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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다음 날 저녁.

       우리는 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경매장에 와 있었다.

       

       여긴 빌딩 하나가 통째로 경매장 건물이었다.

       

       “와… 엄청 크다.”

       

       김채은이 커다란 건물 규모를 보고 중얼거렸다.

       

       마치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게 솟아오른 빌딩.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올려다보며, 화려한 건물 양식을 천천히 구경했다.

       

       …저러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딪힐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경매장에 입장하려는 다른 무리가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난 가볍게 김채은의 어깨를 잡아 우리 쪽으로 당겼다.

       

       “…어?”

       “앞을 봐야지.”

       “아, 응. 고마워….”

       

       정선영이 그런 우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그럴 수 있어. 나도 처음 왔을 땐 생각보다 경매장이 너무 커서 당황했거든.”

       “선배님은 경매장에 자주 와보셨나 봐요.”

       “그럼. 특히 나 같은 재난 괴수 사냥꾼들은 더 자주 온단다. 경매장은 상황만 잘 노리면, 의외로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클랜만 들어가면 그런 장비 지원은 일도 아닐 텐데.

       

       거기에 정선영은 A급 홀더기도 하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클랜 안 들어가세요?”

       “클랜은 지겨워. 룬에 집중해야 할 홀더들이 정치하고 있는 모습도 피곤하고.”

       “재난 괴수 사냥엔 꾸준히 참여하시잖아요.”

       “그건 누군가 해야 할 일이잖니.”

       

       정선영은 자신만의 홀더 철학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시민들을 지키겠다!

       딱히 이런 느낌의 정의감이 차오른 건 아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과 행동에 한 줌의 후회도 없어 보였다.

       

       같은 홀더로서 배울 점이 참 많은 선배였다.

       

       “홀더 등록증과 입장권을 제시해주십시오.”

       

       건물 안에 들어선 후.

       심플하게 꾸며진 내부 입구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은 한 직원이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세 장의 입장권을 건넸다.

       

       S급 재난 괴수를 함께 사냥한 정선영과 나는, 협회에서 공증한 ‘공격대 참가 확인’이 추가로 입장권에 적혀있었다. 

       

       “일반입장 1명, 특별입장 2명. 확인했습니다. 한국 홀더 경매장 대구지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직원의 입장 허가에 우리는 내부로 들어섰다.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김채은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근데 진짜 신기하다…”

       “뭐가?”

       “경매장이라길래 막 경기장처럼 지어져 있을 줄 알았거든.”

       “푸흐- 그 콜로세움 같은?”

       “응! 근데 내부는 그냥 평범하구나… 다른 건물들처럼.”

       

       정선영이 그런 김채은을 귀엽게 바라봤다.

       

       “너무 실망하지 말렴. 아마 경매가 열리는 4층하고 5층은 채은이 말처럼 꾸며져 있을 거야. 경매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두 층을 통째로 경매 장소로 사용하고 있거든.”

       

       그녀의 열렬한 추종자인 김채은이 두 손을 모았다.

       

       “그럼 혹시 선배님이랑 같이 경매할 수 있는 건가요?!”

       “그, 그래…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4명까지 같이 할 수 있단다.”

       “와! 다행이다. 꼼짝없이 갈라져야 하는 줄 알았는데.”

       

       대구 경매장은 그 크기답게 층별 세분화도 다양하다.

       

       1층은 입구 및 리셉션.

       2층과 3층은 아이템 직접 판매 공간.

       홀더들에게 필요한 각종 장비와 특수 아이템들을 직접 구매할 수 있고, 넓은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4층과 5층은 정선영이 말한 대로.

       두 층을 하나로 통합해 경매 공간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경매장은 마치 대강당이나 큰 아트홀처럼 계단식 높낮이로 경매 참가자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더 위층으로 올라가면, 수령 공간이나 휴게 공간, 음식점 등 홀더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들도 상당히 많다.

       

       총 13층으로 구성된 건물.

       

       과연 거대 경매장 규모다웠다.

       듣기로는 서울 본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크기라고 한다.

       

       “저희 자리는 저쪽인 것 같은데요.”

       

       4층에 들어서자 끝도 없이 진열된 의자들이 보였다.

       

       나는 그중 가장 위쪽에 자리한 좌석을 가리켰다.

       4명 정도 일행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것 같네. 저쪽으로 가서 앉자.”

       “네, 선배님.”

