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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2

    오래된 일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를 유람하는 듯한 이 허무는 ‘특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발을 딛어보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고, 손을 뻗어보나 그 목적을 알 수 없다.

    어딜 바라보든, 세계엔 더이상 보이는 것 없고, 들리는 것 없으며, 향 또한 없고, 맛 또한 없다.

    오감이란 이미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고, 조용히 무언가를 추억하기엔 이미 그에겐 스스로 추억할만한 기억도, 감정도 없었다.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그는 오랫동안 그저 공허를 유람하는 이름없는 표류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처럼 세계와 만물을 얽고 역할을 부여하는 거대한 의지, 운명으로부터 버려진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세계의 그 무엇도 소유가 허락되지 않고, 그 어떤 행동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직 정신이 스러지지 않은 것은, 이제와서 그런 것들에 연연하며 주저앉기엔 그에게 부여된 ‘목표’가 너무나도 숭고했기 때문이리라.

    한 인간이 품기엔 너무나도 원대한 목표.

    일생을 다 바친다해도 과연 다가갈수나 있을지 의문스러운 너무나도 거대한 목표.

    하지만 그렇다해도 반드시 쫓을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목표.

    허나 그 숭고했을 목표조차도 이 칠흑과 같은 궁창에선 그저 타인에게 넘겨받은 빛 바랜 낡은 고집에 불과하다.

    시간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거대한 무저갱에선, 인간의 자아는 오래 버티지 못하니까.

    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오래 전에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으로 사라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내려놓을 수 없는 업의 무게가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결과와 망가진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인도하는 ‘빛’은, 아무리 몸이 비틀걸리고 힘이 부친다해도 결코 의지를 놓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운명으로부터 헤메이는 자신에게 남은 것은 오직 ‘믿음’.

    빛은 자신을 언제나 같은 곳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유일하고도 확고한 믿음이다.

    새로운 빛은 비추지 않았으니, ‘목적지’는 분명히 이곳에 있을 터.

    목적이 있는 한, 자신의 여정은 이어질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릴 지라도…….

    일어나 적과 싸워야했다.

    다시금 다가올 ‘멸망’을 끝마치기 위해서.

    새로운 끝의 ‘시작’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의 불합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그는 다시 한번 검을 들어올렸다.

    비록 검을 들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서도.

     

    -…….

    오직, 드러난 빛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뿐.

    —-

    –콰쾅–!

    저택 건너편의 폭발음을 들은 시루드가 다급하게 외쳤다.

    “루크, 저쪽은 이제 시작했나봐!”

    방금 그 폭발은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케이트의 신호탄이었다.

    그 침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외침이랄까.

    하지만, 시루드는 역시 조금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해? 정말 이대로 할거야?”

    시루드가 우물쭈물거리며 묻자, 루크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당연하지. 애초에 그러기로 한 것 아니었나?”

    “뭐. 그러긴 했지만…….”

    맞다.

    계획은 그랬다.

    분명 그랬지.

    하지만 루크가 말한 계획이라는 게, 사실 티그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천재 마법사가 생각했다기엔 계획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너무나도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라는 게 문제다.

    케이트가 ‘그’의 시선을 끄는 사이, 2층의 방을 향해 ‘날아간다’ 라니…….

    백번 양보해서 그 날아가는 건 그렇다쳐도, ‘날아가는’방식도 ‘플라이’나 ‘키네시스’같은 비교적 생각할만한 안전한 방식이 아닌, ‘어스월’이나 ‘익스플로전’같은 위험천만한 마법의 응용이라는 무식한 방식이라니…….

    아무리 자신이 그런 비교적 ‘안전한’ 고급 마법을 다룰 줄 몰라서 그런거라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루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걸 기발한 계획이라고 내놓았다면 자신은 아마도 그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어딘가 모자란 바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분명 루크라면 말해주진 않았지만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차마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디테일한 부분은 생략을 한 거겠지, 그래도 분명 세세한 곳에서 제대로 된 장치를 해 두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굳이 계획단계에서 일일이 반박의 의견을 꺼내진 않았다는 것이다.

    루크가 계산한 값이랍시고 보내준 식이, 계획했던 것과 전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클을 돌리며 대략적인 위력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완료된 시루드는 기겁하며 물었다.

    “잠깐만, 이건 진짜 완전 대폭발이잖아?”

    이 폭발력은 저택 건너편에서 발생한 그 폭발하고 비교하면 아예 차원이 다른 지경이다.

