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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2

       

        

        

        

        

        

        

        

        

        

        

        

       “이런 빌어먹을, 한동안 안 온다 싶었더니 비가 줄창 내리는구만.”

        

       “원래 비 많이 오는 동네잖아요, 여기는. 옷 젖고 더러워지는 건 저도 별로 안 좋아하긴 하지만, 좀 더 운신의 폭이 넓어진 건 좋지 않나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냥 호불호의 문제야.”

        

        

        

        쏴아아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온 세상을 적셨다. 단 한 줌의 햇빛마저 찾아볼 수 없는 미션 이틀차의 오후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웠다. 로건이 날 걱정할 정도였지만, 나는 어차피 조금만 추워져도 이카루스 기어의 보온 기능을 켜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그동안 스나이퍼 컴페티션을 진행하며 기어의 그 어떤 기능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추위는 좀 달랐다. 물론 딱히 핑계를 댈 생각은 없었다. 치팅은 치팅이었으니까. 번외 참가자라 다행이라 싶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나 같은 파충류는 신체 온도가 하락할 때마다 남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체 기능의 오작동을 겪는다. 가령 끔찍하리만치 소화가 안 되는 것도 모자라 금방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내게 되고, 몸의 윤활유가 몽땅 얼어붙은 것마냥 움직일 수도 없어진다.

        

        체온이 내려가는 순간 남들 이상으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 정도는 봐주리라 믿는다.

        

        

        아무튼 체온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날씨 문제는 비교적 작은 문제로 격하된다.

        

        내리는 비로 인해 올라가는 습도와 빗방울을 통과하는 탄환의 감속은 상당히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비가 내리며 나는 소음은 격발음과 탄환 소음을 상당수 가려줄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넘어지며 나는 소음을 가리기에도 안성맞춤이었고.

        

        요컨대 일장일단이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라도, 다들 페이스를 바짝 올리기 시작했다.

        

        

        

       ───!

        

        

        

       “이게 잠입인지, 아니면 암살이라 쓰고 몰살이라고 읽는 건지….”

        

       “지금이 아니면 이럴 기회도 없지. 후다닥 이동하자고.”

        

        

        

        소음기를 통과하여 날아간 탄환이 대략 300m 가량 떨어져있는 휴머노이드 정찰대 중 한 명의 머리에 맞닿자마자 목이 비틀려 꺾이고, 머리가 반쯤 날아간다. 그 옆에 있는 다른 기체는 로건의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이마 부분이 관통되자마자 무릎을 꿇고 앞으로 엎어졌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들켰을 확률이 더 높았겠지. 소음기를 썼다고 해도 아음속 탄환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청력에 무리가 올 정도의 날카로운 소음이 터져나오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내리는 비는 소음을 감춰주기엔 실로 안성맞춤이었다.

        

        또다시 발사되는 한 발. 소음기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스. 총열이 비를 맞아 빠르게 식는다. 차가운 공기, 그리고 빗방울 사이로 연기와 김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소음기에 맞은 빗방울이 증발하며 김이 피어오르고, 화약 연기가 총구에서 모락모락 뿜어지는 것이었다.

        

        세 기로 이뤄진 순찰조 하나가 순식간에 지워진다.

        

        

        PDA를 확인하며 덧붙였다.

        

        

        

       “경계 단계 격상 조짐 없음…그것과는 별개로 저쪽에서 하나 더 오네요.”

        

       “근방에서 신호가 끊겨서 확인하러 오는 거겠지. 빨리 지워버리자고. 슬슬 요새 근처에서 좀 휴식하고 싶거든.”

        

       “순찰조는 아닌 것 같은데…그것보단 많네요. 순찰조를 싸그리 지워버리니 기동타격대까지 편입시켜서 돌아다니고 있는 걸지도.”

        

       “됐어. 전부 불귀의 객으로 만들면 될 뿐이니.”

        

        

        

        목격자를 전부 죽여버리면 암살이다-메타를 아주 적극적으로 시행하려는 로건.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순둥순둥해보이는 얼굴이 투지인지 뭔지로 일그러지고 있는 걸 보니 참 기분이 묘했지만, 그 말대로긴 했다. 어차피 작전구역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이상 점차 격한 저항을 맞닥뜨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다용도 파우치에서 바리케이드 스톱을 꺼내 M-LOK에 걸고 조인다. 오른손잡이였으므로 액세서리는 총기 좌측에 달았다. 이게 무어냐 하니 일종의…총기 거치를 도와주는 물품이었다. 본래라면 복도 같은 꺾어지는 부분에 총기를 대고 사격할 때 나오는 진동을 막아주는 용도였고.