       

       경매장 내부 좌석은 의외로 깔끔했다.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그 위에는 초록색 버저와 마이크.

       그리고 아이템의 정보를 알려줄 디지털 화면이 마련되어 있었다.

       

       살면서 경매장이란 곳을 처음 와보는 터라, 나도 김채은만큼 그런 것들이 다 신기했다.

       

       “다행히 번호판 들고 하는 경매는 아닌가 보네요.”

       “그게 언제적 경매니.”

       

       우리 셋은 자리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홀더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이내 자리의 대부분이 채워지며 경매 참가인원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경매 진행자로 보이는 사람과 직원 몇 명이 홀에 나와 인사를 했다.

       

       

       -한국을 빛내는 홀더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 홀더 경매장 주관 제117회 홀더 경매의 진행을 맡게 된 김현우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경매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 경매의 진행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한 진행자는 빔 프로젝터에 자료 하나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본 경매는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홀더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있는 버저와 마이크를 통해 경매에 참여하실 수 있으며, 구매를 희망하는 품목에 진행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호가하셔야만 합니다. 진행자인 제가 세 번의 호가를 할 때까지 최종가격에 변함이 없다면, 해당 품목은 그 최종가격으로 낙찰됩니다.

       

       

       이후 몇몇 설명이 이뤄졌다.

       

       품목엔 최소 주문가격이 정해져 있다…

       이는 해당 품목마다 다를 거다…

       개인 용무로 인해 경매는 중단되지 않는다… 등등.

       

       경매에 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수칙들이었다.

       

       조금은 지루한 이야기들이 모두 끝난 후.

       

       

       -그럼 지금부터, 한국 홀더 경매장 주관 제117회 홀더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매 품목입니다.

       

       

       진행자는 마침내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이내 몇몇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물건을 가져왔고, 자리의 디지털 화면엔 첫 번째 품목의 아이템 정보가 떴다.

       

       

       

       * * *

       

       

       

       문가은은 귀를 의심했다.

       

       무뚝뚝한 자신의 친구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벌써 영입했다고?”

       “말했잖아. 인턴이라고.”

       “아니, 그게 그거지.”

       

       중요한 건 도재현이 <불의 심판>에 발을 디뎠다는 것이다.

       

       인턴이든 뭐든 일단 클랜에 들어가면 그 시스템에 적응하게 될 거고, 국내 탑급 클랜인 <불의 심판>은 모든 면에서 다른 클랜보다 매력적이다.

       

       한 번 발을 디딘 클랜원을 그대로 눌러 앉히는 건.

       그 정도 대형 클랜 입장에서 일도 아니다.

       

       문가은은 이런 묘수를 계획해낸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매일 무뚝뚝하고 매사에 지루한 얼굴만 하더니, 정작 중요한 영입 때는 사람이 달라져 있다.

       역시 순진한 표정에 속으면 안 된다.

       

       “이 얌체 같은 고양이!”

       “…뭐?”

       “이렇게 선수 치는 게 어딨어! 억울해. 로열한테도 기회를 달라!”

       

       강주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턴이라니까. 너희도 인턴으로 영입하면 되잖아.”

       “이씨… 이미 너희 클랜에 인턴으로 들어간 애를 어떻게 뽑아! 최소 1년일 거 아냐.”

       

       그 말에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안 길어. 두 달이야.”

       “두 달?”

       “응. 이번 방학만 할 거야.”

       

       확실히 그 정도면 <불의 심판>의 독점은 아니다.

       

       아직 <로열>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다음 방학을 노리면 되니까.

       

       두 달이면 말 그대로 임시적인 클랜원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문가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렇게 짧은 인턴 기간도 있나?”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야. 방학 때 해야 할 게 조금 있대.”

       

       두 달의 인턴 기간.

       

       <불의 심판>은 물론, 여타 클랜에서도 이례적일 정도의 짧은 인턴 기간이지만.

       강주연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만큼 도재현이 뛰어난 인재라고 생각했고,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한 홀더다.

       

       그리고 문가은이 예상했던 대로.

       강주연은 그 짧은 기간에 도재현을 정식 클랜원으로 영입할 자신이 있었다.

       <불의 심판>은 그럴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는 클랜이다.

       

       그런데 가만히 듣던 문가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뭔가 놀릴 걸 찾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사라암?”

       “……?”

       “뭐야아? 이제 도재현이라고 안 하고, 막막 그 사람이라고 하네?”

