

     

     

    * *

     

     

    “기사학부 근처에 숲이 넓던데, 거기 가봤어? 나무열매가 나온대.”

    “생산학부의 과수원을 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거긴 우리보다 윗 기수의 먼저 입학한 선배들이 관리하는 과수원이야. 잘못 건들면 죽어.”

     

    포인트를 탈탈 털어서 식당을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더 값진 사용처를 찾을 때까지 포인트를 아끼고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학생들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했고, 대부분은 일단 포인트를 아끼고 먹을 걸 찾아보자고 결정했다.

     

    “칫. 이럴 땐 돈 많은 중앙 놈들이 부럽네.”

    “동감이야.”

     

    기부금으로 추가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제국귀족들과 달리, 변방귀족들은 그렇게까지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하급반 끝자락에 간신히 입학한데다가 번듯한 귀족가의 자제도 아닌 한미한 귀족가의 자제인 모브와 자쿠 같은 어중간한 학생들은 자력구제만이 살 길!

    굶주린 하이애나처럼 교정을 떠돌던 그들의 후각을 자극적인 음식냄새가 유린했다.

     

    “고기?”

    “냄새 미쳤네.”

     

    홀린 듯이 냄새를 쫓아간 곳에는 널따란 현수막이 보란 듯이 걸려있었다.

     

    <입학 축하해! 배고프지?>

    <사냥동아리 들어와서 굶지 말고 사냥해!>

     

    커다란 모닥불.

    꼬챙이에 매달아 빙글빙글 돌리며 굽는 돼지통구이.

    그 앞에서는 냄새가 멀리 퍼지라고 커다란 나뭇잎으로 부채질까지 하는 선배가 있었다.

    안 그래도 점심부터 쫄쫄 굶었던 이들이다.

    고기 굽는 냄새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의 소유자도 없고,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오, 신입생들이구나.”

    “저, 저희도 이거 할 수 있나요?”

    “선배님. 고기가 먹고 싶어요!”

     

    고기를 굽던 선배 옆에서 야외용 간이테이블과 접의식 의자까지 준비해온 선배가 손짓을 했다.

     

    “얼른 와서 사인해! 동아리 들어오면 고기 먹게 해줄게!”

     

    모브와 자쿠는 홀린 듯이 의자에 앉아 계약서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사인을 했다.

     

    “선배님. 동아리활동에 적당한 사유 없이 불참할 시 1회당 벌금으로 1000포인트를 납부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고기 안 먹을 거야?”

    “머, 먹어야죠.”

    “근데 동아리 활동 중 부상을 당할 수 있으나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란은 뭔가요?”

    “사인하면 돼!”

    “그렇군요!”

     

    먹을 것 앞에서 홀린 듯이 계약서를 쓰는 학생들!

    사냥동아리의 돼지통구이를 이용한 잔혹한 계약 이후, 먹을 것을 찾거나 훈련장을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수많은 유혹에 노출되었다.

    배고픈 1학년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유혹하는 동아리는 사냥동아리만이 아니었다.

     

     

    * *

     

     

    “오크노디는 동아리 뭐 할 거야?”

    “내일 생각하려구요.”

     

    월요일은 강의에 몰빵하는 날.

    동아리까지 시간을 할애할 여유는 없다.

     

    “세상에. 오크노디 너 5교시도 강의 들어?”

    “전 월요일에 끝장을 볼 거에요!”

     

    이사벨은 경악했다.

     

    18~19시 저녁시간.

    그 뒤부터 이어지는 19시~21시의 5교시 야간강의까지 듣는다니.

    저녁은 개인훈련 및 휴식, 정비시간으로 생각하던 학생들에게는 터프하다 못해 충격적인 시간표겠지.

    그치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바로 내가 고인물 플레이어라는 사실이다.

    공부를 해야 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방과 후에 공부나 과제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먹을 것도 식당에서 해결할 포인트가 충분하고, 여차하면 요리사 이사벨이 있다.

    남는 것이 시간.

    강의만 몰빵으로 채워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학부선택인가.’

     

    월요일 1교시 홈룸.

    이건 정식강의가 아니다.

     

    월요일 2교시 안목키우기.

    이건 모험학부의 교양강의다.

     

    월요일 3교시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이건 마법학부의 교양강의다.

     

    월요일 4교시 원거리 병기숙달.

    이건 기사학부의 교양강의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강의를 교양강의로 때웠다.

    어느 학부에 들어가도 상관없는 교양강의부터 먼저 해치운 것!

    공통(필수)강의2개, 학부강의3개, 교양강의 2개 중 교양강의에 해당하는 2개를 전부 해치웠다.

