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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4

   흐아아. 좋은 이야기하는 거 너무 힘들어. 왜 대가는 필요 없단 말을 하는데에 이렇게 고생을 해야하는 거람.

   

   에르기누스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서 말이 통한 거지. 평범한 사람한테 방금 전 같은 소리를 했다면 정색하면서 자리를 떴을 걸.

   

   상대를 적대할 땐 메스가키 스킬만큼 편리한 스킬이 없는데 다른 사람을 좋게좋게 설득할 때는 이만큼 개같은 스킬이 없다니까.

   

   하여튼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요정의 숲에 대한 이야기 말야.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에르기누스의 맞은편에 앉은 난 다리를 꼬고서 그의 느슨한 눈동자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연구밖에 모르는 한 찌질이한테 닭장이 사는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요정에 숲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지?”

   “그럼 지금 내가 말할 곳이 거기 말고 더 있나요? 머리에 마법밖에 없어서 다른 사고 판단이 아예 안 되시나봐요?”

   

   에르기누스가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고 있으려니 그의 옆으로 아서가 다가왔다.

   

   “에르기누스님. 이 녀석이 무어라 이야기할 땐 그냥 내버려두는 게 이롭습니다. 세세한 것은 나중에 정리해도 괜찮으니.”

   “허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저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습니다.”

   

   빛이 사라진 아서의 눈동자를 보고 납득한 에르기누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평소에 아서를 그렇게 많이 괴롭혔나? 돌이켜보면 좀 장난이 과했던 것 같기도 하고?

   

   건드릴 때마다 재밌는 반응이 나오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치만 저런 눈을 하게 될 정도일 줄은 몰랐네. 당분간은 좀 자제할까.

   

   “찐따들끼리의 이야기는 끝나셨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교수에게서 들었던 요정의 숲 인근의 상황은 지극히 절망적이었다.

   

   결계는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곳에서 흘러나온 악신의 기운이 대지를 잠식했고 주변은 생물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되어버렸지.

   

   숲 바로 옆에 영지를 둔 귀족 가문은 매 년 넓어지기만 하는 지옥을 보며 손톱을 깨물고 있다던가.

   

   “상황이 그리 좋진 못하군.”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에르기누스는 담담한 어투로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표정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는 걸 보면 상정해둔 내인 모양.

   

   “그대가 날 찾아온 시기가 좋았다. 조금만 더 요정의 숲을 내버려두었다면 결국 결계가 무너져 내렸을 테니까.”

   “결계가 무너져 내린다고요?”

   

   담백히 사실을 말하는 에르기누스에게 기겁하며 반응한 건 페이비였다.

   

   아. 그러고 보면 페이비도 요정의 숲 인근에 가본 적이 있겠네. 주신 교회에선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그 곳의 기운을 정화하니까.

   

   페이비가 성녀로서 입지를 쌓을 때에 숲 인근을 찾아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절차다.

   

   “난 전쟁이 끝난 후에 몇 번이고 결계를 정비했다. 훗날 내 미련을 풀어줄 수 있는 자가 나타날 때까지 결계가 무너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됐으니까.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그 결계는 다른 변수가 없단 전제하엔 앞으로 천 년은 버텨낼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에르기누스님께선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변수가 없다면. 이라는 전제 하에 라고.”

   

   용사 일행은 악신을 완벽하게 물리치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엔 상처가 가득했고, 많은 것을 잃은 용사 일행에겐 신위에 오른 이들을 없앨 여력이 존재치 아니했다.

   

   그 때문에 용사 일행은 봉인이란 수단을 택했다.

   

   “그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났다. 악신들을 묶은 족쇄는 서서히 약해져가고 있어. 그러니 결계 안에서 날뛰는 힘 또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결계는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차 약해지고, 결계가 봉인한 자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기만 하니. 언젠가 결계가 무너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거기에 더해 십여년 전쯤 이상할 정도로 악신들의 힘이 증폭된 시기가 있었다. 그 때 결계의 내부 또한 영향을 받았을 테니 저 안은 상당히 불안불안한 상태일 것이야.”

   

   …응? 악신들의 힘이 증폭된 시기가 있었다고? 소울 아카데미란 게임에 그런 뒷설정이 있었던가? 아냐. 없었어. 아무리 예전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 해도 세계관의 기틀이 될만한 것까지 잊을 수준은 아니니 분명해.

   

   그렇다는 건 저 사건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만 일어난 무언가란 소리네.

   

   “허나 괜찮다. 이제 그 곳은 예전의 올바름을 찾을 테니까.”

   

   에르기누스의 눈웃음을 마주한 나는 무어라 답하지 않고 그저 마주 웃어주었다.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이전에 있었던 여러 일과는 달리 이번 일에는 확신이 없다.

   

   요정의 숲이라는 던전은 내게 미지의 장소니까.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그 안의 모든 어둠을 쫓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애매하다.

   

   <잠시. 루시야. 내 저 녀석에 물을 것이 있으니 대신 전해줄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난 한 번 코웃음을 치는 걸로 시선을 끈 후에 입을 열었다.

   

   “찐따동정마법사님. 의도적으로 결계를 무너트릴 생각이시죠? 저한테 짐을 다 떠넘기기 위해서?”

   “숲에서 완전히 악신의 기운을 제거하기 위해선 그래야겠지.”

   “그럼 그 안에 있을 닭장의 부하들. 지들이 치는 장난이 유쾌하다 착각하는 미숙아들은 어떻게 할 셈인가요?”

