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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첫 수업까지 남은 기간──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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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를 피해서 건물 안에 틀어박힌 지 하루가 지났다. 다행히도 성기사들이 도어 브리칭을 한다던가, 환상 마법사를 잡아 오는 자에게 현상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등의 큰 움직임은 없었다. 

       

       며칠만 버티면 된다. 며칠만.

       

       혹시라도 성녀가 방문할까 봐, 머무르는 건물에 온갖 환상 마법을 덕지덕지 치대놓기도 했다. 이거면 유나가 와서 유나데스빔을 갈기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만.

       

       상상도 못 한 곳에서 갑자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늘이 무너졌으면 무너졌지, 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핑발레즈에게서 말이다.

       

       “서른하나, 서른둘⋯⋯.”

       

       “⋯⋯⋯⋯.”

       

       슬라임 두 마리가 점프했다가 착지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슬라임이 점프를 하건 공중제비를 돌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장소에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내 가슴팍은 몹시 부적절한 장소였다.

       

       미친 핑발레즈가 이제는 내 가슴에다가 대놓고 자기 가슴을 문대고 있었다. 노골적인 말이지만, 저 녀석이 노골적으로 구는데 뭐 어떡하라는 말인가.

       

       나름대로 끈끈하게 이어진 우정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정이란 어찌 이토록 위태롭다는 말인가. 

       

       착각이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이런 걸 당하고도 착각이라고 믿으면 오히려 그게 멍청한 일이다. 핑발레즈의 머리에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거다.

       

       돌이켜보면 마검을 땅에 묻을 때부터 전조가 있었다. 암만 쿨하게 팬티 토크를 나누는 사이라지만, 그렇고 그런 호기심을 한껏 부풀리는 대사를 치지 않았던가.

       

       나는 진지하게 조언했다.

       

       “뇌절이라고 너.”

       

       “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정말로 네 상식선에서⋯⋯ 외간 남자의 가슴팍에다가 가슴을 문대는 게 맞아?”

       

       핑발레즈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더니만 이렇게 말해오는 것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의식 과잉입니다. 미친 마법사님. 저는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그걸 왜 내 위에서 하냐고!”

       

       “굳이 사람 위가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제일 답답한 건, 핑발레즈는 자기가 뭔가⋯⋯ 정신적인 디버프에 걸렸다는 가정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마법의 가짓수는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대체 무슨 자신감이라는 말인가?

       

       항상 마탑주 유나를 헛소리로 괴롭히다가, 이제 내가 당하는 처지가 되니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내가 너무 심했구나. 다음에 자색 마탑으로 돌아가면 꼭 안아줘야지.

       

       나는 팔굽혀펴기를 계속하는 핑발레즈의 뺨을 붙잡고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설령 맞장 한 번을 뜨는 한이 있어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

       

       “정신 방벽에는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 미친 마법사님.”

       

       “너 마법 걸린 거 맞는 것 같다니까? 남자를 여자로 보는 마법이라든지, 아니면 성욕 증가 같은 게 걸린 게 분명하다니까⋯⋯?”

       

       “하, 때려죽여도 성욕만큼은 아닙니다.”

       

       “그럼, 이 가슴부터 좀 치우고 그런 말을 해!!”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 건 삼가주시죠. 수컷의 본능은 이해하지만, 서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나는 뒷목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꼈다. 침착하자.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다. 상대는 마법에 걸린 가엾은 환자다. 보살피고 아껴줘야 한다. 어디 한번 엿이나 먹어보라고 내버려두면 안 된다.

       

       아니 근데 진짜.

       

       성욕 억제마법이 아니었다면 일이 터졌어도 열댓 번은 터졌을 텐데, 내 인내심을 칭찬해 줄망정 이토록 방만하게 구는 것이 맞나? 괘씸하니까 약간의 수고비 정도는 챙겨도 되는 게 아닐⋯⋯

       

       아니야⋯⋯!!

       

       나는 심적 고통에 몸부림쳤다.

       

       “부탁한다 핑발레즈야⋯⋯ 나 너무 힘들어. 내가 평생소원이다. 마력으로 정신 세척 한 번만 하자.”

       

       “⋯⋯뭔데 그렇게 심각하십니까?”

       

       내가 부탁의 최고급형, 그랜절까지 박으니 드디어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핑발레즈는 이 지경까지 와서도 긴가민가한 얼굴로, 손가락에 마력을 모았다.

       

       콜라를 쏟아서 끈적거리는 허벅지를 물로 씻어내는 것과 같다. 마력의 흐름으로 머리를 한번 깨끗하게 세척해버리는 요령인데, 설치해 둔 정신 방벽에도 기스가 난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핑발레즈는 그래서 망설이던 것이다. 기껏 구축한 정신 방벽의 몇 퍼센트는 날아가 버릴 테니, 시도 때도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핑발레즈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자기 이마에 마력 담긴 딱밤을 날렸다.

