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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3

    저택의 뒷편, 파괴의 여파로 휑한 구덩이만 남은 그 공간에 선 남자에게, 돌연 스크롤과 플라스크가 날아들었다.

    “…….”

    -콰쾅–!

    즉석에서 제조한 스크롤과 플라스크 치고는 꽤나 성대한 폭발이다.

    -정말로 피하지 못하는군?

    그러나 아무리 기습일지라도 그가 그런 뻔한 공격을 피하지 못한 것은 신기했다.

    다른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위력만을 중시한 플라스크는 분명 그 효과만큼은 위력적이긴 했지만 작동할 때 소음이 나기도 하고 빛이 점멸해서 척 봐도 위험한데다, 던져진 모습도 엉성한 것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고수라면 인지하는 순간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레니에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겠죠. 그가 볼 수 있는 ‘운명’은, 어디까지나 ‘얽혀있는 것’일테니까.”

    분명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쏘아지는 금속탄환조차 흘려낸 그였지만,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쪽 세계와 유리된 장소에서 탄생하여 존재하는 ‘레니에’의 운명은, 이 세계에 얽힌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다는 ‘운명’도, 결국에는 이 세계만이 가지고있는 법칙의 일부다.

    법칙의 외부에 존재하는 상태인 존재라면, 그가 수를 미리 읽어내거나 반응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군, 이해했다. 그래서 처음의 그 허공에 자빠지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의 엉성하기 짝이 없던 발차기도 피하지 못했던 건가.

    확실히, 오감을 대신한 운명만으로 외부와 상호작용을 하는 그는, 운명에 얽히지 않는 상대에겐 그저 오감이 존재하지 않는 장애인에 불과할 뿐이다.

    케이트의 중얼거림에 레니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반박했다.

    “그렇겠죠……. 그런데 잠깐, 그렇게까지 엉성하진 않았거든요?”

    물론 케이트가 그런 멍청한 수단은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버티길래 익숙하지도 않은 몸에 억지로 빙의하느라 조금 엉성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엉성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솔직히 몸을 가지지 못한 기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자신은 없었다.

    게다가 이런 나이스한 바디는 역시…….

    그 때, 저택 뒤편에서 또 그 폭발에 맞추어 폭음이 이어졌다.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네요.”

    케이트의 중얼거림에 레니에가 답했다.

    ‘숨어든다’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란스러운 입장이었지만, 어차피 상대가 폭음을 들을 수도, 폭발의 섬광을 눈에 담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점에서 은닉성따윈 어찌되든 상관없으리라.

    그 순간이었다.

    -파앗!

    곧장 그로부터 몸이 뛰쳐나왔고, 레니에는 그에 반응해 빠르게 몸을 뒤로 물러냈다.

    이는 명백히 자신을 ‘인식’하고서 행한 공격이었다.

    운명의 테두리 밖에서 관망하던 것도 한번 뿐.

    이미 그와 운명의 실이 한데 얽혀버린 지금은, 레니에가 지닌 운명의 특수성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

    역시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던 건가.

    “흐음, 역시 이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 또한 레니에로서는 이미 충분히 예상했기에 딱히 실망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쓰러트릴 수 있었다면 그는 이미 진작에 저 구덩이 밑에서 기어올라오지 못했어야했을 것이다.

    언제 봐도 마치, 다른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실제로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이들이 존재했으니까.

    설마 이런 식으로 그와 만나게 될 줄이야…….

    어쩌면, 이 또한 자신의 업보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에 케이트가 물었다.

    -혹시 교대가 필요한가?

    “아뇨, 그냥 제가 맡을게요. 생각이 정리됐거든요.” 

    -그런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그녀의 대답에 케이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자신에게 주도권을 맡긴 동안 그녀는 이제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대충은 알아낸 모양이다.

    “그리고 누구 말마따나, ‘어머니’로서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케이트는 방금 전, ‘미셸’이라는 운전기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과연, 어머니라.

    사실 이미 그 때부터 레니에는 의식의 앞에 나서 있었기 때문에, 당시 그녀의 대답은 고스란히 레니에 본인의 생각이었다.

    -아까는 말을 못했다만, 본질을 따져보자면 그대가 딸 쪽이 아닌가?

    물론 역할상으로는 레니에가 루크를 이것저것 처리해주고 돌봐주는 ‘어머니’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존재할 수 있는 계기를 제작한 것은 분명 루크였다.

    비록 자신처럼 알고리즘의 처음부터 디자인한 것은 아니라지만, 인과로 따지면 그녀가 루크 이후에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므로 실제 어머니가 되는 쪽은 ‘루크’가 아닌가 싶다.

    그러자 레니에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재미있어라. 그건 실존주의와 본질주의의 대립인가요? 정말 아이러니한데요! 저는 설마 인형과 이런 철학적인 주제를 갖고 논쟁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

    그런 레니에의 반응에 말문이 막힌 케이트는 의식을 닫았다.

    그리고 레니에는 케이트가 루크의 어휘를 학습한 것이 옛날의 루크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 꽤 맘에 들었다.

    말문이 막히는 부분도 루크하고 똑같았고 말이다.