        

        

        고정용 스파이크가 달린 검지손가락만한 패드를 나무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견착, 수많은 나무 사이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인간형 적을 하나하나 UI 위에 마킹하고 순서를 새긴다.

        

        1부터 9까지의 순서. 나는 낮은 숫자에서, 로건은 높은 순서로 사격할 예정이었다.

        

        숫자가 많은 시점에서 UI와 사이트를 연동시켜 코너샷 같은 느낌으로 사격할 필요는 없었다. 한둘도 아니고 9기나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그냥 최대한 빠르게 지워버리는 게 가장 낫다는 소리였다.

        

        

        250m 가량에서 200m, 그리고 150m까지. 어느덧 LPVO의 배율을 손보지 않아도 잘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눈 앞에 카운트다운이 팝업했다.

        

        얕게 쉬던 숨을 조심스럽게 내뱉고는 아주 약간 들이마셔 호흡을 안정시킨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간단했다. 방아쇠울에 걸쳐놓은 손가락을 걸고 조준선을 정렬시킨 뒤, 십자선을 가장 오른쪽에 있는 1번 기체로 옮기는 것뿐.

        

        숫자가 제로로 수렴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자 아주 약간 어깨가 흔들리고, 그것만으로 한 기체의 가슴팍에 자리한 중앙 동력부가 산산조각났다.

        

        

        

       ‘하나, 둘, 셋, 넷….’

        

        

        

        기계적으로 정확한 사격.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나를 잡자마자 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가슴 혹은 머리. 눈치챈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나와 로건은 이런 상황에선 1초에 두 명, 혹은 많으면 세 명까지 사살할 수 있었고, 1초가 지난 순간에는 아홉에서 넷으로 줄어든다.

        

        당연하게도 적 순찰대는 여전히 우리가 어딨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곧 알게 될 예정이었다. 로건은 나와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전진하란 수신호를 보냈고, 나는 엠락에서 바리케이드 스톱을 분리하여 다시 파우치에 넣으며 축축한 지면을 달린다.

        

        로건은 지속적인 사격을 통해 네 명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있었고, 나는 수류탄을 던질까 고민하면서도 적의 측면으로 우회기동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적을 흔들고 북극곰이 사냥할 차례였다.

        

        내가 사격하면 적은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다 머리에 구멍이 뚫려 바닥에 널브러지고, 로건이 전진하며, 비슷한 과정 혹은 반대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적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1분이나 지났을까.

        

        상황이 끝났다.

        

        

        

       “간단해서 좋네.”

        

       “비가 꽤 쏟아지는 걸 보니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지는 않고…으, 머리카락 아래쪽이 전부 젖은 건 그닥 마음에 안 드네요.”

        

       “짧게 자르든지.”

        

       “머리카락은 생머리가 좋아서요.”

        

       “네 취향이냐? 나도 머리카락은 긴 게 좋긴 한데, 작전에 방해가 되서 좀 짧게 잘랐단 말이지.”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온다.

        

        후 하고 숨을 내뱉는 로건의 입에서부터 폭포처럼 토해지는 입김. 비가 옴에 따라 산기슭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간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단적인 예였다.

        

        왼손의 기어에 시선을 두고,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했다. 현재 시간은 이튿날 오후 5시였다. 미션이 시작된지는 44시간째였으니, 앞으로 웨이포인트에 도착하기까지 정확히 하루가 남았다는 소리. 남은 거리는 12km였으니 후다닥 이동해야만 했다.

        

        비가 오고 있었으니 굳이 지도를 꺼낼 필요는 없었고, 요새 공략 미션 전까지 해야 하는 미션을 기억나는 대로 덧붙였다.

        

        

        

       “소규모 초소 내의 신호기의 위치를 파악한 뒤, 시간 안에 해당 초소를 점령했다는 신호를 HQ로 전송하라…해당 초소와 요새 간의 거리가 대략 2.3km였으니, 후딱 점령하고 좀 쉬다가 미리 봐둔 저격 지점까지 가서 대기하면 되겠네요.”