       

       

       “소원이라니 해 드리죠. 보십시오, 제가 최면에 걸렸을 리가 없⋯⋯ 이런 씨발!”

       

       “⋯⋯돌아왔구나!”

       

       나는 감격에 환호성을 질렀다. 암컷 타락했던 내 부랄친구가 드디어 사내아이로 돌아온 것이다! 너무나도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복숭아 하나 사 먹어야겠다고 말하니까 ‘여기에도 잘 익은 게 두 개나 있지 않습니까.’ 라며 팔짱을 끼고.

       

       야밤에 심심해져서, 적탑 마법사에게는 과연 무슨 스타킹이 어울릴까를 물었더니 ‘제 것도 골라주시겠습니까?’ 라고 대답하고.

       

       무빙 하나하나에서 진득한 암컷 냄새를 풍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언성 한 번 높인 적 없던 핑발레즈가 내뱉은 욕설에는, 상남자의 기상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기합이다. 좋았다. 나는 확인차 물어봤다.

       

       “그동안의 추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제법 즐기셨겠군요. 감사 인사는 됐습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고 손을 내젓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핑발레즈가 맞았다.

       

       “⋯⋯진짜 돌아왔구나!!”

       

       나는 핑발레즈를 껴안고 만세를 불렀다. 마침내 친구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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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긴급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아카데미에 뭔가 야시꾸리하고 이상한 게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핑발레즈를 정확하게 겨냥한 저격은 아니었다. 적탑의 마법사나, 지나가던 행인들을 붙잡아 실험해 본 결과, 공통적으로 불안감이나 두려움의 증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수치로 나타내면 1% 정도.

       

       다른 사람들은 불안 증폭이 걸렸는데, 왜 핑발레즈 혼자서 성욕 증폭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천재 대마법사(예정)인 나조차도 핑발레즈의 정신 방벽은 쉽게 뚫어낼 수 없다. 그런 핑발레즈가 당했다면, 아카데미 전체가 영향 아래일 것이다. 출력은 약하지만, 몹시 정교한 마법이었다.

       

       핑발레즈는 드물게도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상당히 교묘한 수작으로 보입니다. 전혀 감지할 수가 없군요.”

       

       “기존의 방법으로는 잡아내는 게 불가능한 것 같은데.”

       

       너무 효과가 약하다 보니까 오히려 추적이 힘들었다. 감정을 2배로 증폭시키는 마법이라든가 하면 감지도 추적도 용이하지만, 1% 깔짝 올리는 마법은 산들바람 쫓아가는 격이었다.

       

       “⋯⋯방법이 없습니까?”

       

       우득. 우드득.

       핑발레즈의 손아귀에서 폭력적인 소리가 났다.

       

       나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라도 누군가의 모략에 의해, 남자인 친구한테 교태를 부리게 됐다면, 누구인지는 몰라도 반으로 접어 주고 싶었을 거다.

       

       저 분노가 나한테 옮겨붙기 전에 머리를 굴렸다.

       

       “방법은 언제나 있지. 나는 천재 마법사니까⋯⋯. 『상태창』!”

       

       띠롱.

       

       반투명한 사각형 홀로그램이 눈앞에 떠올랐다.

       

       물론, 이건 전생 특전으로 받은 상태창 같은 게 아니다. 환상 마법으로 손수 만든 거다. 스테이터스를 올릴 수 있다든가, 뭔가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전부를 파악할 수 있다든가 하는 기능은 없다.

       

       다만, 감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수치로 나타낼 수 있었다.

       

       호기심 : 50.3

       

       이 상태에서 정신 방벽을 살짝 열었다.

       

       호기심 : 50.8 (+0.5)

       

       내가 본래 느끼는 감정 옆에, 증폭된 수치를 감지해서 옆에 띄웠다. 

       

       “마법은 보통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니까, 마법의 중심으로 갈수록 효과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지. 숫자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추적하면, 진원지를 파악할 수 있을 거다.”

       

       “궁금해서 묻습니다만, 호기심 50은 어느 정도 되는 수치입니까?”

       

       “자색 마탑에서 평균치 내 보니까 20쯤 되던데? 마탑주가 나랑 비슷하게 45인가 나왔고⋯⋯.”

       

       “그 자색 마탑의 평균치가 20이면, 일반적인 수치는 5쯤 되겠군요.”

       

       “음해야.”

       

       자탑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거냐. 사람이 뭐, 자기 남동생이랑 몸 좀 바꿔보고 싶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 정도면 건전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카데미에 깔린 출처 불명의 감정 증폭을 추적할 준비는 끝났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함부로 나다니기에 참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는 건데. 그것도 비책이 있었다. 변장이다. 남자 마법사랑 정장 차림 여자가 같이 다니니까 눈에 띄는 것 아니겠는가.

