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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디트마이어로부터 에단의 호출을 전달받자마자 나는 블랙우드 저택의 4층으로 올라왔고.

         

        곧바로 에단의 방문 앞에 선 나는 세 번의 노크로 내가 도착했음을 안에 있는 방 주인에게 알렸다.

         

         

        -똑, 똑, 똑.

         

        “도련님, 릴리스입니다.”

         

        “…들어와, 메이드.”

         

         

        약간의 침묵 이후 이어진 대답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에단 방의 풍경.

         

        한때는 이 방도 들어올 때마다 난장판이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아침에 들어오든 저녁에 들어오든 간에 제법 정돈된 느낌이었고.

         

        거기에 더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느낌의 인상을 주는 방 주인은 테이블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돈된 상태에서 살짝 헝클어진 머리와 조금 피곤한 듯 다크서클이 살짝 내려앉은 눈.

         

        이전에 비해 얇아지면서 단단해진 팔다리와 이제는 티가 안 날 정도로 완전히 들어간 뱃살.

         

        처음과 비교하면 제법 사람다워진 모습으로 변화한 귀공자는 내가 들어오는 방문으로 시선을 향한 모습이었고.

         

        에단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대로 메이드 스커트를 가볍게 잡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메이드 인사를 건넸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그래, 메이드.”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조심스레 시선을 돌리는 듯하더니 고개까지 슬며시 옆으로 옮기는 에단.

         

        그 옆모습을 보니 확실히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은 게 이전과 확실히 비교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절대 에단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역변하긴 했다.

         

        특히 원래대로 자랐을 때의 에단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 인상이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그나마 저택을 오가면서 얘가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봐왔으니 지금의 인상 자체도 그럭저럭 익숙해졌지만.

         

         

        “메이드, 앉아서 얘기할까?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

         

        “…메이드가 불편하면, 그냥 서서 얘기해도 되고.”

         

         

        같은 테이블에 앉으라는 에단의 제안이 살짝 고민되긴 했다.

         

        물론 이전처럼 진지하게 에단을 성추행범 새싹으로 보는 건 아니고, 그저 아주 잠깐만 고민했을 뿐이지만.

         

        …뭐, 에단도 이전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달라지긴 했으니.

         

        이제 와서 굳이 릴리스를 상대로 이상한 수작질을 하려 들지는 않겠지.

         

        머릿속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조용히 엉덩이를 붙였다.

         

         

        “알겠습니다.”

         

         

        애초에 원작에서 에단이 릴리스를 상대로 음흉한 속내를 보였던 건, 자신의 처지에서 릴리스가 가장 ‘건드리기 쉬운’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일단 전속 메이드라는 가장 가까운 입지도 그렇고, 릴리스의 근처 기수 메이드들은 하나같이 기가 세서 어린 에단이 쉽게 건드리지 못할 터였으니까.

         

        같은 동기인 카타리나마저 이용해 먹었던 에이리아나 알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사벨 또한 ‘똘똘한 이사벨’이라는 칭호가 붙은 만큼 에단의 마수에 ‘미련한 릴리스’처럼 쉽게 당해주지는 않았겠지.

         

        그나마 먹이사슬의 최약체인 카타리나가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마 원작 게임에서의 카타리나는 에이리아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실버우드 영지에 보내졌을 터였고.

         

        여러모로 환경 자체가 릴리스를 건드리기 쉽도록 조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지금은 굳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면서까지 평민인 나를 건드릴 이유가 없을 테고.’

         

         

        진지하게 저 정도 외모면 마음을 먹는 순간 저택의 다른 메이드는 물론이고 예쁘장한 하위 귀족 아가씨도 쉽게 유혹할 수 있을 터였다.

         

        명색이 귀공자라고 살을 빼자마자 해럴드와 타나시아의 유전자가 얼굴에서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남자인 내 시선에서도 객관적으로 잘생긴 외모였는데 여자들에게는 오죽할까.

         

        굳이 자신이 싫다고 말하는 메이드를 억지로 덮칠 이유는…없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그리고, 사실 이런 고민 자체가 이제는 별 의미가 없어지기도 했고.

         

         

        ‘이제는 에단이 진심으로 덤비는 순간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훈련으로 단련된 실전 압축 근육을 겨우 공격력 13에 방어력 19짜리 릴리스가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만약 정말로 에단이 해럴드와 함께 저택 마당에서 검 휘두르기만 했으면 모를까, 해럴드는 귀족답게 이 세계에서 ‘강해지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

         

        에단이 어느 정도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비가 온 다음 날마다 에단을 데리고 블랙우드 저택 뒤에 있는 뒷산을 오르내렸다.

