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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1

   얼마 전 친우의 메이스를 들고 찾아 온 여자아이를 보낸 후부터 여태까지 자신이 해 온 연구를 정리했다.

   

   수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하에 머무르며 쌓아 온 지식.

   

   에르기누스라는 천재의 지식을 그대로 지닌 자가 영생을 얻었기에 내놓을 수 있었던 여러 결과물.

   

   그것을 전하기 위한 준비를 말이다.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가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은 오롯이 후대를 위한 사죄일 지언데 어찌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나.

   

   심지어 이번에 그가 지식을 베푸는 자는 그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인 친우가 아끼는 자이며 그와 동시에 위대한 주신 아르마디가 자신의 사자로 간택한 자.

   

   에르기누스의 기억을 지닌 해골은 지금 그녀에게 이 정도밖에 주지 못한단 사실에 한탄할 지언정 아쉬움을 간직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자신의 모든 걸 전할 준비를 끝마친 에르기누스는 마지막을 마주하기 전에 새롭게 생겨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코 부서지지 않아야 할 천장이. 설령 부서진다 하더라도 기적에 달하는 무언가에 의해서만 무너져야할 것이 평범한 폭탄과 스크롤 따위에 박살난 경

   위에 대해 알아내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가 쌓아 온 지식과 이론 모든 것이 분명히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단언하는 것은 쉽다.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을 외면하는 것은 간편하다.

   

   허나 마법사라면 그래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탐구하고 해결한다는 사명을 품은 마법사는, 학자는, 눈앞에 일어난 일을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기존의 이론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면 본래의 지식이 틀린 것 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를 놓친 건지. 새로운 부분이 무엇인지. 필사적으로 추적하여 그 끝에 올바른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현상을 하나하나 재현하는 것.

   

   그 꼬맹이가 사용했던 스크롤과 폭탄의 종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순서 또한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어.

   

   그러니 하나하나 재현을 해나가면서 어디에서 변수가 생겼는지부터 찾아내야 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연구에 몰두하던 에르기누스는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실마리를 발견했다.

   

   스크롤의 주변을 이계로 만들어버리는 스크롤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온 무언가.

   

   마력과 마력 사이의 존재하는 틈을 벌려 흩뜨리는 힘.

   

   저 힘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지는 이해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을 짜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천장의 마법을 세밀하게 조직하면 스크롤에서 흘러나온 정체 모를 힘도 이걸 완벽하게 흩뜨릴 수는 없을 터. 에르기누스의 판단은 옳았다.

   

   한층 더 세밀하고 유기적으로 변한 마력은 정체 모를 힘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다.

   

   이걸로 다음에 그 꼬맹이가 왔을 때 이전처럼 방문할 순 없게 됐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냐.

   

   나조차 모르는 새로운 힘. 이계의 스크롤에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것.

   

   이걸 규명해야 해.

   

   수백년이 흘러 또 다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에르기누스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거기에 몰두했다.

   

   그 탓일까? 천장 위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눈치 챘을 때 에르기누스는 잊고 있었던 아쉬움을 느꼈다.

   

   아직 좀 더 이 힘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는데 벌써 찾아오다니.

   

   아니. 아니다. 이 세상에서 지워져야 할 망자 주제에 미련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

   

   허나 그렇다고 눈앞의 미지를 지워버린 채 세상을 떠나야 하는가?

   

   내가 연구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미지로 남을지도 모르는 이 힘을?

   

   아아. 그러고 보면 저 꼬맹이는 지난번에 시련을 넘어서지 않고 이 곳에 자리했었지.

   

   그래. 그 때 한 번은 예외로 넘어가주었다만 이번에는 아니다.

   

   저 녀석이라면 얼마든 올바른 방식으로 이 곳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그 때까지만 이 힘에 대해 연구하는 거다.

   

   스스로와 타협해버린 에르기누스는 루시가 떠나간 걸 확인하고서도 던전 공략의 준비를 하러갔겠거니 생각하고는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그랬던 그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은 한나절이 지나서도 루시가 돌아오지 않을 무렵이었다.

   

   뭐지? 던전 공략을 준비하는 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텐데?

   

   애초에 자신의 방법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준 것은 그 아이일지어니 자신의 방식이 파훼당할 걸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닐 터.

   

   그러니 분명 던전 공략을 준비하고 왔을 텐데 어째서 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건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에르기누스는 그제서야 자신의 마법을 펼쳐 천장의 위를 살폈다.

   

   이 넓은 사막에 루시 알른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루시 알른은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다만 그녀가 던전 공략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개허접 던전 2층에서 오른쪽 끝으로 가면 비밀 통로가 나오거든? 그럼 거기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끌고 온 용병단과 함께 사막에 존재하는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마치 던전의 모든 곳을 눈에 새겨둔 것처럼 장황한 루시의 이야기는 다소 건방졌으며 허황되었지만 그걸 듣는 이들 중에서 루시의 말을 가벼히 여기는 이는 없었다.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던 에르기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용병 중 하나의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들었다.

   

   ‘이거까지 털어먹으면 오늘 수익만 해도 얼마야?’

   ‘용병단장님이 저 영애한테 돈을 쏟을 때는 뭔 되도 않는 꿈을 꾸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

   ‘헛소리는 됐고 들어갈 준비나 해. 빨리 털어먹고 나와야 다음 걸 털지!’

   

   루시 알른은 이 이전에도 몇 번이나 성과를 내보인 상태였던 것이다.

   

   내 던전을 공략하는 대신 저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공략하고 있다고? 왜? 어째서?

   

   …

   

   설마 내 던전의 입구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는 건가?

   

   그래서 던전을 찾고 있는 건가?

   

   저리 던전에 해박한 루시가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생각을 하면서도 에르기누스는 혹시 모른단 생각에 슬그머니 던전으로 향하는 지표를 만들어냈고.