    어째서 자신은 진작에 인형의 언어모듈을 루크 기반으로 학습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걸까?

    이렇게나 즐거운데.

    그리고 ‘시간’만 된다면, 눈앞의 ‘용사’와도 단 둘이 느긋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렇네요. 시간, 이라…….’

    “…….”

    그의 두 손에 응집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힘을 확인한 레니에는, 가만히 품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방법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했을지도 모르고.

    그래, 자신의 짧은 여행에 끝이 다가온 것이 확실했다.

    레니에는 케이트의 코어가 자리해 있을, 가슴께의 옷깃을 살짝 풀며 입을 열었다.

    “……케이트.”

    -응?

    “몸은 미안하게 됐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니에는 투둑하고 몸에서 케이트의 코어를 뜯어냈다.

    —-

    시루드의 마법을 통해 단숨에 2층에 도달한 루크는 자신의 양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후, 아직도 귀가 얼얼하군…….”

    폭발의 폭압과 함께 고막이 찢어졌는지, 아까부터 ‘삐이-‘하는 소리와 함께 먹먹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꼬리와 머리 끝도 폭발에 살짝 그슬린 것 같고, 온 몸의 관절에서 아삭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루드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계획을 꺼낸 것은 자신이었고, 시루드는 그저 자신의 말에 따라 충실하게 서클을 빌려주었을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값을 전부 알려주었다고 해도 그 값을 정확히 대입하고 적용시킬 수 있느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토록이나 정확히 도착하도록 마법을 다뤘다는 건, 그만큼 시루드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겠지.

    그리고 그랜드 소드마스터와 별다른 충돌 없이 2층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이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만한 대가였다.

    곧 있으면 이정도의 신체 손상은 금방 회복될 것이 분명하기도 했고.

    그나저나 이 ‘불사성’에 의한 빠른 재생능력…….

    평소 강력한 실드로 무장하여 피해 자체를 입지 않는 것을 선호하던 루크로서는 신체의 일부를 이용한 소재보충 외엔 그다지 쓸모가 없는 특성이었으나, 어쩐지 최근에는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일단은 빨리 월영석 브로치를 찾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월영석은 정확히 루크가 기억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찾기까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루크는 여전히 서랍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짙푸른 색의 마석 브로치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들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정말 다행이군. 저택 파괴의 여파로 공간적 특성까지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는데.”

    저택에는 굉장히 많은 마법들이 구조적으로 얽혀 있었다.

    은행에 빚을 좀 지기는 했어도 자가로 구매한 집이었기에 아낌없이 각종 자원을 총 투자한 결과, 저택은 이미 공간, 인과, 물질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맞물려돌아가는 하나의 견고한 특이점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데 설마하니 그 저택자체가 이토록이나 처참히 파괴될 줄이야…….

    애초에 이런 피해를 입을 것을 전혀 상정한 적이 없었기에, 루크는 파괴된 저택에서 어떤 예기치못한 일이 발생하게 될 지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정도의 피해라면 막말로, 방 전체가 공간의 저편과 융합해 뜯겨져나가버린다해도 아주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걸 보면 다행히 그렇게까지 큰 뒤틀림은 발생하지 않은 모양이다만.

    월영석의 상태를 간략히 확인한 루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까지 괜찮다고해서 끝까지 괜찮으리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이제 월영석을 손에 넣은 이상 굳이 더 시간을 끌어야 할 필요도 없었고.

    그 때, 어느정도 고막이 회복되었는지 시루드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루크-! 거기 괜찮아-?! 찾던 건 찾았어-?! 괜찮으면 제발 대답해–!”

    그것은 아이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간절함이 섞인 외침이었다.

    루크는 부서진 벽 너머로 시루드가 자신을 부르는 모습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괜찮아–! 월영석은 찾았어–!”

    그렇게 루크가 무사한 모습을 확인한 시루드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이다-! 그럼–! 얼른 내려와-!! 자동차–! 준비됐으니까–!! 케이트에게도 말해주고–!!”

    “알겠네–! 바로 가지–!”

    자신이 귀가 안들리던 사이 어찌나 소리를 질러댔던지, 시루드는 목소리의 끝이 약간 갈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시루드는 원래도 평소에 그렇게 목소리가 큰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사이에 목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렇게 루크가 얼른 내려가서 시루드의 목 상태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응?”

    문득, 심상치않은 공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아니, 이건 공간이 아니라 ‘시간’인가?

    “잠깐, 설마……!”

    머리를 스쳐가는 불안한 느낌에, 루크는 곧바로 케이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마코트와, 붉게 빛나는 마석 조각 하나만을 제외하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처음 구상한대로 쓰다보니 이대로는 또 같은 패턴의 반복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려서 고치다가 늦어버렸습니다…….

    분명 단순하게 간다해놓고 그새 잊어버린건지 또 위기연출이나 하고 앉아있더라고요, 이 멍청이가.
    그래서 조금 더 루크를 굴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려두었던 삽화의 사용을 억제하고 얌전히 끊어냈습니다.

    하…….
    아무래도 사용되지 않은 삽화모음이 오랜만에 업데이트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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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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