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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마야 사제의 환자일지가 나를 감시하는 관찰일지라 이거냐?”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지. 우리가 아는 로르마네라면.”

       

       “하, 그러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사제라서 그런 거야.”

       

       머리를 긁적이자 셀린느가 말했다.

       

       “원래 사제는 대하기가 좀 어려운 분들이잖아. 그래서 대할 때에 생각이 고착된 거지. 로르마네야 우리 동료였으니 격없이 지냈던 것이고.”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몰래 한번 봐야겠다. 이거 참….”

       

       “감당하기 힘든 일이지. 로르마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얼얼한 뒷목을 주무르고 있는 나를 보며 라이너스가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임의로 운신하기 어려운 교단 총사무장이라는 것일까. 그 무거운 족쇄가 아니었다면 아마….”

       

       “신탁사제인 로르마네는 평생 교단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러니 아무 의미없는 가정이야.”

       

       입맛이 떨어져 포크를 내려 놓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로르마네 이야기는 그만하자. 놀러 왔는데 괴롭잖아.”

       

       “하하, 미안.”

       

       “그 녀석은 지금 뭐하고 있어?”

       

       로르마네를 떨쳐내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그 녀석이라면 카이든이겠지? 지금 환상마탑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마법연맹이 아니었어? 그리고 갑자기 무슨 환상마탑? 그놈 특기 살리려면 어디 공격마법 연구소 이런 곳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같을 수는 없지.”

       

       “때려 부수는 거에 환장하던 놈이 환상마법이라니 안 어울리네. 환상마법이면 가상세계 구축하고 이런 거라…. 정반대인데.”

       

       “듣기로는 나름대로 성과를 내는 중이라고는 하더군.”

       

       “그거야 그렇지. 카이든 같은 천재라면 뭘 하든 성공할 테니까. 그놈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뭐지?”

       

       “힌드라스타한테 마법낙인을 새기려고. 도망치지 못하게.”

       

       “흐음, 드래곤에게 마법이라.”

       

       라이너스가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카이든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야. 나중에 환상마탑에 들러서 부탁하도록 해. 다만 여기서 상당히 멀리 있으니 일정을 잡고 가야할 거다.”

       

       “우리 아카데미에 차원문을 열 줄 아는 마법교수가 있어. 그거 타고 가면 돼.”

       

       “그런데 힌드라스타와는 합의가 된 사안인가?”

       

       “당연히 안 됐지. 걔가 합의를 하겠냐. 그래서 더더욱 끌고 가서 해야 돼. 이건 비밀이다.”

       

       “그렇군. 그런데 이미 다 들어버린 것 같은데.”

       

       “엥?”

       

       라이너스가 손가락으로 다이닝룸의 입구를 가리켰다.

       

       의자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가봤지만 아무 것도 없는데?

       

       “흐윽….”

       

       막 몸을 돌리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너 언제 왔냐?”

       

       벽에 쪼그리고 앉은 힌드라스타가 눈물을 흘리며 떨고 있었다.

       

       “마법낙인을… 찍는다고…? 나를 노예로 만들 셈이야…?”

       

       “노예가 아니라 졸업 때까지 잡아두려고 그러는 거다.”

       

       “거짓말…. 이런 모습이니까… 나쁜 마음을 품고….”

       

       “아오, 이걸 진짜.”

       

       딱밤을 먹일 듯 손을 들자 힌드라스타가 머리를 감싸 쥐며 납작 웅크렸다.

       

       “디안. 힌드라스타를 데리고 들어와. 같이 식사하자. 배가 고플 거야.”

       

       “이리와. 밥 먹어.”

       

       라이너스의 권유에 팔을 붙잡아 일으키자 힌드라스타가 휘청이며 몸을 뒤로 격하게 빼기 시작했다.

       

       “안 돼! 용사놈들이랑은 같이 밥 못 먹어!!”

       

       “차려놓은 김에 먹어! 고집 피우지 말고!”

       

       “으아아악!!”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마냥 힌드라스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이닝룸으로 끌려 들어왔다.

       

       “앉아요, 드래곤 양. 모두 먹어도 이상없는 것들이니까요.”

       

       셀린느가 방긋 웃으며 하녀들에게 눈짓하자 힌드라스타 앞에 식기류와 접시가 차려졌다.

       

       “으으윽….”

       

       맞은편의 라이너스를 본 힌드라스타가 발발 떨면서 시선을 떨구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자, 드래곤이니까 고기 좋아하지?”

       

       잘 구운 칠면조의 통통한 다리를 뜯어서 접시에 올려주자 힌드라스타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디안, 제발….”

       

       “일단 먹어. 너 지금 안 먹으면 나중에 다시 차려야 하잖아.”

       

       “그래, 힌드라스타.”

       

       라이너스가 입을 열자 힌드라스타가 기겁하면서 내게 바짝 붙었다.

       

       이 자식이, 라이너스가 있으니까 나한테 앵기네. 어지간히 절박한 상황이구나.

       

       “과거의 일은 모두 잊자. 너나 우리나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잖나. 지금 너는 디안의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이니 그에 맞게 대우를 해주겠다.”

       

       “그래요, 드래곤 양. 이미 10년이나 지났잖아요. 우리 인간들에게는 해묵은 감정을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랍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셀린느의 말에 힌드라스타가 억지로 목소리를 짜내었다.

