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34

    시루드는 아무리 기다려도 루크가 나오기로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얘는 대체 언제쯤 온다는 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월영석을 찾은 것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마당에, 루크가 일부러 늦을 이유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시루드는 초조해졌다.

    루크가 스스로 늦게 올 이유가 없다면, 당연히 타의적인 이유로 늦는다는 뜻이니까.

    ‘그러고보니 아까 전에 느껴졌던 그 이상한 파장, 혹시 루크가 지금 돌아오지 않는 건 그거하고 연관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데에는 별다른 추론조차 필요없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순조롭게 모든 계획이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으니까.

    “…….”

    그에 시루드는 팔짱을 낀 채로 제자리를 빙빙 돌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루크와는 자신의 탈출이 늦어져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미련갖지 말고 과감히 포기하고 도주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위험에 빠진 학급친구를 뒤로하고 혼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다른 마법사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루드 본인만큼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역시 루크를 찾아야하나?

    하지만, 약속을 한 사실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렇게 어떻게 할지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던 시루드는 문득, 주변이 너무나 고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아까부터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방금 전까지 살벌하게 터져나가던 폭음이나, 타격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숲은 고요, 그 자체다.

    어쩌면 그 ‘케이트’라는 여성이 마침내 침입자를 스스로 쓰러트린 걸지도 모를 일이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을 좀 둘러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루크와의 약속은 어디까지나 ‘위험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길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딱히 그런 약속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

    그러던 중, 시루드는 저쪽 바닥 가운데에서 푸르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시루드는 그 반짝이는 것을 집어들고는 심각해져 중얼거렸다.

    “이건…….”

    그것의 정체는 다름아닌 월영석.

    루크가 찾았다고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바로 그 월영석 브로치였다.

    ‘이걸 흘리고 갔을 줄이야, 설마…….’

    …역시,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시루드는 곧바로 루크의 흔적을 따라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시간의 뒤틀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몸과 장의사.

    그러나 그녀가 걸치고 있던 방마코트와, 케이트의 의식이 담긴 마석만큼은 남겨져있었다.

    그에 루크는 이것이 레니에가 벌인 일이라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럴수가, 설마…….”

    루크는 불안함을 억누르며 빠르게 코트에 손을 집어넣어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모든 무장과 준비에 루크 본인이 관여했던 만큼, 루크는 코트 안주머니에 어떤 것이 있었는지,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제발, 제발…….”

    아니나다를까, 코트 안에선 시간석 파편이 사라져있었던 것이다.

    -털썩.

    루크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역천’을 건드렸군.”

    하늘을 뒤집는 뒤틀림, 역천. 

    본래 ‘역천의 모래시계’의 재료로 사용되는 그 시간석 파편을 이용해, 그녀는 뒤틀림을 발생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법의 술식에 방해가 되는 방마코트는 벗어버렸던 것이고…….

    루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붉은 마석을 향해 물었다.

    “케이트, 있는가?”

    -……이 목소리는……. 주인, 인가?

    ‘역천’이 발생하기 전에 주체로부터 분리된 덕분인지, 다행스럽게도 마석에 담긴 케이트의 의식은 남아있었다.

    붉은 마석으로부터 희미하게 깜빡거리듯 전해져오는 의사에 루크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일이지?”

    -그의 손에 힘이 응집되기 시작하자, 레니에가 방법이 있다며 나를 강제로 분리했네. 그 뒤로는…, 파동의 영향으로 기억이 희미하군.

    “그렇다면 레니에와의 연결은…….”

    -되지 않는다. 마치 아린세이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처럼.

    “…….”

    루크는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루크의 추측에 확신을 더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방마코트를 집어든 루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로써 전말은 확실해졌다.

    그녀는 세계의 불문율, ‘시간’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녀가 지니고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게이트 연산 가속을 위해 준비한 작은 파편.

    그 정도의 재료로는 ‘열린 계’에서 과거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발생하는 모순을 감당할 방법도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그와 함께, ‘미래’로 향한것이다.

    시간의 엇갈림은 그 무엇보다 확실한 격리이다.

    그가 미래를 향한 시간만큼은 절대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루크에겐 절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역천’의 대가로는 반드시 흥정도, 속임수도 통하지 않는 엄격한 징수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것은 칼에 찔리지 않기 위해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것이고, 머리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목을 자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했다.

    타인에게 날아오는 칼과 화살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선택을…….

    “바보같은……!”

    그녀라고 세계를 거스른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세계’가 대가에 바라는 것은 언제나 ‘본질’.

    이는 즉, 현재 아린세이아의 레니에가 ‘인공지능’인것과 상관없이, 온전히 그 대가의 징수가 이뤄진다는 뜻이었다.

    비록 ‘불사’의 신성을 지닌 레니에라고해도, 세계에 속한 존재인 이상 그 본질에 의거한 징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대…, 대체 어째서……?”

    루크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당초 계획은 이것이 아니었지않은가.

    그저 월영석을 취하고 도주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만일 그 과정에서 육신이 고장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는 전혀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굳이 아린세이아의 본질에까지 영향이 미치는 희생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물론 당장 도망친다고해도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또 오늘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스스로의 본질을 세계와 거래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루크는 어째서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동안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행동하느라 아직 이렇다 할 시간도 함께 보내지 못했는데…….