   

   요정의 숲이 고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결계가 그 안에 있는 자들을 영원한 잠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만약 결계가 무너져 내린다면 그 안에 도사리는 괴물들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겠지.

   

   신화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괴물들은 분명 인근의 주민들에게 재앙이 될 터.

   

   “결계를 해제하기 전에 몇 가지 준비를 해둘 겁니다. 요정들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겠죠.”

   “확신할 수 있나요?”

   “당연히.”

   “정말. 지하에 틀어박힌 채 수백년을 보낸 허접찐따동정인 당신 따위가. 모든 걸 확신할 수 있나요?”

   

   에르기누스라는 마법사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머릿 속에서 세워두었던 계획이 반드시 적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건 최악의 순간에 찾아오는 거니까.

   

   “…수십 개의 안전장치를 준비해두긴 했다만.”

   “찌질이들의 우두머리가 개입할 경우엔?”

   

   그 변수를 만들 작자가 음험함만으로 신이 된 것 같은 찌질이라면 더더욱 경계해야지.

   

   “그건.”

   “네에. 그 이상 지껄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당신의 머리가 쓸데없이 하얗단 걸 알게 됐으니까.”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하는 걸 보면 스스로도 확신은 못 하는가보네.

   

   악신 아그라가 개입했을 경우엔 에르기누스의 안전장치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단 건가.

   

   이 부분은 따로 물어봐서 더 단단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네.

   

   “다음입니다. 찐따동정님. 결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수백년간 갇혀 있었을 병신의 기운이 해방될 텐데 여기에 대한 방비책은 있습니까?”

   

   결계의 내부는 어둠의 악신의 기운으로 가득 찬 고독이다.

   

   그 안에서 오랫 동안 축척되어 온 악신의 기운이 해방된다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 기적이 펼쳐지기도 전에 재앙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어.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선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해왔으니까.”

   “지껄여보세요. 찐따의 망상을.”

   “지금 결계 안에 머무는 기운은 주인을 잃고 날뛰는 중이다. 의지라고는 조금도 없이 오래 전 주인이 남긴 명령만을 따르는 기운은 방비 없이 허물어진다면 분명 재앙이 될 것이야. 허나 그 주인이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길고 긴 세월 동안 주인을 그리워했던 놈들은 기꺼이 주인의 품에 안길 터.”

   

   그리 총명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나이지만 에르기누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도 오랫 동안 지하에 처박혀 있다 보니 돌아버리셨나요?”

   

   지금 이 미치광이는 어둠의 악신을 부활시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 결계 내부에 존재하는 기운을 돌려주는 것으로 기운이 날뛰는 걸 막아내자고 말이다.

   

   “글쎄. 어떨까. 지금의 내가 제정신일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나 같은 대마법사에게도 수백년의 세월은 참 긴 것이었으니 말이야.”

   “뭔.”

   “그렇지만 수백년 전의 에르기누스는 다르다. 마법의 신께도 고언을 할 수 있을만큼 현명했던 그는 결코 어설픈 계획을 세우지 않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에르기누스는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이게 빠르다며 손 위에 복잡한 마법진을 띄웠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진을 엮어 완성한 것인지. 근간이 되는 마법이 무엇인지조차 추측할 수 없는 그 마법진은 우리가 대응하는 것보다 먼저 발현되어 세상을 바꿨다.

   

   주변의 모든 것이 검게 물든다. 주변의 소리가 일순에 사라진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사라져 내가 의자에 앉아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코에는 아무것도 흘러들어오지 않으며.

   

   입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분명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가 착각할 리 없다.

   

   이 힘에 죽음의 위협을 몇 번이고 넘겼던 내가 이 감각을 착각할 리 없잖은가.

   

   이건. 분명. 어둠의 권능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

   

   일순의 어둠이 걷히고 에르기누스의 해맑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는 여러 신의 권능을 인간의 영역으로 떨어트렸다.”

   

   경악에 빠진 친구들의 목소리.

   

   콧가를 스치는 달콤한 향내.

   

   간이로 된 의자의 불편한 감촉.

   

   입에서 느껴지는 역겨운 맛.

   

   “협박을 들은 것이 워낙에 많아 이를 후세에 전하진 않았다만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지워지지 않았지.”

   

   예전의 악몽이 떠올라 속이 비틀리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얼굴에 힘을 더했다.

   

   “어둠의 악신을 상대하는 일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의 권능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이만큼이나 손쉬운 상대는 없지.”

   “…저기요. 공감능력 박살난 등신찐따님. 권능이 없어도 그 찐따가 지니고 있는 힘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나불대는 것밖에 없으면서 왜 별 거 아니라는 듯 지껄이시죠?”

   “음? 허나 분명 그대는.”

   

   그의 말은 옳다. 권능을 지울 수 있다면 어둠의 악신을 상대하는 일은 무척 손쉬워진다.

   

   병신도 신은 신인지라 여러모로 귀찮게 굴겠지만 미리 대비를 해 둔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이에 관해 논의하는 게 우선이란 걸 알지만. 일단 방금 전에 아무 말 없이 개짓거리를 한 것에 대한 처벌이 필요할 것 같네.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손가락을 튕기자 한 쪽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얼빠여우가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얼만큼 괴롭히면 되느냐?”

   “저 찌질이가 제에발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음? 으으음? 자. 잠깐. 잠깐 멈춰라. 아니 멈춰주세요. 오지 말아주세요. 제에바아아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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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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