         

        비가 올 때마다 자연적으로 증식하는 몬스터 ‘슬라임’을 에단에게 직접 잡게 하고 경험치를 쌓게 하려고.

         

         

        물론 해럴드가 실제로 경험치라는 개념 자체를 알고 한 행위는 아니겠지.

         

        그저 자신의 경험상 ‘이렇게 했을 때 강해진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자식에게도 똑같이 가르치는 것일 뿐.

         

        아무튼, 나 또한 에단의 전속 메이드로서 그렇게 뒷산에 오를 때마다 에단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으니.

         

        자리에 동행할 때마다 녀석이 잡은 몬스터의 수를 추산하며, 에단이 현재 어느 수준의 레벨까지 성장했는지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못해도 7레벨이나 8레벨쯤은 되어있을 거야. 게다가 검이랑 신체 강화 마법을 같이 쓸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강할 테고.’

         

         

        사실상 이제 와서는 내가 경계한다고 하는 게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 정말로 작정하고 나에게 달려들면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마나 블래스트를 쓰면 한 번 정도는 저항할 수 있겠지만, 이 저택에서 그런 대마법을 쓰는 순간 어차피 파멸은 예정된 순서였으니.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고 얘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기도하는 게 오히려 상책이었다.

         

         

        “…….”

         

        “…….”

         

         

        할 말이 있다고 기껏 나를 불러놓고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시선을 피하는 에단.

         

        …사람 불러놓고 뻘쭘하게 만드는 건 유전자에 각인되기라도 한 건가.

         

        제 아비랑 꼭 닮은 행동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살짝 열이 뻗칠 뻔했지만, 다행히 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기 전 에단의 입이 먼저 열리며 할 말을 열기 시작했다.

         

         

        “…메이드.”

         

        “네, 도련님.”

         

        “이번 주 여섯 번째 요일 오후에…혹시 시간 있어?”

         

        “……네?”

         

         

        이건 또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자기 전속 메이드한테 시간 있냐고 물어보는 주인이 세상에 어딨어.

         

        애초에 전속 메이드라는 위치 자체가 제멋대로 휴일이나 휴식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지위도 아니고, 만약 다른 일정이 있더라도 당연히 주인 쪽에 맞추는 게 기본일 텐데.

         

        에단 쪽에서 먼저 멍청한 질문을 해왔으니 나는 그에 맞춰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돌려줘야 할 차례였다.

         

         

        “저는 도련님의 전속 메이드이니, 제 시간은 곧 도련님의 시간입니다.”

         

        “그, 그런 의미가 아니라. 혹시 계획해 둔 다른 일정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저택 밖으로도 스스로 못 나가는 빚 메이드가 무슨 계획이 있고 무슨 일정을 잡겠습니까.”

         

        “메이드에게는 사이 좋은 동료도 많으니까. 혹시 다른 동료들하고 약속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해서.”

         

         

        …뭐, 내가 이사벨과 카타리나와 사이가 좋다는 건 다른 사용인들도 대부분 아는 사실이기는 했고.

         

        에단이 그 부분을 들먹이는 것 자체는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문제는, 왜 에단이 자꾸만 그런 부분에서 신경을 쓰고 내 눈치를 보느냐는 거지.

         

        이사벨이나 카타리나하고 약속이 있으면 뭐 어쩔 건데, 결국에는 주인님인 본인 쪽의 명령을 우선해야 한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요일별로 바뀌는 학문 강의와 예절 교육을 받는 이 귀공자가 이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의도로 자꾸 물어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약속 같은 건 딱히 정해놓지도 않았고,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전속 메이드 주제에 귀족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순간 좋은 꼴로 이어지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니까.

         

         

        “없습니다, 도련님.”

         

        “…정말? 괜히 내 눈치를 보느라 없다고 말하는 거 아냐?”

         

        “정말로 제가 도련님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알아서 없다고 눈치껏 좀 알아들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안. 앞으로는 주의할게.”

         

         

        뭔가 답답해서 얼떨결에 한 마디가 튀어 나갔는데, 다행히 지뢰를 밟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그보다 더한 말도 몇 번이나 들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거로 화낼 정도의 성격은 아니긴 하지.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혐단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내 앞에 있는 에단이라면 그랬다.

         

         

        “제 주말 일정에 관해서는 무슨 연유로 여쭤보셨습니까, 도련님?”

         

        “…황궁에서 초대장이 날아왔어.”

         

        “아….”

         

         

        황궁…황궁이라.