    그 순간, 루크는 머리가 멍해지는 충격이 들었다.

    “……아.”

    그런가, 이미 5000년 전에 똑같은 짓을 해버린 바보가 있지 않은가.

    루크는 과거 레니에가 했던’그런 것따위 바라지 않았다’라는 말의 뜻을, 이제서야 이해하는 자신이 참으로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루크가 아직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코트를 움켜쥐고 있으니, 케이트가 조심스레 의사를 전해왔다.

    -주인, 흔적을 찾을 겸 컴퓨터에서 타워에서 얻은 자료를 분석하던 중 레니에가 남긴 암호화된 차원의 메세지를 하나 발견했네만…….

    케이트에게 의사로 메세지만을 적당히 전달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보다 정확한 그녀의 메세지를 전해받고 싶었던 루크는 조용히 목소릴 내었다.

    “…보내줘.”

    케이트가 들은 루크의 목소리는 약간의 물기가 섞여있었다.

    그것은 분명,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는 가련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케이트는 제 주인의 이토록 감정적인 모습은 처음인지라 상당히 놀라웠지만, 인형 특유의 침착함으로 당황하지 않고 의사를 이었다.

    -……코트 안주머니에 보내두었네. 

    케이트는 아린세이아에서 찾은 편지를 방마코트 안쪽의 인벤토리를 통해 보내주었다.

    그에 루크는 조심스레 코트의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그곳엔 케이트가 보내두었다는 말대로, 미리 준비하지 않은 얇은 양피지 하나가 조그맣게 접힌 채 들어있었다.

    별다른 밀봉도 되지 않은 그것은 편지라기보다는 쪽지에 더 가까웠다.

    접힌 자국의 깊이, 잉크의 마른 정도를 보아 쪽지는 꽤 예전에 작성된 것 같았다.

    루크는 잠시 그녀를 품듯이, 쪽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녀의 입장에서 이 ‘역천’은 언제가 되었든 벌어져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루크는 그 편지를 품에서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는 건, 저는 이제 연극에서 퇴장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안녕히, 제 생의 유일한 주인공, 즐거웠어요. 무대가 끝나면 다시 만나요.-

    아무래도 쪽지의 크기가 작은만큼, 그 내용 역시 상당히 간결했다.

    그러나 그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연극과 장난을 좋아하던 그녀다움이 묻어나오는 문장이었다.

    그 때였다.

    -바스락, 바스락.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루크의 귀가 잠시 움찔거렸다.

    발소리의 무게나, 보폭의 간격을 생각하면 아마도 시루드일 것이다.

    “흐읍.”

    루크는 조용히 감정을 추스리며, 최대한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시루드, 인가.”

    “아…….”

    사라진 ‘케이트’의 남겨진 코트를 움켜쥔 채 주저앉아있는 루크의 모습에 미처 끼어들 틈을 잡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다 결국 들켜버린 시루드는, 머쓱한 듯 뒤늦게 인기척을 내었다.

    루크는 자신이 울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말했다.

    “…거기서 다 보았느냐.”

    “…응, 미안.”

    “하하, 추한모습을 보였군. 어째서 찾았지? 내가 오지 않으면 포기하고 먼저 가라고 했잖느냐.”

    “그랬지, 그것도 미안. 근데 걱정이 돼서. 근데 역시 그 사람은….”

    “‘침입자’와 함께 떠났네. 지금으로썬 닿을 길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말이지.”

    “아…….”

    루크의 대답에 시루드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그걸 왜 물어보려고 했던 거지?

    상황을 보면 짐작하지 못할 것도 없는데, 굳이 대답을 들어야 했나?

    시루드는 문득 부끄러워져 땅에서 주워온 월영석을 움켜쥐며 등 뒤로 숨겼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자신이 문제였다.

    애초에 자신이 루크에게 이런 선물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루크는 다시 저택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최소한 루크가 자신에게 월영석을 가지고 오기 위한 계획을 말해줄 때, 무모하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라도 했다면 그녀는 이런 슬픈 결말을 맞이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해봤자 돌이킬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이는 루크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루크는 눈에서 물기를 닦아내고는, 시루드를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곤 평소같이 말했다.

    “이만 미셸에게 돌아가지, 시루드. 모두에게 다 끝났다는 걸 알려야 할테니.” 

    하지만 역시, 애써 짓는 웃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으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짜…….
    한편을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면 감정이입이 안되어서 글을 쓰기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어느순간 고칠수가 없네요…….

    이야기를 보다 명확하게 하면서 레니에의 독단적인 잠수에서 숭고한 희생으로 변경한 만큼, 이에 따른 변화도 주어야 하지 않나 하고 이후 전개를 열심히 끼워맞춰보다보니 작업속도가 또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루크가 마법의 패널티를 짊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되다보니, ‘어린 루크’도 드러나는 시기와 방법에도 차이가 생기게 되었구요.

    ……이래저래 또 변명입니다.
    다음편은 정말 늦지않게 쓰겠습니다.

    ps. 이번화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역천’이라는 제목은 이전화에 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다 고치다보면 수정 안 끝나는 거 아닐까요? 설마, 그렇게 되긴 무서운데…….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