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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너무 끔찍한 범죄예요!”

         

       온몸을 덜덜 떤 파스텔은 사정을 들으러 온 기사에게 열변했다.

         

       “선량하게 지내던 저를 죽이겠다고 교단에 살인 청부까지 하다니! 지상에 백만 가지 죄가 있다면 그중에서도 최상위에 들만한 죄악이죠!”

       “그, 그렇습니까?”

         

       기사가 얼떨떨해했다. 그럴만했다. 살인 청부의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칭 피해자인 크래프트 후작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파스텔은 더 열변했다.

         

       “프레지 상단과 싱클레어 상단주는 사악한 악마 숭배자나 마찬가지예요!”

       『악마가 아니라 악신이다.』

       “사악한 악신 숭배자!”

         

       잘못 말한 걸 숨기듯 책상을 탕 쳤다.

         

       강렬한 눈으로 기사를 바라봤다.

         

       “제가 우연한 사고로 새에게 물려간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교단원들이 둥지로 찾아왔죠! 그리곤 혼란스러워하던 절 비공정으로 납치해 버렸어요!”

         

       파스텔은 양손으로 볼을 누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흐아아~!”

         

       너무 무서워.

         

       “납치로 끝이 아니었어요! 사실 비공정으로 납치한 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절 죽이려는 계획이었거든요!”

         

       덜덜덜.

         

       “봐봐요! 이렇게이렇게!”

         

       상상 속 검날을 목에 대는 시늉을 했다.

         

       차갑고 서늘한 금속의 감촉.

         

       “히야악~!”

         

       파스텔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정말 그랬다는 건 아니고 대강 그런 느낌으로 열심히 표정 연기를 했다.

         

       그러다 정색했다.

         

       “하지만 누구나 공포에 질릴 그 순간 용감한 전 한치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했어요! 오히려 사악한 교단원에게 호통쳤죠!”

         

       허공을 향해 삿대질했다.

         

       “선량한 절 굳이 죽이려 들다니! 분명 사악한 흑막이 있는 게 분명해요! 양심에 손을 얹고 당장 밝히세요!”

         

       파스텔은 양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교단원 중 하나가 괴로워하며 진상을 알려줬죠. 바로 프레지 상단과 싱클레어 상단주가 살인 청부를 했다는 것을!”

         

       두둥.

         

       사악한 진실이 드러나다.

         

       “흐아아~!”

         

       파스텔은 굉장히 놀라워했다.

         

       우아우아.

         

       멍하게 듣던 기사가 정신을 차렸다.

         

       “혹시 그 교단원은 어디 있습니까?”

         

       자칭 피해자의 증언만 이어지는 상황에 객관적 증인을 찾고자 하는 행위였다.

         

       파스텔은 안타까워했다.

         

       “비공정이 추락하며 그만……. 하지만 그 교단원이 보여준 양심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기사님, 양심 있는 교단원의 증언에 꼭 보답해 주세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울렸다.

         

       기사가 살짝 곤혹스러워하며 머뭇거렸다.

         

       파스텔은 표정이 점점 없어지더니 차가운 얼굴로 기사를 응시했다.

         

       기사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파스텔은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기사님이세요! 교단과 관련된 일이니 아주 먼지 한 톨도 남기지 말고 응징해 버리세요!”

         

       빠샤빠샤!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기사가 기괴해하는 눈빛으로 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

         

         

         

       프레지 상단을 통째로 뒤집어엎어 조사하고 하늘고래를 포위한 채 교단의 잔당을 수색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프레지 상단의 장부가 공개되고 별 상관도 없던 죄목들이 새로 발견되는 등 깔끔하게 일이 처리되어 갔다.

         

       한동안 과정을 지켜보던 파스텔은 당장은 신경을 끄고 사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상단을 법률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니 어차피 시일이 걸릴 사안이니까.

         

       제일 처음 한 건 마석 나이프에 모인 존재의 격을 냠냠 하는 일이었다.

         

       『절대 안 돼. 당장 내놔라.』

         

       악마가 단호히 손을 내밀었다.

         

       “싫어요!”

         

       파스텔은 고개를 휙휙 젓고는 나이프를 꼭 끌어안았다. 그동안 악마가 계속 달라고 말했지만 잠잘 때도 씻을 때도 가지고 다니며 나이프를 지켜냈다.

         

       『어린 크래프트, 도대체 그 위험한 걸 왜 먹으려는 거지? 어차피 시일이 흐르면 넌 강해질 수 있다. 본질을 비틀고 정신을 흔드는 괜한 영역에 손을 댈 필요가 없어.』

       “수성 친구가 말하길, 자기한텐 금성 친구가 필요하대요!”