        

       “그렇지. 아무튼 빨리 뜨자고. 여기 더 머물다간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 혹은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9기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뒤로 한 채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기동했다.

        

        요 12시간 동안은 계속 이런 느낌이었다. 휴식은커녕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지를 계속해서 고려한 후 올바른 선택지를 고르고, 때로는 직접적인 사격을 통해 순찰대를 분쇄했다. 지금쯤 작전구역 A에 투입된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을지조차 몰랐다.

        

        

        길조차 없는 산길을 걸으며, 빗물로 인해 불어난 계곡을 우회하고, 우회가 불가능하면 강폭이 최대한 좁은 곳을 찾아 건너편에 앵커를 박은 뒤 빠르게 건넌다. 그런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순식간에 해가 지기 시작했기에 나이트비전을 다시 착용했다.

        

        빗물이 묻지 않도록 킬플래시 비스무리한 것까지 씌운 채, 피로에 조금씩 절어가는 몸을 이끌고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지금이 몇 시인지, 잠을 얼마나 안 잤는지는 이 즈음에서 고려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걸 생각하기엔 너무 멀리 왔으니.

        

        실로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 몸은 아무리 빗물을 맞아도 몸이 팅팅 불지는 않는다는 점일까. 거의 2일간 신발조차 벗지 않고 싸돌아다니긴 했지만, 아마 군화와 양말을 벗고 내 맨발을 확인하더라도 물집이 잡히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이 나오면 적을 분쇄하고, 가파른 산길을 돌파하며, 때때로 빗물이 과도하게 들어가 작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총기 손질도 병행한다. 기력을 소모해야만 하는 일은 많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목표는 명확했다.

        

        

        그리하여 지상이 끝없는 어둠에 휩싸이고, 오후 5시가 오전 12시 30분으로 바뀌었을 즈음, 그리고 본격적인 요새 공략 미션까지 불과 16시간 30분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후.”

        

       “초소 방어 병력 대략 15명 안팎. 이제 진짜로 거의 다 왔네요.”

        

        

        

        요새를 불과 2300m 가량 남겨둔, 그리고 요새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근방 고지에 위치한 소규모 전진기지이자 초소.

        

        그 앞 300m 앞으로 두 명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삐빅!

        

        

        

       “…로건 조, 51시간 48분만에 60km 주파 완료. 신호 송신되었습니다. 요새 공략조 1번으로 편성 및 해당 저격팀이 커버 가능한 거리를 산출하겠습니다.”

        

       “다른 조들 중 가장 1차 목표 달성에 가까운 조는?”

        

       “ISA, 레인저, SAS, 델타 및 DEVGRU, 네이비 씰, JTF-2,  알파 그룹, GROM, 샤예텟, UDT 정도가 목표 달성까지 2시간 가량을 앞둔 것으로 확인됩니다.”

        

       “생각 외로 한국 친구들이 잘 해주는군요. 어쩐지 그 자그마한 땅에 산들이 더럽게 많다 싶더니 이걸 위해서였는지. 산지 돌파도 척척 해내는 걸 보면…직접 가서 가르친 보람이 있어요.”

        

        

        

        작전구역 A, 투입된 16개 작전조 중 7팀 생존.

        

        작전구역 B, 투입된 16개 작전조 중 6팀 생존.

        

        로렌티나는 손을 들어 가장 먼저 도착한 유진과 로건에게 요새 공략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전송하였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유진이 먼저 꿈나라로 떠난 로건을 대신하여 기지 주변을 정찰하고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그치니 좀 꼬라지가 낫긴 하구만. 구름도 그새 싹 걷혔고, 잠도 한 7시간 정도 잤나…작전 시작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20분 정도요.”

        

       “밥은 먹었고?”

        

       “로건 자는 동안 먹었죠. 어차피 제가 잘 때 선임도 그랬을 거 아닌가요?”

        

       “물론이지.”

        

        

        

        비를 왕창 쏟아내던 불과 하루 전의 날씨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푸른 하늘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한참 동안 쌓여있다가 사람이 발을 들이자 조금씩 나풀거리기 시작한 오래된 먼지. 사람이 머물거나 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가구도 뭣도 없는 텅 빈 2층 콘크리트 건물 안에는 드물게 두 명의 사람 – 나와 로건이 머물고 있었다.

