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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2

    <532 – 안 죽음!>

     

    영웅들의 강인했던 영혼이라면 내 공략본을 보더라도 미치거나 굴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제압의 서의 사본>이 발산한 자살충동파장에 영혼의 잔류사념마저 죽어버린 빈 그릇과 그릇을 채운 가짜 인격들은 공략본을 이겨낼 수 없었다.

     

    [영웅 <‘테리우스’였던 것>이 경직됩니다.]

    [영웅 <‘바하무트’였던 것>이 경직됩니다.]

    [영웅 <‘도미네이터’였던 것>이 경직에 저항합니다.]

     

    전부는 아니고 그릇, 육신 자체의 격이 다른 영웅보다 뛰어난 것들은 저항에 성공했다.

     

    <카타리나 고유영역전개>

    <티타임, 강제평화선포>

     

    시녀장 카타리나가 영역을 전개하며 가짜영웅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영웅들의 격은 누구라도 카타리나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충분했으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 책을 펼치기까지의 잠깐의 시간.

    카타리나의 영역은 펼친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981기 3년차 공략집]

     

    세 번째 공략본을 펼치자 드문드문 저항을 시도하던 격 높은 영웅의 그릇들도 몸이 우뚝 멈췄다.

    용사급 그릇이라면 3년차 공략집에도 저항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영혼이 파괴되기 전에 이미 각자의 의지로 신체를 터뜨린 이후.

    65개체의 영웅들은 모두 움직임을 정지했다.

     

    [영웅 <‘도미네이터’였던 것>이 경직 해제를 시도합니다.]

    [영웅 <‘쿨캣’이었던 것>이 경직 해제를 시도합니다.]

     

    드문드문 끈질긴 개체들은 경직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승부는 끝났다.

     

    “시녀장 언니, 눈 감아요!”

     

    [981기 4년차 공략집]

     

    마지막 책을 펼치자 영웅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생기를 잃는 눈으로 멈추었다.

     

    [<공략의 서>의 종말예언의 사악한 마력 앞에서 모든 영웅의 그릇이 무력화되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마검사라고 여길까요? 당신은 어엿한 다크프린세스입니다!]

    [암흑타락 경험치+300]

    [종말예언 경험치+300]

    [파멸의메아리 경험치+100]

     

    “얍!”

     

    책을 가까이 들이밀자 영웅의 그릇이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했다.

     

    “흠…”

     

    책을 덮고 등을 돌려도 누구 하나 기습을 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지배 완료!”

    “…이제 다 끝났습니까?”

    “넹. 눈 뜨셔도 돼요!”

     

    공략의 서의 불길한 마력에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시녀장 언니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대체 그 책은 정체가 무엇입니까? 금기를 다루는 황태자가 준비한 정신제압의 서의 사본에 못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할지도 모를 금서라니.”

    “으으으으음. 설명하면 아마 데미지 들어갈 텐데… 정말 해드려요?”

    “죄송합니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지식도 있기 마련이니 당장 관심을 접겠습니다.”

     

    펼친 책에 다시 봉인마법을 걸어둔 띠지를 두르고 배낭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언뜻 보기엔 수저도 못 얹은 것처럼 보이는 시녀장 언니의 뒤에는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었던 호물쿨루스들이 와글와글 모여있었다.

    고관이 사용했던 <정신제압의 서의 사본>과 내가 사용했던 <공략의 서>의 이중고에 시달리면서도 호문쿨루스들이 떼죽음을 겪지 않은 건 순전히 시녀장 언니가 신경 써서 방어해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깼어요!”

    “제가 한 일은 오크노디 님이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입니다. 영웅의 그릇을 압도할 정도의 금서라면 펼치는 자가 받을 부담은 가장 막대할 텐데 그걸 1분이 넘도록 펼치다니… 오크노디 님의 정신력과 대담함에는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에이, 멀요. 원래 온전히 이해하거나 자기가 만든 금서에는 데미지를 별로 안 받아요!”

    “…금서를 수제작을 했단 말입니까?”

     

    갑자기 카타리나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헉.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오크노디가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을 받을 정도로 이상한 소리였구나!

     

    “오해하지 말아요. 제가 나쁜 아이나 무서운 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직접 겪은 일들을 적었을 뿐이에요!”

     

    카타리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이, 일기장이라고요!”

    “고작 11살의 몸으로 영웅의 신체를 압도할 정도로 가혹한 나날을 살아왔다니…”

    “저기요? 제 말 듣고 있는 거 맞죠?”

    “이사장님이 자비가 없는 분임은 알고 있지만 오크노디 님에게 벌인 짓은 정말 심하군요…”

     

    카타리나의 동정심 게이지가 최대치로 쑥쑥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덩달아 파파의 인망은 오늘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파파, 미안.

    암흑속성 딸인 줄 알았더니 불속성도 있었나 봐.

    흑염속성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11살.

    암흑불효자는 오늘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근데 이번엔 제대로 설명해도 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카타리나의 잘못 아닐까?

    난 억울해!

     

    “하지만 용케도 일을 벌이셨군요. 그 황제가 장악한 궁궐에서 이런 소동이라니.”

    “히히. 그건 리프를 보내서 괜찮아요! 황제가 내부강화소에서 강화를 끝마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거든요.”

