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36

       *** ***

         

       싸늘하다.

         

       참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리 생각했다.

         

       하인들을 끌고와야 할 도무지 부하들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산개한 수적들이 뭘 하고 있는지 그저 소가포목점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인질이 절실한데 대체 무슨 변고가 일어났단 말인가.

         

       참정은 입술을 깨물며 이곳에 있는 수적들이라도 급히 인질 확보에 투입해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제기랄! 너희들! 너희들도 지금…!”

         

       여일예의 공격을 받아낸 틈을 타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참정의 말이 멈칫했다.

         

       열 명 정도 있어야 할 수하들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셋 뿐이었으니까.

         

       “무슨…!”

         

       대경하여 주변을 살핀 참정은 이내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수하들은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 다만 쓰러진 사람이 일곱이었을 뿐.

         

       “모두 조심해라 뭔가가 있다!”

         

       초절정들의 대결에 사로잡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수적들이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는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목격했지만 참정의 경고는 이미 늦었다.

         

       “커억!”

         

       세 명 남은 수적들 중 한 사람이 쓰러졌으니까.

         

       누군가 은신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에 참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무리 여일예와의 교전에 정신이 팔렸다고 한들 이 가까운 거리에서 수하들이 거의 다 쓰러질 때까지 그 기척조차 못하다니?

         

       심지어 그 존재를 눈치챈 뒤에도 희미한 기척만이 느껴질 뿐 그 모습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니 전문적인 암살기공을 익힌 고수임이 분명했다.

         

       ‘고수…! 무조건 초절정 이상이다!’

         

       참정은 그제야 수적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수적들은 인질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인질을 찾거나 잡았지만 존재조차 깨닫지 못한 암살자의 손에 모조리 당해버린 것이다.

         

       “사, 살려…!”

         

       “선장! 컥!”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참정의 눈앞에서 남은 두 수적을 정리해 버리는 암살자. 이를 기점으로 참정을 비롯한 선장들이 암살자를 경계하며 물러섰고 그런 선장들을 상대하던 여일예와 독고이설 그리고 모용연화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암살자, 흑묘 역시 흑영기공을 해체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 속에서 드러난 흑묘의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선주들이 신음성을 터트렸다. 궁지에 몰려 경각심이 곤두선 상황 속에서도 절로 시선이 빨려드는 흑묘의 용모 때문이었다.

         

       잠시 흑묘의 자태에 시선이 빼앗겼던 참정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분노했다.

         

       세상에 저 정도로 용모가 빼어난 미녀가 몇이나 있을까. 그에 더해 초절정 수준의 무공까지.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자는 단 한사람, 이번 작전의 목표였던 소연화 뿐이었다.

         

       “빌어먹을! 조사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잖아!”

         

       선장들이 거칠게 불만을 터트리며 이번 작전의 주동자 광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작 광윤은 성장한 흑묘의 모습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장들의 성난 시선에 자연스럽게 광윤이 주동자임을 깨닫게 된 흑묘 역시 광윤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광윤은 흑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웃음을 흘렸다.

       

       어린 시절 소연화를 보자마자 느꼈던 본능적인 이끌림.

         

       그 긴 세월동안 어떤 여인을 보아도 느낄 수 없었던 그 감각이 희미하나마 다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래간만이오. 소연화. 혹시 나를 기억하시오? 비풍검 광윤이오.”

         

       그러나 침입자들을 제압하는 과정 속에서 이들이 동정호의 수적들임을 알아낸 흑묘의 대꾸는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동정호의 도둑놈이겠지.”

         

       “크크, 너무 야박하군. 하긴 그대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매우 화가 나겠지. 내 사과하겠소.”

         

       “사과, 사과라고….?”

         

       츠즈즈즈즈즈!!!

         

       흑묘의 분노를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폭발적으로 뻗어나가는 경. 흑영기공이기에 기감으로도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지만 선장들은 흑묘 주변에 있는 어둠의 밀도가 짙어진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포목점의 식구들과 어머니를 인질로 잡으려 했던 녀석이 뭐?”

       

       “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었소. 내 어찌 그대의 어머님을 해할 생각을 했겠소? 그저 잠시 우리의 만남을 위해 신세를 지려 했을 뿐.”

         

       “이 개자식아!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우릴 속인 거냐!”

         

       광윤이 속셈이 자신들에게 제안한 작전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것을 깨달은 선장들이 광윤을 돌아보며 거칠게 살기를 피워 올렸다. 광균은 그런 선장들의 시선을 받으며 느물거렸다.

