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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이능과 맹약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비슷하다.

       

       

       “후배님? 방금 뭐라고요? 자, 뭐요?”

       “자버프. 그러니까 자기 버프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

       

         

       잠깐 생각 정리.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부분을 텍스트로 치환.

       이후 다시 타인에게 말로서 설명할 수 있도록 적당히 바꾼 후에.

         

       

       “거의 모든 바람 계열 이능력자는 보조에 특화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보조란 주로 팀원의 이동을 빠르게 해주거나, 혹은 회피 능력을 올려주는 것이고요.”

       “정확해요.”

       

         

       저것 말고도 팀원을 보조해주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더 있다.

       예로 들자면 바람을 유지시켜 원거리 공격을 한 번 정도는 튕겨내는 방식이라든가.

       혹은 반대로 아군의 원거리 공격을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로 틀어준다든가.

         

       하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은 역시나 저 둘이다.

       나머지는 다루기도 힘들고 소모 값이 너무 크기에.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소모 값은 이능력자의 체력이니 결코 허투루 여길 수도 없는 부분이다.

         

       

       “회장님은 보조가 아니라 전투에 임하고 싶어서. 일선에 서고 싶어서 그쪽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세심하게 깎으신 거 아닙니까.”

       “그, 후배님? 깎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아. 그러니까. 그쪽으로 노력하셨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하. 아무튼, 후배님의 말대로, 그렇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깎았다는 말을 이해했다며 네페르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원래는 보조 역할에 특화된 바람 이능을 공격 기술로. 분명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분들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능이 나타난 게 수십 년 전인데도 그렇다면 더더욱 말이죠.”

       “…듣기 분하지만, 네. 맞아요. 당장 이 바람 게열 이능을 순수 전투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저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죠.”

         

       

       재능 부분의 우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국 다른 전투군이 더 뛰어나서다.

         

       바람 계열 이능을 아무리 깎고 깎아 일선에 쓰일 기술을 다듬는다고 해도.

       결국 병기나 무투같이 순수 전투 부분의 다른 계열이 이미 앞에 있다.

         

       

       네페르티는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그 편견을 부수기 위해서.

       원래 있던 천부적인 재능에 약간의 고집까지 넣어 밀고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낭만, 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운명, 이라 부르기엔 너무 과한 것.

       그것이 현재 냉정하게 네페르티를 평가할 단어적 선택이라고 데우스는 생각했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요?”

       

       

       처연한 목소리.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반대와.

       그리고 누군가의 이능적 한계가 만나 깊은 절망감을 그려내고 있다.

       

         

       “아쉽네요. 내 이능이 좀 더 전투 쪽에 기운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병기나 무투는 바라지도 않았으니, 최소한 발화 쪽만 되었더라도. 그랬다면….”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회장님.”

       

         

       착각? 무엇을 착각해? 네페르티가 고개를 올린다.

         

       

       “저는 이제껏 회장님의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한 것이지, 아예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전혀 다릅니다. 아주, 완벽하게.”

       

         

       암. 다르지. 다르고말고. 스킬이 엉망이니 새로 찍자는 소리인데.

       포인트가 중구난방 식으로 찍혀있으니 효과가 적은 거 아닙니까.

       

         

       “현재 회장님이 사용하는 기술들. 몇 가지나 됩니까?”

        “기술요? 어… 그, 바람의 세기나 방향마다 전부 다른데.”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략적으로라도, 몇 가지나 되는지.”

       

         

       그러자 잠시 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던 네페르티가 답한다. 일곱 개, 라고.

       

         

       “일곱이라.”

       

         

       잠시 생각하던 데우스는 언젠가 보았던 골목시장을 구하던 백 프를 떠올렸다.

       거기서도 가짓수가 너무 많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부 내쳐버렸거든.

         

       

       “줄입시다. 반으로. 넷. 아니, 그것도 많군요. 셋으로 줄이죠.”

       “에? 아, 아니. 잠깐만요. 후배님? 그 기술 전부가 전투에 무조건 쓰이는….”

        “그래서 그 전투에 쓰이는 기술들이 최근 들어 효과는 나오고 있습니까?”

       “…!”

       

         

       아프다. 팩트로 두들겨 맞으니, 그것도 그 공격자가 데우스이니 더더욱 아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그 모든 기술을 다 때려 박았음에도.

       아까 전 그 여자는커녕 요람에 나타났던 악마조차 제대로 피해를 주지 못했지 않나.

       

         

       “그리고 그만큼의 이능을, 체력을. 남은 기술을 강화하는 데에 사용하는 겁니다.”

        “…남은 기술을, 강화한다고요?”

        “이런 식은 어떻겠습니까? 이를테면―”

       

         

       소설에서 보았던 것처럼.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던 것처럼.

       데우스는 최선을 다해서 이 중세 판타지라는 틀에 갇힌 한 명을 깨우치고자 했다.

