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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공연계에는 ‘썩은 토마토’라는 관용구가 있다.

       이는 형편없는 공연을 봤을 때 관객들이 토마토를 무대 위로 던진다는 속설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것은 실력이 나쁜 연기자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했고, 혹은 “그 공연을 보고 나니 썩은 토마토를 찾게 되더라.”라고 식으로 공연에 대한 촌평을 날릴 때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무대 위에 토마토가 던져졌다는 기록은 찾기 쉽지 않았다.

         

       연극과 서커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인 <크리스티앙 가이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공식적으로 무대 위에 토마토가 던져진 사례는 딱 한 번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루즈에서도 어쩌면 한 건이 추가될지 모르겠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개막식이 열리는 날.

       장미 풍차 카바레 앞 광장은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재주꾼들에게 개방되었다.

         

       주최 측에 공간을 신청해서 배정을 받으면, 그곳에 무대를 세우고 자유롭게 자신의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축제에 어울리는 신나는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악기들이 흥겨운 가락을 연주했으며, 곡예사들이 재주를 넘고, 배우들이 짧은 극을 연기했다.

         

       그 가운데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두 남자가 <알렌과 조>라는 간판을 세우고 희극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이 바보짓을 하면 다른 한 명은 면박을 주는 형식에 슬랩스틱을 섞은 전형적인 2인 코미디였다.

         

       그러나 둘의 공연에 ‘전형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은 다른 전형적인 작품을 모독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있었다.

         

       전형적인 건 딱 그 형식까지였다.

       내용물은 나쁜 의미에서 신선했다.

         

       대사는 비문투성이였고, 개그는 뜬금없었으며, 무엇보다 극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제 먹은 생선조림에 대한 시골 촌장의 불평이 어떻게 비행선 기장과 부기장의 만담으로 이어지는지 그 과정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본도 대본이지만,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문제였다.

         

       어색한 대사 처리에, 맥끊는 호흡, 자연스럽지 못한 몸개그.

       둘은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던 관객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욕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만! 그만해라!”

       “우우, 재미없다!”

       “무대 접고 꺼져!”

         

       웃음과 박수가 오가는 축제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고함과 야유가 쏟아지는 곳이 이곳이었다.

         

       호응이 좋지 않아도 계속 연기를 하던 알렌과 조.

       둘은 성난 관객들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사색이 되어 무대에서 내려갔다.

       더 계속했다간 무언가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푸하하! 내가 했던 말이 맞지? 그게 너희들 진짜 실력이야!”

         

       무대 뒤에 있던 뱀 조련사 수아브가 둘을 보며 깔깔 웃어댔다.

         

       그녀는 몇 주 전의 사건이 있은 뒤로 알렌과 조와 의기투합 해서 같이 다니고 있었다.

         

       첫 만남은 최악의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의외로 성격적으로 세 사람은 잘 맞았다. 그렇게 몇 번 어울리다가 어느새 숙소도 같은 곳에 잡게 되고 공연도 서로 도와주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수아브는 둘의 공연이 차마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본을 짜는 능력은 물론 연기력도 부족하고, 웃음 포인트까지 좀 엇나가 있었다.

         

       원더스타인에게 칭찬을 받은 뒤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둘은 자신들의 재능이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고 자축을 했고, 그렇게 우쭐해져서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본을 고치고, 연기를 수정하고, 자세도 바꾸고.

       뭔가 엄청 열심히 하는데 아무리 봐도 삽질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이건 아니라고 둘에게 조언했으나 둘은 듣지 않았다.

         

       관객들의 평이 안 좋아도 예술의 길은 멀고 험할 뿐이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렇게 우기고 우기더니 결국 회심의 무대라던 오늘은 공연 중간에 내려오는 굴욕까지 겪게 되었다.

         

       알렌과 조는 중절모를 푹 내려썼다.

       고집에 고집을 부린 결과가 이거라니.

       그들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썩은 토마토네.”

         

       관중들 틈에서 둘의 공연을 지켜보던 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악마가 이상한 방식으로 또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알렌과 조.

         

       엘라는 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둘이 연기자로 대성하기는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원더스타인이 둘을 초청하는 것을 막지 않은 이유는 둘이 보인 엄청난 검술 실력 때문이었다.

       그런 실력이 있으면 코미디를 할 게 아니라, 검무나 칼을 활용한 기예를 단련하는 게 나았다.

         

       일단 서커스단에 들어오게 된다면 엘라는 둘에게 코미디를 포기하게 하고 그 방향으로 교육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둘이 입단 제의를 거절했을 때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 실력으로 밖에 나가서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전히 망가진 모습을 보자 그건 그것대로 안쓰러웠다.

         

       엘라는 장미 풍차 앞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곧 개막식이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장미 풍차 카바레의 뒷문으로 향했다.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았던 그녀는 카바레 앞 광장을 돌아다니며 노상 공연들을 구경했다.

         

       극장에 미리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지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카바레 직원들은 개막식이라고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얼쩡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욕 들어 먹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그녀는 이제 일개 곡예사가 아니었다.

