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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1

    루크와 시루드는 그렇게 ‘브로치 탈환 계획’을 위해 저택의 근처, 초목 울타리 뒤에 몸을 숨긴 채 저택 근처의 ‘침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루드가 참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이런게 통한단 말이야?”

    루크의 말대로, 그는 자신들이 이렇게 그에게서 나름 가까운 위치에 있는데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크가 말한 ‘적대하지 않고, 막아서지 않기’는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폐허에 가까운 상태인 그 저택에서 벗어나지 않고 멀뚱하니 서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일 지경.

    “어떻게 우리가 들키지 않는 거지? 방금 전까지만해도 저 사람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부 찾아냈었잖아?”

    시루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루크에겐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의 ‘육감’에서 몸을 피하는게지.”

    그와의 충돌 이후 알게된 사실은, ‘그의 오감은 이미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발자국 소리나 목소리같은 교란에도, 연막이나 섬광 등의 자극에도, 심지어는 오감을 뒤흔드는 혼란마법에도 그는 일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한 모든 공격과 적대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반응했지.

    그에 루크는 그가 오감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것이 아닌가하는 가설을 세웠다.

    세상에는 만인이 타고난 오감과는 다른 여섯번째 감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각, 즉 ‘육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실재하는 감각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그렇기에 확신할 수는 없는 그런 기묘한 감각.

    이른바 ‘무어라 설명할 순 없지만, 느껴지는 감각’.

    꽤나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육감이란 의외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묘하게 운세가 나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또는 누군가 자신을 험담하는 것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일 등이 있으리라.

    하지만 세상이 넓고 무료한 학자들 또한 많은 만큼, 이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감각에도 호기심을 품은 이가 있었다.

    그는 그런 감각과 실재 사건들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어느 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런 감각들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이상형인 누군가를 보고 운명의 상대라고 느끼는 것, 거리에서 스치듯이 만난 누군가와 후일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 어떤 상황을 보고 인생에 다신 없을 기회라고 느끼는 것…….

    간헐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러한 감각들이 모두 일종의 ‘운명 얽힘’을 인지해내는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운명은 많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공기를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그가 오감이 아닌 육감을 통해 자극을 받아들인다는 것도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발상은 아니었다.

    영혼이라는 운명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영혼시’를 타고난다면 그 운명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도 있으니 더더욱 있음직한 일이지.

    물론 그것이 한 인간이 그 육감만을 그토록이나 극도로 정밀하게 발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뒤로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루크는 이어서 대답했다.

    “이곳은 그의 육감, 즉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사각지대다. 우리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운명 얽힘’또한 발생하지 않겠지.”

    비록 자신은 영혼시가 없고 단순히 그것을 마력시로 모방해 흉내내는 것인지라 운명의 흔적과 범위를 볼 수 있을 뿐 누군가의 정확한 미래나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확인만 하는 정도라해도 충분했다.

    게다가 이 초목 울타리는, 겉보기엔 별다른 게 없이 보여도 어느정도 안과 밖의 격리가 가능하도록 루크가 손수 인챈트를 걸어둔 마력식물이다.

    따라서 이곳은 그의 운명과 직접적으로 분리된 ‘외부’이며, 이쪽에서 먼저 그를 향해 어떤 의지를 품어  ‘운명 얽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그가 먼저 이쪽을 인식할 일은 없으리라.

    그러자 시루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냥 너 혼자서 몰래 들어가서 가져올 수도 있는 것 아니야? 어째서 내 도움이 필요했던건데?”

    루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야, 그에게서 빈틈이 보이질 않으니까.”

    그의 범위를 볼 수 있어봤자, 사용할 수 있는 빈틈이 없으면 소용없다.

    이는 마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마나를 다룰 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현상도 일으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방법을 알아도 스스로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다면, 응당 타인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그런 루크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시루드는 다시 루크의 저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나저나, 정말 심각한 상태네…….”

    뭐가 부수고 지나갔는지 허물어진 벽, 성한 걸 찾아볼 수 없는 창문들, 온통 난장판인 내부 상황 등…….

    집주인인 루크가 저러고 있었으니 어느정도 어질러졌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부서진 벽으로인해 내부가 훤히 드러난 저택의 모습은 차라리 이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게 고치는 것보다 빠르고 싸게 먹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빠르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니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었다.

    시루드는 이후 확인차 다시 한번 루크에게 물었다.

    “루크, 계획은 정말로 그대로 할거야?”

    “그래.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말이지.”

    “하지만, 너무 무모한걸.”

    “그러나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지.”

    물론 세련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단순한 방식이라고해서 늘 나쁜 건 아니다.

    어려운 자물쇠를 열기 위한 방법에는 자물쇠를 해제하는 것도 있지만, 충분한 힘이 있다면 자물쇠를 부숴버리는 단순한 방법도 충분히 유효한 방법일 테니까.

    그리고 루크에겐 그것을 실제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마법을 직접 시전해야 할 입장인 시루드로서는 역시 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시루드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부디,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이는 일은 없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비록 모든 세부조정은 루크가 이미 해서 준다지만, 결국 그 활의 시위를 놓게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발사된 화살이 표적지를 빗나간다면 분명 본인의 책임이리라.