       

         

       “강력한 회오리를 회장님 몸에 걸어서 바람의 세기나 속도를 높인다거나. 아니면 호버링이라고, 바람을 이용해 몸을 살짝 띄운 후 주변을 빠르게 돌면서 바람을 난사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거대한 폭풍 위에 올라타서 상대를 폭풍 한가운데에 가둬버린다거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말로만 들어도 뭔가 정신이 사납고 엄청나게 어려울 것 같은데.

       하여 네페르티가 가능성이란 걸 묻자 데우스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

        “에?”

        “이제부터 회장님이 하나씩, 모조리 다 해보셔야죠.”

       “엑?”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저렇게 던져두기만 하고 알아서 하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줄 것처럼 말해놓고서?

       

         

       “아아. 걱정은 하지 마세요. 회장님.”

       

       

       무슨 걱정을 하지 마?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오? 정말요, 후배님?”

        “예. 너무 시간이 넉넉하면. 혹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악마보다는 제가 회장님을 상대로 몰아붙이는 게 좀 더 좋을 겁니다.”

       “…?”

       

         

       순간 네페르티는 제 두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방금 뭐라고? 나를 누가 몰아붙인다고요? 아니죠? 농담이죠?

       

         

       “저만 믿으세요.”

       

         

       라고 말하며 데우스가 웃는데, 순간 악마가 다시 앞에 선 줄 알았다.

       자신만 믿으라면서 대체 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인지!

       그 광경을 보며 네페르티가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후배님! 내가 부실도 공짜로 넘겼잖아요!!’

         

       

       하지만 네페르티가 무슨 생각을 하든, 이미 데우스는 다른 곳으로 정신이 가있었다.

       

         

       ‘학생회장님 다음은 루시엘 선배겠지. 그나마 이쪽은 광휘 이능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급하게 할 필요는 없겠어.’

         

       

       낭만을 따르는 자에게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만큼 잔혹한 일도 없다.

       해서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응원을 했다. 그러나 그게 부족하다면, 다른 수를 쓴다.

       그토록 원하는 낭만을 유지하면서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물론 그 방법의 끝에는 항상 데우스 본인이 서있었지만 말이다.

       

         

       ‘굴려야지. 아주 데굴데굴.’

       

         

       그렇게나 욕을 하고, 또 투덜거렸지만. 적당히 좀 하라고 비명도 질렀지만.

       결국 데우스 본인도 그가 기억하는 영감탱이를 닮아가고 있었다.

       

         

       *

         

       

       “….”

       

         

       아스타로트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옥과는 다른 곳이다. 온통 시뻘겋고 새카만 곳이 아니다.

       푸르다. 밝다. 새삼 이곳이 다른 세상임을 깨닫게 된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당최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손끝만 겨우 까딱거린다. 목 아래론 아직도 감각이 없다.

       얼마나 세게 두들겨 맞았는지 갈갈이 찢기는 고통이 남아있다.

         

       

       “야.”

       

         

       고개조차 돌릴 수가 없어 옆쪽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그러자 오른편에서 남자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 걸지 마세요. 저도 숨 좀 돌립시다.”

       “까불지 말고.”

       “지금 이게 까부는 것으로 보인다면 제가 진짜 억울합니다. 아스타로트 님.”

       

         

       장난도 적당히 해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아님을 본인도 잘 안다.

       

         

       “…히. 히히. 히히히….”

       

         

       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어서. 당황스러워서. 그리고 흥미가 동해서.

       지옥에서조차 자신을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놈이 없었는데.

         

       상대방을 떠올린다. 속으로 자신을 보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알고 보니 한 주먹거리에 불과한 것이 하등생물이니 벌레이니 지껄이는 꼴을 보며.

       다 큰 어른이 웬 철없는 애새끼의 재롱을 보는 것과 똑같았을 것이다.

       

         

       “으히히히…!”

       “그렇다고 정신줄 놓지는 말고요.”

       

         

       어찌 되었든, 살았다. 그래. 참 신기하게도 목숨줄이 붙어있다.

       그 점이 이상해서 이유를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 가히 가관이다.

       

         

       “그러니까. 아는 대로 떠벌떠벌 다 말했다고?”

        “어쩝니까. 제가 거짓말에 능한 게 아닌데. 그러다 걸렸으면 장담하건데 저랑 공작, 둘 모두 사이좋게 사지가 뜯겨서 서로의 몸뚱이에 붙여졌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인간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무섭네.”

       

         

       두 악마, 두 남녀는 계속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몸도 엉망이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으로 충격이 워낙 컸기에.

       

       

       

       “어째 분위기가 안 돌아가실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넌 날 너무 잘 알아.”

       “아무렴요. 누구에게서 떨어져 나온 놈인데.”

       

         

       슬쩍 고개를 돌린 남자가 아스타로트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번엔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확실하게 경고를 해준다.

       

         

       “알아. 아는데.”

       

         

       히힛. 아스타로트가 미소를 짓는다.

         

       

       “나, 그 자식이랑 다시 한번 붙어볼래. 온몸의 귀찮음이 싹 가시는 느낌이야.”

       “아, 공작! 좀! 참으세요! …라고 말릴 힘조차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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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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