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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사, 살려줘···! 살려줘요!”

       

       “잡았···?!”

       

       “와아···.”

       

       

       도로시가 아멜리아에게 잡히기 직전, 칼에 잘려 널브러진 실을 다급히 주워 아멜리아의 팔을 묶자 아르테가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감탄이 아니라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르테의 실을 내가 사용하면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윽, 뭐, 뭐야···! 놔! 아잇, 왜 이렇게 튼튼해?! 아르테! 이거 좀 약하게 해봐!”

       

       “그건 힘든데요···. 그건 그냥 실이에요. 조금 많이 튼튼한. ···자, 끊어드렸어요. 이걸로 됐죠?”

       

       “아잇, 놓쳤잖아!”

       

       

       이런.

       

       아르테의 실에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저번에 내 칼에도 쉽게 잘려나가더니, 아무래도 튼튼하긴 해도 참격에는 약한 모양이었다.

       

       

       “헤윽, 헤으윽···. 히, 힘들어···.”

       

       “도로시, 쉴 시간 없어. 빨리.”

       

       “아, 알았어요! 허수아비는 말했다. 나는 뇌를 갖고 싶어. 마법사는 소원을···꺄악!”

       

       “아하하, 미안해요. 두 번은 안 될 것 같아서. 아군을 강화하는 능력이라···. 희귀하네요!”

       

       

       아, 젠장.

       

       들켜버렸네.

       

       ···하긴, 도로시는 능력을 발동하려면 특이한 대사를 외쳐야 한다.

       

       너무 특징적이라 똑같은 걸 두 번 하면 눈치채기도 쉽긴 해.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더 쓰게 해줄 수 있었잖아.

       

       이미 큰일 났음을 직감하고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아르테의 실은 도로시가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지 않았다. 약점을 지켜만 보고 있을 리도 없고.

       

       아니나 다를까, 도로시는 순식간에 아르테의 실에 묶여 행동 불능이 되어버렸다.

       

       

       “자아, 이제 숫자도 밀리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패배를 인정하고 기권하셔도 괜찮답니다?”

       

       “···.”

       

       “그거 좋네! 아하하, 더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내려가도 된다고, 유시우!”

       

       

       싱긋 웃는 아르테와 아멜리아의 얼굴이 괜스레 얄미웠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미안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거든···!”

       

       “···좋아요, 그럼 그 방법이라는 걸 보여주시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래 봬도 나도 남자다. 이렇게까지 놀림당하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것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르테, 네가 자초한 행동이다!”

       

       “···네?”

       

       “자, 덤벼라!”

       

       

       

       ***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에 곱게 포장되어 경기장 구석에 박혀있는 도로시.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숨을 고르고 있는 아멜리아.

       

       사방에 널려있는 이미 사용해버린 실들.

       

       ···그리고,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는 주인공. 유시우.

       

       

       [대, 대박···.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역시 주인공, 엄청난 회피기동이에요!]

       

       

       지금 주인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을 상황이야?!

       

       초조해져서 괜히 땅을 발로 찼다.

       

       그 소리를 듣고서 다시 한번 아멜리아가 가속.

       

       이미 여러 번 가속했기에 나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 아멜리아가 유시우를 향해 돌진했다.

       

       목에는 내가 감아둔 실을 두른 채로.

       

       

       “이번에야말로, 죽어라아앗!”

       

       

       순식간에 유시우의 주변에 배치된 실들이 마나를 머금고 그를 향해 조여들었다.

       

       ···그리고 또 실패.

       

       주변을 두른 실 중 한 곳만 집중적으로 뚫어 포위망을 벗어났다.

       

       

       “아멜리아, 죽으라니. 이건 시험이라고. 죽이려는 게 아니라 제압이 목적이야.”

       

       “아악, 또 실패야?! 시끄러워! 네가 쫄래쫄래 도망만 가니까 그런 거 아냐! 아르테, 한 번만 더!”

       

       “···.”

       

       “아르테? 뭐해!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나 혼자 간다?!”

       

       

       나는 지금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있다.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최대한 아낀답시고 사용했던 실들을 모두 사용해버렸다.

