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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0

    끝난 것이 아니었다.

    -파앗–!

    케이트의 코트 주머니에 조금 남아있던 폭발 플라스크가 빛을 발했다.

    꽤나 큰 폭발이 일었으나, 이전의 그 폭발에 비하면야 폭죽놀이나 다름이 없다.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 약간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바르게 고치며 루크가 숨은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비록 그간의 누적된 피해를 어쩌진 못해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제 한몸 가누기도 벅차보이는 걸음걸이였지만, 그의 육신은 여전히 움직이는 반면, 자신에겐 더이상 그를 상대할 수단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케이트의 목소리는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듯, 꽤나 담담했다.

    “틀렸어, 내 능력으론 그를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하다.”

    마법, 아티팩트, 플라스크, 스크롤, 노획한 지팡이들…….

    어느 것 하나 사용하지 않은 게 없었다.

    아까 전의 그 플라스크들을 끝으로, 케이트는 마침내 모든 대항수단을 잃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지 섬광 플라스크 몇개와 몸뚱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시선을 돌리고 도망쳐서는, 그가 스스로 포기하고 멈춰주길 바라고 기도하는 것 뿐이다.

    시루드는 경악하며 탄식했다.

    “말도안돼, 대체 저런 괴물은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시루드가 보기에도 그녀의 전투엔 결코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군더더기없는 움직임으로 최적의 공격을 전부 쏟아내었다는 것을, 멀리서 보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전해질 정도로 깔끔한 공세였으니까.

    그럼에도, 그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반격해왔다.

    휘청거리고, 비틀거리고, 몸을 떨면서도 기어코, 그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를 상대하면서 이미 골백번은 더 들었던 생각을 새롭게 읊조리는 시루드의 모습에 루크는 하마터면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걸까.”

    이런 괴인은 인류 역사에서 마계전쟁 이후 다신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미셸, 경찰에 연락은 어떻게 됐어요?”

    “그, 되긴 됐는데…….”

    “됐는데?”

    “경찰 병력도 부족하고, 여긴 거리도 멀어서…….”

    미셸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지역의 경찰병력들은 물론, 심지어 타 지역의 지원병력까지 전부 동원된 대형 사건이 벌어진 직후 다시 출동으로 이어가기까진 아무리 빨라도 한시간 이상.

    거기다 루체스트 타워 테러의 여파로 발생한 교통혼잡까지 생각하면, 경찰들이 제때 도착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이제와서 사설 경비업체에 연락한다해도 상황은 비슷하리라. 

    “한시간이요?”

    시루드는 기겁했다.

    한시간이면 저 남자가 자신들을 다져놓는데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일 것이다.

    그것도 ‘최소’라고 정한 것인만큼 그 이상이 걸릴 경우도 생각해보면, 오늘 안에 제때 도움의 손길이 닿기란 요원해 보였다.

    “루크, 역시 우리 포기하고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계속 여기에 있다간 꼼짝없이 당해버리고 말거야!”

    확실히, 지금은 차라리 도망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현재 상황에서 도주가 성공할 확률도 꽤 높은 편이었다.

    야외에선 아무래도 도망치는 쪽이 유리하고, 그의 상태또한 도주하는 자신들을 쫓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데다가, 운전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류 운전기사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안돼. 그럴 순 없다. 저택을 포기할 순 없어.”

    시루드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또 왜? 이번엔 그럴만한 이유도 없잖아!”

    이런 장면, 예전에도 한번 봤었다.

    타워 이전에 테러가 발생했던 그 ‘전시장’.

    그곳에서 거대한 드래곤을 마주했을 때에도, 루크는 여기서 자신이 도망칠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렸었지.

    솔직히 그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때는 사방이 막힌 지하굴이라 당장 도주할만한 기회가 지금만큼은 없기도 했고, 루크가 나몰라라하고 도주했을 때 발생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마땅히 그랬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드니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와는 달리 이곳은 사방이 뻥 뚫린 야외고, 상대의 추적능력이 그때보다 훨씬 떨어지며, 인질의 피해를 생각해야 할 상황도 딱히 아니다.

    따라서 시루드로서는 이번엔 루크가 위험을 감수할만한 동기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재산상의 피해나, 가해자가 도주하게되는 우려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게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루크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루크에겐 저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이유는 있어.”

