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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6

       

       

       독왕이 약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선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문이 사대세가에서 내려온다구요?”

       “그렇소. 조금 있으면 공표가 날 것이오.”

       “…미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 공표가 날 것이라는 확신이다.

       

       저 말인즉슨.

       

       “…이미 무림맹에 전서를 보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무림맹 쪽에서 언급한 게 아니라, 당문 쪽에서 내려가겠다 청했다는 뜻이다.

       사대세가에서 내려오고 싶다. 그리 적어 보냈다는 뜻이리라.

       

       문제는.

       

       “그게 내려오고 싶다고 내려와지는 겁니까…?”

       

       사대세가는 정식적인 자리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에 가깝다.

       그저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명문가 넷을 뽑아 그리 부르는 것인 만큼.

       

       당문이 원한다고 내려오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에 독왕은 내게 쓴웃음을 머금고 말한다.

       

       “불가능할 것 같소?”

       “…”

       “나는 가능하리라 보오.”

       

       독왕의 말에 차게 식은 머리에 반대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 가주님. 설마, 다 적어 보내신 겁니까…?”

       “한 글자도 빠짐없이.”

       “미치셨어요?”

       

       당문에서 벌어진 일, 하고 있던 실험.

       장로에 대한 모든 것까지 적어 맹에 보냈다는 의미였다.

       

       ‘진짜 돌아버렸나?’

       

       그런 짓을 안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맹에서 감찰이 나올 것이다.

       

       그때 그걸 숨겨도 모자랄 판국에 직접 적어 맹에 보냈다는 건.

       

       “망할 작정이십니까?”

       

       그냥 세가를 말아먹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꺼내 들지만.

       

       독왕은 마른 웃음만 짓고 있을 따름이다. 

       저 아저씨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나…?

       

       ‘어쩐지 냅다 장로들이고 뭐고 다 잡아 죽이더니만.’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도 안 쓰고 장로들을 참수한 것이나.

       일 처리를 온몸을 태워가며 하는 이유가 저것이었나.

       

       그제야 독왕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왜 그러나 했더니.’

       

       애당초 세가를 작살 낼 의도였다는 건가.

       명문가의 가주라는 양반이 자신의 세가를…?

       

       ‘그래서 모용희아가 뛰쳐나간 거고?’

       

       뭔가 깨달았다는 듯 모용희아가 냅다 뛰던 일이 떠올랐다.

       

       왜 그리 급하게 뛰어가나 했더니, 이걸 예상했다면 그럴 수 있었다.

       

       ‘모용세가는 상업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니까.’

       

       당문과 협약을 체결한 상황이기도 하고.

       여기서 당문이 스스로 무너지는 걸 택하게 되면.

       

       ‘…판도가 바뀐다.’

       

       당문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질 사태 또한 문제였다.

       

       이를 모용희아는 곧바로 예측했기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대응하고자 움직인 것 같았다.

       

       당문이 무너지면 판도가 변한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그만큼 당문이 지닌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당장 그 아래에 위치한 명가가 무너져도 시끄러워지는데.

       

       당문이 그리된다면? 파급력이 엄청날 게 뻔했다.

       그래서 더 의문인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독왕이 했다는 선택이,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쩌면, 당문이 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

       

       그만큼의 사고였으니,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타인에 의해 무너지면 모를까.

       독왕 스스로 당문을 무너뜨릴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정말 왜 그랬을까.

       나였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지였다.

       

       이에 독왕은 잠깐 침묵을 취하고는, 내 눈을 보며 말을 꺼내 들었다.

       

       “구 가주 덕분이오.”

       “…예?”

       

       독왕의 말에 멈칫해야 했다. 

       갑자기 여기서 아버지 얘기가 나온다고?

       

       뭔가 터트리셨나 싶다가도, 독왕이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라고 한 말이 있어 말을 참아냈다.

       

       “그가 내게 그러더군. 이걸 보고도 정파가 맞느냐고.”

       “…”

       “그 말이 맞소. 적어도 정파가 할 행동은 아니었지.”

       

       반박할 수는 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직전에 일어났던 상황들은 정파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독왕께서 하신 일은 아니시잖습니까.”

       “확신하오?”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내가 개입하지 않았으리라. 구 공자는 확신하느냔 말이오.”

       “…”

       

       선명히 빛나는 눈으로 독왕이 묻는다.

       천무지체 탄생 계획과 그걸 만들기 위해 벌였던 무수한 악행들.

       

       그 일에 독왕이 하나도 개입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하냐고 한다면.

       

       ‘…아니.’

       

       아니라 믿을 뿐, 확신은 없었다. 

       내 표정을 읽은 독왕은 살짝 웃으며 말한다.

       

       “나는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그렇다 해도 믿을 이가 더 적을게요. 그게 현실이지.”