         

        이 시기쯤에 황궁에서 에단에게 보낼 초대장이라면, 아마 그거겠네.

         

         

        “이 시기쯤에 황궁에서 도련님에게 보낼 만한 초대장이라면…셋째 황녀 전하의 탄생일 연회 초대장이겠군요.”

         

        “…알고 있었어?”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정확히는 그 셋째 황녀가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히로인 중 한 명이라서 알고 있는 지식이었지만.

         

        그리고 황제는 자식들의 탄생일마다 귀족 자제들을 부르는 연회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에단 정도면 가문도 제법 지위가 있고 셋째 황녀와의 나이도 비슷하니, 황궁에서 탄생일 초대장을 보내는 것 또한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마 원작 게임의 에단에게도 이런 행사가 종종 들어오기는 했을 거야.’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에단 또한 출신 성분만 놓고 보면 틀림없는 귀공자였으니까.

         

        비록 보는 사람의 정신력을 깎아 먹는 불쾌한 외모와 위생 관념 때문에 인기가 없었을 뿐이지.

         

        그리고 본인도 자신이 못생겼다는 건 알아서인지 이런 종류의 행사는 대부분 불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원래 세계관에서의 에단 리처드 블랙우드의 행동이었을 뿐.

         

        혐단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는 지금의 에단 리처드 블랙우드라면…다른 판단을 내려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에단은 딱히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지도 않을 테고, 제대로 된 예절 교육을 받아 한층 성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요즘 해럴드를 따라 영지 경영에도 조금씩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런 공식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결국, 이 에단이 내게 여섯 번째 요일에 약속이 있냐고 묻는 것은 딱히 특별한 의미도 아닐 터였다.

         

         

        ‘여섯 번째 요일에 자신이 외부 일정에 참석해야 하니, 전속 메이드인 내 일정을 비우고 동행해라’라는 뜻이겠지.

         

         

        이미 얘가 말하고자 의도는 대충 파악했으니 이제는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어차피 전속 메이드인 내가 에단의 외부 행사에서 빠질 핑계는 없었으니.

         

        오늘 본론이라도 빨리 끝내자는 생각에 나는 에단이 물을 만한 용건을 슬쩍 건네보았다.

         

         

        “연회 일자가 이번 주 여섯 번째 요일입니까?”

         

        “…응. 그래서 메이드에게 혹시 같이 참가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려고.”

         

        “알겠습니다. 원래도 딱히 일정은 없었습니다만, 그날 일정은 확실하게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

         

        “…정말로?”

         

        “네, 도련님.”

         

         

        애초에 겨우 이런 거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전속 메이드가 모시는 주인님을 따라 외부로 도는 건 당연하다 못해 필수 업무인데.

         

        게다가 요즘 에단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이런 식으로 나다니는 외부 행사 또한 점점 늘어날 테고.

         

        이런 일마다 일일이 나를 불러서 허락 맡을 필요 없다는 의미로 나는 확실하게 에단에게 방금 전한 대답을 보충해서 설명했다.

         

         

        “애초에 이런 사소한 일까지 전속 메이드에게 일일이 물어보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도련님의 외부 행사에는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게 전속 메이드의 역할이니까요.”

         

        “……응?”

         

        “제게 전할 용건이 끝나셨으면 저는 제 대기실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에단은 갑자기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던 내 손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 메이드!”

         

        “아직도 용건이 남으셨습니까?”

         

        “그게 아니라, 메이드가 뭔가 오해를 하고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네?”

         

        “…제대로 이해한 거 맞는 거지? 메이드가 나랑 같이 연회에 참가한다는 거 말야.”

         

         

        얘는 왜 당연한 얘기를 몇 번씩 묻는 거야.

         

        이미 블랙우드 저택에서 전속 메이드 근무만 2년을 넘게 해왔는데 설마 그 정도도 못 알아들을까 봐.

         

        애초에 연회 자리에 자기 전속 사용인을 데리고 참가하는 귀족이 희귀한 것도 아니고.

         

        굳이 재차 설명해야 하냐는 의미를 담아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한 차례 크게 끄덕였다.

         

         

        “물론,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그렇구나. 알았으면 됐어, 응.”

         

        “대기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뵈시지요, 도련님.”

         

        “응. 들어가서 쉬어, 메이드.”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에단과의 대화를 그렇게 마치고 난 후.

         

        나는 곧바로 내 대기실로 돌아와 저녁 시간까지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에단이 말한 ‘연회에 같이 참가하자’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건, 그로부터 사흘 후의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이해못함)

    연참 응원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을 바라고 한 연참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당연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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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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