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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나는 지금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걷고 있었다.

       

       무슨 범죄자라도 된 듯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의 이름이 크리스라고 했지?”

       

       “이 사람아, 어디 성자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는가!”

       

       “하늘아래 기사님께 혼쭐이 나고 싶어?”

       

       남작령이 이런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의 주제가 나였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니, 영감님들이 로브를 벗으면 조용해지잖아요?”

       

       내 말에 클로셀 영감이 웃었다.

       

       “밤새 전투를 치른 이들이네. 우리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가.”

       

       파라몬 영감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배려심 많은 영감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남작령이 조용하네요.”

       

       “다들 피난을 갔으니 당연한 게지.”

       

       이곳에는 병사와 기사들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돕겠다며 자의적으로 남은 영지민 몇몇과 함께.

       

       나는 또다시 들려오는 이야기에 로브를 깊게 눌러썼다.

       

       “신께서 우리를 도운 것이 확실하오.”

       

       “크리스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내 아들 역시 그 덕에 살았다네. 죽기 직전이었지.”

       

       절대로 로브를 벗어선 안 된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자네, 인기가 대단하군.”

       

       “….”

       

       끝없는 내 칭찬을 들으며 나는 겨우 성벽에 도착했다.

       

       영감들이 모자를 벗자 금세 길이 열렸다.

       

       그사이에 있는 내가 누구인지 눈치챘다는 듯 엄청난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말이다.

       

       “이제 자네도 벗지 그러나.”

       

       “…그래도 되겠네요.”

       

       이미 들켰는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를 모자를 벗고 고개를 들었다.

       

       움찔.

       

       “허억…!”

       

       “음…왜 그러시나요?”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몸을 떨며 놀라는 병사들.

       

       파라몬 영감이 나의 모자를 들어 조용히 눌러 씌웠다.

       

       “자네…그 눈 좀 어떻게 안 되겠나?”

       

       “제 눈이요? 아, 설마…?”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무당은 해마다 치성을 드리러 산을 찾는다.

       

       모시는 신령님께 어여삐 여겨달라 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갓 치성을 드리고 온 무당은 신빨이 기가 막힌다는 것.

       

       그리고 나의 몸주신은 굉장히 큰 신이라는 것.

       

       “곤란하게 됐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신빨이 굉장히 잘 받는다.

       

       치성을 드리면서 사람자체의 기도 쎄졌고 말이다.

       

       눈이 희번득 거리는 건 이것 때문일 것이다.

       

       “이게…지금은 제가 조절이 안 되거든요?”

       

       애동제자의 신분을 이렇게나 빨리 벗어나 버렸으니.

       

       미숙한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으려나···.

       

       두 영감들이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를 수습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군. 나도 소드 마스터에 올랐을 때 그랬다네.”

       

       “나도 마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지.”

       

       “….뭐, 비슷하네요.”

       

       무당이 무서우면 안 되는데 말이다.

       

       주변의 영혼들마저 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이건 솔직히 큰 문제다.

       

       무당이란 망자와 산자를 위로하는 사람.

       

       무서운 사람이 어떻게 그걸 하겠는가.

       

       “조절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어.”

       

       기가 센걸 조절할 수 있으려나···?

       

       어찌 되었든 나는 성벽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성문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세레나.

       

       “세레나! 끝났어?”

       

       세레나가 아직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뭘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클로셀 영감의 물음에 나는 조금 곤란해졌다.

       

       이걸 알고 나면 한동안 또 달라붙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으음.”

       

       그래도 말을 해주는 게 나을 것이다.

       

       “장승에 물을 주는 중이에요.”

       

       “…목상에 말인가?”

       

       “네. 운디네가 만든 물만 먹어서…”

       

       “목상이 물을…?”

       

       “물 주면 자라거든요.”

       

       “…”

       

       두 영감이 어처구니없는걸 들었다는 듯 입을 벌렸다.

       

       깎아 놓은 목상에 물을 주면 자란다는데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세계수로 만든 거라 그런가 봐요.”

       

       “허어…”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사례군.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나는 역시나 내 생각대로 달라붙는 클로셀 영감을 가뿐히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물 주러 간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네…”

       

       “이보게, 크리스.”

       

       파라몬 영감이 장승을 가리켰다.

       

       “저것이 언데드를 막아 준다 했는가?”

       

       “네.”

       

       “어느 정도 규모까지 가능한 것인가?”

       

       “으음…”

        

       애매했다.

       

       나와 같이 있다면 어지간한 언데드의 접근은 막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장승만 있다면 어제처럼 큰 효과를 내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성문 가까이에 접근을 하기는 힘들거예요.”

       

       “그것만으로 큰 도움일세. 그런데 아직이라고 하면…?”

       

       “장승이 크고나면 둘이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직 어린 장승들이라.”

       

       “허…”

       

       장승에 어리고 크고가 어디 있겠냐마는 저 장승들에게는 그게 또 해당이 되는 말이었다.

       

       실제로 자라고 있으니까.

       

       분명히 이곳에 오기 전보다 크기도 커졌고, 얼굴도 뚜렷해졌다.

       

       이제는 제법 매서운 이목구비랄까.

       

       “진작에 이곳으로 들고 왔었다면…”

       

       파라몬 영감이 안타까운 듯 읊조렸다.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아쉽지만…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음?”

       

       “세계수님의 도움을 조금 받아야 했거든요.”

       

       몸주신에게만 치성을 드린 것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시선 역시 나에게 닿아 있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같이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

       

       덕분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말이다.

