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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진정하세요. 저도 존댓말 쓰는데 왜 그래요?”

        “너, 너는 당연히 그래야지! 내, 내 후배잖아.”

        “쟤들은 선배보다 더 어린데 어떻게 반말을 하겠어요. 자, 인사는 했으니까 위치노트에 친구 추가 해놔요. 시험 도중에 떨어져도 서로 연락할 방법은 있어야죠.”

        “치, 친목은 죄악인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니까?

       

        상대방의 아이디를 알게 되면 갤러리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프리나는 재빨리 갤로그를 비공개로 돌리고 게시글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허나 스스로 작성한 글이라면 모를까 타인이 언급한 흔적까지 말소할 수는 없다.

       

        프리나나.

        프리나나나.

        프리나나나나 등.

       

        마법제 때부터 공공연하게 자신을 드러내 왔기에 그녀에 대한 글이 꽤 남아있었다.

        이건 확실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겠지.

       

        “마, 말해 두는데 나에 대해 갤러리에 적힌 내용은 태반, 아니 전부 음해니까! 너, 너희도 잘 알아둬! 우연히 비슷한 아이디를 쓰는 다른 녀석 때문에…….”

        “갤러리요?”

        “신경 쓰지 마. 글은 다 지우셨어요?”

        “지, 지우다니!? 아, 아무것도 손 안 댔는데!”

       

        허나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갤러리 활동 같은 건 잘 모르고, 굳이 남의 아이디를 검색해 보지도 않는다.

        나 역시 아직 잉크도 안 마른 위치노트 하나를 꺼내어 세 사람을 친구로 등록했다.

       

        세라는 말할 것도 없이 깨끗한 상태.

        그리고 아르투르는…….

       

        ====

        ID : 강아지사랑꾼

        글 : 529

        댓글 :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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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커미션 모음 공유]

        [지금 주딱이 없다고? 기다려라]

        [네놈들 게시판은 망했다]

        ====

       

        “뭘 그런 눈으로 보나?”

        “아니, 아무것도.”

       

        넌 제발 좀 부끄러워 해라.

       

        친구 등록을 끝마치자 시기 좋게 갑판 위로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 뱃머리에서 보았던 극채색의 간부들이었다.

        공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마력의 주인은 비나였지만 앞으로 나선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세라와 아르투르가 노트를 덮고 백발의 여자를 주시했다.

       

        “저 분은…….”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요? 백가의 서열 1위니까.”

        “사실 그보단 다른 쪽으로 더 유명하지.”

       

        ‘차원 유리의 원리와 이해’ 과목 담당인 클로에 스테판.

        수업 때마다 강의실을 숨겨 수습생들을 출석 미달로 떨궈 버리기로 악명 높은 교수였다.

        빛 계열의 대표주자, 루스리아 학파 출신의 정통 원소술사.

        하지만 새하얀 가운을 연상캐하는 로브는 전투적인 마법사라기보단 연구원에 보다 가까운 인상을 주었다.

       

        “분명 연구부 소속일텐데, 이런 곳에서 얼굴을 볼 줄은 몰랐군.”

        “극채색 활동은 순혈 가문으로 발돋움할 좋은 기회니까요.”

        “저 인간 성격에 그런 계산보다 마족 해부 같은 것에 관심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큰일이네요. 절대로 시험을 평범하게 치루진 않을 거에요.”

       

        공역에선 본 적 없었는데, 빈센트가 빠지게 되며 뒤늦게 합류한 듯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교수 중에서는 드물게 갤러리에서 떡밥이 돌 정도로 구설수가 많은 인물이었다.

        장난인지 악의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언행 때문에 피해를 본 사례가 매년 나왔다.

        지원금을 횡령해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사용했다는 내부고발에 휩싸인 전적도 있었다.

       

        클로에는 고개만 돌린 채 비나와 대화 중이었다.

        그녀가 갤러리에서 활동한 내역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던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손에는 위치노트를 들고 있는데, 해당 좌표에는 계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착각인가 싶어 비나가 서 있는 위치로부터 다시 한 번 거리를 계산한 뒤 고개를 들던 그때.

       

        “…….”

        “…….”

       

        번들거리는 안경알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

       

        “클로에 님. 이걸로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

        “클로에 님?”

        “아무래도 지원자가 너무 많은 걸~.”

        “역시 자격을 정해 두어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저 위계 마법사들은 돌려 보낼까요?”

        “하하, 괜찮아. 실력이 안 되는 이들은 결국 이 배에서 내리게 될 테니까.”

       

        갑판 위에 서 있는 수많은 마법사들을 둘러보며 클로에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마탑의 거의 모든 학파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이 모인 이곳은 그녀에게 있어 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와도 같았다.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아직 포장지를 뜯지 않았음에도 유독 맛있어 보이는 사탕이라면 있었다.

       

        갑판의 가장자리에 모여 있는 네 명의 남녀 중 유일하게 눈이 마주친 남자.

        뾰족한 창을 짊어진 것으로 보아 드물게 냉병기를 마장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손에는 연구부의 역작, 아니 자신의 역작인 위치노트를 쥐고 있었다.

       

        “제가 임의로 진행해도 좋을까요 의장님? 본격적인 시험을 진행하기 전에 절반 정도는 수를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둔 방법이 있나요?”

        “그럼요! 갑판 위의 마력을 조금만 걷어 주신다면 금방 끝내겠습니다.”

        “좋아요.”

       

        클로에는 비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클락이라고 했던가, 무려 칠현자의 직계가 개인적인 선물을 건낼 정도로 아끼는 마법사다.