    루크가 어느정도 자제했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 저쪽은 그쪽으로 시선을 끌어내기 위함이고, 이쪽은 사람을 2층의 저 공간까지 날려야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계획이 진짜 그냥 폭발을 일으켜서 그 폭압으로 날아가는 거라고?’

    루크의 마법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당연히 그 값이야 굉장히 세세하게 나뉘어있긴 하지만…….

    그리고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압력이 발생한다는 건, 당연히 엄청난 충격을 발생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충격을 받아낼 방법이라는게 고작, 어스월로 생성된 20센티 가량의 대지파편에 기대는 것에 불과하다니……?

    아무리 온몸이 산산조각날 정도의 폭압을 몸으로 받아내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이건 치인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빠른 차에 치이는 것과 사실상에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기초적인 마법조차 다룰 수 없어서 자신에게 손을 벌려온 루크가, 평소 자랑하던 그 단단한 ‘실드’마법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과연 이런 충격을 루크의 몸이 받아낼 수 있을까?

    ‘아까 했던 말은 그냥 농담이었단 말이야!’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이게 하지 말라는 건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이래서야 진짜가 되게 생겼잖은가?

    물론 루크가 직접 입으로 자신은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정말 ‘죽지만 않는다’일줄 어떻게 알겠는가.

    죽지는 않았어도 혼수상태로 사실상의 사망상태가되어 아직도 연명하는 것밖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수두룩한데 말이다.

    그리고, 막말로 죽어버리면 그제와서 그 말이 거짓말이 되든말든 이미 죽어버린이상 상관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루크는 일말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루크는 시루드의 ‘어스 월’로 형성된 디딤돌에 발을 올린 뒤 그 견고함을 적당히 확인해보고는, 단거리 육상선수의 준비자세처럼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래, 변경점은 없어.”

    물론 안전하지 못한 방법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시루드는 마법의 ‘위력’은 뛰어난 편이나, 아직 경험이 부족해 ‘속도’와 ‘대응력’면에서는 그와 맞설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루드와 케이트가 협공을 하자니 그건 또 상성이 맞지 않아 같이 있어봐야 서로의 안전을 위협할 뿐, 연계가 그리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가 많이 지친 상태라지만, 마법적인 수단도 부족한 케이트가 그 괴물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찰나.

    그리고 그 찰나에 자신의 방인 2층까지 무리없이 도달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폭발적인 추진력이 필수적이었다.

    이 경우엔, 말 그대로 폭발이긴 하다만.

    아무튼 그렇게 불가능한 선택지를 소거해나가면, 결국 이 방법 밖에는 남는 게 없었다.

    그러면, 그대로 해나가는 수밖엔 없지 않은가?

    시루드에게서 망설임을 읽은 루크는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내가 일러준 값에서 조금도 오차없이 준비하거라. 임의로 수치를 조정해선 절대 안돼.”

    “너, 진짜……!”

    루크의 단호함에 시루드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 순간, 아까부터 계속 저택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감지 범위’가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던 루크는 마침내 그 시간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2층으로 향하는 궤도에서 그의 ‘운명’이 걷혔다.

    케이트가 제대로 시선을 끌어냈다는 증거.

    루크는 이제와서 그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시루드, 지금이다! 어서!”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다급하게 외치는 루크의 목소리에 시루드는 조금 질렸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아직 어리지만, 시루드도 잘 안다.

    현실의 물리법칙은 만화나 소설 속의 관대함따윈 없다는 걸.

    루크가 말해준 값을 그대로 적용하면, 분명 굉장히 위험할 것이다.

    폭발은 어떻게 충격을 잘 흡수해서 괜찮다고 쳐도, 그 다음도 문제다.

    폭발을 막기 위해 생성한 루크와 같은 속도, 그리고 같은 경로로 이동하는 대지의 파편은, 루크가 착지할 자리에 ‘함께’ 착지하게 될 테니까.

    만약 거기에 깔리기라도 한다면?

    윽, 그거 참 끔찍하겠네.

    이럴 땐 자신의 상상력이 썩 자랑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걸 루크가 그걸 모를리는 없고…….

    결국, 시루드의 망설임은 찰나였다.

    “아아-!! 몰라! 이젠 정말 어떻게돼도 난 모른다!”

    값을 이렇게 세세하게 정해놓은 걸 보면 뭐 생각하는 거라도 있는 거겠지!

    여기까지 왔으면 믿어야지 이제 뭘 어쩌겠는가?

    시루드는 더이상 모르겠다는 듯 마지막 값을 서클에 집어넣으며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익스플로전!!”

    -콰광–!!

    그렇게 두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전화에 저택상태에대한 삽화 추가와 약간의 묘사 첨삭 및 수정이 있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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