     

    황제의 강화는 최소 20강을 목표로 하는 신화 가챠.

    오모시로이 교장을 해치울 신물을 얻겠다며 누구보다도 강화와 등가교환에 진심인 황제는 강화의식에도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의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내부강화소를 다른 차원과 격리시키는 사전작업은 기본이지.

    외부에서 그를 방해할 수 없는 동시에 강화를 진행하는 도중에는 그도 외부에 간섭할 수 없다.

    손만 까딱해도 사람을 터뜨려 죽이는 영역을 지닌 황제가 자발적으로 봉인되는 순간, 나로서도 이때를 틈타 행동하는 것이 당연했다.

     

    ‘애초에 강화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 만들어주기도 했고!’

     

    신물가챠의 성공확률을 높일 떡밥을 던져줬으니 황제가 신이 나서 만사 다 제쳐두고 내부강화소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이 나서 만사 다 제쳐두고 달려가는 존재가 황제만 있는 건 아니었나보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정신력 상승물약을 복용했습니다.]

    [3중첩 부작용으로 <무기력>, <탈진>, <어지러움>, <두통>, <오한>, <호흡곤란>, <발작>, <호흡정지>, <블랙아웃> 중 3개 이상의 상태이상이 발동합니다.]

     

    약물부작용이 터졌다.

     

    “헉. 저 근데 활동시간 끝났어요!”

    “예?”

    “리프는 모기 보내서 불렀으니까 나가는 길만 도와주세요! 매스각키가 몬스터군단한테 가있으니 거기로만 가면 돼요!”

    “오크노디 님? 안색이 굉장히 좋지 않은데 설마…”

    “아 맞당. 즈앙이랑 티토소가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 괜찮으니까요!”

     

    ━━━

    [상태이상 발현]

    호흡정지 – 1분 37초

    블랙아웃 – 1시간 37분 45초

    무기력 – 137시간 45분 59초

    ━━━

     

    호흡정지는 말 그대로 호흡정지.

    블랙아웃은 의식이 끊기는 기절상태.

    무기력은 전투력이 80% 저하되는 투력페널티다.

    게임에서는 어떻게 구현됐더라?

    <호흡정지> 도중에는 갑자기 캐릭터가 쓰러진 채로 명령입력이나 조작이 불가능해졌지.

    뭐어 <근력 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의 스펙은 근력만큼 체력 능력치도 높아야 했으니까 높은 체력 덕분에 상태이상 지속시간도 짧아져서 무의미한 수준의 짧은 기절로 끝났지만!

    <블랙아웃>은 눈 깜빡하니까 시간이 훅 지나갔고.

    <무기력>이 그나마 실감이 나는 패널티인데 전투력이 낮아져도 원체 평타가 강해서 티도 나질 않았다.

     

    ‘요컨대 상태이상 뽑기 운이 좋았다는 말이지!’

     

    기절하기 전에 할 말도 다 전해서 다행이다.

    안도감과 동시에 밀린 숙제를 몰아서 하듯이 피로가 훅 몰려왔다.

    괜찮아요 안 죽어.

    상태이상은 지속시간이 끝나면 사라지는걸.

    그렇게 식겁하면서 달려오지 말아요, 카타리나!

     

     

    * * *

     

     

    끈이 잘린 인형극의 인형처럼 축 늘어진 오크노디.

    10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사악한 금서를 제 것처럼 자유롭게 다루던 다크프린세스의 포스는 온데간데없이 쓰러졌다.

    잠시 지쳤겠거니 여기며 맥을 짚은 카타리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에 휩싸였다.

     

    “호흡이… 잡히지 않아?”

     

    틀림없다.

    이건 <죽은 척하기>나 <기절> 수준이 아니다.

    완전히 숨이 멎었다.

    무호흡.

    심정지 상태.

    ‘사망선고’를 내리기 충분한 상태이다.

     

    <전기충격>

     

    정교하게 발산한 전기를 심장에 투사해 근육을 자극해도 맥이 돌아오지 않았다.

    카타리나의 이마에 점점 많은 식은땀이 맺혔다.

     

    도울 자신이 있어서 남은 건데.

    실은 그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이래서는 강제추방당한 아이들을 무슨 낯으로 보아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들어오지라도 말았으면 싶었다.

    이대로 황궁을 떠난다면 저 아이들도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시간이 조금이라도 미뤄질 테니까.

    호기심 많은 동물 카비파라처럼 순하디순한 티토소가라는 아이와 달리, 즈앙이라는 암살자 아이는 엉엉 울다가 제풀에 지쳐 돌아갈 아이가 아니었다.

     

    쾅!

     

    “오크노디!”

     

    강제로 금기연구소의 출입문에 걸린 봉인술식을 파괴하고 들어온 즈앙.

    그녀의 손에서 뚝뚝 흐르는 피와 피에 물든 단검이 요사하게 발산하는 기운만 봐도 알 수 있다.

    희생을 아끼지 않는 성격은 오크노디만큼이나 저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오크노디…?”

     

    맥박이 잡히지 않는 창백한 얼굴로 쓰러진 오크노디에게 즈앙이 다가왔다.

     

    “오크노디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심정지 상태입니다.”

     

    즈앙의 표정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무너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괜찮아 안 죽어(1분 37초 뒤 맥박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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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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