         

       태양계엔 더 많은 가족이 필요해!

         

       악마가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 거냐. 설명도 안 해주고, 후우. 내면세계에 매몰되지 마라. 내면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라곤 했지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라는 소리는 아니야. 사실 자연은 무질서하다. 불완전한 상태야말로 자연스럽지.』

       “몰라요!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파스텔은 그냥 고개를 휙휙 저었다.

         

       실랑이가 계속되자 악마가 두 손을 들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내 도움이 없으면 존재의 격을 추출도 못 하며 계속 쌓다가 마석 나이프를 못 쓰게 될 테니.』

         

       악마가 시범을 보이듯이 버터나이프를 가져왔다.

         

       『자, 봐라.』

         

       버터나이프를 양쪽으로 잡더니 구부렸다. 얇은 버터나이프가 완전히 접혔다.

         

       『존재의 격이 연료통을 가득 채우면 에너지를 이기지 못한 나이프가 내부부터 완전히 망가지겠지.』

         

       악마가 파스텔의 눈앞에 구부러진 버터나이프를 들이댔다. 버터나이프인데 버터도 못 바를 상태였다.

         

       『이게 나이프 친구의 미래다.』

         

       으아아.

         

       나이프 친구의 미래!

         

       “그럴 수가……!”

         

       파스텔은 마석 나이프를 꼭 끌어안은 채 몸을 떨었다.

         

       덜덜덜.

         

       『계속 고집을 피울 거면 어서 나이프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해라.』

         

       악마가 파스텔 대신 인사하듯이 나이프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나이프 친구.』

         

       으아아.

         

       파스텔의 입이 벌어졌다.

         

       “나이프 친구우!”

         

       힘이 빠진 파스텔은 풀썩 주저앉았다. 나이프를 더 꼭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내가 미안해애! 널 지켜주지 못했어! 친구 자격이 없어!”

         

       오열.

         

       오여얼.

         

       악마가 몸을 숙이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나한테 넘기면 나이프 친구를 비극에서 구해낼 수 있지. 친구를 살리고 싶다면 어서 넘겨라.』

         

       악마의 속삭임.

         

       흐아아.

         

       “뭐든 드릴게요! 제 영혼이든 심장이든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이것이 악마를 상대하는 약자의 기분?

         

       『그런 건 필요 없어. 나이프 친구만 내게 넘기면 된다.』

         

       악마가 손을 까딱였다.

         

       “그럴 수가, 그럴 수가……!”

         

       파스텔은 몸을 떨다가 단호히 외쳤다.

         

       “전 친구를 버리지 않아요! 하물며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요!”

         

       나이프를 꼭 끌어안았다.

         

       “나이프 친구! 내가 지켜줄게!”

         

       악마가 이마를 짚었다. 나쁜 감정이 올라오는지 볼을 씰룩이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

         

       자괴감이 든 듯한 붉은 눈동자가 힘없이 내려봤다.

         

       『수준에 맞춰줬으면 한 번쯤은 져줘야 도리 아닌가.』

         

       파스텔은 나이프를 소중하게 끌어안곤 새침하게 올려봤다.

         

       “저도 악마님 수준에 맞춰드린 거거든요!”

         

       무생물과 작별 인사라니.

         

       아이 창피해라.

         

       파스텔은 절대 안 할 일이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악마가 단호히 말했다.

         

       “그럴 수가……!”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내 위상은 어디에?!

         

       언제부터 무생물과도 작별 인사를 하는 애로 여겨지게 된 거지?!

         

       “미안해, 나이프 친구! 널 지키다 보니 이렇게나 부끄러운 친구가 돼버렸어!”

         

       악마가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필요는 없겠군. 넌 원래도 부끄러운 친구였다.』

         

       사실을 말하는 듯한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럴 수가……!”

         

       이건 꽤 충격이라서 파스텔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 원래도 부끄러운 친구?

         

       반박할 수가 없어……!

         

       으아아.

         

       악마가 다소 후련해했다.

         

       『빨래하고 올 테니 자아 성찰을 열심히 하고 있어봐라. 평소와 다른 반성한 상태가 됐으면 좋겠군.』

         

       악마가 희망 사항을 듬뿍 담은 말을 남기곤 떠났다.

         

       파스텔은 고개를 떨궜다.

         

       악마님, 완전 단호해.

         

       이대로라면 존재의 격을 섭취하긴커녕 악마님 악마님! 으에엥! 이 되고 말 거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악마님 말이 맞아! 언제까지 부끄러운 친구로 있을 순 없지!”