         

       “그걸 이제 알았나? 소연화를 손에 넣는다면 너희들을 속이고 나 혼자 도망칠 계획이었다.”

         

       “이런 미친 자식 같으니라고!”

         

       선장들은 자신들을 속였음을 시인한 광윤에게 일제히 살기를 쏟아냈다. 그 살기를 받은 광윤이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순식간에 구도가 이상해졌다. 혼자 고립된 광윤. 세 선장. 그리고 흑묘를 포함한 호천안 일행까지.

         

       흑묘는 이 상황에서 더 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 사람과 함께라면 선장 넷을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공격…”

         

       파바박!

         

       다만 흑묘가 그런 판단을 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광윤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애초에 제 속셈을 폭로하며 지금과 같은 구도를 만들어 낸 자가 광윤이었으니 선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다.

         

       광윤이 택한 선택은 도주였다.

         

       세 선장은 곧바로 광윤을 따라 몸을 날리려 했으나 함부로 몸을 날렸다가는 흑묘와 일행들에게 등을 보인다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흑묘 일행들 역시 주동자임이 확실한 광윤을 잡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선장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망설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제 행동을 정해두었던 흑묘가 곧바로 광윤에게 따라붙었다. 그런 흑묘의 행동을 본 일행들 역시 선장들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저 녀석이 주동자다! 우린 속았단 말이다!”

         

       “그렇다고 네놈들이 침입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일행들이 각자 선장들을 붙잡는 모습을 확인한 흑묘가 더욱더 추격에 박차를 가했다. 경공 수준에 차이가 있는 아주 조금씩이나마 좁혀지는 거리.

         

       이대로라면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더 가열차게 경공을 전개하던 흑묘는 광윤의 한 마디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본인을 따라올 생각이오? 친구들 중 누군가가 다칠지 모르고 습격의 뒷수습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광윤을 향한 분노로 끓어오르던 흑묘의 머리가 단번에 식었다.

         

       이대로 광윤을 쫓아간다면 여일예와 독고이설 그리고 모용연화는 각기 초절정 한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 초절정 중에서야 적수가 없는 여일예는 안심할 수 있지만 과연 독고이설과 모용연화가 다른 이들을 온전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독고이설과 모용연화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경험이 많은 상대와의 대결 중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니 어쩌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광윤을 잡겠답시고 추격을 벌였다가 세 사람 중 누구 한 사람이 다치기라도 한다면…자신을 위해, 소가포목점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 준 세 사람에게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설령 광윤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이들을 먼저 정리하고 모두의 안전을 확보한 뒤 쫓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흑묘의 발걸음이 절로 느려지고 종국에는 멈추었다.

         

       그 때였다.

         

       “대체 뭘 하는 거에요!”

         

       날카로운 독고이설의 음성이 흑묘의 귓전을 때렸다. 선장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멱살이라도 잡았을 불같은 기세였다.

         

       “저런 소리를 하는 놈을 그냥 놓아줄 건가요! 이놈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장 쫓아가요!”

         

       “하, 하지만…”

         

       모용연화 역시 흑묘에게 소리쳤다.

         

       “흑묘 소저. 저희를 걱정하는 마음은 감사하나 그 때문에 본인의 일을 그르친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입니다!”

         

       두 사람의 말에 흑묘의 눈이 흔들렸다. 두 사람의 강권과 자신의 판단 사이에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흑묘의 귀에 여일예의 목소리가 닿았다.

         

       “부담스럽습니까?”

         

       그야말로 흑묘의 망설임을 관통하는 한 마디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은공이나 사라를 도울 때에는 그리 열성적이시더니 정작 본인이 도움받는 것은 왜 그리 못 견뎌 하십니까.”

         

       “저, 저는…”

         

       “저는 흑묘 소저를 돕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긴 시간을 격해 본가에 돌아온 흑묘 소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흑묘 소저가 행복해 보이니 저 역시 웃음 짓게 되더군요.”

         

       여일예는 자신이 맡은 선장을 몰아붙이면서도 계속해 입을 열었다.

         

       “독고이설 소저도, 모용연화 소저도, 그리고 이곳에 없는 사형과 은공도 모두 흑묘 소저의 웃음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흑묘 소저의 행복은 오직 흑묘 소저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지요.”

         

       자신의 행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흑묘는 절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흑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며 행동하겠다는 여일예의 마음가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이 감정은 고마움일까 혹은 부담감일까.

         

       “그러니 저희를 밀어내지 마십시오. 미안해하는 대신 믿고 저자를 추격해 주세요. 습격을 계획한 핵심 인물을 놓쳐서야 어떻게 마음을 놓고 웃을 수 있겠습니까.”