       

       ···즉, 지금 나는 레오타드와 교복, 아티팩트인 하얀 외투만 입고 있다.

       

       미치겠네. 어떻게 하지?

       

       지금 이 시합은 전교생이 보고 있다.

       

       물론 안전을 위해 관전석은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하게 보지는 못하겠지만, 슬슬 학생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지 않을까.

       

       왜 쟤는 공격받은 적도 없는데 옷이 손상된 거지, 하고.

       

       만약 의심하지 않아도 문제다.

       

       여기서 더 싸웠다가는 옷, 혹은 레오타드.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

       

       물론 당장 제압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는 레오타드를 사용하는 게 맞지.

       

       어차피 레오타드는 교복 안에 입었으니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만약 레오타드를 다 썼는데도 잡지 못한다면?

       

       대참사다. 그 순간 능력은 봉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시선이 몰려있는 곳에서 몸이 다 드러나는 레오타드를 드러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야···?!

       

       

       “으악?!”

       

       “아멜리아, 너는 나랑 상성이 안 좋다는 거 잘 알잖아.”

       

       “짜증나아아아아!”

       

       “거기서 누워있어.”

       

       [아, 잡혔다. 역시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불리하네요.]

       

       

       큰일 났다.

       

       어, 어떻게 하지···.

       

       잠깐 고민하던 사이에 아멜리아가 제압되었다.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무심코 생각에 집중하느라 대답하지 않았더니 참지 못하고 달려든 모양이다.

       

       아멜리아는 엄청난 속도로 상대방을 교란하지만, 시우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히트 앤 런 전법을 사용하는 아멜리아가 어디로 달려올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미리 검을 경로에 가져다 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라, 그런데 저게 직감이 맞나?

       

       직감은 감각이 하나 더 늘어나서 공격을 회피하기 쉬워지는 거잖아.

       

       그런데 방금, 아멜리아가 움직이기 전부터 이미 그 경로에 칼을 가져다 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작가님은 시우의 능력이 직감이라고 했었으니까.

       

       아멜리아의 속도와 시우의 반응이 너무 빨라서 잘못 본 모양이다.

       

       

       “아르테. 너 혼자 남았어.”

       

       “···그러네요.”

       

       

       시우의 목소리에 잠깐 상념에 빠진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고.

       

       ···과연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숫자도 같아졌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패배를 인정하고 기권해도 괜찮아.”

       

       “···.”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유시우가 뭐라고 말했지?

       

       패배를 인정하고 기권해도 좋다, 그렇게 말했던가.

       

       그리고 그 대사는 아까 내가 말했던 대사.

       

       주인공에게 항복을 종용할 때 말했던 대사다.

       

       빠드득.

       

       그가 내 말을 듣고 의욕을 불태우던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그 대사에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도, 독자님···? 화, 화나셨어요?]

       

       

       화가 났냐고?

       

       당연하지.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는데.

       

       주인공의 말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지려고 했건만···!

       

       

       “하, 하하···. 한 방 먹었네요.”

       

       “어, 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각오는 되신 모양이죠.”

       

       

       교복 속 검은 레오타드의 실이 하나씩 풀리며 경기장에 거미집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살갗을 다 보여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

       

       

       

       “이, 이게 아닌데···?”

       

       

       시우는 아르테가 경기장에 잔뜩 뿌린 실들을 당황하며 바라보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아르테의 능력은 자신의 옷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거다.

       

       그 증거로, 어느새 스타킹과 반장갑이 사라져 있었으니까.

       

       아르테도 어느 순간부터 미적지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 아멜리아를 제압하고는 제안했던 것뿐이다.

       

       ···살짝 열받았던 대사를 조금 돌려주면서.

       

       설마 이렇게까지 의욕을 불태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르테는 여태껏 내게 느긋한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승부욕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이것도 피할 수 있나 한번 볼까요.”

       

       

       섬뜩하게 눈을 빛낸 아르테의 모습에 흠칫했지만, 문득 시우는 떠올렸다.

       

       반장갑, 없고.

       

       스타킹, 없고.

       

       옷이랑 하얀 외투는 멀쩡하다.

