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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1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옥상 문 근처가 어두워서 양복의 색은 자세히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계통인 것은 확실했다.

       검은색? 보라색?

         

       “….”

         

       대체 저 남자는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고, 깜깜하고-

       이 장소에서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 이봐, 고민이 있으면 나에게 털어놓는 것은 어때? ]

         

       남자는 어둠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걸었다.

         

       귀로 들리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머리로 울리는 건가?

       무전기로 전달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진동으로 소리가 전달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뜻이 그냥 직접적으로 뇌에 쑤셔박히는 것 같기도 하다.

         

       뭔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알 거 없잖아.”

         

       그는 그 기묘함을 떨쳐내기 위해서 더더욱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본래의 성격이라면 이러한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눈앞의 저 남자에게는 이러한 태도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남자에게만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온몸에 엄습해 있는, 그의 몸을 한없이 짓누르고 있는 우울감이 그 원인일지도 모르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예를 들어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꼬맹이 하나가 손을 흔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해도 이렇게 답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그는 흠뻑 젖어서 축 늘어진 빨래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바람이 불거나 줄이 끊긴다면- 그는 바닥에 떨어져서 흙투성이가 되어야 하리라.

         

       “괜히 남한테 신경 쓰지 말고, 아래로 꺼져.”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는 퉁명스럽게라도 경고의 뜻이 담긴 말을 던졌다.

       당장 이곳에서 꺼지라고 말이다.

         

       오, 그러다가 문득-어쩌면 이것은 일말의 양심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

       건물 밖으로 나가면 떨어지는 그와 부딪쳐서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이고, 떨어지는 그를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정신병을-군인인 그의 동생이 전쟁터에서 광대 분장을 한 미친 무인을 상대한 후 광대만 보면 발작하는 트라우마에 걸렸듯이-안겨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 틀림없이 그럴 수도 있겠지.

         

       어쩌면 창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소리로 들을 수도 있겠지.

       철퍼덕-뿌직.

       마트에서 산 질 좋은 돼지고기를 바닥에 내팽개칠 때 나는 소리를 몇 배로 늘려놓은 듯한 그러한 소리, 아. 어쩌면 질 좋은 고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는 곰팡이가 한껏 피어오른 고기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떤 고기든 간에 그러한 소리를 듣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 고기가 제대로 도축이 되지 않아 뼈나 내장이 그대로 들어있고, 이웃집 아이가 집어던진 물풍선이 나무로 된 전신주에 부딪혀서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가듯이 안에 든 내용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은 분명한 일이었으니까.

       오, 지붕 위에서 물풍선을 던져대는 아이가 하는 것처럼 그냥 평범한 물, 가끔은 학교 수업에서 쓰고 남은 물감을 탄 물이 들어있는 정도로 그치면 참으로 좋으련만.

       그가 떨어진다면 그러한 일말의 기대는 찾아보기 힘들겠지.

       사람 몸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건 배려가 아니다.

       호의도 아니고, 그냥 이기심일 뿐이다.

       그냥 조용히 죽고 싶다는 것.

       죽을 때만큼은 온전히 내 통제 아래에 두고 싶다는 것.

         

       뭐,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임종이 찾아올 때 고요해진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 천국의 문으로 향하게 하리니.

       오, 종교적으로도 매우 걸맞은 죽음의 태도라.

       그러니 침묵 속에서 죽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천국엔 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뭐 알 바인가?

       여기가 지옥인데 말이다.

         

       하-하하.

         

       [ 하하하- 아래라. 거참 흥미로운 말을 하는군. ]

         

       남자는 그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배꼽을 쥐고 몸을 구부렸다.

       너무 유쾌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아니면, 유쾌한 척을 하면서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 저것은 조롱이다.

       그는 직감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듯이, 파산해버린 그를 비웃는 것처럼.

       돈이 없어서 가정이 파탄이 나버릴 위기에 처해있는 이웃들을 보는 것처럼!

         

       저 남자는 그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남자에게 버럭 화를 내려고 했다.

         

       이어지는 남자의 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 자네처럼 밖으로 뛰어 내려가면 되나? ]

         

       자네처럼 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는 남자의 말을 듣고 흐리멍덩한 정신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곳에서 누가 플래시를 켜서 밝힌 것처럼.

       어두운 숲속에서 누군가가 부싯돌로 모닥불을 피웠을 때처럼.

