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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5

   예술 교단의 사도가 그린 딸의 그림을 가지고 복귀하는 베네딕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흐흐흐. 이 따위 놈팽이들이 내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 리 없다면서 초상화 하나 그리는 것조차 쉬이 허락해주지 않던 루시다.

   

   그래서 내 그 아이의 그림을 저택에 놔두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지.

   

   헌데 이번에 예술 교단의 사도께서 그려주신 루시의 귀여운 모습들이 손에 들어오다니!

   

   이를 어디에 전시해야 할까. 어디에 놔둬야 루시의 미모를 저택 모두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일단 밤의 달빛 아래에 선 루시의 그림은 무조건 내 방에 놔둬야 하고 다른 것들은.

   

   “고용주님이 왜 널 질색하는 지 알 것 같다. 생리적으로 좀 거부감이 드네.”

   “왜 갑자기 인신공격을 하고 난리냐!”

   “아니 그치만 지금 너 웃는 꼴이 너무 징그럽단 말야.”

   

   전장에서 미친놈마냥 날뛰던 베네딕을 알기에 더 거부감이 컸던 카리아는 베네딕의 상처 입었단 어필에도 혀를 찰 뿐이었다.

   

   “대체 미라는 이딴 놈의 어디가 좋았던 건지.”

   “이래뵈도 그리 인기가 없진 않았다만.”

   “네가 세운 전공이 얼만데 인기가 없으면 그것대로 문제야.”

   

   어깨를 늘어트리는 것으로 서운하단 티를 내던 베네딕은 카리아의 표정이 조금도 바뀌질 않는 걸 보고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사실 루시의 그림을 받았단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분명 기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건 루시의 주변이였어.”

   

   오늘 루시를 만나러 갔던 베네딕은 자신의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두 예술가를 만났다.

   

   학교에서 함께 지내며 상당히 친해진 듯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딸의 친구를 봤다.

   

   거리 한 가운데를 대놓고 차지하고 있는데 욕지거리가 새나오기는커녕 감탄사로 가득하던 사람들을 보았다.

   

   가끔 가다 불평어린 목소리를 내면 자신이 나서기도 전에 먼저 그들의 투정을 짓누르던 이들을 마주했다.

   

   “난 말이야. 우리 딸이 항상 걱정스러웠어. 지금에야 나라는 억제력이 루시를 지켜주고 있지만 내가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될지.”

   

   아무리 베네딕이 괴물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수명마저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신화시대의 영웅들이 그러했듯 그도 언젠가는 대지에 묻히게 되겠지.

   

   그럼 그 때 루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버팀목을 잃어버린 그녀를 누가 지탱해줄 것인가.

   

   평생 딸을 품 안에 내버려두고자 했던 베네딕이 마음을 바꾸고 그녈 아카데미에 보내기로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녀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베네딕은 그녀를 품 안에서 놓아주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도 무책임한 짓이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수도 없이 상처 받았을 아이를 또 다시 사람들에게 던진다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참 다행스럽게도 루시는 멍청한 베네딕 따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자신을 죽이지 않은 채로도 주변의 많은 사람과 연을 맺는데 성공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우리 루시 앞에 있는 장애물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치워주는 것 뿐이야. 주신의 사랑을 받는 우리 딸에겐 많은 시련이 있을 테니 자그마한 딸의 어깨에 올려진 짐 중 일부라도 짊어져야 제대로 된 아비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얼마 뒤에 진짜 목숨을 걸고서 싸워야 할 일이 생길 걸.”

   “안다. 우리 루시가 요정의 숲에 관심을 지닌 걸 보면 계시를 받은 게 분명하니.”

   

   신화시대의 악신을 상대하는 것에 두려움은 존재치 않는다. 훗날 목숨을 잃고 저승에 갔을 때 미라에게 비토를 당하는 것보단 악신을 상대하는 쪽이 손쉬우니까.

   

   “진군의 준비를 해둬야겠지.”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해. 네 기사단이 움직이기 위한 전조가 보이면 온갖 군데서 난리가 나니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

   “뭐?”

   “온갖 이들의 주목을 사야 알른의 기사단이 더더욱 날카로워졌단 걸 알릴 수 있을 테니까.”

   

   그 누구도 알른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겠단 베네딕의 선언에 카리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 좋은데. 그랬다간 지금보다 더 혼담이 많이 들어올 걸?”

   “상관없다. 어떤 시정잡배건 간에 거절할 테니까.”

   “그러다 네 딸이 첫 눈에 반한 사람이 나오면 어떡하려고.”

   “…그건.”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파파 미워 같은 소리를 들으면 버틸 수 있겠냐?”

   

   그 광경을 상상한 베네딕은 다리에 힘이 풀려선 바닥에 주저앉더니 이내 루시의 그림을 끌어안은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안 된다. 루시. 너를 그딴 놈에겐 보낼 수 없다! 나조차도 쓰러트리지 못하는 놈이 널 지켜줄 수 있을 리 없잖으냐!”

   “뭔 미친 소리야. 너 딸 평생 혼자 살게 하려고 그러냐.”

   “허나! 허나아아아!”

   “방금 전에 잠시나마 멋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원망스럽다. 진짜.”

   

   *

   

   에르기누스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수확은 여러가지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단 점이었다.

   요정의 숲은 내가 아예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장소.

   

   그러니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몸으로 부딪혀보고 아는 수밖에 없었는데 에르기누스와 이야기를 나눈 덕에 어느 정도 특정을 할 수 있게 됐거든.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에르기누스가 수백년동안 설계해 둔 여러 마법을 요정의 숲 전역에 설치할 수 있도록 도와 줄 마법사집단이다.