       

       “『덧씌우기 : 성별반전』.”

       

       홀로그램을 뒤집어썼다. 마법이 잘 먹혔나 거울을 확인하니, 제대로 먹혔다. 흑발자안의 긴 생머리 미소녀가 우쭐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목소리를 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완료. 너도 걸어줄⋯⋯ 그렇게 보지 마.”

       

       “예?”

       

       “그렇게 보지 말라고.”

       

       순간 야생 사자가 눈앞에 있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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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커트 혹시 들춰봐도 되냐고 세 번째 물어보는 핑발레즈를 격퇴하며, 나는 어느 수상한 건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사람의 발길이 드문 으슥한 곳도 있었다.

       

       사건이 터졌거나, 건물이 노후화됐거나 해서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잊혀진 곳 말이다. 그런 폐건물 중 하나에서 신호가 잡혔다.

       

       “⋯⋯딱히 수상한 건 보이지 않는군요.”

       

       “아니, 척하면 척이지. 카펫부터 들춰 봐.”

       

       핑발레즈가 먼지 쌓인 카펫을 걷어내자, 지하로 이어지는 문이 나타났다. 물론 꽁꽁 숨겨 둔 만큼 지하실 문에도 마법적인 방비가 되어있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또 환상 마법이었다. 

       

       “얍.”

       

       가볍게 발을 굴러 박살 냈다. 

       

       “그 기합은, 유혹하시는 겁니까?”

       

       “아잇, 진짜⋯⋯.”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 TS 홀로그램을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발레즈의 눈깔에서는 야생 사자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중심에 가까워지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건가.

       

       얼른 처리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지겠다 싶어, 문을 열고 지하로 급히 내려갔다.

       

       통로는 제법 깊었다. 한참이나 사다리를 잡고 내려가, 팔다리가 좀 저려올 즈음에서야 바닥을 밟을 수 있었다. 통로 벽을 툭툭 두들겨봤다. 견고했다.

       

       이렇게까지 안정적인 시설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들었겠는데.

       

       핑발레즈가 주먹을 꽉 쥐고 앞장섰다.

       

       “제 뒤에 붙어 계시죠.”

       

       “너 걸음걸이 이상해. 똑바로 걸어.”

       

       “⋯⋯신경 쓰이면 보지 말든가 하십시오.”

       

       “그렇게 걷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눈 감고 있을게.”

       

       뒤돌아본 핑발레즈의 눈깔이 완전히 돌아있어서 쫄았다.

       

       마법의 영향을 받을수록, 올라가는 성욕과 함께 핑발레즈의 분노 수치도 쭉쭉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유혹하듯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걷다가도, 답답해 죽겠다는 한숨을 내뱉는 걸 보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핑발레즈는 저주라도 걸려 있는 건가. 

       

       침묵 속에서 수십 분 걸으니, 커다란 돔 형태의 빈 공간과 함께, 지면에 빼곡하게 그려진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스케일과 정교함에 감탄했다.

       

       “이건⋯⋯ 대단한데. 단독 마법진이 아니야. 위성 마법진이 있는 건가?”

       

       “중심 마법진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를 읽어낼 수 없게끔,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 마법진이군요. 맹인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으면, 벽이나 나무라고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차분히 관찰하자, 마법진의 기능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의 마법진은 핵심 축이자 사령부 역할이었다.

       

       짚이는 게 있었다.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다 보면 약간의 마력을 품고는 있지만, 딱히 마법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은 것들이 종종 보였다. 벽면에 적어 놓은 낙서라든가, 가게 간판에 그려진 마법진 모양 장식이라던가.

       

       파편화해서 숨겨, 아카데미 전체에 비밀스럽게 마법진을 깔아놓은 후에. 이 핵심 마법진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그 효과란⋯⋯.

       

       “⋯⋯대상이 느끼는 가장 커다란 감정을, 1% 증폭한다.”

       

       의심을 품은 자는 의심을 부추기고, 사랑을 품은 자는 사랑을 부추기고, 질투를 품은 자는 질투를 부추긴다. 아주 은밀하고 은근하게 말이다.

       

       고정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퍼센트로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대상이 격한 감정을 품고 있을수록 마법진의 효과는 높을 것이다. 

       

       “⋯⋯⋯⋯?”

       

       나는 고개를 돌려 핑발레즈를 바라봤다. 남들은 불안감이나 고통, 그런 감정이 증폭되고 있을 때. 끽해야 1% 증폭된 것만으로도 가슴 비비고 난리가 난 핑발레즈는 그러면.

       

       “⋯⋯뭐요.”