    그렇게 불안해하는 시루드에게 루크는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네 마법 정도론 날 절대 못 죽일테니까.”

    그런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거 참 안심되는 격려네.”

    그냥 격려라기엔, 뭔가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드는데.

    —- 

    그 무렵,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루크의 ‘준비’를 기다리던 미셸은 ‘케이트’라 불린 여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은 마땅히 할 것도 없었으니까.

    “…….”

    ‘역시 어떻게 봐도 똑같이 생겼네.’

    청록, 그리고 금색의 눈동자, 온화한 표정을 지우면 드러나는 날렵한 눈매, 날카로운 인상과는 대비되는 귀엽고 조그만 입, 은은한 금빛을 띄는 풍성하고 웨이브진 머리카락…….

    180이 넘어보이는 큰 키와 현실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몸매를 제외하면, 정말 어떻게 봐도 루크와 똑같이 생긴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더 그녀와 루크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깊어지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볼 틈은 없었다.

    그녀는 루크와 떨어진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는 중이었으니까.

    -척, 척, 달그락, 슥, 슥…….

    빈 스크롤에 마법을 부여하고, 빈 플라스크에 새로운 화합물을 채워넣는 그녀의 모습. 

    비록 마법엔 문외한인 미셸이 보더라도 그녀의 일련의 동작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익숙하고 능숙한지, 곁에서 그녀의 손만 보더라도 그녀의 재능 뿐 아니라 이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을지가 보이는 것 같다.

    대체 그녀는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묻고 싶은 건 많지만, 혹시나 입을 여는 것조차 방해가 될까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 때,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루크가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외치는 루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은 준비 됐다! 케이트, 계획대로 진행해!”

    수풀 저편에서 손을 흔들며 외치는 루크의 신호에 맞춰, ‘케이트’라 불린 여인은 작성하던 스크롤과 플라스크를 재킷에 주워담으며 몸을 일으켰다.

    미셸은 허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인가보네요. 저 무서운 사람이 뭔가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건.”

    “…….”

    정말로 저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대놓고 저런 소란을 떠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그녀는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남은 아티팩트들을 확인했다.

    이미 게이트를 여는데 사용하고 남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간의 모래알 한줌, 그리고 방금 막 작성한 폭발 스크롤과 플라스크 몇개.

    그를 쓰러트리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빈약한 무장이지만, 이 정도면 그녀의 계획을 돕는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그녀가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멈칫.

    뒷편에서 자신의 옷깃을 잡아세우는 감각에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지금 뭐하는거지?”

    그에 그녀는 향해 조용히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다.

    불쾌감이나 당혹감보다는 단순한 호기심.

    하지만 최소 180은 넘어보이는 그녀의 큰 키와 날카로운 인상은 그녀의 그런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미셸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미셸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억누르고 가만히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아까는 뭐라고 입을 여는 것도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가기 전이라면 마지막으로 한마디 정도는 하게 해주세요.”

    “…….”

    결국 말했다.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어도 난 몰라!’

    -꿀꺽.

    긴장해 침을 삼키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는 미셸.

    그러자 그런 의지가 전해졌는지, 그녀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말해. 듣지.”

    휴우.

    그녀의 승낙에 미셸은 잠시 한숨을 내쉬곤 단호히 말을 이어나갔다.

    “한가지 확인하겠는데, 당신이 뉴스에서 말하는 ‘전시장의 테러리스트’라는 거, 정말인가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정할 순 없겠네. 맞아.”

    역시, 그녀는 시루드의 추측대로 세간에서 말하는 그 중범죄자였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그녀에겐 타 범죄다와는 다른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막대한 재산피해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인명피해는 그다지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

    그만한 규모의 피해에도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부상자의 상태 또한 후유증이 남지 않는 정도의 가벼운 타박상정도.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셸이 보기에 그녀가 일으키는 테러는 단순히 ‘협박수단’이 아니었다.

    어떤 목적이 있는 ‘시위’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그녀는 단지 목적을 향하는 방식이 조금 엇나가 있을 뿐, 심성만은 아직 밑바닥까지 떨어지진 않은 것이다.

    미셸이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어떤 사정과 목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당신도 어머니고 아가씨를 위한다면 이런 방식은 그만두세요. 당신도 어른이라면, 조금 더 성숙한 방식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는 미셸에게 대답할 마음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인지, 그녀는 잠시 조용히 침묵했다.

    “……응, 그럴지도.”

    잠시 후, 입을 연 그녀는 여전히 대체적으로 무표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약간의 후회도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인간성을 느낀 그녀는, 이내 한층 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도 어른이라면 책임지고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그런 무모한 작전을 허락한건, 당신 때문이기도 하니까.”

    루크의 그 터무니없어보이는 계획을 듣고도 막지 않은 건, 어른인 그녀가 어떻게든 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위험한 계획을 짜면, 그 뒤를 감당하는 것은 언제나 어른의 몫이 되어야 할테니까.

    그러자 그녀는 놀랍게도 피식 웃으며 다시 몸을 돌리고는 대답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그렇게 저택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셸은 멍한 느낌을 받았다.

    “…….”

    외모로 사람을 홀린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것은 분명 악한 범죄자의 대답이었음에도, 사람을 어딘가 안심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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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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