         

       흑묘는 어쩐지 고마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십시오!”

         

       등을 떠미는 여일예의 외침에 흑묘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이미 시간이 지체될 대로 지체되었지만 흑묘는 온 내공을 다리에 밀어 넣으며 전력으로 경공을 발휘했다.

         

       광윤이 도망친 방향은 선착장이 있는 쪽. 광윤이 수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선착장에 놓여진 자신의 배를 타고 도망칠 심산일 터.

         

       계산을 마친 흑묘의 이성이 이미 늦었다고 속삭였다.

         

       지금부터 선착장으로 달린들 선착장에 도착할 때면 이미 광윤은 배를 타고 출항해 동정호의 뱃놀이 배들 사이로 숨어들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흑묘는 그런 이성의 계산을 무시하고 더욱더 경공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선착장을 향해 뚫려 있는 길을 맹렬하게 달려나가며 흑묘는 생각했다.

         

       여일예, 독고이설, 그리고 모용연화와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세 사람과의 인연의 깊이는 모두 달랐지만 함께 육성진을 연마하고 같이 비천마차를 타고 천하를 누비고 그 안에서 잡담하고 호천안을 도우며 역경을 극복한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무겁고 소중했다.

         

       계속해서 발목을 잡아온 자신의 체질이 이 관계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흑묘는 일행들에게 미안해했고 고마워했다. 너무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면 이 관계가 깨지는 것은 아닐까. 감사함을 표하지 않는다면 이 인연이 어그러지는 것이 아닐까.

         

       마치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한 가닥의 거미줄을 보는 심정으로 그렇게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흑묘의 착각이었다.

         

       동료들과의 인연은 그리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약하기는커녕 어려운 처지의 흑묘가 의지하거나 그 몸을 완전히 던지더라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질기고 튼튼했다.

         

       흑묘는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소가포목점이라는 그늘에서, 태양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자신을 꽁꽁 싸매고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닫았던 흑묘.

         

       호천안을 계기로 살짝 열려버린 마음의 문. 그 빗장을 통해 하나하나 스며들던 인연들. 그 인연들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조금씩 덜컹이던 마음의 문이 비로소 활짝 열렸다는 것을.

         

       스스스스!

         

       활짝 열린 마음의 문은 흑묘의 마음 속에 남아 있던 품었던 미안함. 그리고 불안함의 찌꺼기를 날려보내고 그 자리에 세 사람이 전해준 용기를 가득 채웠으니 흑묘는 비로소 두려움을 떨쳐내고 전력을 다할 각오를 굳혔다.

         

       흑묘의 단전 깊숙한 곳에 태음기가 요동쳤다.

         

       항상 태음기가 새어나갈까 걱정되어 그 힘을 온전히 끌어다 쓰지 못했던 흑묘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흑묘의 머릿속에 그러한 고민은 없었다.

         

       일행들이 마련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오직 흑묘의 머릿속에는 그런 일념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 일념에 몸을 맡긴 채 흑묘는 자신의 모든 기운을 개방해 땅을 박차는 순간.

         

       파아아앗!

         

       이미 한계에 달했다 여겼던 경공의 속도가 상승했다.

         

       “…아!”

         

       그 순간 흑묘는 저도 모르게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늘어난 경공의 속도도 속도였지만 너무나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감싸는 태음기 때문이었다.

         

       몸 안에 머무는 기, 내공이란 아무리 안전한 성질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 고삐를 놓치면 이내 기맥과 단전에 상처를 입히고 주화입마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놈이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온전히 다루어 본 적이 없는 태음기가 이렇게 매끄럽게 움직이다니?

         

       내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한 채 힘을 끌어올린 흑묘의 예상과는 정 반대의 결과였다.

         

       흑묘는 몸에 갇혀있던 모든 태음기를 온전히 다루는 순간 자신의 경지가 한 단계 올랐음을 직감했다.

         

       태음지체.

         

       천하의 모든 음기를 아우르는 태음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천하를 이루는 기운의 절반과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흑묘는 능히 화경이라 칭할 수 있었으니까.

         

       흑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로 겁쟁이었구나.’

         

       태음기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역량을 손에 넣었음에도 그저 용기를 내지 못해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지냈다.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

         

       한기만으로는 천하에 견줄 기운이 없는 구음기도 흡수했고, 육성진을 통해 성질이 전혀 다른 기운들을 다루는 연습도 지겹도록 했는데 말이다.