       한 서커스단의 부단장이었다.

       그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서커스단 전체가 욕을 먹는다.

       나아가 그녀에게 편의를 봐준 극장 직원들까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될 때까지 이렇게 밖에서 서성이기로 한 것이다.

         

       엘라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처럼 생긴 소녀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마야.

       남들이 보면 둘이 같은 일행인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서로 몇 미터나 떨어져 있는 데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고, 시선을 두는 곳도 서로 달랐다.

         

       둘은 어제 다툰 뒤로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다.

       아직 앙금이 풀리지 않은 탓이다.

         

       물론 원더스타인 앞에서는 별일 없는 척했다. 그것은 둘이 세운 암묵적 합의였으니까.

         

       그래서 그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다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둘은 언제 함께했냐는 듯 서로 멀찍이 떨어졌다.

         

       엘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는 마야를 보며 코웃음을 픽 쳤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개막식에 함께 들여보내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그녀는 부탁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뒤만 조용히 쫓아다녔다.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아! 그럼 혼자 가야겠다! 챙겨야 할 사람 없어서 좋고!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오고 싶으면 오든가 라는 심정으로 슬쩍 힌트를 던졌다. 대뜸 호의를 베풀기에는 자신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그냥 그녀를 내버려 두고 혼자 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그녀는 이제 같은 단원이었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아버렸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엘라 양! 딱 맞춰서 왔군요. 혼자 왔어요?”

         

       카바레의 쪽문.

       오늘 그녀를 들여보내 주기로 한 남자가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카바레의 배우인 파리스였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엘라를 맞이했다.

         

       “일행은 없나요?”

       “아, 한 명 있어요.”

         

       엘라의 뒤로 마야가 조용히 다가섰다.

       여전히 둘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마야의 외모를 훑어보고 작은 감탄사를 냈다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친구인가요?”

         

       친구라는 말에 엘라와 마야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순간 둘은 알아차렸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아뇨.”

         

       둘은 파리스의 안내를 받아 카바레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직원들이 어딘가로 달려가거나, 누군가를 찾거나,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파리스는 마야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할 만한 질문을 몇 번 던졌으나, 마야는 그 질문을 모두 단답형으로 대답함으로써 그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어이, 파리스! 거기서 뭐 하는 거냐! 기자재 옮겨야지!”

       “이런! 잠깐 여기 휴게실에서 기다려줄래요? 금방 처리하고 올게요.”

         

       파리스는 자신을 부르는 선배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휴게실은 사람 대여섯 명 정도 소파에 둘러앉을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두 소녀는 최대한 떨어져서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른 지 몇 분.

         

       먼저 말을 꺼낸 건 엘라였다.

         

       “미안해.”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마야를 바라봤다.

         

       “네 마법을 이상하다고 말해서.”

         

       다시 침묵이 흘렀다.

       엘라의 사과를 들은 마야는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엘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마야가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넌 왜 단장님을 싫어해?”

         

       대답을 고민하던 엘라는 금방 좋은 변명거리를 찾았다.

         

       “……내가 일하는 거 보면 모르겠어?”

       “아.”

         

       마야는 그녀의 대답에 납득간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가 아무리 엘라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맡은 일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당장 원더스타인 본인도 유능한 부단장에게 맡기고 놀러 다니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서커스단에 들어온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엘라를 볼 때마다 그녀는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반면, 단장님은 느긋하게 다른 여자랑 차를 마시고…….

       후우.

         

       그렇게 생각하니 마야는 자신의 지난 행적이 좀 부끄러워졌다.

       고생하는 부단장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미안했어 나도.”

         

       엘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야 역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미소냐고 하겠지만, 엘라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을 위해 미소를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임을.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부단장이라고 부를게.”

         

       그동안 엘라를 너라고 지칭해왔던 마야가 정식으로 호칭 문제를 입에 담았다.

       엘라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엘라라고 불러.”

       “부단장.”

         

       마야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괜찮다니까. 엘라라고 부르래도.”

       “그 정도로 친하다고 생각 안 해.”

         

       그녀의 싸늘한 대꾸에 엘라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랑 안 맞아…….

       그래도 뭐 이 정도 의사소통이라도 해준다면…….

         

       “……난 마야라고 계속 불러도 되지?”

       “응.”

         

       그때, 휴게실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파리스가 들어왔다.

         

       “늦었죠? 자, 어서 갑시다. 이제 개막식이 시작하려고 해요. 제가 스태프 석에 좋은 자리를 만들어 뒀어요.”

         

       방을 나서는 두 소녀.

       아까보다는 둘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막식 모두 새로 썼습니다.

    EP.45 역전의 개막식(1)부터 다시 읽으시면 됩니다.

    숫눈 님, 10코인 후원 감사하빈다! 후원하시고 거의 2주만에 답변을 드리네요…그동안 수정에 힘쓰느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환2 님, 7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해주신 말씀이 리메이크하는 동안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늘 재밌는 글을 드리려고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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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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