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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0

    <530 – 다음 것도 보실 수 있겠다>

     

    즈앙이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내게 물었다.

     

    “오크노디. 넌 이거 알고 있었지?”

    “응. 당연히 알고 있었지!”

    “역시.”

     

    즈앙도 일단은 악성향 NPC.

    제물인간의 진가를 깨달은 건지도 모른다.

    막타경험치는 막타를 넣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그건 제물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영웅과 등가교환을 하기 위해 양으로 밀어붙이는 제물인간이지만 그 수가 저 정도로 많아지면 영웅 하나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바.

    즉, 제물인간을 죽이는 살상버튼은 한 번 누를 때마다 영웅 하나를 죽이는 것과 비슷한 경험치를 얻는다.

    물론 정확히 1인분은 아니다.

    혈액탱크가 한 번 누른다고 다 차는 건 아니잖아?

    몇 번 반복해서 누르기는 해야겠지.

    그러면 삼분의 일이라고 할까? 사분의 일?

    아무튼 서너번 누르면 영웅급 경험치가 모이는 것은 틀림없다.

    암살자라면 역시 힘들게 암살하고 다니지 않아도 버튼 한 번만 눌러도 강해질 기회가 탐이 나지 않을 리가 없겠지.

    제국 고관들은 이런 개꿀장치를 서로 돌려먹으면서 쉽게 강해지고 황태자에게 충성을 바치니 매스각키가 고립되는 처지도 이해가 가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또 별개의 이야기.

     

    “역시 즈앙도 같은 생각이지?”

    “물론.”

     

    이런 소중한 경험치들을 제국 측에서 연구원들에게 마구 퍼주며 장차 아카데미 재학생들의 적이 될 영웅들을 부활시키는 광경을 용납할 리가 없지.

    당당하게 파괴를 외치고 혼란을 틈타 경험치는 내가 먹으려던 그때, 즈앙이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 애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구나.”

    “응?”

    “여아용 옷들을 잔뜩 준비한 것도 실은 강화 때문이 아니라 호문쿨루스들에게 입히기 위해서였어.”

    “응??”

    “필요도 없는 케이크를 강화용으로 잔뜩 주문한 것도 식량을 챙겨준 거지?”

    “그, 그랬나…? 몰?루겠는데…”

    “그만. 더는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 마음, 충분히 이해했어.”

     

    즈앙의 암기가 득달같이 날아들었다.

    연구원들이 급소에 암기가 꽂힌 채로 풀썩 쓰러졌다.

     

    “연구원은 전부 죽이고 호문쿨루스들을 구해내는 것. 우리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개폐장치를 찾았습니다. 작동시키겠습니다.”

     

    혼란을 틈타 조용히 주요장치에 접근한 시녀장 카타리나 언니가 말했다.

     

    “마, 막아라!”

    “흥, 어림도 없어요. 티토빔!!”

    “크아악!!”

     

    갑자기 분위기가 제물인간 구출 작전이 되었다.

    아니… 나 너무 억울해!

    흑흑.

    버튼만 딸칵 누르면 되는데.

    진짜 간단히 경험치 먹을 수 있는데.

    도저히 살상버튼을 누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이잇! 명색이 다크프린세스라는 작자가 고작 이 정도의 실험으로 유난을 떨 줄이야. 역시 태자전하를 견제하고자 횡포를 부리는 건가?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우선 호문쿨루스를 전부 폐기… 컥!”

    “흥, 누르게 둘 줄 알아요? 절대로 이 버튼에는 접근할 수 없어요!”

     

    내가 못 먹은 경험치는 남도 못 먹어.

    이 버튼은 아무도 못 눌러!

     

    “역시. 오크노디는 재단의 정보력으로 제국황실의 어둠을 깨닫고 위험을 무릅썼던 거였어.”

     

    즈앙의 감탄이 난전 중에 실수로라도 버튼을 누를 수 없다고 못 박는 것처럼 날아들었다.

    크으읏.

    속이 쓰리다.

    저 많은 경험치를 그냥 해방해야 한다니.

    너무 아쉽다.

    아쉬우니까 연구원들로 대신 경험치를 먹어야겠다!