   

   본래 에르기누스는 몇몇 마법사들의 도움이면 충분할 것이라 판단내렸다 그랬지만 그 곳에 함께 있던 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고 나니 이것이 상당히 현실성 없는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됐지.

   

   ‘이 재료는 지금 지상에서 무척 귀하게 여겨집니다. 돈의 문제이전에 물량이 귀해 이 정도 양을 수급하기는.’

   ‘여기 이것도 문제입니다. 푸른 마력의 장미는 백 년 전에 멸종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만든 염료는 귀중품이 되어 같은 무게의 백금보다 비싸게 팔리죠.’

   ‘애초에 이만한 마법을 이해할 마법사를 수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은데.’

   

   문제는 세대차이였다. 틀딱해골인 에르기누스가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사이에 변화한 부분이 너무도 많아 그의 설계가 망가지게 된 것이다.

   

   <저 녀석은 예전부터 주변을 둘러보지 않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우리들이 이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당황해선 어떻게 계획을 수정하면 좋겠느냐 묻는 에르기누스의 모습에 베네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으음. 그 설명을 들으니까 지금 에르기누스 옆에 있는 누구누구랑 비슷한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실력 있는 마법사란 족속은 다 그런 걸까?

   

   아무튼 내 친구들과 상의를 마친 에르기누스는 그래도 천재는 천재라는 걸 증명하듯 즉석에서 여러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이라는 것들이 하나 같이 상당히 큰 규모를 지닌 마법사 집단의 도움이 필요로 한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내 바로 옆에 그 거대 마법사 집단을 이끄는 수장의 딸이 있단 점이었다.

   

   허술 공작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원하는 지는 대충 다 알고 있으니까. 그 점을 가지고서 잘 거래를 해보면 되겠지.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무력이었다.

   

   신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추잡한 짓거리를 하는데 한치 망설임이 없으신 우리 개허접병신 아그라가 문제를 일으켜서 오염된 요정들이 바깥으로 흘러나왔을 때 여기에 대비해 줄 힘이 필요하잖아.

   

   …최악의 경우 내가 실패했을 때 재앙을 막아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어둠의 악신에게 대적할 이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이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내겐 알른 가문이라는 뒷배가 있었다.

   

   알른 가문의 기사는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이들이다.

   

   신화시대의 전쟁에 참여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눈에 핏줄을 세운 채 기꺼이 그러겠노라 대답하겠지.

   

   이외에도 예술 교단이라던가 검성이라던가 라샤 같은 애도 잘만 꼬시면 이 전투에 참여시킬 수 있을 테니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이외에도 여러모로 거슬리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온 연들이 그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렇지만 하나. 한 가지 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요정의 숲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일이 너무 눈에 띈다는 것!

   

   당장 무력 쪽만 생각해봐도 그래!

   

   저택에 처박힌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대륙 최강 취급받는 베네딕이 자기 기사단을 이끌고 출정해봐!

   

   주변 국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닐까 싶어 기겁을 하며 사신을 보낼 걸!?

   

   파트란 가문의 마법사들이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야!

   

   진상을 아는 나야 허술공작이니 뭐니 하면서 웃어넘기지만 그 인간의 대외적인 평가는 사실상 마왕에 가까워.

   

   그런 인간이 자신의 마법사 세력을 이끌고서 무언가를 준비한다? 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오줌을 지리는 놈들도 있을 걸!?

   

   애초에 요정의 숲이 정화되는 과정 그 자체도 문제야.

   

   안 그래도 얼마전에 기적을 펼쳤다가 정신 나간 심문관 녀석한테 덜미를 잡힐 뻔 했는데 이번에 요정의 숲을 정화하기까지한다면 마냥 페이비한테 공을 돌릴 수도 없게 돼!

   

   교황의 시야에 들어오게 될 거라고!

   

   뭣보다 문제가 되는 건 이 일로 인해 벌어질 소동이 왕국주의자인 그 미친년한테 어떻게 여겨질지 모른다는 점이야!

   

   만약 이 행동을 반역이라 판단한다면 진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고!

   

   2왕비가 우리 쪽에 붙어 있으니 최악의 경우는 어찌저찌 피할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귀찮아 질 가능성이 너무 커.

   

   <1왕비에게 얻어내야 할 것이 정해졌구나.>

   ‘명분에 쓸모가 생겨서 다행이라 해야할까요.’

   

   그러니 이번에 1왕비와 만나게 되면 이번 일에 대한 양해를 구해야해.

   

   어차피 병약한 왕은 뒷방에 처박혀서 사실상 1왕비가 일국의 왕이나 다름 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마당이니.

   

   그 왕국주의자만 설득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그 왕국주의자만 설득할 수 있다면 말야.

   

   ‘…할아버지. 대역을 쓸 순 없을까요? 저 자신 없는데요.’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냐.>

   ‘아니. 카리아한테 연기해달라 그러면 알아서 잘해줄 것 같지 않아요? 저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제와서라고 했잖으냐. 한 시간 뒤에 1왕비와 만날 예정인데 지금 대역을 구하겠다고?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역시 안 되겠지? 내가 직접 그 정신병자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겠지?

   

   메스가키 스킬의 온갖 왜곡을 넘어서 그 인간을 납득시켜야 하는 거겠지?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최악의 상황밖에 안 떠오르는데!

   

   1왕비한테 칼침 맞는 쪽이 더 현실적인 것 같은데에에에에!

   

   누가 나 대신 협상해주면 안 돼?! 나 위장에 구멍 뚫릴 것 같단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윈도우 업데이트 때문에 날려 먹은 게 있어 업로드가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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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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