       

       맞다. 

       그게 현실이었다.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상황이 이렇다면 믿는 이가 더 적겠지.

       

       “그리고.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책임을 져야겠소.”

       “당 가주님께서 구태여 그러실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라면, 지금 구 공자께서 한 말이 이유요.”

       “예?”

       “내가 당문의 가주기 때문이오.”

       “…”

       

       편안하다는 듯, 혹은 체념했다는 듯.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무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지금까지 가주라 말하며 실상 크게 한 것은 없어 보이나.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게 하필이면, 집안 간판을 내리는 일이라는 겁니까?”

       “하하.”

       

       진심으로 한 말인데, 독왕은 뭔가 웃겼는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명예만 있는 자리에서 내려온들, 집안이 망하진 않소만.”

       “명예에 죽고 사는 인간들이 가득한 땅덩이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 나 또한 그러했고.”

       

       원래 무인들이 그랬다.

       

       힘을 키우는 이유가 명예인 놈들도 태반인 삶이다.

       

       이름값 하나 얻는 게 인생의 꿈인 놈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별호 하나에 죽고 사는 것이다.

       

       그걸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다른 놈들 인생이 무슨 상관이겠나.

       그냥 그런 놈들이 상당히 많다는 뜻이었다.

       

       그런 곳에서 구태여.

       

       “명예를 버리셔야 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독왕이 그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그의 말을 들어도 모를 일이다.

       

       “구 공자.”

       “예.”

       “이미 뿌리가 썩은 고목을,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 수 있는지 아시오?”

       

       눈을 본다.

       입이 달싹여졌다. 

       

       독왕의 시선을 마주하니, 할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선택했다.

       

       “뿌리채 뽑아 씨앗을 다시 심는 것이요.”

       “…그래서, 아예 고목 채로 뜯어서 다시 시작하시겠다는 겁니까?”

       “말이 그렇지, 뿌리까진 아니지 않겠소? 하하.”

       

       당문이 인체실험을 했다는 것에다가 그걸 위해 납치까지 감행했다고 한다면.

       

       뿌리는 물론이고, 사대세가 자리뿐이 아니라, 맹에서 정파가 아니라는 낙인을 찍을 수도 있었다.

       

       애당초 당문은 사파 출신이었으니 그게 더 쉽겠지.

       

       그걸 다 알고 있을 텐데도 하겠다고?

       대체 왜.

       

       “창피하잖소.”

       “…창피요?”

       “창피해서 못 견디겠소. 구 공자. 아이들에겐 미안하나. 이건 해야 할 일이요.”

       

       내가 양심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미 그런 감정이 죄다 메말라서 그런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고맙소.”

       

       독왕이 갑자기 내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 말을 듣고 눈을 키웠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갑자기 내게 고맙다 하는 걸까.

       

       “공자가 이리 화를 내는 건, 내 딸아이 때문임을 알고 있소.”

       “…!”

       

       독왕의 말에 가슴이 푹 내려앉는다.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독왕의 말에 갑갑함을 느끼고 있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당문이 쓰러지며 당소열이 겪게 될 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게 신경 쓰여서, 이렇게 짜증이 났던 거였군.’

       

       그 이유가 이것이던 모양이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들과 딸에겐 미안하나. 내 선택은 이것이오.”

       “…당 가주님.”

       “앞으로도 많이 창피하겠지만, 이래야 그나마 덜 창피할 것 같소. 나는 명예를 버리지 않았소. 오히려 이게 내 명예를 지키는 일이오.”

       

       그러니 더는 말하지 말라.

       독왕은 내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뭔가 더 말을 뱉기엔, 자신 있게 뱉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가지 말아도 될 길을 가는 인간들은 저렇게 사람의 주둥이를 닫게 만들고는 했다.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을 때.

       독왕은 내게 덤덤히 말해왔다.

       

       “염치없지만, 딸 아이를 잘 부탁하오. 구 공자.”

       

       무슨 의미의 부탁인가. 

       

       당문이 쓰러지면 좀 건져달라는 의미인지.

       그 외의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다른 건 모르겠고. 이것만큼은 진심이다.

       

       대답을 들은 독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말한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독왕은 내게 은근슬쩍 말을 놓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뱉지 않았다.

       

       되레, 그 어투에서 그가 이제야 날 인정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

       

       

       

       

       

       독왕의 거처에서 나와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일정이 있다는 양반을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해야 할 때였다.

       

       ‘나도 슬슬 일정을 잡아야겠는데.’

       

       큰 일정들은 정리해놓은 상태지만.

       당장 앞으로는 뭐부터 해야 할지는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구가로 복귀한다.

       

       우선 그것부터 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집보다는 다른 곳을 가고 싶지만.’