         

       흑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간신히 가라앉힌 태음기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두려웠기에 흑묘는 태음기를 다루려고 시도하기는커녕 단전에 꽁꽁 싸매기에 바빴다.

         

       그저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갔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화경이라는 답을 손에 넣을 수 있었거늘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호천안의 손에 이끌려 이곳 악양에 왔다.

         

       악양에 와서 천호문과의 갈등을 빚고, 소연화라는 신분을 되찾은 뒤 몰려드는 수많은 청년들을 막아내기 위해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권력을 남용한 태수를 처벌하기 위해 혁기린이 어사가 되는 소동이 일었으며, 수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 과정 속에서 호천안은 단신으로 문파를 봉문시켰으며, 혁기린은 황녀로서의 힘을 끌어다 썼다. 여일예와 독고이설 그리고 모용연화는 번을 서며 소가포목점을 지켜주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초절정 고수들과 검을 맞대고 싸웠다.

         

       흑묘는 그제야 이해했다.

         

       이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온 호천안의 행동과 흑묘를 위해 힘써준 동료들의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니 이제 그 마음에 보답해 줄 때였다. 자신을 이끌어 준 호천안이,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준 동료들이 후련하게 웃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지.

         

       그런 마음을 품고 더욱더 가열차게 경공을 전개한 흑묘는 이윽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빠르게 선착장을 훑으니 저 멀리서 동정호로 들어가는 배가 한 척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배의 말미에는 광윤이 서 있었다.

         

       흑묘는 선착장의 끝에서 배까지의 거리를 파악했다. 지금도 노를 저어 멀어지고 있는 배와의 거리는 대략 삼십여 장.

         

       도저히 수상비로는 쫓아갈 수 없는 거리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광윤은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흑묘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광윤의 안심은 때 이른 것이었다.

         

       쩌저저적!

         

       흑묘를 중심으로 선착장에 막대한 한기가 뿌려지기 시작했으니까. 뱃놀이를 위해 선착장에 드나들던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기함을 내질렀다.

         

       “동정호의 물이 얼어붙고 있다!”

         

       “세상에!”

         

       그 소란 속에서 흑묘가 얼음 위에 발을 올렸다. 사뿐히 얼음 위에 몸을 올린 흑묘의 앞으로 얼음으로 만든 길이 생겼다.

         

       “마, 말도 안돼!”

         

       아무리 빙공의 고수라지만 호수를 얼려 길을 만든다니?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을 목격한 광윤은 경악해 뒷걸음질 쳤으나…얼마 지나지 않아 광윤의 머리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호수 물을 얼려 얼음 발판을 만든다. 누가 봐도 극심한 내공 소모가 필요한 일이었다.

         

       과연 동정호의 물을 얼리면서 배에 오른 소연화에게 자신과 싸울만한 내공이 남아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광윤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지금 상황은 소연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서, 선장 아무래도 이건…”

         

       “지금이라도 배를 버리고 물로 도망치는 것이…”

         

       흑묘가 보이는 신위에 겁먹은 수적들이 도망을 입에 담았으나 광윤은 검을 뽑으며 수적들을 윽박질렀다.

         

       “저런 일을 벌이고도 내공이 남아날 리가 없는데 왜 겁을 먹는 거냐!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리겠다!”

         

       수적들이 마지못해 검을 뽑아들고 진형을 갖추는 사이 흑묘가 배에 올랐다.

         

       “흐흐흐. 소연화. 이성을 상실했군. 호수에 내공을 다 뿌리고도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나?”

         

       흑묘는 광윤이 무슨 착각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상대가 잠깐 사이에 경지가 올랐다고 추측하는 것보다야 모든 힘을 쥐어짜가며 추적에 나섰다고 여기는 편이 합리적인 추론이었으니까.

         

       “그래.”

         

       그러나 흑묘는 광윤의 착각을 바로잡아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 그대로 전력을 끌어올렸다.

         

       어두운 밤. 눈이 부시다고 생각될 정도로 찬연한 청색 강기가 피어 올랐고 발밑의 발판이 단숨에 얼어붙을 정도의 구음기가 흑묘의 몸을 휘감았다.

         

       압도적인 힘을 보이는 흑묘의 모습에 광윤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직감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흑묘의 쌍장이 광윤의 목전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비산하는 냉기. 그런 냉기를 뚫고 동정호로 몸을 내던지는 수적들을 마지막으로 소가포목점에서 일어났던 습격은 그 막을 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끊을 포인트가 없다.)

    (그러니 그냥 올린다.)

    (그것뿐이다.)

    *
    [미공개]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