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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3

   용사 일행이 요정의 숲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악신과의 전쟁이 서서히 격화되어 갈 무렵이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전선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일행은 타 종족의 도움을 갈구했고 그 과정에서 방문하게 된 장소 중 하나가 요정의 숲이었지.

   

   “신화의 시대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악한 세상이었네.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세상이란 소리는 곧 대지 위에 인간의 손길이 많이 미치지 못했단 이야기이니, 당시의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 푸르른 빛으로 물들어 있었지. 헌데 그런 세상에서 자라난 나임에도 절로 감탄을 하게 될 만큼 요정의 숨은 아름다웠어.”

   

   당시 세상의 모든 자연에 발을 내딛으며 초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던 요정들의 고향은 전란 속에서 삭막해졌던 에르기누스마저도 눈을 빛내게 할만큼 경이로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요정이란 존재는 아이로 태어나 아이로 저무는 존재들. 요정의 숲에 거의 방문할 일이 없는 요정들은 우리에게 호의로 다가와 여러 장난을 쳤다.”

   

   사실 말이 장난이지. 인간을 거의 본 적 없는 요정들이 벌인 일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몇 번이나 죽었을 것처럼 험악한 것들이었다.

   

   그나마 이 숲을 찾은 것이 용사 일행이었기에 누구 하나 피해 입은 자가 없기야 했지만 당시 용사 일행은 그것이 호의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요정들이 자신들을 거부하고 있다 여기고, 그렇더라도 설득해야만 한다면 사명을 지니고서 요정들의 장난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러던 와중에 주변에서 일어나던 온갖 현상들이 일순에 사라짐과 동시에 하늘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요정들의 여왕이라 소개한 그녀는 요정들의 장난에 대해 사죄함과 동시에 일행에게 새겨졌던 여러 잔상처들을 치료해주었다.

   

   모든 요정들의 근원이라 불러 마땅한 요정여왕은 한없이 신격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녀가 펼치는 권능은 대마법사 에르기누스에게도 경이로 다가올 만한 것이었지만 그는 요정여왕의 권능에 조금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시선을 둘 수 없었다고 해야하리라. 요정여왕이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에르기누스는 한시도 그녀의 웃음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

   

   “그 닭장냄새 날 것 같은 아줌마한테 반했다고? 취향 참 독특하네.”

   “닭장냄새라니! 그 분께서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순수한 웃음을 지을 줄 아셨으며 또한 주신께 비견될 정도로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고 계셨다!”

   

   루시의 여러 도발은 넘어가더라도 자신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모욕하는 건 견딜 수 없었던 듯 에르기누스는 한참 동안 발광하다 이내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열화와 같은 사랑에 눈을 뜬 나는 요정의 숲에서 그녀이외의 무엇도 볼 수 없었으니까.”

   

   에르기누스라는 사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인지했지만 그렇다 하여 악신과 대적하는 일에 게을리 하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개인적인 욕망 따윈 깊은 곳에 억눌러 두었지.

   

   다만, 요정의 숲에 올 때만큼은. 요정여왕의 곁에서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만큼은.

   

   자신의 재미없는 이야기에도 웃어주던 그녀를 볼 때만큼은. 에르기누스는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렸다.

   

   “멀어버린 나의 눈에 악신의 기운이 보였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웠던 숲은 아래에는 악신의 기운이 짙게 자리하고 있었고,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검게 물들어버린 요정들은 다른 백을 검정으로 물들이고자 했다.”

   

   물론 에르기누스가 자신을 자책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체념이라는 단어와 한없이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했.

   

   지만.

   

   “당시의 상황은 나의 필사적임을 어리광으로 만들 정도로 좋지 못했다.”

   

   주신 아르마디와 악신 아그라가 전선을 사이에 두고 맞부딪히는 중이었고.

   

   수많은 재앙이 몰아치는 대지 위에선 악신을 따르는 무리와 선신을 따르는 자들이 서로의 목을 노리며 달려드는 중이었으며.

   

   용사 일행은 각지로 흩어져 전선을 이끄는 와중이었으니.

   

   에르기누스는 오롯이 에르기누스 자신만의 능력으로 재앙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대들은 이미 알고 있을 터이지만 나는 실패했다. 대지의 근원을 파먹은 어둠의 기운을 물리치기엔 당시의 난 너무 부족했어.”

   

   수백년이 지나도 뛰어넘을 자가 나오지 않을 천재라 해도 결국에는 인간. 숲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 악신을 상대로 승리를 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이 돌이킬 수 없단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 나는 최악 속에서 차악이 무엇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원군이었던 요정들이 악신의 편에 서게 될 터이니 그 전에 모든 것을 불태워버려야 한단 것을.”

   

   오염되어버린 숲을 되돌릴 수 없다면 불태워야한다. 불화의 씨앗을 남겨두었을 때 어떤 결말로 돌아올지 모르니 지워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에르기누스는 이 사실을 알았다.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는 차악 대신 최악을 선택했다.