       “…….”

       

       강주연이 입을 다물었다.

       

       살짝 말 실수를 했다.

       아니, 이런 것도 말 실수로 쳐야 하나?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문가은의 표정은 장난기로 가득 차 있다.

       

       저런 얼굴을 한 문가은의 공격은.

       어지간해선 막을 수 없었다.

       

       “주연주연. 솔직히 말하면 이해해줄게. 진짜 도재현 재능 때문에 뽑은 거야?”

       “…그럼 뭔데.”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졸업하고 나서 뽑을 수 있는 클랜원을, 굳이 굳이 두 달짜리 인턴 클랜원으로 뽑고. 단짝인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선수치고! 그리고 너. 요즘 만나면 도재현 얘기밖에 안 하잖아~”

       “…….”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강주연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한다고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장난을 걸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선 그냥 침묵이 답이었다.

       

       하지만 문가은은 한 번 문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은근한 얼굴로 결정타를 날렸다.

       

       “설마… 도재현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나, 갈래.”

       

       강주연이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앗. 잠깐만. 주연아, 잠깐만.”

       

       문가은이 재빨리 따라 나섰다.

       

       뭐가 저렇게 빨라?

       강주연은 마법사 계열인데도 무슨 궁수 계열마냥 속력이 빨랐다.

       

       어느새 카페 밖까지 나간 강주연.

       

       문가은은 금세 그녀를 따라잡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아까 헛소리들의 연장선이었다.

       

       “주연이 네가 연애를 안 해봐서 그래. 원래 이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게… 막 외면하고 싶고, 피하고 싶고 그런 성질이 있다니까? 그래서 강주연 씨도 애써 인정하기 싫은 거야. 사실은 누구보다 격렬하고 뜨거운 감정이면서. 마치 그… 뭐랄까? 그래, 주연이 네 화염 룬처럼 말이야. 헤헤.”

       

       뚝.

       빠른 속도로 걸어나가던 강주연이.

       

       카페 문 앞에서 우뚝하고 멈춰섰다.

       

       ‘헉. 너무 심했나.’

       

       주변에 넘실거리는 아리도록 차가운 기운에.

       문가은은 순간 숨을 삼켰다.

       

       과했다.

       과해도 너무 과했다.

       거의 랩을 하듯 개소리를 귀에 때려 박았으니, 강주연도 화가 날 만했다.

       

       하다 못해 마지막 룬 얘기는 붙이지 말걸.

       

       그런 후회가 밀려왔지만…

       

       멈춰선 강주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문가은의 뒤통수를 때릴 카운터 펀치였다.

       

       “그러는 너도 남자 만나 본 적 없잖아.”

       “…어?”

       

       순간 문가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문가은, 너도 연애해 본 적 없잖아”

       

       뭔가 한껏 경험자인 양 조언하던 문가은이지만.

       사실 그녀도 연애 경험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문가은의 남자 관계를, 강주연이 모를 리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문가은이 당황한 채 말했다.

       

       “그, 그래도 난 너보단 많이 알지!”

       “왜?”

       

       잠깐 눈을 굴리던 문가은이 대답을 생각해냈다.

       

       “드, 드라마를 많이 봐서…? 아.”

       

       그리고 대답을 마친 순간.

       그녀의 얼굴은 망연함으로 물들었다.

       

       끝났다.

       최악의 답을 했다.

       

       드라마를 많이 봐서 연애를 더 안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추한 변명이었다.

       

       문가은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멈춰섰다.

       더는 민망해서 친구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겼다.’

       

       강주연은 묘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엔 아주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워낙 무뚝뚝한 성격 탓에 매번 문가은에게 지는 말싸움.

       아무래도 오늘은 자신의 승리인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주연의 일러스트가 나왔습니다!

    50화와 100만 조회수에 맞춰 기념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었네요.

    본 작품을 애정하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요즘 폭우 때문에 난리인데, 다들 물 조심하시고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다음화 보기


           


Acquired the Scam Rune in the Academy

Acquired the Scam Rune in the Academy

Acquired the Academy Scam Rune Got the Academy Scam Rune チートルーンを手に入れたモブの成り上がり ~主役たちのルーンを奪える俺、世界最強になります~ (JP)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KR)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ssessed an extra with a single rune.

After obtaining 7 runes directly according to the original Hidden Piece…

A fraudulent rune called [Rune Hunter] was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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