       

       “아, 아니. 아무것도⋯⋯.”

       

       핑발레즈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귀 끝이 새빨갰다. 얘도 부끄러움이라는 걸 타는구나. 

       

       그녀는 입을 우물거리더니,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제가 몽마라서 그렇습니다. 몽마는, 태어날 때부터 성욕이 왕성하니까요.”

       

       “⋯⋯서큐버스?”

       

       “예.”

       

       “그, 남자 유혹해서 정기 빨아먹고 다니는⋯⋯ 야, 핑발레즈, 뒤에!”

       

       

       쿠르르르르-!

       

       핑발레즈의 뒤로 3m쯤 되는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났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시설에, 방위 시스템이 없을 리가 없었다. 패착이다. 나는 마법으로 요격하려다가──

       

       “흐아아아악!!”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골렘이었다. 환상 마법사의 천적 말이다.

       

       핑발레즈는 자기 뒤에서 골렘이 몸을 일으키고,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려 내리찍으려 할 때에도.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갖고 태어난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렇게 살기 싫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기만으로 사랑을 나누고⋯⋯ 짝을 바꿔가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 말입니다.”

       

       “알았으니까 일단 도망⋯⋯!”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미친 마법사님. 야밤에 당신의 정기를 빼먹으러 침대 속으로 숨어들 일은 없으니까.”

       

       “피하라고!”

       

       지금 달려가서 핑발레즈를 낚아채면, 골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 계산하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전신에 마력을 불어넣고 한 발짝을 떼려고 할 때.

       

       차르르르르륵-.

       

       사슬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화(羽化) – 『본망구속(本望拘束)』.”

       

       허공에서 나타난 사슬 수십 가닥이, 크게 원을 그리며 조여들었다. 

       

       차르르르-! 카가강!

       

       골렘의 팔이 묶였다. 핑발레즈의 팔이 묶였다. 골렘의 다리가 묶였다. 핑발레즈의 다리가 묶였다. 쇠사슬은 핑발레즈를 구속함과 동시에, 골렘 또한 구속했다. 

       

       쇠사슬에 칭칭 감싸여 묶인 핑발레즈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순애를 좋아하거든요.”

       

       으지직. 쇠사슬이 거세게 파고들어, 서늘한 금속 쓸리는 소리가 지나가고 나자. 골렘은 그대로 수십 조각으로 박살 나 바윗덩어리로 돌아갔다. 

       

       “⋯⋯⋯⋯.”

       

       개멋있었다.

       

       핑발레즈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바동대다가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골렘을 박살 낸 사슬은 사라졌는데, 왜 널 묶어 놓은 사슬은 남아 있냐⋯⋯?”

       

       “그런 우화니까요. 원래는 스스로를 억제하는 기능뿐입니다. 약간 응용력을 발휘해서 전투에 써먹는 거지.”

       

       자기 우화에 꽁꽁 묶인 핑발레즈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언제 풀리는데, 그러면.”

       

       “위력에 따라서 구속 시간도 다른데, 이번에는 1시간쯤입니다.”

       

       “⋯⋯너, 지금 기분 나쁠 정도로 눈동자가 초롱초롱한데.”

       

       “우화를 발동하는 동안은, 모든 번뇌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핑발레즈는 온화하게 웃었다. 주변이 화사하게 밝아지는 것 같은, 뭔가 득도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녀는 우화를 발동하는 동안 현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럼 너는 레즈가 아닌 거냐⋯⋯?”

       

       “양쪽 모두 상관없다는 쪽에 가깝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성과의 접촉은 번뇌가 증폭되니까요. 가급적 지양하고 있습니다.”

       

       “⋯⋯⋯⋯.”

       

       꼽을 안 주고 술술 대답하는 게, 이거. 모든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거리낌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것 같았다. 뭘 물어봐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는 상태인 셈이다.

       

       지금이라면, 핑발레즈는 뭐든 대답해 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우리 친구지?”

       

       “네.”

       

       나는 만족하고,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

       

       아카데미 전역에 감정 증폭을 걸어버리는 마법진은 내가 접수하기로 했다. 사람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건 나쁜 일이지 않은가. 이게 아카데미 쪽에서 만든 건지, 아니면 사악한 흑마법사의 모략인지, 미친 학생들의 업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 거다. 마법진을 개조하며 뚝딱거리느라 1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뭐, 어떻게 쓰실 생각입니까?”

       

       “출력 보조.”

       

       아카데미생 전원에게 환상 마법을 거는 건 무리라고 했었지. 이제는 아니다. 이 마법진을 개조해다가 쓰면, 내 수업을 듣는 모두에게 화끈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첫 수업이 다가오고 있다. 환상 마법 바이럴의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의 후기는 짧게 쓸게요. 내일 또 봐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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