       

       “산에 가기 전이었다면 저렇게 큰 힘은 못냈을거예요. 기껏 해야 잡귀를 쫓는 정도….”

       

       “그렇군.”

       

       그래도 두 신령님께 치성을 드린 덕분에 장승의 능력이 크게 올라갔다.

       

       세계수의 육신에서 떨어진 가지라 효과를 본 듯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레나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크리스.”

       

       “음?”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방금까지 물을 줬는데 또 간다는 말인가.

       

       “장승이 물을 자꾸 먹어요…”

       

       “아…”

       

       고생을 했으니 기력을 보충하는 것인지 성장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좀…부탁할게.”

       

       “…저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클로셀 영감이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제는 말을 잘하는군?”

       

       “…”

       

       “크리스에게만 그런 것인가…”

       

       “…”

       

       영감이 결국 시무룩한 얼굴로 나에게 붙었다.

       

       “내 세레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네.”

       

       “…부탁이요?”

       

       영감이 세레나에게 할 부탁이 뭐가 있단 말인가.

       

       혹시나 나에게 한 것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려고···?

       

       다행히 내 예상과는 다른 부탁이었다.

       

       “영지에 꽃 밭이 있네. 거기를 좀 같이 가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네.”

       

       “꽃밭이요?”

       

       그러고 보니 엘프의 숲에서도 꽃을 챙겨 가기는 했다.

       

       그 정도라면 어떻게 부탁해 볼 만 하지 않을까?

       

       “겸사겸사 우리 루시아도 보고 가게나.”

       

       찌릿.

       

       마지막 한마디만 안 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휴…”

       

       그때, 성밖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이 깃발을 휘두르자 성벽 위의 상황이 변했다.

       

       땡땡땡 –

       

       “적습이다! 전원 전투 준비!”

       

       순식간에 병사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또다시 지옥이 시작될 거라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이었다.

       

       파라몬 영감의 지시에 따라 성문이 열렸다 닫히며 기사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크리스, 어떠한가? 몇이나 죽겠는가?”

       

       그 표정이 너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렇게 긴장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도 안 죽어요.”

       

       슥 훑어보니 곧 죽을 사람은 없었다.

       

       다칠 사람도 없고.

       

       “언데드의 공격인데 괜찮겠는가?”

       

       “네. 괜찮아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멀리서 언데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번보다는 훨씬 적은 규모.

       

       솔직히 영감들이 몇 번 휘적거리면 없어질 만한 규모였다.

       

       영감들도 규모를 확인한 후부터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얼씨구.”

       

       선두에 있는 얼굴을 확인한 나는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알루어드가 성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었다.

       

       “쫓겨 왔나 보네.”

       

       고생이 심했는지 정상적인 몰골을 한 사람이 없었다.

       

       갑옷들이 전부 광채를 잃고 있었으니까.

       

       아마 밤새 전투를 치른 듯 보였다.

       

       곧 그들이 지르는 고함이 들려왔다.

       

       신성력을 실은 고함이었다.

       

       “언데드의 추격이오! 성문을 열어 주시오!”

       

       성문을 열어달라 요청하는 성기사.

       

       “성문을 열면 안 됩니다! 방어를 굳건히 해야 합니다! 저희가 성벽 밑에서 싸우겠습니다!”

       

       목이 터져라 핏대를 세우며 성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치는 알루어드.

       

       하늘을 날아올 때 봤던 대로 알루어드를 제외한 나머지들에게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영감님, 알아서 하세요. 성문을 열어도 사람은 안 죽어요.”

       

       “고맙네.”

       

       영감들에게 똑똑히 전해 들었다.

       

       저들이 한 일을 말이다.

       

       어째서 신령님이 그렇게 노하셨나 했더니···.

       

       신을 모신다는 사람들이 그딴 짓거리를 했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있겠는가.

       

       파라몬 영감이 옆에 있던 기사에게 명령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성문은 열지 않는다.”

       

       “예!”

       

       클로셀 영감마저도 성벽 위로 올라온 마법사들에게 냉랭하게 명령했다.

       

       “마나를 아끼도록.”

       

       그럼 이제는 내 차례였다.

       

       모자를 벗어 내리니 얼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딸랑 –

       

       딸랑 –

       

       “허어…”

       

       “다시봐도 말이 안 되는군…”

       

       방울 소리가 장승에 가서 닿았고, 멀리서 다가오던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정작 성기사들은 모르는 듯했지만.

       

       “얼른! 성문을 여시오! 우리는 교단에서 파견된 성기사요!”

       

       그들의 외침에도 영감들은 성문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작은 인과응보라고 해야 할까.

       

       그래 봤자 몸 성히 들어오겠지만 말이다.

       

       아직은 치를 일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클로셀 영감이 뭔가 후련한 표정으로 마나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신분이 증명되지 않았으니, 간단한 조사를 실시한 후 열어 주겠소!”

       

       파라몬영감 마저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로셀, 자네에게 맡기겠네.”

       

       “단단히 혼을 내 주지.”

       

       성 밖에서 급박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럴 시간이 없단 말이오! 우리는 수많은 언데드들을 뚫고 이곳에 당도했소!”

       

       성기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전투는 불가하오!”

       

       피식.

       

       클로셀 영감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귀를 후볐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리시게!”

       

       “언데드들은 이것이 다가 아니오! 먼 곳에 큰 규모의 언데드들이…!”

       

       클로셀 영감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적들의 후발대가 당도할때쯤, 조사가 끝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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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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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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