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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사이고 리세(西郷 利世).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무녀이자, 정기 모임을 나갈 때마다 자신의 훌륭한 심심풀이 대상이 되었던 무녀였다.

         

       ‘남자랑 같이?’

         

       리세는 양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신사로 오고 있었다.

       남자는 토끼 같은 순해 보이는 얼굴에 운동부에서나 볼 법한 키 크고 탄탄한 몸을 하고 있었고, 입고 있는 양복의 맵시가 잘 어울리는 것이 절대 천한 태생은 아닌 듯 보였다.

         

       ‘설마?’

         

       설마 리세의 애인인가?

         

       그녀의 머리엔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그 의견을 지워버렸다.

         

       그녀가 아는 리세는 청순한 척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였다. 그런 그녀가 애인을 만들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데릴사위라도 들였다면 반드시 그녀의 귀에 그 이야기가 들어왔을 터.

         

       ‘우연이겠지.’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얼른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리세에게 반가운 척 인사했다.

         

       “어머, 리세! 여긴 무슨 일이니?”

         

       그 미소는 가식이 한 바가지는 쏟아부은 듯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아 보이는 미소였다.

       리세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역겹다는 듯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일이 있어서 왔어요.”

         

       일이 있어서 왔다.

         

       일.

       일이라?

         

       그녀는 조금 전 시장과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리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혹시 그 일이라는 게 뭐니?”

       “연락이 갔을 텐데요?”

       “어머. 연락이 한둘이니? 요새 신사에 하도 사람도 많이 찾아오고 축제도 코앞이고…. 하아. 너무 바빠서 어떤 연락이 오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니까? 이럴 때면 나도 너처럼 평화를 만끽하고 싶어.”

       “나이를 많이 드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후후. 난 아직 젊어. 보렴. 지금도 성장을 하고 있는 건지 옷이 몸에 맞지 않더라니까? 지금 입은 옷도 몇 달 전에 맞춘 건데 가슴이 꽉 껴서…. 게다가 바지도 몇 달 만에 헐렁해져선 벨트 없이는 맞지도 않아. 들어가는 옷값도 만만치가 않고…. 나도 너처럼 맵시가 좋은 몸이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가요?”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진성은 무해해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키시모토 나루미 씨. 리세에게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 어? 네. 안녕하세요….”

         

       나루미는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며 밝게 웃는 남자의 모습에 잠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세를 쳐다보았고, 리세는 의기양양한 듯. 혹은 나루미가 가엾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에 애인이 생겼다고?’

         

       나루미는 리세가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에 얼떨떨해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저는 사이고 가문의 사위가 될 사람입니다. 지금 차기 신관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앞으로 많은 교류를 나눌 기회가 있겠네요. 참. 저를 부를 때에는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사이고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데릴사위가 되었으니 예전의 성을 버리고 리세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이 되었거든요.”

       “데릴…사위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아, 갑작스럽게 결정이 된 거라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본래라면 정기 모임에 대대적으로 발표를 할 생각이었는데…. 리세 씨가 자기와 친한 언니에게는 꼭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겸사겸사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도움도 드릴 겸 해서 말이죠.”

       “네?”

         

       친근한 태도로 자신에게 말하는 진성의 태도에 어어 하며 휩쓸려가고 있던 나루미는 문득 그가 했던 말 중 귀에 딱 들어오는 것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축제에, 도움을요?”

       “아, 네. 하하. 리세 씨와 친한 언니라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이렇게 물자들을 좀 가지고 왔습니다.”

       “물자들을요….”

         

       나루미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진성의 뒤편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수많은 인부를 보았다.

       인부들은 한평생 육체노동에 종사했는지 전부 근육질의 몸매를 갖고 있었고, 게다가 험한 일에 종사하던 사람이라도 한 듯 몸에 흉터를 많이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근육질과 흉터는 무인이라면 으레 달고 사는 것이니 딱히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본래 축제라는 것은 많은 물자가 필요한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물자들을 준비해왔습니다.”

       “…물자가 좀 많은데. 부담이 되진 않으셨나요?”

       “부담이라뇨?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제가 그….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저 정도로는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물자들을 단시간 내에 준비하기는 좀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행히 저와 친한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무사히 준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 혹시….”

         

       진성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폐가 되었나요?”

         

       당연하지!

         

       나루미는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그 말을 간신히 삼켰다.

       그리곤 속마음과 다른 환한 미소를 자신의 입가에도 띄우며 눈꼬리를 휘었다.

         

       “아니에요! 마침 물자가 부족할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감사해요.”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감사하군요. 아, 가져온 물자들을 좀 살펴보시겠습니까? 제가 신경을 써서 고른 것들이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눈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진성의 모습에 나루미의 속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아까 전 시장이 ‘귀하신 분’이라면서 신신당부를 했던 것, 재력이 많다고 자랑하는 진성의 모습, 그리고 친한 분들의 도움으로 어마어마한 물자를 단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인맥까지.

       그녀의 앞에 있는 남자는 나루미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모임에선 무시만 당하던 년이 어디서 남자는 잘 물어서….’