        

        15시간 전, 새벽 한복판에 이 기지를 싸돌아다니던 휴머노이드를 로봇-케찹으로 만든 우리는 벽면과 모서리에 실컷 달라붙어 집주인 행세를 하던 거미들을 이카루스-토치로 완전히 탄화시키고, 내부를 깔끔하게 치운 뒤 그동안 몸과 반쯤 한 몸이 되었던 군장을 내려놓았다.

        

        남은 전투식량을 몽땅 꺼내 방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둔 후 할 일은 간단했다. 비록 방수천 같은 걸 씌우긴 했지만 그럼에도 젖은 곳곳을 열심히 말리고 – 이카루스 기어의 힘을 좀 빌리긴 했다 – , 적당히 앞으로의 계획을 토론한 뒤 가위바위보.

        

        나는 졌고, 로건은 이겼다.

        

        그리하여 나는 로건이 첫 번째로 3시간 가량 취침할 동안 불침번을 서야 했고, 그 시간 동안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한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형태의 조명 및 센서 트랩을 설치해뒀다.

        

        다른 팀이 올지도 몰랐으니 클레이모어 같은 걸 박지는 않았고.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으니….’

        

        

        

        트랩 설치는 해야만 하는 일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가 있는 고지에 위치한 소규모 신호-기지는 요새와 2.3km 떨어진 장소에 존재했고, 다시 말해 주변을 정찰하기엔 실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로건이 간만에 달콤한 단잠에 빠져있을 즈음 스포팅 스코프를 들고는 요새 근방의 적들을 모조리 정찰할 필요가 있었다.

        

        그 즈음까진 비가 왔기에 지도를 들고 나가진 않았다. 마킹은 이카루스 기어를 통해 했고, 그렇게 주변 지형을 분석한 다음 건물 1층에 내려가 미리 펼쳐둔 새 지도에 펜을 들고 주변을 싸돌아다니는 정찰조 및 기동타격대의 순찰 사이클을 모조리 적어둔다.

        

        물론 그 와중 꽤나 많이 출출했기에 전투식량도 신나게 까먹었고.

        

        이 과정에서 3시간은 말 그대로 삭제당했고, 그 즈음 내가 기절할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한두 번 더 반복하자 12시간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사람은 역시 잠을 자야 한단 말이지. 그리 많이 잔 건 아니지만 정신이 확 트이네.”

        

       “…그런 것치곤 3시간이 아니라 7시간씩 자도록 놔두지 않았나요? 일어났을 때 깜짝 놀랐다구요.”

        

       “하도 곤히 자길래 깨우기 좀 그랬거든.”

        

        

        

        분명 새벽 3~4시 사이에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오전 11시였던 기분이란.

        

        물론 그 다음 로건 역시도 오후 3시 40분 정도까지 실컷 잤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자고 일어나니 근육통이 꽤 있긴 했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고, 뻐근한 건 미리 가져왔던 파스 몇 개 정도를 바르자 천천히 누그러들었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로건은 내가 한창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때 사전에 설정해뒀던 저격 포인트에 은신처를 파놓은 뒤 무기랑 장비를 몽땅 갖다놓고 설치까지 해뒀단다. 정말 지극정성 그 자체였다.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북극곰은 1도 신경쓰지 않은 채 덧붙였다.

        

        

        

       “오늘 미션에서 기지 잠입을 맡은 게 너니, 그 정도는 할 만하지. 웨이포인트에 첫 번째로 도착한 게 우리니 가장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도 우리고…기지 안에 보이는 모든 로봇의 목을 따버린 다음 시설 통제권을 전부 강탈해오라고.”

        

       “전문이죠. 일단 요새 바깥의 적들을 몽땅 쓸어버리는 게 목표였었나요?”

        

       “그래야 후속 부대가 헬기 타고 침투가 가능하겠지. 대신 이번에는 SAM 사이트를 해킹할 수는 없으니 그건 하지 마라. 이건 훈련이고 경연이니까.”

        

       “절 도대체 뭘로 보고.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요.”

        

       “옛날 워싱턴 D.C에서 네가 뭔 짓을 저질렀는지 내가 기억 못 할 줄 알아?”

        

        

        

        아, 그거….

        

        뭔가 했더니 과거의 일을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 지대공 미사일을 해킹해버린 다음 창공이 아닌 지상 목표를 향해 신나게 쏴갈겼던 것. 실제로 5년 전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했고, 하모니와 함께 메인 미션을 밀 때도 했던 적이 있었지.