     

    “순순히 죽으세요, 이 경험치!”

    “큭큭… 이미 늦었다. 만약에 대비해서 이 시설에는 호문쿨루스가 탈출하면 자동으로 영웅들을 각성시키는 장치를 설치했지.”

     

    기습에 당해 죽어가던 고관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리모콘을 꺼내들었다.

    삑.

    버튼을 누르자 장치가 가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드드드드득.

    시설 전체가 진동하며 무서울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가 모여들었다.

    경지가 낮은 시녀들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거나 주저앉았다.

    금기연구소의 캡슐에서 잠든 역대영웅들이 하나 둘 사자부활의 매개체로 모인 혈액탱크의 혈액을 소모하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너흰 이제 끝이다!”

    “영웅들이 우리들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

     

    기습이 멈추자 태세를 정비한 연구원들이 기운 차게 외쳤다.

    다들 딸깍질 한 번씩은 해봤는지 급소를 공격당하고도 즉사를 당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끈질기게 숨을 쉬면서 저주와 악담을 퍼부어댔다.

    근데 쟤들은 왜 저렇게 좋아하지?

    영웅부활은 가까이서 보면 안 되지 않나?

    그 꼴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응? 근데 부활만 시키고 조종은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어느덧 목에서 흐르던 피가 멎은 고관이 제 다리로 일어나며 사악하게 웃었다.

     

    “주종계약의 서를 통해서 심신을 제압하고 태자전하가 모든 영웅들의 주인이 되실 예정이다. 이미 정신제압의 사전단계는 밟아두었으니 언제라도 태자전하가 저들을 거두어가실 수 있지. 알겠나? 너흰 지금부터 영웅들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아하.

    이번 회차의 지배트리거는 정신제압의 책이구나?

     

    “오, 오크노디. 엄청난 마나가 느껴져…!”

    “꽤 어렵겠어. 후퇴할까?”

     

    티토소가와 즈앙이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괜찮아. 이 정도로는 안 죽어!”

     

    주종계약의 서.

    마침 나도 그거 비슷한 책이 있다.

    읽으면 강제로 정신판정이 들어가는 책.

    세간에서 소위 말하는 금서라 불릴만한 책이다.

    이미 아카데미에서도 써먹은 적이 있다.

     

    ━━━

    제목 : 981기 1년차 공략집

    작성자 : 오크노디

    주의 : 열어보면 큰일 남!

    ━━━

     

    [갈고리귀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가치 물질의 복제를 시도합니다.]

    [<정신방어> 목표치 500]

    [<저주내성> 목표치 350]

    [<마나제어술> 목표치 350]

    [모든 목표치 미달]

    [갈고리귀신이 <정신방어>, <저주내성>, <마나제어술> 기능의 통제에 실패합니다.]

     

    전에는 갈고리귀신이 열어봤다가 제압 당하고 사다코교수님에게 맡겨져서 저주템을 복사하는 복사기 신세로 붙잡혀있다.

    이 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모브나 자쿠, 도로시, 끽해봐야 정보를 보고받았을 지젤 정도였지만 즈앙은 한눈에 위험성을 깨닫고 내 뒤로 물러섰다.

     

    “티토소가. 눈 감아.”

    “응? 눈 감으면 티토빔을 못 쏘는데…?”

    “쏘지 않아도 괜찮아.”

     

    [981기 1년차 공략집]

     

    당당히 손에 든 책을 보고 황태자 파 고관이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책 한 권으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정신지배의 서가 평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흑마법의 사악한 정수와 심득을 담아내어 지배효력을 극대화한 책의 형태를 지닌 마법진이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그걸 무슨 수로 따라하려는 겁니까?”

    “흥. 공략집도 성질은 비슷하거든요? 몸으로 겪으면서 체득한 역사의 기록물이라서 모든 배드엔딩과 파멸분기의 무시무시함을 알려준다고요!”

    “귀여우셔라. 일기장이라도 보여주면서 애교를 떨고 자비를 구걸하려는 겁니까? 하긴, 일기장은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기록한 어둠의 역사기록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금기임은 틀림없군요. 하지만 영웅들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합니다.”