         

       대신에 나루미는 그 원한을 리세에게로 돌렸다.

         

       모임에 나갈 때마다 참가한 무녀들에게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리세에게로 말이다.

         

       ‘무녀라는 직업을 우습게 보는 애새끼 주제에.’

         

       나루미는 지금 이 상황이 리세의 입김이 잔뜩 들어간 일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매번 모임에 나갈 때마다 무시당하고 제대로 친목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것에 앙심을 품고, 데릴사위로 들어온 저 남자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의심에 확신을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리세가 짓고 있는 표정.

         

       리세가 남자를 볼 때는 친밀감과 공경의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슬쩍슬쩍 나루미를 쳐다볼 때면 그 표정이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시원섭섭함으로 바뀌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얄미운지 나루미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 정도였다.

         

       연민과 동정심.

       거기에 시원섭섭함?

         

       쉽게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이 공존하려면 아주 특별한 일이 더해져야만 했다.

         

       나루미는 그 ‘특별한 일’이 리세가 행한 복수에 대한 감상이라고 여겼다.

         

       “자, 이리로 오시죠. 제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성은 끓어오르는 나루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이끌고 쌓여 있는 짐 중 하나로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가자 커다란 짐 더미에서 나는 향기인지 뭔지 모를 것이 코끝을 찔렀고, 나루미는 그 향을 맡자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던 머리가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나루미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짐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근처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인부 한 명을 불렀다.

         

       “저기요?”

         

       하지만 인부는 그녀가 불러도 슬쩍 바라만 보더니 무시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고, 그 모습에 나루미는 다시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시장에, 리세에.

       이제는 하잘것없는 인부한테까지 무시를 당하다니?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인부에게 소리를 빽 하고 지를 뻔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진성이 나섰다.

         

       “거기 짐을 나르고 계신 분. 잠깐 이 짐을 풀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진성이 웃는 얼굴로 말하자 남자는 아까 나루미에게 보였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짐을 풀어주었고, 짐을 다 푼 후에 진성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고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다시 옮기던 짐을 들고 사라졌다.

         

       “저분이 낯을 좀 가리시는 분이었나 봅니다. 왜, 여자한테 숙맥인 분들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오히려 저렇게 남자답게 생기신 분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앞에 두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지요.”

         

       진성은 그리 말하며 나루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곤 풀린 짐에서 질게 조각나있는 나무토막 하나를 그녀의 손에 얹어주고는 말했다.

         

       “이건 백단향이라고 하는 겁니다. 상쾌하고 달콤한 향기가 납니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향이라서 향수의 재료로도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축제에서 사용하기에 딱 좋다고 생각해서 구해왔습니다. 어떠신가요?”

         

       나루미는 붙임성 있게 자신을 대해주는 진성을 잠시 쳐다보더니 손에 쥔 백단향을 코에 가져다 댔다.

         

       “향기가 좋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녀는 백단향의 향기가 향기롭다고 느꼈다.

         

       “다른 짐도 보시겠습니까? 신선한 유제품도 있고, 유부 요리에 쓸 향신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요리에 쓰지 않을까 싶어서 다른 음식 재료들도 많이 챙겨왔어요. 아, 맞아. 키시모토 씨를 위한 선물도 가져왔습니다.”

         

       진성은 방긋 웃으며 백단향 옆에 있는 자그마한 짐을 풀었다.

         

       그가 짐을 풀자 보인 것은 거울.

         

       그것도 보석이 장식된 청동거울이었다.

       거울은 장미를 포장재로 삼아 꽃 속에 파묻혀 있었다.

       청동거울의 뒤편에는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불꽃을 잘 그러모아 화려한 꽃의 형상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곳곳에는 붉은 계통의 보석이 장식으로 붙어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진성은 청동거울을 집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고, 그녀는 홀린 듯 그것을 집자마자 뒤집어보았다. 그러자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청동거울의 표면은 나루미의 얼굴을 그대로 비춰주었다.

         

       진성은 거울에 만족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슬쩍 보더니 상자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거울과 꽃. 어때요, 제 선물이 마음에 드시나요?”

       “어머.”

         

       그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친 나루미가 꽃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루미는 아까까지 느꼈던 분노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아, 잠시만요. 이 짐도 보여드리고 싶네요. 이건 이 신사의 신관이신 키시모토 요시아키 씨에게 드릴 선물입니다. 태국에서 구해온 시가 세트인데, 그 향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군요. 요시아키 씨가 애연가라는 소문을 듣고 구해온 물품입니다.”

         

       분노 대신에 자리를 잡은 것은 진성에 대한 호감.

         

       잘생기고 예의 바른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는 법.

       거기에 재력까지 있고, 인맥까지 훌륭한 데다가, 귀여운 인상과 그녀를 배려하는 듯한 언행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짐을 풀고 있는 진성의 옆에 따라가서 감시하듯 지켜보는 것 대신에,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아름다운 거울과 풀리는 짐을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 고용주님. 외곽은 끝났습니다. 」

         

       인부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진성에게 어떤 보고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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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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