        

        그러나 이번에는…실제로 그러면 안 되겠지. 여기 시설은 전부 세금으로 지은 것들이고, 실제 지대공 미사일이 건물이든 어디든 꽂혔다간 꽤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오늘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로건이 웨이포인트를 찍으면 나는 그곳으로 가고, 주변 산지와 능선에 있는 친구들의 대가리를 전부 뚜따해버린 뒤 기지로 들어가 내부 기능을 우리가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통제권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작전이 시작된 지 10분이 지나면 두 기의 헬리콥터에 나눠 탄 22명의 실제 대원들이 모의교전장비를 착용한 채 기지로 침투할 것이었고, 해당 요새에서 데이터를 빼오고 인질을 구출하는 미션을 할 예정이었다.

        

        이번 미션은 우리 뿐만이 아니라 건너편, 혹은 다른 능선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저격조까지 참가하는 것을 상정하였고, 요새 안팎으로는 적잖아 수백 기의 휴머노이드가 대기 중이었다. 웬만큼 숫자를 미리 줄여놓지 않는다면 아군은 얄짤없이 전멸 판정을 받게 되겠지.

        

        

        

       “슬슬 가자고. 저격 지점과 요새와의 거리가 950m 정도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소형 초소는 470m 가량 떨어져있다. 그 전에 머릿수를 확 줄이면 편해지겠지.”

        

       “물론이죠.”

        

        

        

        질척해진 땅을 밟으며 이동.

        

        대략 10분 가량을 소모하여 도착한 저격 지점. 위장막을 걷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다음과 같았다 – 50구경 저격총 두 개, 그리고 세팅이 완전히 끝난 터렛 세 대. 그리고 마치…곰이 동면하는 굴처럼 생긴 깊은 내부 공간 안에 설치된 연산 장치와 대형 배터리.

        

        이것이 터렛을 가동하고 운용하기 위한 현 시점에서의 준비물이었다. 이카루스 기어였으면 배터리와 연산 장치가 초소형화되어 터렛 내부에 전부 병합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 말고 가장 기이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왜 눈 앞의 나무들이 전부 다 쓰러져있죠? 번개 맞아 죽은 나무들인 것 같긴 한데….”

        

       “저격에 방해됐거든. 전부 벌목해버렸어. 대략 15채 정도 베어냈나…2시간 정도 썼네.”

        

       “두께가 드럼통만한 나무도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요?”

        

       “뭐, 네 토마호크를 좀 빌렸지. 내 거랑은 달리 네 거는 아무리 험하게 써도 안 부서지니까. 그냥 몇 번 후려쳐서 쐐기꼴로 깎은 다음 몸통박치기 한 번 하면 꺾인단 말이지. 그리 많이 힘쓴 건 아니야.”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이런 걸 보면 나나 로건이나 참…진즉 인간을 벗어난 존재긴 했다. 아무튼 시야는 깔끔하게 확보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는 어떻게 숨겼냐고 물어봤더니 답변이 가관이었다.

        

        

        

       “요새 공략 미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안 하더라고. 단말기에 있는 메시지도 시작 전 사격으로 로봇을 부수지 말라고 했으니…시작 전까지는 그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반응을 안 하지 않을까 싶었지.”

        

       “그래서 시험해봤나요?”

        

       “아음속 탄. 기지 흙더미 위에 몇 번 정도. 덕분에 간밤에 벌목 운동 좀 했어. 알래스카에선 일상이기도 하고, 뭐어. 재밌었지.”

        

        

        

        뭐라고 해야 할까.

        

        결국 로건도 유유상종이란 틀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 둘은 그렇게 열심히 낄낄대었고 – 그로부터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인컴이 지직대며 HQ에서의 통신이 들어왔다. 내용은 사전에 예측한 것과 단 1도 다르지 않았고, 그 즈음부터 단말기에는 10 : 00 : 00이라는 카운트가 나타났다.

        

        저쪽 어딘가에서는 22명을 태운 치누크 두 대가 날아올랐겠지.

        

        약실에 탄환을 밀어넣고 폐쇄한다. 직접 M110A1을 들고 아래로 내려가기 전까지 머릿수를 줄일 시간이 왔다.

        

        

        길고 긴 스나이퍼 컴페티션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죽은 아름드리나무를 손도끼만으로 벌목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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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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