       

       “너네나… 긴 시간이지…. 나한테는 당장 어제처럼 느, 느껴진다고….”

       

       “그렇다고 해도 이제 잊어야지. 별수 없잖나.”

       

       라이너스가 온화하게 웃으며 스테이크를 썰었다.

       

       “나와 디안이 너와 마주친 게 총 네 번. 늘 도망치는 건 네쪽이었고 심지어 그때 너는 본체였어. 하지만 지금은 본체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드라스타가 좀처럼 먹으려 들지 않자 라이너스가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최근 우리 영지 위로 와이번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때 일이 생각나더군.”

       

       “히익?!”

       

       “하하!”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라이너스가 꺼낸 이야기는 우리가 힌드라스타를 세 번째로 조우했을 때.

       

       당시 우리는 야생 와이번을 즉석에서 두들겨 패 길들여서 그것을 타고 날아서 도망치는 힌드라스타를 쫓았다.

       

       힌드라스타의 머리 위까지 접근해 놈의 등으로 뛰어내렸는데 아쉽게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일 이후 힌드라스타는 몇 개월간 잠적해 버렸다.

       

       아마 인간들이 그렇게나 자기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먹은 모양.

       

       하긴 힌드라스타는 드래곤으로 치자면 굉장히 어린 축이고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분탕치는 재미에 전쟁터를 들쑤셨을뿐이니까.

       

       미물 취급하던 인간이 그렇게나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면서 달려드는데 깜짝 놀랐겠지.

       

       라이너스 저 녀석.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황성밥 좀 먹었다고 이제 제법 남 협박도 할 줄 아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힌드라스타의 손이 떨리며 손톱이 접시를 요란하게 두들겨 댔다.

       

       “야, 셀린느. 바닥에 뭐 깔 거 없냐? 또 지릴 것 같은데.”

       

       내가 농담을 던지자 셀린느가 다소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해. 심하게 무서워 하잖아.”

       

       셀린느의 말에 라이너스가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식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그런 거야. 제대로 식사를 하겠다고 하면 더 말하지 않겠어.”

       

       셀린느가 호의적인 미소로 권했다.

       

       “자, 드래곤 양. 겁먹지 말고 먹어요. 또 괜한 소리가 나오면 제가 혼을 낼 테니까.”

       

       “네….”

       

       힌드라스타는 훌쩍거리며 칠면조 다리를 손가락으로 조금 뜯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띠용 눈이 커져서는 나를 홱 쳐다봤다.

       

       “맛있어!!”

       

       “그런데 왜 나를 봐?”

       

       힌드라스타는 서둘러 맨손으로 칠면조 다리를 덥썩 잡고는 와구와구 뜯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거 식사예절부터 가르쳐야겠네.

       

       드래곤이었다가 인간이 되고 나서는 무식한 레블랑 용병대에만 있었으니 격식 있는 식사라는 것을 배울 리가 있나.

       

       힌드라스타까지 낀 자리에서 우리는 계속 하하호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힌드라스타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화의 주된 주제는 전쟁 때의 추억들.

       

       4년 동안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기에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라이너스는 창고에서 술을 계속 꺼내왔는데 그 술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값을 자랑하는 최고급 와인들.

       

       모두 맛이 굉장했고 그래서 힌드라스타는 미친듯이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우리 이야기에 낄 틈도 없고 라이너스가 무서우니 술이나 먹자는 심보인가.

       

       “드래곤이라 그런지 술을 잘 마시네.”

       

       벌써 열 몇 병을 혼자 들이킨 힌드라스타를 보며 셀린느가 소리내어 웃었다.

       

       “적당히 먹어라, 너 진짜. 남의 집 와서 곳간 거덜낼 일 있냐.”

       

       “괜찮아, 디안. 정기적으로 황성에서 창고를 채워준다.”

       

       “혹시나 취해서 깽판치면 곤란하단 말이다. 얘, 이렇게 생겼어도 힘은 엄청 세.”

       

       “글쎄. 깽판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라이너스가 손가락을 가리키기에 돌아보니 뭐야?

       

       힌드라스타가 별안간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너 뭐하냐, 지금?”

       

       “흐에어응궁흐가….”

       

       전혀 알아 먹을 수 없는 혀 꼬인 소리를 내면서 힌드라스타가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너무 급하게 마셔서 갑작스럽게 취한 모양이다. 침실로 데려다 주고 오겠나?”

       

       “엥? 내가 왜?”

       

       “네 말마따나 생긴 건 저래도 드래곤이라 그런지 무거워서 하녀들이 애를 먹었다고 하더군.”

       

       “그래? 알았다. 그럼 내가 데려다 줄게.”

       

       취해서 실신한 힌드라스타를 안아 들고 이 층 침실로, 침실로, 침실로….

       

       대체 무슨 집이 이렇게 크냐. 

       

       하녀의 안내를 받아 한참이나 걸어간 끝에 손님방에 도착한 나는 힌드라스타를 침대에 집어 던졌다.

       

       “으에엑….”

       

       침대에 던져진 힌드라스타가 술냄새를 풍기며 사지를 뻗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딴 게 어떻게 드래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핑챙은 굴려야 꼴림

    꼴려질 때까지 충분히 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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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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