        과연 어떤 실력을 갖고 있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마족 전담기구에 지원하신 마법사 동지들, 모두 감사합니다. 시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니 쉽게 이야기하죠. 여기 모인 인원들은 난파선 ‘에리즈’ 호가 싣고 가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하여, 갑작스럽지만 지금부터 가벼운 솎아내기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자신들 중 일부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에 갑판 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곧 경쟁자이기에 서로 거리를 벌리는 이들도 있었다.

       

        클로에는 한 손으로는 위치노트를 든 채 다른 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이윽고 그녀의 마력이 갑판 전체에 내려앉자 창천에 떠 있는 태양의 빛이 시야를 멀게 만들 정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환일(幻日).

        무려 6위계에 해당하는 빛 마법이었다.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원소학파의 신비는 ‘고결과 무결’. 이건 그 중 ‘고결’에 해당하는 마법이라 파괴력은 없습니다.”

        “억……!”

        “커억!”

       

        공간 전체를 점유하여 환경을 뒤바꿔 버리는 원소술사의 극의 중 하나.

        허나 클로에의 말과 다르게 갑판 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휘청이며 쓰러졌다.

        단순히 방사한 마력의 중압감만으로 각 학파의 마법사들을 모조리 무릎 꿇릴만큼 백가 서열 1위의 경지는 압도적이었다.

        무심하게 위치노트를 펼친 클로에는 손목 안쪽에 찬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정면으로 맞을 정도는 아니니 버티지 못하시는 분들은 편하게 기절해주세요. 절반 정도가 남으면 종료하겠습니다.”

        “크흠, 클로에 교수.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마족과 싸울 때 그들의 마기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킬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힘조절은 하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뒤에 서 있던 백가의 마법사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을 확실히 거르는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그 증거로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삼 분의 일이 나가 떨어졌다.

        갤러리를 확인하며 곁눈질로 남은 이들의 숫자를 세던 그녀의 시선이 이내 갑판 끝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 눈여겨봤던 클락이 창을 땅에 박은 채 서 있었다.

       

        ‘과연, 역시 해주학파가 이런 쪽에서는 작은 유리함이 있죠.’

       

        해주는 ‘마법을 상대하기 위한 마법’이기에 기본적으로 마력을 이용한 힘겨루기에 익숙했다.

        옆에 있던 마법사도 다른 두 명의 일행보다는 버틸만 해 보였다.

       

        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환일’을 똑바로 쳐다보려 시도 중이었다.

        버틸 바에는 뚫고자 하는 건가.

        대략 어떤 성향인지 알 것 같았다.

       

        ‘허나, 무디네요.’

       

        어설픈 ‘간섭기’ 따위로 상층의 초입에 발을 들이려 하는 그녀의 마법을 취소시킬 수 없다.

        원소학파의 신비는 이름처럼 술식의 완벽성을 추구하기에 일정 경지에 오르면 더욱 견고해진다.

        게다가 태양에 부여한 ‘고결’을 맨눈으로 보는 것도 일반적으론 불가능했다.

       

        깃털로 볼을 간질이는 감각을 먼지 털어내듯 뿌리친 클로에는 클락을 향해 쏟아지는 마력의 양을 조금 더 늘렸다.

        본래 이러면 안 되지만, 궁금한 건 끝까지 파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이었다.

       

        치이익!

       

        부식된 난간에 살갖이 닿자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목표로 했던 절반 이상의 탈락자가 생긴 시점에도 그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눈이 멀 수도 있다는 두려움 따위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높게 쳐 봐야 3위계 수준의 마법사에게서 관측될 끈기요 역심이 아니다.

        창대를 잡은 손에서는 아직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그 객기 아래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클로에는 더욱 마력을 쏟아부었다.

        아주 조금만 더 극한으로 몰아 넣으면 그의 정체를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로에 교수!”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시끄러. 내 연구를 방해하지 마!”

        “뭐요?”

        “쯧, 이래서 연구부 출신은. 비나 님, 그만 중지 시키시죠.”

       

        간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인을 한 차례 더 맺었다.

        태양을 감싼 빛의 고리가 여섯 개로 늘어나며 갑판 위로 쏟아진 마력이 유형의 압력을 선사했다.

       

        구멍난 선체가 삐걱이며 겨우 버티고 있던 마법사들도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는다.

        그럼에도 클락은 끝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빛 아래에서도 끝내 자신의 그림자를 보여주지 않는다.

        허나 ‘무결’까지 쓰면 그도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지 않을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안다.

        뒤에 서 있는 순혈 마법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위치노트를 든 나머지 한 손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려왔다.

       

        결국 참지 못한 클로에가 노트를 떨어뜨린 찰나.

        줄곧 하늘을 보고 있던 클락의 시선이 그녀를 똑바로 직시했다.

       

        쿠당탕!

       

        “으왓!?”

        “클로에 교수? 괜찮습니까?”

       

        타륜을 뒤통수로 가져다 박으며 뒤로 넘어갔다.

        간부들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부어오른 머리가 아닌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미친 놈이었잖아 저거?’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목에 서늘한 칼날, 아니 창끝이 겨눠진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줄다리기를 하다가 질 것 같으니 품에서 창을 꺼내 던지려 한 격.

        마법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나, 나중에 쓰러진 이들로 절반을 추린 뒤 출발하죠. 전 잠시 쉬어야겠어요.”

       

        클로에는 식은땀을 닦으며 갑판에서 내려왔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신체가 자꾸만 통제를 벗어나 주저앉았기에, 한참이나 지나서야 선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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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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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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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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