       

       광동에 숨겨진 만년한철이 쌓인 동굴을 비롯해.

       나름 정리해둔 기연들을 하나씩 먹고 다녀야 하는 시점이었으나.

       

       ‘그걸 당장 하기엔 무리야.’

       

       기연을 먹기 이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신의와의 약속도 그렇고.

       나히에게 사용할 보석도 그랬다.

       

       이게 아니더라도,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 필요해.’

       

       진중히 수련할 시간.

       

       그게 가장 필요한 시점이었다.

       

       ‘…부족해 아직도.’

       

       화경에 닿은 것은 물론, 용이 되며 늘어난 힘까지 얻었으나.

       그럼에도 부족했다.

       천마와 혈마를 상대하기엔 더욱이, 개인의 힘도 만들어낼 세력도 부족했다.

       

       아직 암왕의 동작에 반응도 하지 못할뿐더러, 높게 오른 이들에게 닿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거기에.

       

       ‘구성에도 올라야 해.’

       

       투아파천무를 수련하는 것과 함께, 구염화륜공도 구성에 닿아야 했다.

       

       그래야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일을 알려준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마, 지금 말고는 없겠지.”

       

       그나마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있으면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내가 뒤틀게 만든 일을 제외한다고 해도.

       앞으로 생길 큰일을 감당하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했다.

       

       ‘이젠 기연으로 얻는 것도 한계야.’

       

       내기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난다.

       

       육체도 너무나 잘 빚어진 상태였으니, 이제 결국 해야 하는 건 스스로의 수련이었다.

       

       그래, 하자.

       해야 할 때 해야지.

       

       어차피 세가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면, 이참에 힘을 기를 때였다.

       그리 계획을 잡으며 처소로 돌아오니.

       

       “음?”

       

       밤새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마당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같이 있는 건….

       

       ‘위설아잖아?’

       

       뭘 하고 있었는지 위설아는 손에 내 옷을 들고 있었다.

       

       뭐야…?

       

       내가 들어오니 둘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아, 공자님.”

       “뭐해?”

       “…그….”

       

       내 물음에 위설아가 들고 있던 옷을 등 뒤로 숨기고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는다.

       

       “…빨래를 좀…하고 있었어요.”

       “빨래…? 뭘? 설마 그거?”

       “네….”

       

       손으로 옷을 가리키니 그게 맞다고 한다.

       내 옷을 빨고 있었다고?

       

       “…왜?”

       

       네가 왜 내 옷을?

       그런 의도로 물으니 위설아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피부가 워낙 하얀지라 그게 유달리 티가 났다.

       

       “오, 오랜만에…. 잠깐 기억이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머쓱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잡아야 했다.

       

       옷이 보이니 자신도 모르게 빨았다는 말인가.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본능인가 싶으나.

       원인을 찾자니 속이 유달리 쓰라렸다.

       

       ‘…이거 아무래도 내 잘못 같은데.’

       

       위설아를 시종으로 데려왔던 일 때문인가.

       별 이상한 행동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 빨래가 되어 있던 적이 많았던 거 같은데.’

       

       수련하고 오거나 나갔다 오면 방이 청소되어 있었다거나.

       왠지 모르게 좋은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너…. 설마, 나 몰래 청소라도 했었어?”

       “…!”

       

       혹시나 해서 물은 말에 위설아가 흠칫하며 얼굴을 붉히는 게 보인다.

       

       나는 당문의 시종이 해주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위설아가 했었단 말인가.

       

       “그걸 왜 네가 해.”

       “…그, 그냥…. 손이 좀 남아서요….”

       “할 거면 말이라도 하지. 뭔 우렁각시도 아니고.”

       

       중요한 건 이걸 왜 몰래 하냐고.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말에 위설아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몰래 들어온 건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선 일단 그녀가 내게 사과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죄송할 게 아니지.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고. 그냥…고마운 일 했으면 말을 하라고. 그래야 고맙다 하니까.”

       

       위설아의 반응에 웃으며 머리칼을 쓰다듬으려 하다가.

       

       옆에 아버지가 있다는 걸 깨닫고 손을 멈춰야 했다.

       

       이에 위설아가 내 손을 보며 아쉽다는 눈을 하더라.

       그걸 간신히 무시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가시려구요?”

       

       내 물음에 아버지의 눈썹이 조금 움직인다.

       

       “어찌 알았나.”

       “뭐가 말입니까?”

       “내가 가려고 한다는 걸 말이다.”

       “…그거야. 뭐.”

       

       느낌이 그랬다. 

       요즘 아버지를 자주 살펴서 그런가, 미세하게 느낌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왠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흠.”

       “근데, 얘랑은 무슨 이야기 중이셨습니까?”

       “별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 안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곧바로 위설아를 쳐다보지만.

       

       “…끙….”