     

    고관이 품에서 작은 중이뭉치를 꺼냈다.

     

    “원본 <정신제압의 서>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사본, 그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영웅들의 지배에는 충분히 먹히죠. 갓 부활한 영웅들의 정신도 지배할 책의 힘을 평범한 인간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즉사할 겁니다. 황녀전하는 어떠실까요.”

    “흐응~ 그렇게 자신 넘치면 어디 한 번 겨뤄보죠. 저도 제 공략집을 보여드릴게요!”

    “크흐흐흐흐. 좋습니다. 셋을 세면 동시에 보여주는 겁니다.”

    “셋!”

     

    나는 곧장 공략집을 펼쳤다.

    고관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한발 늦게 정신제압의 서의 사본의 일부를 펼쳤다.

     

    “허튼짓을 벌이기는. 제물인간들의 제물공양의식을 진행하면서 강화된 정신력은 고작 흑역사가 담긴 일기장의 선제공격 따위에 당하지 않습니다.”

    “헤에. 정말로 조금은 버티네요!”

    “어어…?”

     

    갈고리귀신이 몸을 비비 꼬면서 신체가 터지던 공략집의 무서움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고관의 두 눈이 충혈되더니 손등에 힘줄이 솟았다.

    손가락 하나, 혓바닥 한번 움직이지 못하고 선 채로 굳어버린 고관.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발밑에 웅덩이가 고일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피부가 핼쑥해지고 말라붙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이는데도 고관은 계속 땀을 흘렸다.

     

    [고관이 신화급 저주의 서를 열람하며 이성판정을 개시합니다.]

    [<정신방어> 목표치 500]

    [<저주내성> 목표치 350]

    [<마나제어술> 목표치 350]

    [모든 목표치 미달]

    [고관이 <정신방어>, <저주내성>, <마나제어술> 기능의 통제에 실패합니다.]

     

    본래라면 통과하기 힘든 수치였을 판정.

    그런데 나로서도 간과했던 함정이 튀어나왔다.

     

    [981기 1년차가 거의 다 경과했습니다.]

    [저주의 효력이 경감됩니다.]

     

    줄어드는 힘에 다시금 재개되는 판정.

     

    [제한적 통과]

    [고관이 <정신방어>, <마나제어술> 기능의 이성판정을 통과합니다.]

    [고관이 <저주내성> 기능의 통제에 실패합니다.]

     

    부동과 탈수의 저주.

    선채로 죽어가던 고관이 단숨에 마나를 끌어올리자 파직 하는 스파크와 함께 그의 몸이 다시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허억…! 이, 이건 대체!”

    “우와! 역시 딸깍의 힘은 대단해! 경험치 진짜 많이 모으셨나보다!”

     

    판정수치가 경감되었다고 해도 올리기 힘든 정신계 기능을 저만큼 쌓은 것도 대단했다.

    뭐어, 마음의 크기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나뉘듯이 고관의 정신은 사악한 정신력에 속하지만 아무튼 수치가 높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니겠어?

     

    “화, 황녀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완전 멀쩡한데요?”

     

    머어, 나도 기능 자체는 그리 대단치 않다.

    대충 100단위로 잡아보자면 이 정도겠지.

     

    정신력 200.

    저주내성 200.

    마나제어술 1000.

     

    마나제어술은 대단하지만 정신력과 저주내성은 이를 따라가기에 부족한 수치.

    하지만 원본과 사본의 차이, 서적의 등급차이, 그리고 이미 ‘이해한 서적’이기에 감소 되는 정독보너스의 차이가 페널티를 가뿐히 씹어먹었다.

     

    “1년차 보셨으면 다음 것도 보실 수 있겠다!”

    “다, 다음이 있다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981기 2년차 공략집]

    [981기 3년차 공략집]

    [981기 4년차 공략집]

     

    열람판정에 실패하면 정신제압 당하는 <공략의 서>.

    당연히 이 책은 1년차부터 4년차까지 각각 한 권씩으로 이루어진 도합 4권짜리 세트아이템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59 – 복제> 편에 나온 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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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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