   

   요정들을 배제하는 대신 요정의 숲을 봉인하기로.

   

   “성공한단 확신도 없었고. 설령 봉인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쳐도 그 봉인이 악신에 의해 깨지지 않는단 보장 따윈 존재치 아니했다. 단언컨대 그것은 미친 짓거리였어.”

   

   다행히도 에르기누스는 봉인에 성공했다. 요정들을 죽이지 않고 그 숲을 영원한 잠에 빠트려 적도 아군도 될 수 없게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잠에 빠진 여왕의 아래에서 나는 맹세했다. 반드시 이 숲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노라고. 그 때 다시금 그녀의 눈을 뜨게 할 것이라고.”

   

   당시의 에르기누스는 이 잠이 수백년이나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악신과 선신의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위대하신 아르마디께서 저들에게 기적을 베푼다면, 어둠의 악신의 음험함도 빛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리라고 믿었으니까.

   

   “…어라? 그렇지만 에르기누스님과 동료분들은 악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지 않았나요?”

   

   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이가 의문을 표하자 에르기누스가 고갤 가로저었다.

   

   “우리의 전쟁이 승리로 장식되었다면 이 세상에 던전 따윈 존재치 않아야한다.”

   “그럼.”

   “우리들은 그저 후대에 짐을 미뤘을 뿐이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일을 후대의 누군가가 이루어주길 바라면서.”

   

   그리 말을 하며 에르기누스가 루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진즉에 이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하기야 루엘 그 놈이 자신이 아끼는 아이에게 자신의 죄를 숨길 리가 없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놈이니까.

   

   “승리도 패배도 아닌 미묘한 결과로 전쟁이 끝난 후.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봉인을 더 견고히 하는 것뿐이었다. 훗날, 언젠가, 누군가가 저들에게 안식을 선사해주길 바라며.”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고. 에르기누스의 앞에는 주신의 기적을 품고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

   

   “내가 그대들에게 하고자 하는 부탁은 이렇다. 잊혀져야 마땅한 과거의 죄인이 자신의 업을 해소한 채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다오. 그런다면 내 여태까지 쌓아 온 모든 것들을 그대들에게 주고 떠나가도록 할 테니.”

   

   에르기누스가 내건 제안은 뭇 마법사들이라면 자신의 모든 걸 걸어서라도 받아들일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수백년이 지나는 동안 평가가 높아지기만 해 온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지닌 자산이라니!

   

   마도 제국의 왕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자신의 나라를 팔아서라도 품에 손에 쥐려 할만큼 이는 귀중했다.

   

   “겨우 그딴 걸로 날 고생시키겠다고? 수백년 동안 지하에 처박혀 있던 동정찐따해골 따위의 자산을 누가 욕심낸다고. 푸하핳. 머리가 꽃밭인데도 정도가 있지.”

   

   허나 루시는 에르기누스의 제안에 비웃음을 흘렸다.

   

   “지난 번 그대의 친구를 가르치며 현대 마법사들의 수준을 대략 파악했다. 내가 지닌 지식은 현대에도 비전이 될 만한 것들로 한 가득이야. 마법사란 족속들에게 이 지식의 갈피만 보여주어도 저들이 침을 흘리며 달라붙을 터.”

   “당신처럼 사회성이 박살난 찐따들이 달라붙을 거라고? 으에엑. 진짜 극혐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 돋아. 비린내나는 동정들이 병신 같은 착각을 할 걸 생각하면 더 짜증나.”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에르기누스는 당혹 속에서 눈동자를 떨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속이 깊은 아이다. 내 마법이 지닌 가치를 몰라서 저러는 것이라 생각되진 않아.

   

   당장 그녀의 곁에 있는 친우들도 기겁을 하고 있잖나.

   

   그럼 뭘까. 어째서 내 마법이 무가치하다 이야기하는 것일까.

   

   “저기요. 동정찐따마법사님. 결국 당신의 바람이란 거. 내가 없으면 못 이루는 거잖아요.”

   “그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아무리 뻗대봐야 결국 자그마한 여자애 하나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이라고요. 당신은.”

   

   비웃음이 서린 눈으로 에르기누스를 깔보며 그의 앞에 선 루시는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 들었다.

   

   “사람과 대화를 안 한지 너무 오래되서 부탁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병신찐따이시니. 제가 특별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리죠.”

   “…내가 해야 할 일?”

   “그래요. 사랑도 순정도 세상도 뭣도 지키지 못한 무능찐따인 당신은 제 발 밑에 기어다니며 소원을 이루어달라 빌어야 한다고요.”

   

   성공한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는 자칭 천재 주제에 왜 자신의 병신 같은 계획에 어울려달라 하는 지 이해가 안 된다는 루시의 투덜거림에.

   

   에르기누스는 눈을 크게 떴다가.

   

   잠시 찡그렸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리더니.

   

   마지막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련 없이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제야 자기 주제를 좀 파악했네. 이래서 눈치 없는 찐따는 귀찮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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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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