       

       ···그러면, 지금 이 실들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한번 피해 보세요. 피할 수 있다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실들을 피하고, 때로는 쳐내며 시우는 아르테에게 다가갔다.

       

       이미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르테를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든 그녀에게 다가가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이 정도의 실들이···?

       

       의문 섞인 눈동자로 아르테를 바라본 시우는 그제야 눈치챘다.

       

       아르테의 목에 슬쩍 보이던 검은 레오타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서, 설마···?”

       

       “뭘 그렇게 바라봐요?”

       

       

       문득 아르테가 전개한 실들을 바라보았다.

       

       ···색은 알 수 없었다. 마력이 휘감겨 모두 은은한 파란색으로 보였으니까.

       

       

       “아니, 그럴 리가. 설마, 아무리 이기고 싶다고 해도 그런 짓을···?”

       

       

       문득 시우는 자신의 칼에 묻은 실 한 가닥을 만져 코에 가져가 보았다.

       

       싸우는 와중에 생긴 치명적인 빈틈이었지만, 시우에게 더 이상 시험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우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생각이 가득 차버렸으니까.

       

       

       “···뭐 하시는 거죠?”

       

       

       실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맡아본 냄새다.

       

       언제? ···여성 탈의실에 잠입했을 때, 아르테의 사물함 안에서.

       

       

       “아르테, 너···.”

       

       “네?”

       

       

       경악 섞인 눈동자로 시우는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목덜미에는 레오타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맡아본 냄새가 칼에 잘린 실에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이, 이건.

       

       시우는 깨달았다.

       

       더 이상 싸우면 큰일 난다고.

       

       

       “아르테, 슬슬 그만 싸우자. 내가 진 걸로 해도 좋아.”

       

       “···그게 무슨 말이죠? 이대로 내가 진 걸로 하겠다, 그런 뜻인가요?”

       

       “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

       

       

       기다려주는 것도 이것이 끝이라는 듯 아르테가 실을 다루며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지금이라도 내가 졌다고 할까?

       

       아니, 반응을 보아하니 이기고 도망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랬다가는 화를 내겠지. 일부러 져도 똑같을 거다.

       

       그렇다고 이기기에는 내가 아르테보다 약하다.

       

       지금도 피하기 급급한 상황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옷에 실이 스쳐 조금씩 상처가···.

       

       ···옷이 찢어져?

       

       

       “으, 새 교복 사야겠네. 이거 비싼 건데···!”

       

       “···?!”

       

       

       시우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무슨 뜻인지 이해해줬으면 해서.

       

       

       “제가 졌어요.”

       

       “뭐? 아르테, 진심이냐? 방금까지 잘 싸우고 있었으면서?”

       

       “네, 선생님. 살짝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해서요.”

       

       “···그래. 무를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알겠다.”

       

       

       클레어 선생님이 탐탁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시합의 종료를 선언했다.

       

       다, 다행이다···.

       

       시우는 그제야 위험한 고비를 넘겼음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고개를 올려보니 보이는 수많은 학생.

       

       만약 그대로 계속 싸웠다면···.

       

       시우는 더 이상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큰일 날 뻔했네.

       

       

       “그나저나, 아르테는 능력이 참 거슬리는군. 이 실들, 어쩌지···? 미안하지만, 유시우. 이 실들, 가는 길에 버려줄 수 있겠나?”

       

       “네, 알겠습니다···. 네?!”

       

       “부탁하마. 나는 경기장의 보수를 맡아야 해서.”

       

       

       시우는 문득 코를 씰룩거렸다.

       

       경기장에 나뒹구는 실에서 그녀의 향기가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는 다음화까지 전투를 하게 될 예정이었는데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번화에 눌러담게 되었네요. 분량이 평소보다 많아!

    그리고 여러분! 노루망고상륙작전님께서 hwadoe님께 신청해주신 1만선작 기념 큐브스테이크 제조 아르테 팬아트가 나왔습니다!

    다시한번 노루망고상륙작전님께 감사의 말씀 드리며, 궁금하신 분들은 공지를 확인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공포스러운 느낌의 아르테가 정말 예뻐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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