       

       위설아도 내 말을 무시하겠다는 듯 시선을 피한다.

       

       뭐야…? 사람 불안하게.

       더 캐묻고 싶었지만, 우선은 참기로 했다.

       

       “…그건 뭐 넘어가고. 진짜 지금 가시려구요?”

       “의뢰가 다 끝났으니, 더 머물 이유는 없다.”

       

       저 말은, 독왕의 부탁을 다 끝냈다는 뜻이겠지.

       

       이는 곧 하룻밤 사이, 장로를 다 처리했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럼, 차라리 같이 가시지요? 저 못해도 내일이면 갈 건데.”

       

       말을 뱉고 나서 속으로 놀라야 했다.

       

       원래였다면 간다고 했을 때 환호를 보냈어야 했는데.

       내 쪽에서 아버지한테 같이 가자고 할 줄이야.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버지도 이에 놀랐는지, 보기 드물게 눈을 키우시더라.

       

       “아니…. 그, 그냥 겸사겸사…해봤습니다. 어차피 가야 하니까.”

       

       핑계를 대듯 말을 늘여놓았다. 왠지 그렇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걸 들은 아버지는 내게 말한다.

       

       “무리다.”

       

       거절이었다.

       

       “역시 그러시겠죠.”

       

       살짝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데.

       

       “본래였다면, 그리해도 됐을 테지만.”

       

       아버지는 안 어울리게 부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이 이상 늦으면, 화를 많이 낼 터이니 말이다.”

       “누가요?”

       “…”

       

       대답은 안 하는데, 눈을 보니 뭔가 상당히 곤란한 것 같았다.

       

       와중에 그 속에서.

       

       -사흘은…훌쩍 지났으니 말이야.

       

       같은 말이 작게 들렸다. 무슨 말일까 저건.

       

       아무튼, 같이 못 간다는 말이겠지.

       

       “…그럼, 어쩔 수 없겠지요. 세가에서 뵙겠…?”

       

       가볍게 포기하며 인사라도 할까 싶을 즈음.

       아버지가 눈앞에 뭔가를 내밀었다.

       

       손이었다.

       

       큼직한 아버지의 손.

       

       “…?”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아버지를 쳐다보지만, 아버지는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눈싸움을 하고 있으니, 끝내 아버지 쪽에서 내게 말했다.

       

       “잡아라.”

       “아.”

       

       그 말을 듣고서야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즉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손 크기가 워낙 차이나는지라, 아버지의 손에 내 손이 휘감기는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인가?’

       

       아버지와 이렇게 손을 잡는 거, 아마 처음인 것 같다.

       

       한 번도 이렇게 잡아본 기억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몇 초. 감상이고 뭐고 없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악수하고 있던 팔은 금방 놓아졌다.

       

       “먼저 가겠다. 조심히 돌아오도록.”

       “…예?”

       

       아버지의 말을 듣고 멈칫해야 했다.

       뭐야, 뭔가 확인하려 한 거 아니었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버…?”

       

       팟-!

       

       이내 아버지를 부르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눈앞에서 불씨가 되어 사라졌다.

       

       “…진짜 이대로 간다고?”

       

       악수만 딸랑하고 그대로 사라진다고?

       어이가 없네. 다짜고짜 나타나고는 아무렇지 않게 사라진다.

       

       아버지는 여전히 어려운 인물이었다.

       

       “하하.”

       

       그리 말하며 손을 살핀다.

       

       아버지의 손은 생각보다 뜨겁더라. 

       화공의 영향이려나.

       

       멋쩍게 웃음이 나왔다.

       이후 남은 것은 온기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다.

       

       툭툭.

       

       대충 손을 털어내곤 위설아를 쳐다봤다. 

       

       위설아는 특유의 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눈꼬리가 웃고 있는 느낌이다.

       

       그게 예쁘지만, 뭐랄까…. 

       

       ‘얄밉네.’

       

       그래서 냅다 머리칼을 헝크렸다.

       

       “으힉!”

       

       오랜만에 듣는 위설아의 귀여운 비명이었다.

       

       “고, 공자님 잠시만…!”

       “누가 그렇게 보고 있으래.”

       

       고운 머리칼을 몇 번 열심히 매만지니 위설아가 콧잔등을 찡그리더라.

       그걸 보고서야 손을 회수 했다. 더 하면 토라질 걸 알고 있었다.

       

       살짝 물러나곤 위설아를 보며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픈데.”

       “네.”

       

       오랜만에 밥 먹자 하는 느낌이다.

       위설아도 다행히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이왕이면 애들도 불러야겠다. 같이 먹으면 좋잖아.”

       “…네.”

       

       …그건 싫은가? 

       뭔가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착각이겠지.’

       

       위설아가 밥을 싫어할 리 없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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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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