    나머지 하나는 기사, 모험, 마법학부 중 하나를 고르면 해당학부의 학부강의가 될 수 있는 상황.

    이제는 학부를 선택하는 가장 어려운 고비에 처했다.

     

    기사학부.

    마법학부.

    행정학부.

    모험학부.

    생산학부.

    각각의 학부마다 함께 강의를 듣고 종종 마주치는 주조연 인물들이 달라진다.

     

    기사학부.

    주요인물 – 헤스티아, 싱, 제냐, 록펠

    신규인물 – 손오천

     

    마법학부.

    주요인물 – 아이린, 안데르센, 여자용사, 여자성녀, 제국2황녀

    신규인물 – 몰?루

     

    모험학부.

    주요인물 – 즈앙, 지고쿠

    신규인물 – 이사벨, 지젤, 도로시

     

    내심 셋으로 좁힌 학부 중에서 주요등장인물이 가장 많은 곳은 기사학부와 마법학부.

    처음 내가 노리던 학부 또한 둘 중 하나였다.

    아무한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내가 노리는 클래스는 무려… 마검사이기 때문이다!

     

    ‘검으로 단거리, 활로 중거리, 마법으로 원거리. 속성공격도 커버되고 자힐도 가능한 개사기 클래스!’

     

    잘만 키우면 이것만큼 사기적인 직업이 없다.

    어떤 억까 상황에서도 동료빨을 타지 않고 혼자서 뭐든 다 극복할 수 있는 직업.

    다재전능의 클래스 마검사.

    고인물인 내가 찾아낸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다.

    문제는 이번회차 동료들이 게임에서와 달리 크게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입학시험에서 친해지는 동료들이랑은 너무 크게 차이가 생겼어.’

     

    보통은 입학시험에서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주조연 하나를 찍어다가 호감작을 열심히 하며 친밀해지고는 한다.

    그나마 기존 주조연 중에서 호감작을 진행했던 인물은 아카디아.

    문제는 이번 회차의 아카디아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라서 어느 학부에 들어갈지 도무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다른 동료들도 모험학부에 모여 있고.’

     

    마검사의 마법과 검술 중 하나를 더욱 보강하기 위한 기사학부나 마법학부.

    친한 사람이 잔뜩 모인 모험학부.

    치열한 고민 속에 끝내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고인물 체면에 효율이 뭐가 중요해? 하고 싶은 거만 다 하면 되지!’

     

    검술이랑 마법을 배우고 싶어?

    그거야 독학하면서 기존 지식을 발전시키기만 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친한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는 건?

    모험학부를 고르지 않으면 힘들다.

    당장은 1학년이니 오고가며 볼 일도 많지만 학년이 오르면 오를수록 점차 접점이 사라지지 않는가.

     

    <모험학부>

     

    고로 5교시는 모험학부.

    오늘 들을 학부강의도 이곳에서 고른다.

     

    <모험가의 기초체력증진>

    <모험가 기초무기술훈련>

    <모험가 보급학>

    <모험가 함정학>

    <모험가 야생요리학>

    <안목 기르기>

     

    낮 시간에 고를 수 있던 모험학부의 강의가 이랬다면, 밤 시간에 고를 수 있는 강의목록은 달랐다.

     

    <모험가의 야간행동>

    <어디서나 잘 자기>

    <야행성 동물에 대처하자>

     

    우선 기초체력증진과 기초무기술훈련처럼 낮에 야외에서 하는 활동과 실내에서 배우는 보급학, 함정학, 야생요리학, 안목 기르기가 모두 사라졌다.

    대신 야간행동, 수면, 야행성동물 대처라는 새로운 강의들이 추가되었다.

     

    ‘저 지뢰강의는 이번에도 있네.’

     

    월요일 몰빵전략을 세운 학생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다른 학생들이 모험학부 강의실표지판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신이 나서 말했다.

     

    “어디서나 잘 자기? 잠만 잘자면 되는 강의인가?”

    “와. 진짜 개꿀이네.”

    “잠만 자면 학점이 늘어나는 걸 어떻게 참아?”

     

    물론 나는 눈독도 들이지 않고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가 열리는 강의 장소로 걸음을 돌렸다.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의 어디서나는 정말 말 그대로 ‘어디서나’를 의미한다.

    독사가 우글거리는 구덩이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간이텐트를 설치하고 잘 자기.

    절벽에서 포터레지(절벽텐트)를 설치하고 잘 자기.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그건 좀.’

     

    고인물도 거르는 강의를 제 발로 들으러 가는 신입들이 조금은 존경스럽다. 알고도 들으러 가는 학생은 한 명도 없겠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흑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교수들이 강의제목으로 수강생을 낚는 악질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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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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