         

       그렇게 사방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당신. 경비원이야?”

         

       [ 오, 경비- 비슷하기는 하지.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몰라. ]

         

       정신이 맑아지자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양복.

       한 손에는 술이 담긴 잔.

       한 손에는 이상한 모양의 지팡이.

         

       이러한 장소가 아니었다면.

       브로드웨이의 무대라도 되었다면.

       스탠딩 코미디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홀 안이었다면, 저 남자는 코미디언-혹은 코미디언을 지망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혹은 스타의 관심을 끌어보겠답시고 이상한 복장을 하는 작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였고.

         

       그런데 이 장소에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눈살이 확 찌푸려지는 복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는 주술사가 아니고서야 저런 복장을 어떻게 맨정신으로 입을 수 있겠는가?

       미국의 거대한 마트에 가더라도 저런 이상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

         

       음.

       의외로 찾아보기 쉽기는 할 것 같았다.

       거기는 정말로, 정말로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장소에서 저런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다니는 것.

         

       그런 인종은 뻔했다.

         

       “주술사야?”

         

       주술사.

       숫자가 적어 흔히 보기는 힘들지만, 그런데도 강렬한 인상 때문에 존재감만큼은 확실한 능력자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주술사 캐릭터는 흔하게 등장하는 편이었고, 꼭 저렇게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면서 접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주술사만 등장하면 어렵게 꼬인 일도 쉽게 풀려서 ‘이게 추리소설에 중국인이 등장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옛날에는 뭐만 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신이 등장해서 다 해결해버리는 전개가 많았다. 그리고 현대에는 주술사 캐릭터가 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작자는 주술사 같은 치트키를 사용하는 대신에 더더욱 고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며 비판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 이런.

       지금 그의 눈에 있는 이 남자는 현실이 아닌가.

       블랙 프라이데이 때 300달러를 주고 산 그의 TV 안에서 존재하는 그런- 배우가 연기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 실존하는 인물이었다.

         

       [ 흠. 주술사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관이 없지는 않지. ]

         

       톡.

         

       남자는 지팡이로 바닥을 톡, 하고 쳤다.

       그리고 드럼을 두들기는 것처럼, 아니면 직장 상사의 명치를 칼로 몇 번이고 찌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바닥을 쳤다. 저렇게 계속 치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이 뚫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기도 했고, 어쩌면 저 빌어먹을 소리를 듣고 층간소음이라면서 얼굴이 시뻘게진 뚱뚱한 작자가 올라올 수도 있겠다는 우스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톡.

       톡.

       토옥.

       토도도독.

       토도도도도독.

         

       그런데 왜지?

       저 소리를 듣고 있자면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오금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왠지 끝내주는 경험을 하고 난 다음 녹초가 된 것처럼 몸이 무겁고 탈력감이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를 따라서 헤비메탈 밴드를 보러 갔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왜 이런 느낌이 지금 드는 걸까?

         

       [ 자, 그것 아나? 옛날 기절한 사람과 죽은 사람은 별다른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기절이 너무 심해서- 그래, 지금의 말로는 코마 상태라고 하지. 그런 상태의 사람은 정말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이 되었었어.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런 것 같았지. ]

         

       그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남자가 두들기는 지팡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가, 저 길쭉하고 굵은 것을 보니 묘하게 느낌이- 느낌이-

         

       [ 그렇다고 내가 그런 상태로 만들겠다는 말은 아니지. 나는 죽음과 관련이 된 것이지, 좀비를 만들고 부리는 존재는 아니거든. 그건 다른 로아나- 아니면 좀 그쪽에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무당이 해야 할 일 아니겠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야. 음. ]

         

       토옥.

       휘잉!

         

       [ 혹시 거대한 물건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된 적이 있나? ]

         

       퍼억!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빌딩 밖에 남자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또 누군가가 뛰어내렸구나 싶어서 그냥 넘기려고 하였지만, 남자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 간단하게 911에 신고해주었다.

         

       병원으로 이동한 남자는 며칠 간의 기억이 흐릿해져 있었고, 후두부에 상처가 발견되었다.

       지갑이나 귀중품이 털리지도 않았기에, 단순히 미끄러져서 뒤통수를 어디에 박고 기절한 것으로 추정.

       남자는 그냥 단순히 치료만 받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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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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