         

       다짐한 파스텔은 악마의 희망 사항대로 말 잘 듣는 아이가 되기로 하……진 않고 스스로 나이프에서 존재의 격을 뽑는 요령을 익혔다.

         

       “어차피 전대 마왕이 후계자를 위해 준비한 안배라면 분명 후계자 혼자 섭취할 방법이 있다는 것! 악마님한테 의존하지 않고도 나 혼자서 할 수 있을 거야!”

         

       나이프를 두고 별짓을 다 했다.

         

       손을 뻗고 얍얍.

         

       마석 조종의 권능을 발휘하자 마석 나이프 내부의 마석이 반응하며 나이프가 떠올랐다.

         

       현재 가진 권능은 마석 섭취의 권능과 마석 조종의 권능.

         

       마석 섭취는 마석을 섭취할수록 신체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니 지금은 도움이 안 된다. 의심스러운 건 역시 마석 조종의 권능이다.

         

       마석 나이프를 어찌저찌 조작해서 존재의 격을 추출하는 게 아닐까?

         

       “얍! 얍!”

         

       입으로 내는 소리는 가벼웠지만 파스텔은 매우 진지한 마음이었다.

         

       부유한 나이프를 회전시키고 움직이길 여러 번 시도하다가 정신을 더 집중해 섬세한 조작을 했다.

         

       “어차피 내부의 마석을 조종하는 거니까…….”

         

       내부를 어찌어찌하면.

         

       마석 나이프의 내부 회로를 조금씩 건드렸다.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러운 터치만 계속해서 그런지 반응이 없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 반응했다.

         

       나이프 날에서 검은 점액질이 스며 나오더니 둥둥 떠올랐다. 먹기 좋게 마기와 섞인 존재의 격이었다.

         

       파스텔은 입꼬리가 단박에 올라갔다.

         

       악마님의 도움?

         

       노우노우노우.

         

       내겐 필요치 않다.

         

       검은 젤리를 바로 입에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파스텔은 묘한 표정으로 고민하곤 검은 젤리를 슬쩍 등 뒤에 숨겼다. 젤리는 둥실 떠다니며 안정적으로 숨겨졌다.

         

       잠시 기다리자 빨래를 마친 악마가 돌아왔다. 붉은 눈동자가 소녀를 내려봤다.

         

       『반성은 잘했나?』

         

       파스텔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흐에엥~!”

         

       연기톤의 울음소리에 악마가 의심쩍게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성했으면 나이프를 내놔라.』

       “흐에엥~!”

         

       파스텔은 더 서글프게 울다가 나이프를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이프 친구를 악마에게 건넸다.

         

       순순한 태도가 이상한지 악마가 받지 않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나이프를 잡았다.

         

       여전히 순순한 태도에 악마가 미심쩍어하며 고심했다.

         

       『흠, 알겠군. 지난번처럼 내가 추출해 놓으면 몰래 먹으려는 건가? 이미 다 들켰다, 어린 크래프트.』

         

       파스텔은 속내를 완전 들킨 것처럼 양손으로 볼을 누르곤 경악했다.

         

       “경악~!”

       『……뭐지?』

         

       악마가 매우 찝찝해했다. 그러다 결국 나이프가 손에 들어왔으니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감정을 털어냈다.

         

       『또 엎어지는 척을 해도 이번엔 안 당할 거니 그런 줄 알아라.』

         

       파스텔은 더 크게 경악했다.

         

       “두 배로 경악~!”

       『……흠.』

         

       악마가 굉장히 찝찝해했다. 떨떠름하게 소녀를 바라봤다.

         

       『어른은 놀리는 게 아니야.』

         

       은근히 겁주는 듯한 목소리였다.

         

       허억.

         

       그런 말을 하시면.

         

       그런 말을 하시면……!

         

       배덕감에 정신이 휙 돌아가 버린 파스텔은 흥분하며 몸을 돌렸다.

         

       “악마님! 악마님! 이거 보세요!”

         

       검은 젤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맛있는 젤리~!”

         

       빠밤~!

         

       악마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그리고그리고!”

         

       파스텔은 완전 흥분하며 신나게 외쳤다.

         

       “악마님 머리 위에서 노는 파스텔~!”

         

       젤리를 입에 넣었다.

         

       냠-!

         

       우물우물.

         

       꿀꺽.

         

       파스텔은 의기양양하게 다 먹은 입안을 보여줬다.

         

       그리곤 메롱했다.

         

       메롱~!

         

       “다 먹었네요~!”

         

       악마가 숨을 들이켜며 충격받았다. 비틀거리곤 천천히 손을 들더니 뒷목을 잡았다.

         

       『내가,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거지…….』

         

       힘없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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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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