   

   ‘영애님. 이건 뭘까요?’

   ‘그런 허접스러운 거에도 신경 쓰고 허접성녀는 참 자비롭네. 자. 여기 돌멩이한테도 관심을 가져주면 어때?’

   ‘어. 음. 아무것도 아닌가요?’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그 이후에도 에르기누스는 에르기누스는 몇 번이나 단서를 내밀어 보았지만 그 때마다 루시는 그 단서를 무시하고 다른 던전으로 향했다.

   

   그의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 인근의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던전만큼은 기가 막히게 무시했지. 다른 이들이 이상하다 이야기해도 말이다.

   

   예전부터 눈치가 없단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에르기누스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무시를 당하면 그라도 문제를 알 수밖에 없다.

   

   루시 알른은 그의 던전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을 뿐인 거다.

   

   사막에 남아 돌아다니며 내게 항의를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왜 자기를 무시했느냐고.

   

   이를 깨달은 에르기누스는 코웃음과 함께 치졸하다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다음은 내가 먼저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것 하나 못해주냐는 불만이었으며.

   

   저 꼬맹이는 그렇다쳐도 저기에 동조하고 있을 친구놈은 무엇이냐는 짜증이 연이어 떠올랐고.

   

   그래서 어쩌란 것이냐는 한탄과.

   

   이후에도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것은 자책이었다.

   

   에르기누스가 남긴 기억 속의 버릇처럼 뼈만 남은 엄지를 해골로 깨문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멍청한 놈.

   

   그 호기심 때문에 크나큰 죄를 저질렀으면서 또 다시 호기심 때문에 제 주제를 잊으려 하는 구나.

   

   평생토록 죄를 잊지 않겠다 다짐을 했으면서.

   

   나를 만든 대마법사께서 이 기억을 가장 선명히 남겨 두었단 사실을 알면서도.

   

   수백 년이란 세월 탓에 기억이 풍화되니 그 죄가 그리 가볍게 느껴졌느냐.

   

   기억하라.

   

   네 녀석은 어디까지나 에르기누스께서 남긴 흔적에 불과하다.

   

   세상에 그 분의 의지를 남기고 잊혀져야 할 존재다. 호기심과 탐구심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들이 지녀야 할 것이지 뜻을 전하고 사라져야 할 자가 지닐 것이 아냐.

   

   그리고 어차피.

   

   이번 일의 끝에 사라질 녀석이 미련을 가져 무엇할까.

   

   허허. 스스로 생각하여 잘못을 깨닫게 만든다라.

   

   이는 확실히 주신의 방식이군.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무리 얄미워도 속에 담긴 것은 어디까지나 주신의 사도란 말인가.

   

   속으로 헛웃음을 흘린 에르기누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을 고친 해골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준비한 여러 가지를 확인한 후에 지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가 남긴 유지를 이루기 위해서.

   

   *

   

   ‘에르기누스님. 정말 질기네요. 이쯤 무시했으면 슬슬 나올 법도 한데.’

   

   에르기누스를 안달나게 만들기 위해 사막을 돌아다니고서 어언 하루 째.

   

   던전을 공략하는 용병들의 눈가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정작 그 입에는 웃음기만이 품어져 있었다.

   

   사막 위에서 시간을 때울 겸 해서 이 곳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다보니 자연스레 저들의 짐이 무거워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필요한 것들을 챙겼으니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이젠 슬슬 반응이 돌아오면 좋겠는데.

   

   <예전부터 고집이 강한 녀석이었으니. 다음 번에 단서를 보면 대놓고 무시해보는 게 어떠냐.>

   ‘열 받게 하잔거죠? 나쁘지 않네요.’

   

   좋아아아. 그럼 다음 번에 지표를 발견하면 그걸 때려 부순 다음에 대놓고 비웃어주자. 꼴이 받아서라도 반응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다음.

   

   “거기! 마법사! 멈춰!”

   “소속을 대!”

   

   에르기누스를 골리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고 있던 중 주변을 경계하던 용병들 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갤 돌린 나는 저 멀리에서 검은 장발을 흩날리는 연약한 선의 남자를 확인하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라? 저거. 내 기억이 맞다면 컷신 속 에르기누스랑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루시야. 저 해골. 직접 나올 수도 있는 거였느냐?>

   ‘저. 맞죠? 저거 에르기누스님 맞죠!?’

   <그런 것 같긴 하다만.>

   ‘왜 저 해골이 바깥에 있어요?! 그것도 사람 피부를 지닌 채로!?’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

   

   뭐야?!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당혹 속에서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저 멀리에 있던 에르기누스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직후. 멀리에 있던 해골이 모습을 감추더니 이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리게 했군.”

   “누가 너 같은 찐따 동정을 기다렸단 거야? 자의식이 너무 과잉이네. 그렇게 망상이 한 가득이니까 아직도 찐따에서 못 벗어나는 거 아냐.”

   “흠. 거기에 반박할 말은 꽤 많다만 그대 덕분에 깨달은 게 있으니 당장은 넘어가주마.”

   

   깨달아?

   

   뭘?

   

   내가 얘한테 뭐 했나?

   

   내가 한 거 도발밖에 없지 않아?

   

   당혹 속에서 말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으려니 에르기누스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 알겠다. 고맙다고 말하면 만족하겠지?”

   

   네?

   

   아니.

   

   얘 대체 뭘 착각하고 있는 거야!?

   

   뭐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길래 저딴 재수없는 웃음을 짓는 거야?!

   

   수백살 넘게 처먹은 동정 해골 할배 주제에 왜 청춘인 척 하냐고!

   

   누가 나한테 알아듣게 설명 좀 해 줘어어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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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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