    루크가 도망칠 수 없는 이유, 그건 바로 아린세이아의 차원을 잇는 특이점이 저택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도망치게되면, 저택에 남은 아린세이아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공간에대한 적절한 분리조치없이 여기서 그를 피해 도주하게되면, 이것은 단순히 아린세이아의 정보가 유출되고 끝나는 수준의 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차원을 잇는 마법식의 고도화된 암호체계를 그가 풀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설사 그들이 아린세이아의 문을 열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파괴’는 가능하다.

    그리고 공간에 밀접하게 연결된 특이점의 파괴는, 공간의 연결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토끼굴에서 가장 큰 굴이 무너지게되면 덩달아 모든 굴이 흙에 잠겨버리게 되듯.

    자신의 방에 연결된 공간을 부숴버리면, 자신은 당분간 아린세이아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자신의 모든 계획의 근간인 아린세이아가 무너지게 되면, 살아남는 것에 의미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레니에도, 리브도, 심지어 자신의 사소한 모든 추억들까지도 전부 잊혀지고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말 테니까.

    다만, 자신의 방 책상 서랍에 모셔져있을 ‘열쇠/검/그림자’…….

    공간을 잇는 열쇠이자 코어로 작용하는 그것만 챙겨올 수 있다면 저택에 더이상 미련은 없다.

    그것만 있으면 도망친 곳에서도 고정된 좌표로 다시 아린세이아를 불러들일 수 있고,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터…….

    루크는 저택의 2층, 자신이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락방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킬듯 하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2층에 있는 내 방에서 월영석 브로치를 챙겨야해. 그 전에는 절대 도망칠 수 없어.”

    “뭐……? 잠깐, 너, 설마 그거…….”

    익숙한 마석의 이름에 시루드는 순간 움찔했다.

    월영석, 그건 자신이 예전에 루크의 생일 때 선물로 줬던 마석의 이름이었으니까.

    여기서 갑자기 그 물건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 순간, 미셸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루크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네? 아가씨, 지금 그깟 브로치가 중요한가요?”

    기껏 불 속에서 도망쳐나와놓고선 깜빡하고 귀중품을 놓고왔다며 다시 불길로 달려나간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월영석은 딱히 엄청나게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마석중에 하나.

    월영석 채취 시스템이 보편화되고 난 뒤엔, 잘 사는 집 어린이의 용돈을 조금만 모아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했으니까.

    따라서 고작 월영석으로 만든 브로치때문에 저런 괴물을 지나가겠다는 건 그야말로 미련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일의 경중을 모르는 아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 또한 어른의 일.

    “무슨 엄청난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가씨!  브로치는 나중에 새로 사셔도 돼요!”

    미셸은 그렇게 루크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루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안돼. 그럴 수 없어.”

    “미치겠네! 이봐요, 당신도 설득해보세요! 저길 대체 무슨 수로!”

    미셸은 곁에서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모자 쓴 여인을 향해 지원요청을 보냈지만, 차마 자신은 입을 뗄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는 조용히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렇게 미셸이 답답해하는 사이, 루크는 시루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어. 그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거니까.”

    “……아.”

    루크의 단호하고 간절한 시선을 느낀 시루드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제어하기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렇구나, 자신에겐 단순히 좋아하려나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적당히 골라서 구매한 마석에 불과했지만, 그건… 루크에겐 그것이 그 정도로 소중했던 것이구나.

    하지만 이해는 간다.

    그런 ‘과거’를 겪고 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에게 받은 생일선물, 이런 상황에서조차 차마 버리고 도망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일수도.

    그래서일까, 시루드는 도움을 요청하는 루크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것은 굉장히 위험천만한 길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루드, 네 도움이 필요해.”

    “…응. 내가 뭘 하면 돼?”

    “고마워.”

    “음, 그럼 난 뭘 하면 되지?”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괴한’을 경계하던 모자 쓴 여인도 다가와 물었다.

    그녀도 브로치의 의미를 아는 걸까?

    그렇게 순식간에 팀이 만들어졌다.

    …비록, 부외자인 미셸은 그들의 행동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네? 다들 잠깐만요. 진심이세요?”

    정말로 저길 다시 가겠다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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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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